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아버지의 어머니는 눈꺼풀을 덮은 점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래서 이름도 점례. 점 때문에 열아홉 살에 나이 든 남자의 부인이 되었다. 남자는 첫 번째 아내가 사별하고 아내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과 비슷한 나이 또래의 소녀를 두 번째 아내로 맞이했다. 내가 본 할머니는 17년간, 기억하는 건 그보다 더 짧겠지만, 항상 자신의 눈에 있는 점을 증오했다. 할머니의 점은 눈꺼풀 바깥과 안에 연결되어,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눈 그 자체였지만, 할머니는 그 점을 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초등학생 시절, 할머니의 방문을 열었을 때가 기억난다. 한구석에 휴지 뭉텅이가 쌓여 있었는데, 모두 피로 물들어 있었다. 할머니 등에 대고 할머니를 부르자, 돌아본 할머니의 눈에선 점과 피로 얼룩진 상처가 있었다. 면도 칼로 자신의 점을 떼어내려고 했지만, 상처만 남겼을 뿐이다. 보다 못한 어머니가 병원에 할머니를 모시고 갔지만, 의사는 눈꺼풀 전체와 점이 붙어 있어 수술이 가능하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자신의 점을 용서하지 않았다.
웃통을 걷어올린 아버지의 배에는 검은콩만 한 점이 있었다. 정말 콩 한 알처럼 평평한 배 위에 도드라져 있는 점이었다. 아버지는 할머니의 점을 본인이 유일하게 물려받은 거라고 어린 나에게 자주 말하곤 했다. 그리고 내가 볼 순 없지만 내 등 중앙에 있는 점이 아버지의 것과 비슷하다고 했다. 나는 그 점 때문에 수영복을 입을 수 없어 수영장에도 가지 않았지만, 가끔 친구들에게 비밀을 알려주듯이 옷 위로 등 뒤의 점을 만지게 해줬다. 친구들은 모두 놀라고 신기하다며 웃기도 했다. 그 점을 피해 브래지어를 입느라 애먹을 때도 있었다. 대학교 1학년 때에 주량도 모르면서 마신 술에 취해서 화장실에서 토를 하자 곁에 있던 친구가 등을 두드려주다가 점에 염증이 생기기도 했다. 얼마나 세게 두드렸는지, 다음 날 등뼈가 욱신거렸고, 점이 옷에 쓸릴 때마다 아려왔다. 움직일 때마다 점의 존재감을 그렇게 확실하게 느낀 적이 없었다. 엄마는 내 점을 들여다보면, 사람 얼굴처럼 눈, 코, 입이 있다고, 특별한 점이라고 했지만, 나는 엄마의 그 말을 믿었다. 나는 그 점을 스물일곱이 되어서야 뗐다. 이제는 점이 있었던 자리는 올록볼록한 부분이 아니라, 훅 패인 곳이 되었다. 점이 '내가 있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자리. 나는 가끔 그 자리가 가려워 긁곤 한다.
어머니는 내가 할머니가 유일하게 안아 준 손주라고, 그래도 할머니가 나를 사랑했다고 했지만, 도저히 사랑을 받았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할머니는 나만 사랑하지 않았던 게 아니라,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다. 옷이 구겨질까 봐 증손주도 안아주지 않았고, 엄마가 아파 입원해서 내가 할머니 식사를 차려드려도 갓 중학생인 된 내가 차린 밥상에 불평을 늘어놓으셨다. 자신의 점을 증오한 만큼 외모를 가꾸는 것과 식사에 과도하게 신경을 쓰셨다. 할머니와 고모, 할머니와 아버지, 할머니와 오빠들 사이에서 한 번도 애정을 본 적이 없었다. 어린 난 할머니와 맹렬하게 싸웠고 서로를 싫어했다. 나에게 할머니는 항상 내 것을 뺏는 사람 같았다. 내 방을 뺏었고, 내 엄마를 뺏었고, 내가 먹고 싶은 것을 양보해야만 했다.
