내가 타인의 감정을 알기 위해 한 노력은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감정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지 관심을 기울인다.
2. 시나 소설, 영화 등의 매체를 통해 특정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을 접한다.
3. 1번과 2번을 통해 습듭한 것을 내 감정에도 적용하여 표현해보고,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펴보며 표현방식에 대해 보완·수정한다.
첫번째 항목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그 사람에게 집중하는 의식적인 노력을 해야 했다. 그동안 내가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지 않았으므로, 나에게 먼저 자신의 마음을 먼저 여는 사람들은 없었다. 우연히 사람들 사이에 낄 수 있을 때, 나를 제외한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 소통하는지 살펴보았다.
"○○랑 헤어지게 될 것 같아." 친구1이 불행한 미래를 예측하는 말을 하면, 친구 2는 "니네 잘 사귀었잖아. 어쩌다가?"라며, 친구1의 불행을 이미 짐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정확성을 더하기 위해 궁금해하는 반응을 보여 속내를 말하도록 유도한다. "아, 몰라. 걘 좀 이상해." 친구 1은 이마를 지푸리며 이야기를 더 이어가려다가 내 눈치를 한번 본다. 나는 친구1을 쳐다보며, "나는 사실 네가 ○○랑 사귀는 지도 몰랐어. 근데 네가 너무 아까운 것 같은데?" 라고 말한다. 그러면 친구 1은 "그치?"하면서 원래 친구2에게 하려고 했던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내가 어제 ○○랑 통화하는데, ○○가 이러는 거야……."
친구 1의 이야기를 온전히 다 들어도 나는 그 친구를 이해하지는 못할 때가 많았다. 나에게는 별로 의미가 없는 일에 왜 그렇게 크게 반응하는지. 그러나 친구 2가 하는 반응들, 예를 들어,"아, 그랬구나.", "당연히 넌 기분 나쁘지.", "잘했어."하는 맞장구가 인상적이었다. 둘은 이야기를 하면 할 수록 더욱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호응하며 보이지 않는 서로의 거리는 좁혀지고, 나중에는 삶을 공유하며 서로를 지켜주는 단계에 이르는 거구나, 알게 되었다. 서로 지켜주는 사이가 된다.
대학 동기들은 혼자 있는 나에게 강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관계에 속하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니냐고. 지금도 그렇지만, 간혹 사람들은 혼자 있는 것에 지나치게 가치를 부여한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주로 관계에 얽매어 있어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피로감으로 이야기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관계중심주의 문화인 한국에서 혼자라는 건, 생존까지 위험할 수 있다. 물론 우리가 혼자가 되어야 하는 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부인하진 않는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나는 자발적으로 잠시나마 혼자 되기를 선택했다. 나의 문제는, 나는 혼자 있는 것 외에 대안이 없다고 여겼다는 데에 있었다. 오히려 나를 드러낼 정도로 강하지 않았다.
두번째 항목을 실천하기 위해서 학교 도서관에 오래 머물렀다. 주로 책을 읽었지만, 책을 읽기 힘들 때는 멀티미디어실을 찾아서 DVD를 빌려 보았다. 초반에는 책도, 영화도 주로 강한 자극을 주는 것에 끌렸다. 내 마음을 흔들어놓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감정의 파동이 큰 게 효과적이었다.
일찌기 나는
_최승자
일찌기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마른 빵에 핀 곰팡이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년 전에 죽은 시체.
아무도 나를 키워주지 않았다.
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
아무 데서나 하염없이 죽어 가면서
일찌기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잠시 스쳐갈 때 그러므로,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너를모른다 나는너를모른다.
너당신그대, 행복
너, 당신, 그대, 사랑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최승자, 기형도, 김중식, 강기원 등 고통에 대해 날카롭게 시를 쓰는 시인들의 시에 매료되었다. 일찌기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고, 아무도 나를 키워주지 않았으며, 내가 살아있는 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는 시인의 고백에 마음이 닿았다. 그렇게 혼자서 곰팡이처럼 오줌자국처럼, 천년 전에 죽은 시체처럼 아무데서나 하염없이 죽어가는 존재라고 할 때의 내적인 공허감과 그 공허로 인한 고통이, 나 혼자만 겪는 것이 아니라는 것에 위안을 얻었다.
