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베이글은 죄가 없다. 하지만 썩은 베이글은 유죄.

by 하이진

소설도 아니고 책 감상문도 아닌, 영화 한 편 본 이야기 풀어보려고요.

어제저녁 우리 집 풍경이 되겠네요.

커피를 격렬하게 마시고 싶었지만

이미 많이 마셔서 마테차를 우려 놓고 자리를 잡았습니다.


뿅~


2022년 3월 25일, 미국에서 처음 개봉한 영화였다.
멀티버스를 소재로 한 코미디, 액션, SF, 그리고 가족 드라마.
유니크하고 실험적인 작품이라 당시에도 화제가 되었고, 95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거의 휩쓸었다.


그때는, 이런 영화도 있구나 하고 지나쳤다.
그런데 코스모스를 읽고, 관련 영상과 후기들을 찾아보다가
알고리즘이 다시 나를 이 영화 앞으로 데려다 놓았다.


첫인상은 테이블 위에 잔뜩 어질러진 영수증을 당장 치워주고 싶은 속 터지는 마음이었다.
소통이 안 된다는 게 이런 건가 싶을 만큼 엇갈리는 대화들.
자유분방하다 못해 무질서한 지출 증빙들.
전직 본능이 솟구치며 속이 답답해졌다.


이어지는 정신 사나운 멀티버스의 이미지들.
처음 40분쯤은 겁먹은 고양이처럼 소파에 바짝 붙어 앉아 초집중했다.
한순간이라도 놓치면 맥락을 잃을 것 같았다.
고작 40분을 보고 지칠 줄은 몰랐다.
무슨 소린지 정리도 안 되고, 에블린은 이해가 안 되고.

주인공의 뇌만 녹는 게 아니라, 내 머리도 같이 녹았다.


그런데 중반을 넘기면서
‘대체 무슨 소리야’ 하면서도 묘한 감정이 생겼다.


답답할 정도로 착하고 다정했던 초식동물 웨이먼드.
“다정함이 그의 무기”라는 말에 울컥했다.
이토록 멋진 무기라니.
나도 갖고 싶었다.


하루를 폭풍처럼 살아내는 에블린이나,
공감과 다정함으로 삶을 지켜내는 웨이먼드나,
결국은 각자의 방식으로 삶과 가족을 지켜내고 있었다는 걸
마지막에서야 알게 됐다.


수많은 다중 우주가 등장하지만
역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소시지 손을 가진 우주였다.
발가락으로 연주되는 드뷔시.


“선생님은 그곳에서도 작곡을 하셨네요.”


멀티버스를 걷어내고 보면

이 영화는 생활력 만렙의 억척 아줌마와
테스토스테론이 줄어든 남편,
대학 중퇴생인데, 중2병이 온 딸이
치열하게 싸우고 화해하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딸은 말한다.
“전부 부질없다. 그러니 소용없다. 나를 보내 달라.”


엄마는 말한다.
“… 그래, 가라.

그렇지만 의미는 있다. 어떤 선택의 순간에도.”


문득 예전 TV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그래! 결정했어."라고 외치는.
선택하는 순간마다 늘어나는 마법의 멀티버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는데,
나는 무엇을 놓고, 무엇을 움켜쥐며 살고 있을까.


마지막으로
나는 다정한 사람인가.

사실, 나는 무심한 사람 쪽에 가깝다.
오지랖은 없고,
이웃에게 웃으며 인사는 건네지만
그들의 세계에는 깊은 관심이 없다.
개입하고 싶지도, 개입당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삶은 나누는 일이라는 걸.
다정하게 나누는 일이라는 걸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거창하게 우주를 구할 수는 없지만
오늘은 내 아이를 한 번 더 안아줌으로
작은 영웅이 되어볼까



* 이미지는 영화 포스터입니다.



#애애올#멀티버스#영화감상#베이




작가의 이전글타임캡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