아버지도, 고모들도, 죽음을 앞둔 할머니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슬픔보다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눌린 것 같았다. 엄마가 할머니를 편안한 죽음으로 안내하고 할머니의 몸을 닦았다. 집에서 장을 치렀지만, 엄마는 어린 내가 할머니를 봐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할머니의 죽음에 슬프지 않았다. 그저 그때 봤던 방송반 마지막 시험에 떨어진 게 억울했다. 집에서 할머니의 초상을 치르면서 손님을 맞이하는 일을 하다가 방송반 떨어진 일로 엄마에게 짜증을 내다가 그걸 본 큰 오빠한테 호되게 혼나서 크게 울었다. 사촌 언니들은 우는 나를 보고 할머니 때문에 우는 줄 알고 나를 안아주었다. 나는 언니들 품에 안겨서 더 크게 울어젖혔다. 큰 오빠 들으라고.
나는 다시 할머니에게서 내 방을 찾았다. 엄마가 내 방의 벽지를 새로 해주겠다고 해서 골랐지만, 아버지가 마음대로 해버렸다. 무신경한 아버지에게 화가 나서 엄마에게 온갖 화풀이를 다 하다가 엄마가 그만 욱해서 맞을 뻔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엄마는 나에게 침대를 사주었다. 침대는 사춘기 시절의 내가 가장 원하던 거였다. 침대와 책상, 스탠드 조명. 나는 TV 드라마 '학교'에 나오는 학생들의 삶과 비슷해졌다고 느껴져 만족했다. 나는 공부는 안 하면서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나 헤르만 헤세의 「지와 사랑」(현재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같은 책들만 열심히 읽었다. 제대로 이해도 못 하면서. 나는 집에서 유일하게 책을 읽는 사람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책을 읽었던 이유는, 공식적으로 방에 혼자 있길 주장하기 위해서였다. 방에 혼자 있고 싶은데, 달리 혼자 할 건 없어서 책을 읽거나 글을 썼다.
아버지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술에 취한 아버지가 자고 있는 안방 문을 노려보면서 내가 언젠가 아버지를 죽일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식탁 위에서 바닥으로 떨어진 반찬과 깨진 반찬 그릇을 치우면서 아버지는 나에게 성가시고 비상하려는 내 발목을 붙잡고 고통만 알려주는 사람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차라리 아버지가 엄마를 때렸듯이 날 때렸으면. 그럼, 아버지를 경찰에 신고하고 그 계기로 아버지와의 인연을 끊으리라, 모진 상상을 하곤 했다.
돌이켜보면, 아버지는 자신의 부모에게서 사랑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안정적인 애착 경험을 해본 적이 없으니, 자신 또한 자식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고, 그저 자식을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부수물로 여기는 정도였다. 아버지는 할머니가 그랬듯이 외모 가꾸는 것과 먹는 것에 집착했다. 잘 먹어야 하고 잘 입어야 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깊었던 시기에는 나는 내 식욕마저도 싫었다. 나는 대학교를 다니면서도 굶주릴 때가 많았고 내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점점 다른 길을 가게 되었다. 또 한 번의 반대에도 나는 목표했던 대학원 과정을 갔고, 그때에는 그 목표가 전부였다. 할머니에서 아버지로, 아버지에게서 나로 이어지는 그 고리를 끊고 싶었다. 시간이 걸렸지만, 그들에게서 물려받은 점을 도려냈다. 다른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조건 아버지와 반대로 가선 불가능했다. 아버지가 직간접적으로 주는 영향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필요해서 자꾸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물었다. 진짜 내가 원하는 게 뭐지?
내 세상에는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 자꾸 나타났다. 나에게 와서 대놓고 "넌 할 수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들. 대학교에서 미친놈 선배가 그랬고, 회사에서 남자 상사들이 그랬다. 나도 모르게 그들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 그리고 그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무진장 애썼는데, 지금에 와서는 괜한 짓을 한 것만 같다. 내 약점이 '인정받지 못한다는 느낌'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다. 어쩌면, 내가 원인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나에게 함부로 할 수 있었던. 어쩌면 무례한 행동들과 말은 그들의 나약함이 드러나게 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었던 아랫사람에 대한. 그리고 할머니, 아버지, 나 또한 우리는 서로의 원인이자 결과였다.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내 안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러다가도 가끔 아버지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을 업데이트하는 일들이 아직도, 생기곤 한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변하지 않았음을 알고, 나는 아버지에게서 가족을 보호해야 한다. 그러나 언젠가 우리가 악수를 한다거나, 포옹을 할 수 있다면……. 아버지가 내 손을 잡고 '수고했다'라고 말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 또 한 번 그런 상상을 해본다.
"수고했어, 성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