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캡슐

이별곡에서 혁명까지

by 하이진

서랍 깊숙한 곳에서 낡은 공책 하나를 꺼냈다. 십 년도 더 된 일기장이다. 빛바랜 종이 위에는 지금의 나보다 조금 더 치열하고, 훨씬 더 서툴렀던 과거의 내가 살고 있었다.


그날의 기록은 낡은 스피커에서 흐르는 쇼팽의 '이별곡'으로 시작됐다. 모두가 퇴근한 텅 빈 사무실, 적막을 채우는 피아노 선율에 마음을 맡긴 채 '멜랑꼴리'라는 단어를 꾹꾹 눌러 적었다. 음악을 그저 분위기로만 들었던 그 시절의 나는, 소리만으로도 충분히 우울해질 준비가 되어 있었나 보다.


당시의 나를 가장 괴롭혔던 건 '부러움'이었다. 중앙일보 신인 문학상 당선작을 읽으며 느꼈던 아득한 실력 차이. 누군가의 당선 소식은 내게 축하가 아닌, 한심한 나 자신을 확인하는 지표였다. 일기장 끝에는 글쓰기를 그만두겠다는 기록이 남아 있었다. 마치 대문호가 절필이라도 하는 듯 거창한 선언이었다.


그냥 쓰고 싶을 때 쓰고, 읽고 싶을 때 읽으면 되는 거였는데 그때는 왜 그리 비장했는지 모르겠다. 그 후 가파른 일상을 살아내고 삶의 단계를 밟아 오며 소설에 대해 오롯이 잊고 지냈다. 내 길이 아니라 생각하며 다른 일을 업으로 삼았다. 그런데 삶에 약간의 여유가 생기고 보니, 나는 또다시 활자 사이를 서성이고 있었다. 참 신기한 일이다. 나는 글이라는 것에 제법 집착하며 사는 사람이었나 보다.


"낡은 스피커에서 쇼팽의 이별곡이 흐른다."


이 문장으로 시작되는 10년 전 일기 위에서 나는 다시 시작해보려 한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겠지만 10년 후에 또다시 이런 후회 섞인 글을 찾아보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어느덧 스피커에선 '이별곡'이 끝나고 '혁명'이 흐른다. 무력감을 털어내고 다시금 일어서려는 의지를 다져본다. 여전히 타인의 눈부신 문장을 부러워하지만, 그럼에도 예전처럼 실망하지 않아서 좋다. 쓰는 행위 자체가 즐거워 하루가 빠듯하게 흐르는 이 느낌이 뿌듯하다. 거창한 결과를 원하지 않기에 되찾을 수 있었던 마음이다.


얼마 전, 브런치 이웃님의 글 중 '속도가 아닌 방향이다'라는 명제를 비틀어, '결국 속도 또한 무시할 수 없다'는 요지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어설픈 위로보다 훨씬 명쾌하고 현실적인 말이었다.


나는 여전히 좋은 글을 욕망하지만, 예전처럼 안달하지 않으며 이 자리를 지켜보고자 한다. 타임캡슐처럼 10년이 지나 브런치에 남아 있을 이 글을 보고, 그때의 나는 또 어떤 감상을 가지게 될까. 부디 그때까지 나의 기록과 이 플랫폼이 무사히 생존해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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