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_괜찮다 말한다고 괜찮은 게 아녔어.

by 하이디어

이 글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쌀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위로가 되는 글도 아니다. 글을 쓰기 전 내 생각대로 나오는 법이 없는 손이 제멋대로 쓰는 글이다. 하얀 백지 위에 깜빡이는 커서를 보며 생각한다. 이 글로 대체 무엇을 이룰 수 있을까? 글을 쓰기 전 매번 하는 고민이다.




유치원에서 뺨을 맞고 돌아온 날, 어린 나는 어머니에게 있는 그대로 이야기를 전했다. 그 유치원은 목사님 내외가 운영하는 것으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사모님이 유치원을 운영하고, 주일에는 목사님이 교회로 예배를 진행했다. 내가 월요일 유치원에서 선생님(동시에 사모님)에게 맞은 이유는 하나였다. 어제 교회에 왜 나오지 않았냐는 물음에 어제는 엄마가 다니는 교회에 갔다고 말했는데, 거짓말하지 말라면서 뺨을 때렸다.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고 맞을 줄은 전혀 몰랐기 때문에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멍한 상태로 집에 돌아가려고 하다가 2층 계단에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선생님과 아이들이 놀라서 나에게 다가와서 괜찮냐고 물었던 게 기억난다. 지금 생각하면 위험한 순간이었지만, 그때는 계속 멍하기만 해서 "괜찮다"고 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내 말을 믿지 않았다. 목사 사모님이 그럴 리가 없다고, 어린애가 하는 거짓말로 여겼다. 내가 선생님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걸 아는 엄마가 내가 뺨을 맞았다는 거짓말을 한다고 했다. 억울하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그저 더 이상 말하지 말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게 기억난다. 아무도 나를 믿지 않았다. 며칠 후 나는 어머니에게 더 이상 유치원에서 배울 게 없어서 다니고 싶지 않다고 했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어머니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러라고 했다.


후에 그때의 어머니를 이해하는 건 내 엄마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생각하게 되면서부터였다. 당시의 어머니가 삶을 유지하게 위해 유일하게 붙들었던 건 신앙이었다. 교회에 다니는 일개 성도도 아닌, 성직자인 목사님의 아내가 거짓말을 하지도 않은 내 아이를 때렸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보다 내 아이가 거짓말을 했다고 여기는 게 훨씬 받아들이기 쉬웠을 것이다. 살기 위한 유일한 동아줄처럼 간절하게 붙들고 있는 종교적 신념이 흔들릴 수도 있는 것보다 내 아이가 거짓말을 했다고 여기는 편이 더 낫다. 간절함은 그런 것이다. 이것과 저것을 다양하게 살펴보지 못하게 한다.





나는 유치원을 그만두고 교회도 어머니의 교회로 다니게 됐지만, 그 유치원과 목사님 내외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난 건 아니었다. 목사님의 여동생이 하는 피아노 학원은 초등학교 가서도 계속 다녔는데, 학원이라고 하기에도 무색하게 집 안에 피아노 세대를 놓고 피아노와 약간의 속셈을 배우는 것이었다. 피아노 선생님은 학생들의 뺨을 때리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아들만큼은 무섭게 팼다. 그리고 우리가 피아노를 배우고 있을 때, 피아노 선생님의 남편이 야간 택시 운행을 끝내고 들어와서는 술에 취해 선생님을 패기 시작했다. 우리는 어느 순간 익숙해져 선생님 남편분이 목소리 높이면서 오면, 자연스레 그곳을 벗어나 바깥에서 헤매다 다시 들어오곤 했다. 잠시 얻게 되는 휴식 시간이었다. 그리고 다시 들어갔을 때는 선생님의 얼굴은 여기저기 피맺힌 상처가 있었고, 우리를 평소보다 더 호되게 야단쳤다.


