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新) 별주부전 6

용궁 정승들이 보랏빛 상자 앞에서 침묵한 사연

by 하이진

바다 깊은 곳, 용궁.


호화로운 용궁의 편전에서는 평소와 다른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용왕은 초조한 듯 실내를 왔다 갔다 했다. 떨리는 손이 알코올의 부름인지, 전설의 약재를 마주한 흥분인지 알 길 없으나, 어쨌든 심장은 기대감으로 쿵쾅거렸다.

“하아... 이를 어쩐다. 진짜 딱 한 방울도 안 된단 말이냐? 반주는 곧 약주이거늘, 딱 한 잔 정도는 보약과 시너지를 낼 것도 같은데...”

퇴궐 후 영문도 모른 채 호출당한 삼정승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용왕 앞의 [다이아몬드 에디션]에 주목했다.

무려 다이아몬드라 함은 보글보글 솟구치는 탄산과 영롱한 광채가 생명이거늘. 눈앞의 저 누르끼리한 다이아몬드라니. 다들 의혹이 가득했지만, 음용 시 엄수 사항을 읽고는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다물었다.

‘약효는 둘째 치고, 저 조건이면 맑은 심해수만 마셔도 간이 춤을 추겠군.’


평소 회의주의자인 영의정의 생각이었다.


‘별주부 이 친구, 보통이 아니구먼. 슬슬 라인을 갈아타야 하나?’


사회생활 만렙 좌의정의 생각이었다.


‘저게 진짜 효험이 있다면 나도... 아니, 일단 전하께서 완쾌하시는 것부터 보고 결정하자.’


애주가지만 용왕과 술을 마실 때는 밑잔을 깔아가며 마시는 우의정의 생각이었다.

용왕의 앞에는 고귀한 보랏빛 광택이 흐르는 상자가 놓여 있었다. 굵직한 황금색 리본이 교차된 그 위로는 [당근라이프 - 다이아몬드 에디션]이라는 문구가 고급스럽게 빛나고 있었다.

‘저게 정녕 토끼의 간이란 말인가...’


삼정승의 마른침 삼키는 소리가 적막한 편전에 울려 퍼졌다. 용왕은 떨리는 손으로 그 화려한 금색 리본의 끝자락을 쥐었다. 리본 하나만 풀어내면, 저 화려한 박스 안에 얌전히 누워있을 30봉의 정예 파우치들이 모습을 드러낼 터였다.

“자, 이제 대망의... [언박싱]을 거행해 볼까?”


용왕은 결의에 찬 얼굴로 삼정승을 매섭게 훑었다. 신상 한정판을 손에 넣은 컬렉터의 광기가 서린 눈빛이었다.

드륵, 부스럭.


마침내 리본이 풀리고 상자의 뚜껑이 열렸다. 그곳에는 용궁에서는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검붉은 빛의 기괴하고도 영롱한 타원형 물체가 그려져 있었다.

[Earth-Beet 100%]


정체불명의 문구까지 완벽했다.


“오오... 이 파우치에 새겨진 게 토끼 간이렸다!”


용왕의 감탄에 삼정승은 파우치 속 그림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매끈해진 멍게 같기도 하고...’ (영의정의 합리적 의심)

‘육지에서는 간을 비트라고 부르는가...’ (좌의정의 동공 지진)

‘저것이 전설로만 내려오던 토끼 간이란 말인가...’ (우의정의 반짝이는 눈빛)

모두가 의구심을 품었지만, 오직 용왕만은 별주부의 충정을 의심치 않았다. 이미 [토끼 간]이라는 키워드에 단단히 꽂혀버린 그에게는 맹목적인 믿음만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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