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_시간의 비가역성

by 하이디어

시간이 날 통과해 사라질 때가 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나는 아까 와는 결이 다른 시간대에 살고 있다. 분명 낮에 이 책을 본 것 같은데, 책을 덮고 고개를 드니, 유리 창 너머에서 푸르게 다가온 어둠 사이로 아이들이 책가방을 메고 지나가고 있다.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불리는 짙푸른 저녁. 바깥에 있던 사람들은 금세 다가오는 어둠을 피해 불빛과 온기가 있는 공간으로 빠르게 발걸음을 옮긴다. 내가 어둠이 오는 줄 몰랐던 건 이미 낮부터 환하고 따뜻한 이곳에 있어서였겠지. 어둠도 들어오지 못하는 환한 곳에 머물 때에는 밤이 오는 것에 민감할 필요가 없다.


나를 일부러 바깥으로 나서서 밤을 마중한다. 얼굴에 제일 먼저 닿은 오늘 밤은 참 맑고 파란 추위다.


푸른저녁_에드워드호퍼.jpg 에드워드 호퍼, 푸른 저녁

8년 전 브랜드 디자인 회사에서 일할 때였다. 어느 봄날 오후, 용산 아이파크몰에서 고객사와 미팅이 있어 고객사 담당자, 내가 모시는 상사와 함께 식사와 차를 마시며 업무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눴다. 상사와 고객사 담당자는 내가 회사에 들어오기 전부터 언니, 동생 하며 사적으로 친한 사이여서 사적인 내용도 주고받았다. 나를 뒤로 하고 둘은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는데, 나는 함께 이야기를 나누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둘의 이야기를 듣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묘한 불편함을 견디고 있는데,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다는 걸 느꼈다. 목덜미와 등, 가슴이 심하게 뻐근하고 아무리 깊게 호흡을 하려고 해도 안 된다는 걸 느꼈다. 아팠지만, 식은땀을 흘리며 견뎠다. 견디다 보니, 조금은 나아지는 것 같기도 했다. 회사로 복귀하는 택시 안에서 상사에게 병원에 잠시 들렀다 가겠다고 이해를 구하고 병원 앞에서 먼저 내렸다.


병원에서는 기흉이라고, 어서 대학 병원의 응급실로 가야 한다고 했다. 기흉이요? 네, 폐에 구멍이 난 거예요. 폐는 풍선이랑 비슷해요. 숨을 들이쉬면 커졌다가 숨을 내쉬면 줄어들고. 그런데 그 풍선에 구멍이 났다면, 어떻겠어요? 구멍으로 바람이 새어버려서 풍선이 단숨에 쪼그라들겠죠. 폐가 그렇게 되면, 죽는 거예요. 그렇게 되기 전에 빨리 근처 응급실에 가세요.


나는 내 폐를 찍은 엑스레이 사진을 들고 나와 회사로 가서 대학병원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 아마도 수술을 하게 될 거라고. 차분하게 말하는 나를 보고 상사는 긴가민가 하는 눈치였다. 나는 엑스레이 사진도 받았다고 하며 보여줬다. 그리고 혹시 몰라 무리하지 않기 위해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갔다. 회사 근처에는 강남 세브란스 병원이 있었는데, 어차피 수술을 하게 될 거라면 내가 나온 대학 병원으로 가면 교우 할인도 받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 고대 구로병원에 진료도 예약했다.


입원 수속을 밟으면서도 난 차분함을 잃지 않았다. 간호사는 병원 근처 카페에 가 있어도 좋다 했지만, 딱히 갈만한 곳도 없어서 나는 짐가방을 옆에 끼고 병원 로비에서 어머니와 함께 TV를 보고 있었다. 내가 입원한 흉부외과 입원실은 6인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완공한지 얼마 되지 않은 건물에 운 좋게 입원실을 얻게 되었다.


입원해서 옷을 갈아입고 제일 먼저 한 일은 흉관 삽입이었다. 다음 날 수술 예정이었기 때문에 나는 금식과 함께 물도 마시지 못하고 진통제 없이 내 갈비뼈 사이에 꽂은 관을 느껴야 했다. 숨쉬기도 이전보다 더 힘들었고, 숨 쉴 때마다 통증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가 나갔다가 했다. 통증에 흐름이 있다고 느꼈을 뿐, 아프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