그날도 선생님 남편이 술 먹고 선생님을 때리기 시작해서 친구들과 나는 잠시 그 집을 벗어났다. 초등학교 이학년이었던 나는 아이들과 노는 게 좋았다. 함께 놀던 아이들 중 한 명이 나머지에게 용기 게임을 하자고 했다. 용기 게임? 뭔데? 그 친구는 도로 중앙선을 밟으며 걷자고 제안했다. 나와 다른 아이는 무섭지만 재밌을 것 같았다. 게임을 제안했던 친구가 무단 횡단을 해서 도로 중앙선을 요염하게 몇 걸음 걷다가 우리에게 손짓했다. 내 옆에 있던 친구가 그 친구를 따라 했고, 마지막으로 내가 갔다. 양쪽에 다니는 차들 사이로 길게 나 있는 중앙선을 한 발 한 발 걸으려니 깐 가슴이 두근거려 신나고 무서웠다. 맨 처음 용감하게 도로로 뛰어들었던 친구부터 다시 무단횡단을 해서 인도로 갔다. 순서에 맞게 다음 친구도 인도로 안착했는데, 내가 뒤따라 가려고 보니, 엄청 커다란 버스 두 대가 맹렬하게 달려오고 있어 놀라서 뒷걸음질 쳤다. 그러다가 버스 반대 차선에서 오던 택시에 부딪치게 되었다. 아주 잠깐 정신이 블랙아웃되었는데, 근처 상점에서 어른들이 튀어나와서 나에게 괜찮냐고 물어봤다. 택시 운전사 아저씨는 택시에 이상이 없는지 살펴보고 있었다. 나를 둘러싼 어른들에게 괜찮다고 했다. 그 피아노 선생님이 언제 오셨는지 건너편에서 날 불렀다. 선생님이 남편에게 맞고 난 다음에는 잘못 걸리면 내가 호되게 맞을 수 있기 때문에 나는 도망가기 위해 사람들의 손길을 뿌리치고 내달렸다. 그리고 뛰다가 길 위에 쓰러졌다.


병원에는 피아노 학원 선생님과 택시 운전사 아저씨가 있었고, 뒤늦게 소식을 듣고 온 어머니도 있었다. 엑스레이를 찍어봤는데 별 이상은 보이지 않아 바로 퇴원할 수 있었다. 선생님은 어머니에게 아이들이 장난치다가 벌어진 일이지만 택시 운전사 아저씨가 문제 삼지 않겠다고 했다고 했다. 어머니는 선생님과 택시 운전사 아저씨에게 연신 감사하다고 했다. 택시 운전사 아저씨는 우리 집 근처까지 차로 데려다 줬다.


택시에서 내려, 나는 혼자 걸을 수 있으면서도 엄마에게 발이 아파서 잘 못 걷겠다고 했다. 엄마는 그런 나를 집에까지 업어주었다. 오랜만에 어머니의 등에 업힌 게 좋았다. 집에 도착하자 어머니는 물을 끓여서 내 발을 씻겨주었다. 먹고 싶은 거 없냐고 해서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고 했다. 엄마는 금세 아이스크림을 사 와서 나에게 내밀었다. 다치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니구나 싶었다. 나는 엄마가 사다 준 아이스크림을 먹고 기분 좋은 상태로 깜박 잠이 들기도 했다.



스무 살이 넘어서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릴 적 유치원 선생님이 거짓말하지도 않은 나를 거짓말했다고 몰아세우면서 뺨을 때렸는데, 왜 엄마는 그런 내 말을 믿어주지 않았느냐고. 난 그 선생님에게도 엄마에게도 진실을 말했는데, 너무 손쉽게 어린 나를 믿어주지 않았다고 차갑게 말했다. 어머니는 "누가 그런 줄 알았냐"라고 하며 넘어가려고 했다. 어머니에 대한 원망으로, 이후로도 몇 번 더 이 이야기를 꺼냈고 지리멸렬한 대화가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그때는 엄마가 잘못했어. 너무 미안했어, 딸."이라고 말하면서 나에게 진심으로 미안함을 표현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내 가슴에 맺힌 아주 단단한 것이 부드럽게 풀어져 내리는 걸 느꼈다. 어머니를 원망하는 마음이 단숨에 사라졌다. "나를 믿어주지 않은 게 제일 괴로웠어." 엄마는 다시 한 번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엄마의 따뜻한 손으로 내 손을 감싸잡았다.


내가 이제, 나를 낳았던 엄마의 나이가 되어보니, 어릴 때는 커 보였던 엄마가 사실은 얼마나 연약하고 불완전한 존재였는지 알게 되었다. 지금 내가 얼마나 미숙한데, 어머니라고 다르진 않을 거라는 생각에 어머니가 나에게 했던 실수들도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제는 유명해진 표현처럼,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삶에 있어서 노련한 전문가가 있을까? 우리는 매번 처음 사는 시간을, 처음 경험하는 사건에서 어쩔 수 없이 가끔 실수할 수도, 잘못된 선택을 할 수도 있다. 다만 손을 맞잡고 미안하다고 말할 수만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엄마, 나도 오랫동안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고 미워해서 엄마를 힘들게 했어. 미안해.







작가의 이전글6_죽음을 경유하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