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新) 별주부전 7

벌거벗은 용왕님!!

by 하이진

주인, 대장, 일인자, 그리고 만인지상(萬人之上).


아무리 헐렁해 보여도 아무나 앉는 자리가 아니었다. 믿음은 믿음이고 확인은 필수였다.

용왕은 별주부와 척을 지고 있는 달주부를 불렀다. 그는 자타공인 육지 사정에 밝은 ‘땅개’ 전문가였다.


달주부는 파우치에 새겨진 그림과 [Earth-Beet 100%]라는 문구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이 작자가 단단히 한몫 챙기려는 심산이군.’


달주부는 별주부의 파렴치함에 온몸을 떨었다.


“왜 그러는가? 뭔가 문제라도 있는 겐가?”

용왕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전하, 이것은 토끼 간이 아...”


달주부가 막 말을 마치기도 전, 영의정이 ‘음용 시 엄수 사항’이 적힌 종이를 달주부의 면전에 던졌다. 종이를 훑어보던 달주부의 눈에 동공 지진이 일어났다.

‘허... 이것은.’


커헙.


삼정승의 눈이 동시에 달주부에게 꽂혔다. 입 함부로 놀렸다간 이박 삼일 동안 등껍질 밖으로 다리 한 짝도 못 내밀 판이었다.


“그래, 어떤가. 정녕 토끼 간이 맞으렷다?”

“... 물건은 틀림없사옵니다. 하오나 음용 수칙을 어길 시에는...”


달주부는 괜히 말끝을 흐리며 가스라이팅의 강도를 높였다.

“흠, 그렇다기에 이 [Earth-Beet]라는 문구가 상당히 거슬린단 말이오. 내 아무리 육지 사정에 아둔하다 하나, 보고받은 바가 없지는 않소.”


“전하, [Earth]는 육지의 흙을 뜻하나 그 깊은 뜻은 지기(地氣)를 머금었다는 것이옵니다. [Beet]는 육지어로 ‘심장의 박동’을 의미하니, 즉 지구의 심장을 추출한 진액이라는 뜻이지요. 토끼의 간이 아니고서야 어찌 감히 지구의 심장이라 칭하겠사옵니까?”


삼정승의 입이 떡 벌어졌다. 꿈보다 해몽이라더니.


여전히 의혹은 남았으나, 별주부와 견원지간인 달주부까지 저리 말하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아름다운 유리잔에 피보다 붉은 비트즙이 따라졌다. 용왕의 목울대가 크게 꿈틀거렸다.


“아! 한 달 금주하셨는지요?”


“...... 시음은 괜찮지 않겠소?”


“시음이라 큰 무리는 없겠지만, 음용 수칙은 철저히 지키셔야 합니다.”


그렇게 용왕의 목구멍으로 ‘토끼 간 진액’라 불리는 비트즙이 꿀꺽꿀꺽 넘어갔다. 그와 함께 달주부와 삼정승의 마른침도 따라 넘어갔다.


한편, 용궁을 빠져나온 달주부는 급히 서신을 작성했다.

[별주부, 이 사람 잘 지내는가.


육지 생활은 할 만한가? 나한테까지 급하게 자금 융통을 하는 걸 보면 큰 사업 하나 잡은 모양이야. 오늘 내 용궁에 다녀왔네. 자네가 보낸 토끼 간 진액도 봤지. 참 신통한 물건이더군.

이봐, 별주부.


자네가 보낸 ‘다이아몬드 에디션’이 사실은 땅개들이 마시는 뿌리채소 즙이라는 걸 내가 모를 줄 알았나?

하지만 걱정 말게. 전하께서 술을 끊으셔야 용궁 앞날이 평안하니 그냥 입을 맞추기로 하세.


대신, 8 대 2로 하세. 자네가 2, 내가 8.


자네,

2가 적다고 서운해 말게. 자네 목숨값이 8이 넘는데 내가 특별히 할인가로 책정해 준 것이네. 영의정 대감의 눈빛을 봤어야 해. 그분은 이미 그게 ‘무’ 종류라는 걸 눈치채셨지만, 자네의 충정(이라 쓰고 사기라 읽는 것)이 가여워 참아주신 걸세. 정승들 입단속 비용이 만만치 않으니 군소리 말고 입금하게.


다 용궁과 용왕님을 위한 일이 아니겠나.


그럼 좋은 소식 기다리겠네.

★ 자네의 영원한 친구, 달주부. ♥]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순간이었다.



#별주부#유머#황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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