소설이나 영화를 고를 때에도 병 든 자아를 가진 인물의 파국으로 치닫는 이야기를 좋아했는데, 예를 들어, 소설 「피아노 치는 여자」가 원작이었던, 프랑스 영화「피아니스트」나 김영하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나 「양들의 침묵」과 같은 인간의 추악한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연쇄살인범의 이야기도 좋아했다.
이런 취향이 직접적으로 공감을 하는 데에 도움이 되진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경험하고 있는 고통을 다른 이들에게도 전달할 수 있는 글로 표현하는 데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내가 처음 쓴 시는, 「나비」였다. 한번도 가본 적도 없는 프랑스 역이름 중 가장 낯선 이름, 퐁마리 역을 골라서 그 역에서 구걸하는 보스니아 여자 아이 이야기를 썼다. 보스니아 내전 중에 부모와 눈을 잃은 아이는 프랑스로 어렵게 피난왔지만, 아무도 이 아이를 돌봐주지 못했다. 그 아이는 아름다운 춤으로 구걸을 하며 살다가 어느 날 사라졌다. 추위와 배고픔으로 죽은 소식을 듣고, 나(시적 화자)는 그 아이가 나비가 되어 날아간 것이라고 표현한다.
나는 이 시를 작은 공모전에 내고 받은 20만원으로, 프로이트 전집과 임상심리학 전공서적을 샀다.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나와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게 놀랍고, 기뻤다.
어느 순간부터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불안발작이 나를 덮쳐와 괴로울 때, 나도 모르게 기도인지 모를 중얼거림을 자주 했다.
"내가 내 고통 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고통 또한 알게 해주세요. 눈물 흘릴 수 있게 해주세요."
다른 이들의 고통을 알 수 있다면, 그래서 울 수 있다면, 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공감을 위한 의식적인 노력들을 하다보니, 수년이 지난 후 영화나 소설을 볼 때에도 섬세하게 감정을 이해할 수 있는 시점이 왔다. 자신의 팔을 손톱으로 찍어누르며 이별을 말하는 「화양연화」속 장만옥의 모습이 슬펐고, 「러브레터」마지막 장면이 왜 감동적인지 알게 됐고, 사랑이 시작할 때 영화가 끝나는 「사월 이야기」를 흥미롭게 보았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마지막 장면에서 남자 주인공이었던 츠마부키 사토키가 걷다가 길 위에 주저앉아 울음을 폭발하는 장면에서 나도 같이 울었다.
심지어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 같은 이야기에도 반응할 수 있었고, 슬픈 이야기에 울게 되면서부터 잔인한 장면이 나오는 영화는 자동으로 보지 못하게 됐다. 칼에 찔리는 장면이라도 보면, 자꾸 내가 칼에 찔리는 것 같아서 볼 수가 없었다.
타인의 감정을 인지적으로 이해하는 것, 그리고 느낄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일이다. 내가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며 눈물을 흘린다고 해서 세상에는 그 어떤 영향도 없겠지만, 내 안이 풍요로워진 느낌이었다. 아무 다양한 색채를 품은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많이 울게 되면서 더 많이 웃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참 아이러니하게도 공감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불안발작을 사라진 건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일순간 사라져 흩어져버릴 것 같은 내적인 분열과 고통, 허무감을 경험하곤 했다. 약을 먹어도 잠시 진정할 뿐, 아예 사라지진 않았다. 그 고통은 나에겐 너무나 확실한 유령이고, 난 그저 그 유령을 다스리면서 사는 수 밖에 없다. 그 유령을 잊고 살 때도 많다. 그러나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내 자신을 혐오할 때, 그렇게 내가 어둠에 물들어갈 때 그 유령은 내 곁에서 몸을 일으켜 세워 순식간에 나를 집어삼킨다.
새벽에도, 낮에도, 밤에도 언제 그럴 지 모른다. 공포에 질려 비명과 함께 뺨을 때리곤 하는데, 나를 저지하기가 쉽지 않을 때도 있다. (흥미롭게도 오로지 왼 손만 내 뺨을 때린다. 왼 손은 내 통제 권한 밖인 듯 하다.)
그럴 때 밖으로 나가 뛰거나 푸쉬업을 해서 몸을 힘들게 하면 나아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발작으로 넘어가기 직전의 신호를 파악하고 그 흐름에서 벗어나기 위해 생각을 분산 시킨다.
잘 알고 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죽었던 사람들까지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유령을 달래면서 사는지. 그래서 우리는 매일 또 한번 아침을 맞이하면서 승리자가 된다. 누구도 해치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이 승리자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승리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