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에서 자라는 나무
제가 세상에 필요 없는 존재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 손에 항상 더러운 게 묻어있다는 느낌이었어요. 처음엔 손만 잘 씻으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더럽다는 느낌이 손에서 팔로, 발, 얼굴에까지 이어지더니, 제 내장부터 더럽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씻어도 해결되지 않았어요.
약하다는 건 나쁜 거라고 생각해요. 나쁘니깐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야 제가 경험한 걸 받아들일 수 있겠더라고요.
어릴 적 경험한 애착 손상은 한 인격체의 바른 성장을 방해한다. 마치 어두운 동굴 속에서 자란 식물이 가느다란 빛줄기를 향해 기이한 모양으로 성장하는 것처럼, 한 사람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라긴 자랐는데 내면의 무언가 뒤틀려진 모양을 지니고 있다.
이런 이들에게 어린 시절 사랑이 필요했던 거 아니냐고 하면, '사랑'이라는 단어에도 얼굴을 찡그리며 혐오를 드러내거나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사랑을 경험한 적 없으니, 그게 자신이 원하는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러다 다른 이들에게서 배제되어 홀로 남아 다른 이들을 살펴볼 수 있을 때에, 그때야 다른 이들이 했던 아주 평범하고 소중한 경험을 자신은 하지 못했음을, 그래서 지금까지 자신에게 때때로 그 기회가 찾아왔어도 알아보지 못해 놓쳤음을, 뒤늦게 알게 된다. 사랑을 베풀고 싶어도 그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른다. 방법을 잘 안다고 해도, 하고 싶지 않고 하지 않을 때가 많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국어 선생님과 나는 학교 근처에 있는 어떤 사무실을 들르게 되었다. 선생님과 나는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아저씨에게 인사를 하고 그 아저씨의 차를 탔다. 아저씨와 선생님은 앞 좌석에 앉고 나는 뒷좌석에 앉았다. 학교 앞 시흥 사거리는 내가 매일 버스를 타고 지나가던 곳이었는데, 이렇게 편안하고 조용하게 지나가니 다른 곳처럼 느껴졌다. 내가 부에 대해 갖는 느낌은 그때 그 차에서 받았던 느낌이다. 편안하고 조용한 느낌. 시뻘건 욕망이 오고 가는 게 아니라, 그 욕망이 보이지 않게 우아하게 웃어넘길 수 있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부를 동경해본 적은 없다. 가질 수 없는 것에 연연해하지 않는 것이 내가 사는 방식이었다.
한 사무실에서 나는 거기 모인 몇몇 중년 남성들의 조기 축구회에서 장학금을 받게 되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국어 선생님은 아저씨들 한 분 한 분에게 정중하게 인사하도록 시켰다. 아마 어디 대표, 회장님 했는데, 난 뭔지도 모르고 얼어붙은 채로 인사만 열심히 했다.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그곳을 나와 혼자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익숙한 소음이 시작되었다. 나중에 선생님이 장학금을 받은 다른 학생들과 조기축구회 아저씨들과 기념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했다. 그냥 맛있는 거 먹는 자리로 생각하라고 했다. 나는 그날 교회 행사가 있어서 가지 못하겠다고 했지만, 사실 가지 않은 건 또 한 번 비참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조기 축구회 사무실로 가는 고급 승용차 안에서, 사무실에서 보게 된 아버지 또래의 부유한 아저씨들과의 만남, 다시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오면서 내가 느낀 건 자기 혐오감, 좌절감이었다. 한 아저씨는 나를 칭찬하려는 의도로 본인의 자식과 나를 비교했는데, 나는 오히려 그 아이가 부러웠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당연한 듯 누리는 그 아이의 자연스러움이, 그리고 주어지는 데도 하지 않을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 나에겐 그 아이에서처럼 주어진 것이 없었으므로 벗어날 필요도, 선택할 권한도 애초에 없었다.
나중에 선생님이 보여준 사진에는 우리 반 아이가 나 대신 내 이름표를 달고 행사에 참여한 모습이었다. 그 애는 신나게 먹으면서 행사 내내 즐겁게 웃었다고 했다. 선생님은 나에게 아쉬워하라고 그 사진을 보여준 것 같았지만, 난 오히려 그 아이가 그 자리에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 내가 괴로웠던 건 사실 금전적인 것이 아니었다.