다음 날 오후 2시가 되어서야 내 차례가 왔다. 나는 갈증과 통증으로 거의 미쳐버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수술실로 들어가 차가운 수술대에 누워 수술 집도의를 기다리면서 다른 의사와 간호사가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는 소리를 들었다. 마치 내가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서로 무슨 우스갯소리를 한 것 같기도 한데, 잘 기억나진 않는다. 등 뒤로 서늘함이 전해져오는 수술대 위에 누워 있어서 그런지, 이들의 태도도 서늘하게 느껴졌다. 조금 있다가 마취로 내가 정신을 놓으면, 이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홀딱 벗겨서는 내 내장까지 이리저리 훑어보겠지. 나는 내 몸이 어떻게 되는지도 전혀 모르면서 이 사람들에게 폐에 구멍 난 몸뚱이로서만 인식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엄청난 통증으로 정신이 들었다. 내 가슴이 불로 난도질된 느낌이 들어, 나도 모르게 쉰 소리가 새어 나왔다. 갑자기 누군가가 소리를 지르고 간호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가만히 누워계세요. 여긴 병원이에요. 그러더니, 간호사들이 우르르 그곳으로 뛰어가는 것 같았다. 나는 그곳으로 가려고 날 지나치는 간호사 팔목을 붙잡고 말했다. 저도 너무 아파요. 토할 것 같아요. 간호사가 거즈를 내 얼굴 가까이에 대주었다. 나는 몸이 통증을 못 견디는지 헛구역질만 해댔다. 그리고 잠시 정신을 잃었는지 나는 침대를 열차 삼아 엑스레이실로 실려가고 있었다. 아파서 자꾸 몸을 웅크리게 되는데, 엑스레이 기사는 잠시만 몸을 바른 자세로 펴고 있으라고 했다. 엑스레이를 찍고 CT를 찍어 수술 결과를 확인하고 입원실 내 자리로, 다시 침대 열차를 타고 올라갔다. 통증으로 인해 침대 열차가 편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입원실에 도착해서 간호사가 링거에 꽂아준 진통제로 나는 점차 통증을 잊을 수 있었다. 저녁에는 물을 먹을 수 있었고, 다음 날 아침엔 죽을 먹을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부턴 진통제를 먹는 걸로 처방받았는데, 간호사가 약과 함께 건네 준 설명서를 보니, 마약성 진통제였다. 수술 후에도 관을 꽂은 채 견뎌야 하기 때문에 이 정도의 약은 먹어야 버틸 수 있었다.


밥을 먹고 몸을 움직이게 되면서 빠르게 회복되었다. 그러나 밤을 지나 새벽이 올 때마다 약기운이 떨어지는지 갈비뼈에 꽂아둔 흉관으로 인한 통증이 밀려왔다. 병원에서 맞이한 새벽 또한 수술대처럼 서늘한 느낌이었는데, 나는 그 새벽에 일어나 매일 반복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간호사 실 앞에 있는 체중계에서 몸무게와 키를 재고, 통증으로 인해 백만 광년이나 떨어져 있는 것 같은 엑스레이식에 가서 흉부 엑스레이를 찍어야 했다. 내 자리로 돌아와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나면 아침이 시작되었다. 아침이 오고 밥이 오면 나는 그제서야 진통제를 먹고 통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입원 기간은 약 2주, 퇴원한 뒤 잠시 악화되어서 일주일간 집에 누워있었다. 다시 회사에 출근하면서 통근 버스에서 사람들이 다가올 때마다 수술 부위를 건드릴 것 같아 겁에 질렸지만, 다행히 스스로를 잘 보호했다.


돌이켜보면, 참 좋은 시간이었다.


이전까지는 숨을 못 쉬고 죽으면 어떻게 하지, 하는 두려움으로 오히려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숨을 못 쉬는 불안(공황) 발작이 있었다면, 오히려 진짜 숨을 못 쉬게 폐가 고장 난 일을 잘 해결하고 보니, 더 이상 두렵지가 않았다. 숨을 못 쉬고 쓰러지면 사람들이 나를 외면해서 결국 난 죽고 말거라는 파국적인 우려도 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내 걱정과는 다르게 숨을 못 쉬게 되더라도 침착하게 대처를 잘했고, 그 경험으로 나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우리가 불안해하는 이유, 그건 미래에 닥칠지 모르는 재난을 통제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가능한 한 나의 미래를 통제하고 싶어 하는 바람이 불안을 통해 온다. 불안은 가상의 일을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 하면서 안 좋은 일을 사전에 막는다는 기능적인 면이 분명 있지만, 과도한 통제에 대한 욕망은 불안의 악순환을 만든다. 불안으로 인해 불안을 유발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생각보다 우리가 끔찍하게 여기는 그 순간이 막상 현실로 다가왔을 때, 생각보다 잘 대처한다. 왜냐하면, 내가 불안할 때에는 불행한 사건이 주는 영향에만 초점을 맞춰서 사건이 주는 영향력에 대해 과대 지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 일이 일어났을 때에는 그 일을 해결하느라 사건이 주는 영향력에 머무를 수 없어 불행 사건의 영향력이 내 우려보다는 적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건-결과'와 같은 단순한 상황에 꼭두각시 인형처럼 놓이지 않는다. 불안 사건과 동시에 많은 사건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체험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우린 많은 자극 가운데에 놓인다. 예를 들어, 입원 대기를 하며 머물렀던 병원 로비에서 봤던 드라마가 나에게 준 느낌, 수술 전날 밤 통증 때문에 잠을 설치는 나에게 어머니가 건네줄 물수건으로 입술을 적셨을 때의 시원함. 그리고 수술 끝나고 다음 날 죽을 먹으면서부터 경험하게 된 나의 대단한 회복에 대한 의지와 실천. 날 찾아와 격려해주며 건넨 사람들의 따뜻함이 아직도 내 안에 머물고 있다.


어떤 불쾌하고 끔찍한 사건을 우리가 과거에 경험했다고 해서 미래에도 생길지 모른다고 여기면서 불안해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린 매일 똑같은 삶을 살지 않는다. 지금 나는 그때의 내가 아니고, 이미 그 시간은 흘러가버려 똑같이 반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울과 불안은 이미 흘러간 시간을 매번 붙잡는 착각으로 사는 셈이다. 과거의 시간에 우린 머물 수도 없고, 미래를 통제할 수 없다. 그 점을 과감하게 인정하고 현재-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것. 그것이 정신 건강을 유지하는 길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사실 아직 나도 가끔 헤매곤 한다.



작가의 이전글4_공감을 위한 노력과 내 유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