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_죽음을 경유하는 곳

by 하이디어

"할머니는 죽는 게 두렵지 않으셨어요?"


흉부외과에 입원했을 때 같은 병실 동기인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는 일년 전에 심장이 먹먹해져서 응급실에 실려 와 막힌 심장 동맥을 넓히는 스탠스 수술을 받았다. 수술 시간만 자그마치 10시간이 넘었다고 했다. 혈압도 있고 당뇨도 있어서 수술 경과가 그렇게 좋지 않았다고 해서 가족들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할머니의 수술 시간을 견뎠다고, 나에게 말했다. 그리고 최근에 갑자기 가슴 부근에 통증을 느끼고 입원하신 거였다.


"수술이 잘못될 수도 있었던 거예요? 안 힘드셨어요?"

"나는 수술대에 누워있었는데, 내가 뭘 힘들어. 수술한 의사 선생님이 힘들지."

"그래도 병원에 빨리 오셔서 수술받으셔서 다행이네요."

"맞아. 내 친구 중엔 그냥 참다가 밤새 안녕했지. 나도 그랬으면……. 지금도 딸이 하도 병원 가보자 해서 왔다가 입원한 거야."


할머니의 옷을 살짝 내려, 가슴에 그어진 수술 자국의 일부를 보여주기도 했다.


"수술하다가 그대로 죽었을 수도 있지."

"무섭지 않으세요? 죽는 거?"

"뭐가 무서워. 죽을 때 되면 죽는 거지. 죽는 건 겁 안 나는데, 우리 손녀가 걱정이지."


나중에 할머니가 사랑하는 손녀를 만날 수 있었다. 할머니는 손녀가 사랑스러운지 본인 식사까지 손녀한테 주시고 과일도 깎아주셨는데, 내가 보기엔 그냥 식탐 많은 어린아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핏줄 간의 사랑이라는 게 참 묘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할머니의 무한한 사랑을 당연한 듯 받고 있는 아이를 보며, 하마터면 질투할 뻔했다.


입원하면서 즐거웠던 점들 중 하나는 입원실에서 만나는 분들과 연령에 상관없이 친구가 되어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는 것이다. 서로 침대에 누워서, 혹은 밥을 먹으면서 서로 어디가 아파서 입원하게 되었는지 이야기하다 보면, 어느새 서로를 위로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떤 환자는 의식이 없는 상태로 입원했고, 어떤 분들은 그 사람이 죽을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어느 시점에 그 환자가 극적으로 회복하는 모습을 목격하기도 했다. 좌절과 기적이 쉽게 오가는 걸 목격했다. 죽음과 삶이 이렇게 얇은 종이 한 장을 맞대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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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다 보니, 기흉 수술 이후로 두 번의 수술을 더 하게 되었다. 그중 가장 최근인 발목 인대 재건 수술은 3년 전 8월 한여름에 했다. 그때도 정형외과라 그런지, 할머니들과 함께 했다. 4인실이었는데, 나 외엔 세 분이 할머니여서 나는 움직여도 되는 시점부터 깁스를 하고 심부름을 많이 했다.


할머니 한 분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는데, 그 할머니는 고관절을 치료 중이었고, 병원에서 나오는 밥이 참 맛있다고 했다. 내가 입맛이 없어서 매번 조금씩 남기는 밥을, 할머니는 연신 맛있다고 말하면서 깨끗이 그릇을 비우셨다. 할머니는 항상 웃고 계셨다.


"큰 딸이 낳은 제일 큰 손주가 있었는데, 그 아이가 5학년 때 병으로 죽었어. 아프기 전까지는 매년 명절에 와서 '할머니 할머니'하면서 나한테 달려와서 안겼는데……. 가장 먼저 만난 손주라 정이 많이 갔지. 큰 애가 그렇게 되고 딸이 아주 많이 힘들어했지. 그래도 어떻게 해. 어린아이가 또 있으니깐 엄마가 정신을 빨리 차려야지. 근데 나도 그 아이를 이제 못 본다고 생각하니깐 마음이 서운하더라고."


어떻게 그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자식, 손주 이야기하다가 얘기가 나온 거겠지. 할머니가 잠시 뜸을 드리다가 나에게 몸을 돌려 이야기를 꺼낸 건 기억이 난다. '서운하다'라는 표현이 이렇게 묵직하게 다가올 줄 몰랐다. 아이의 죽음 앞에서 느꼈을 할머니의 고통을 서운하다고 표현하실 줄이야. 일상에서 나는 내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 쓸데없이 의미 부여를 한 것 같았다.


"서운하다… 할머니, 많이 서운하셨겠어요."

"응. 너무너무 서운했어."


할머니는, 흐르는 눈물 때문에 수건으로 얼굴을 마구 비볐다.


"근데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그때 이후로 딸을 자주 못 봐."


할머니에게는 찾아오는 사람이 많았다. 매일 아들 내외와 손주들도 자주 들렀다 갔다. 그러나 내가 한 달간 입원하면서 할머니의 큰 딸은 끝내 보지 못했다. 할머니가 딸을 보고 싶어 하시는 것 같은데, 안타까웠다.




병원이라는 공간, 특히 개인적으로는 흉부외과 입원실과 같은 공간에서 우리는 수술을 받고 잠시 생사의 기로를 헤매기도 하다가 운 좋은 사람들은 다시 삶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내가 입원한 병실은 아니었지만, 옆 병실에서는 수술 후 다시 그 입원실로 돌아오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병원은 살기 위해 오는 상당수의 사람들과 죽은 후에 오는 사람들, 살리기 위해 오는 사람들과 죽은 자를 보내는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다. 긴 복도를 함께 걸어가는데, 어떤 이들은 삶으로 통하는 방으로, 다른 이들은 죽음으로 통하는 방으로 안내된다. 살아있는 사람들이 병원을 유지하는 것 같지만, 최근엔 죽은 사람들로 인해서도 병원을 지탱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친구가 될 수 있다.

등 뒤로는 오래전 시간들이 사라져가고 발밑으로는 짧은 과거들이 사라져가면서 그래도 매일 한 발은 현재, 한 발은 미래라는 불완전한 땅을 밟으며 나아가고 있다. 각자 자신의 삶을 살아내는 몫을 감당하고 있으며, 걸어온 시간에 비해 앞으로 걸어갈 시간에 대해 무지한 건 나이에 상관없이 마찬가지니, 서로의 무지를 따뜻하게 바라봐 줄 수 있다면, 우리는 친구가 될 수도 있다. 모두 자신만의 몫을 감당하면 그만이다.


병원이라는 공간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는 일상에서도 매일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목격자다. 각자의 시간이 다를 뿐, 단 하나도 영원한 건 없다. 우리보다 먼저 사라지는 것들을 지켜보고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한참 이야기하다가 사라지는 걸 반복한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 뒤에 남아 삶을 증언해줄 목격자를 만나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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