고대에 가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내가 이기적이라고 했다. 내 합격증은 아버지의 손안에서 구겨져 있었다. 아버지는 퇴직해서 돈이 없는데, 내가 돈을 빨리 돈을 벌 생각은 하지 않고 공부를 한다고 했다. 여자는 전문대에 가서 기술을 배워서 빨리 돈을 벌면 그만이라고 했다.
"네가 거길 들어간다고 다른 애들처럼 될 거라 생각해?"
그 말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와, 어머니와 남구로 역사 안에 있는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 인생을 걸고 아버지를 원망하고 싶진 않아. 어차피 오늘 일이 나에겐 엄청 깊은 상처로 남을 것 같아. 하지만 욱하는 마음으로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포기해서 나중에 아버지가 내 인생 망쳤다고 원망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 이해는 안 되지만, 차라리 이기적이라고 욕 얻어먹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했다가 잘 안되는 게 나을 것 같아."
집을 나와 혼자 살면서 이런저런 알바를 하기도 하고, 돈이 없을 때는 굶기도 했지만, 어머니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다. 내가 할 수 없을 거라고 말하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마주할 때가 여럿 있었다. 내 속에서도 그런 말을 할 때가 많았는데, 나는 그 소리에 오랫동안 아니라고 말하지 못했다. 대학 생활 내내 다른 아이들은 나보다 여러 면에서 뛰어났다. 나는 실패하는 데에 익숙해졌다. 그러나 가끔, 아주 가끔은 내가 스스로 대견해지는 성과를 이룬 순간이 찾아오기도 했다. 그 찰나의 기쁨들 덕분에 대학교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친구들과의 관계는 어그러지기 일쑤였고, 나는 혼자인 것이 편했다. 나와 가까워지려는 사람들에게서 그럴듯한 이유를 들어 매번 도망갔다. 몸은 자꾸 여기저기 아프기 일쑤였는데, 외로움이 원인이었는지도 모른다.
애착 이론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을 나는 행운이라고 여긴다. 내 결핍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내가 스스로를 아버지의 목소리로 괴롭혔던 것을 발견하고 불안의 실체에 직면할 수 있었다. 부모에게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는 연인이나 배우자, 아이에게 자신이 받았던 대로 동일한 형태로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아이가 자신이 태어나게 한 부모와 환경을 선택할 수 없었으니, 적어도 성인이 되어서는 어릴 때의 고통에서 벗어나거나 개선할 수 있는 두 번째 기회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애착 손상을 이해하고 이후에 자연스럽게 반복하는 패턴을 끊어내야 한다. 마음의 상처는 이상하게 상처를 받았던 상황을 되풀이하게 만든다. 나는 처음 보는 순간 매료되는 이성의 매력에 현혹되지 않으려 노력했고, 관계를 오래 구축해나가는 것에 큰 가치를 두었다. 관계가 악화되는 순간에도 통제력을 잃지 않으려 부단히 애를 썼고, 쉽게 파국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날 다독이곤 했다. 나의 괴로움을 상대가 이해해준다면 고마운 것이지만,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걸 받아들이려고 했다. 그러나 관계라는 것이 내 노력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라, 내가 스스로에게 할 수 없었던 다정한 태도로 관대하게 대해 준 사람들에게 감사하다.
손상의 경험은 한 사람의 내면에 짙은 슬픔을 갖게 하고 손상을 메꾸려는 과정에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나와 같은 상처 많은 다른 이들에 대한 연민을 가질 것인가, 혐오할 것인가. 나를 배척한 사람들에게 복수할 것인가, 수용할 것인가. 내가 받은 상처를 잘 아물게 치료할 것인가, 상처가 가려워 긁으면서 계속 덧나게 할 것인가……. 수많은 선택들, 그것이 우리 삶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지점이다. 나의 노력은 매번 좋은 선택을 하진 못해도, 그래도 보다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나은 선택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 이쪽과 저쪽의 경계 사이에서 균형을 잘 찾으며 내가 기대하는 길로 걸어가려 하는 것이다. 삶은 매순간 처음이기 때문에 비틀거리는 건 당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