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는 기억 ㅣ 엄마는 육아 중 ♪
그 시작은 내가 조리원에 입소하던 그 주에 펜트하우스 1회가 방영되었다는 기가 막힌 타이밍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낮이고 밤이고 재방송이 되던 ‘팬트하우스’라는 드라마에 난 자연스럽게 빠져들었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그 드라마의 전개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지만 한동안은 아기와 24시간 붙어있느라 쳐다볼 여력이 되진 않았었다. 그리고 은유가 통잠에 빠지던 어느 날부터 나를 위한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팬트하우스에 집착하였다.
현실에서 받는 산후 우울감과 생전 처음 해보는 책임감이 막중한 생명체의 돌봄에 대한 무게를_ ⠀나는 급변하는 전계에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복수와 치정에 얽히고 섞여있는 천서진에게 몰두하며 드라마를 보는 그 순간만큼은 내 현실의 자신에게서 벗어나려 했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시즌2가 시작할 때부터는 못보고 지나가 버린 드라마가 무료시청이 되기까지 기다리다⠀결국 당장 보고싶은 욕구와 궁금함에 올레티비에서 포인트를 끌어모아 몇천 원씩 결제해가며, 그렇게까지는 절대 보지 않으려_ 본방사수를 고집했고, 남들이 다 욕하더라도⠀절대 한국으로 보내지 말아달라는 부탁에도 불구하고 1분 전에 미국에 있던 배로나를 한국으로 과감하게 이동시켜버리는 초고속전개의 흐름에 열광하며 펜트하우스 작가님을 응원했으며 방송시간이 늘어남에 자축하며 그렇게 시즌3까지 끝까지 손절하지 않고 지켜보았다.
내가 오윤희가 아닌 천서진을 응원하던 그때 그 시절_
인스타에서는 아기 엄마들이 오늘만은 일찍 자 달라고 아기에게 애원하는 글이 올라오기 바빴다.
그 이유는 당연히 금요일엔 팬트하우스가 방영되기 때문이었으며 본방을 사수한 엄마들은 인증샷을 배경으로 맥주나 와인, 배달음식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런 피드를 볼 때면 왜인지 우리가 함께 육아를 힘차게 끝냈고, 꿀처럼 달콤한 금밤을 불태우며 그 드라마를 응원해대는 ‘아미’와 같은 힘을 지닌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나는 드라마에 몰두했다. 사실 난 티비 없이도 잘 살았었고 월화드라마인지 주말드라마인지 미니시리즈인지 대하드라마인지 그런 구분도 하지 않고 월메이드 되었다는 것만 골라다 그 드라마가 다 끝난 뒤에 시간 날 때 정주행을 하던 스타일이었는데_⠀아기를 낳고 기르면서 언제부터인가 현재 방영되고 있는 인기 있는 드라마를 기필코 보아내면서 어쩌면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격리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
⠀
거실 생활에 바깥공기 한번 못 쐬며 수유에 힘을 다하고 있는 엄마가 아닌,
그저 사람들이 다 보는 드라마를 아는_
그냥 그런 사람 말이다.
⠀
⠀
그 뒤 넷플릭스에서 D.P. 오징어 게임 그리고 지옥을 연달아 히트 치던 것은 육아에 지친 나를 위한 것만 같았고 지금도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 소식에 환장하며 환호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쭈욱 나는 드라마에 그리고 미디어의 창작물에 애착을 가질 것 같다.
⠀
팬트하우스의 모든 시즌이 끝나던 날,
나에게도 여유가 생겼었다.
⠀
은유는 정말 많이 자랐고 내 손과 보실핌을 24시간 내내 필요로 하지 않았다. 앞으로 내가 더 많은 드라마와 나만의 추억을 쌓아갈 동안 은유는 쑥쑥 자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