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쉬는 오후 네 시. 한창 당이 당길 시간에 걸려온 전화였다.
죽고 싶다.
발신인은 다름 아닌 엄마였다.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대충 짐작은 가지만 무슨 일인지 웃으며 물었다. 또 왜, 무슨 일 있어?
네 언니가…. 아유, 살고 싶지 않다.
또 뭐 가져갔어?
아니 이년이, 된장을 또 퍼다 나르지 않았겠느냐고!
딸에게 된장을 주는 엄마의 마음이야 한결같겠지만, 언니는 다르다. 엄마는 집안 살림을 남에게 준다는 것에 속이 탔다. 다르게 말하자면 남들이 달라고 하면 다 주는 언니의 성격 탓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아니라면,
언니는 가진 게 없잖아. 그거라도 줘야 사회생활하는 거지.
밖에 나가서 또 뭔 사고를 칠 줄 알고! 아이고 못 살아, 죽고 싶다 정말.
그냥 불쌍한 사람 나눠줬다고 생각해.
그러자 엄마가 웃었다. 가뜩이나 언니로 인해 노년 우울증이 심해진 엄마였다. 그렇다고 마냥 언니를 탓할 수도 없었다. 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언니는 당신네 부부의 업보라고 했다. 사실 누구의 책임인지 모든 게 흐릿해졌다. 언니는 소위 '제 구실 못 하는' 사람이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님 품속에서 빠져나가지 않고 기생하는 캥거루 족. 어느 가정에 골칫덩어리가 있기 마련인데, 우리 집에선 그 역할을 언니가 한다.
언니 때문에 엄마가 아빠에게 속상하다고 하소연이라도 하면 그건 네가 교육을 잘못시킨 탓이라는 말과 상황의 도돌이표다. 아빠는 자기의 소명을 다했다고 했다. 언니는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한글을 깨치지 못했는데, 아버지는 방에 언니와 틀어박혀 한글을 깨칠 때까지 강압적으로 교육했다. 그것이 다였다. 하지만 언니는 아직도 맞춤법을 하지 못한다. 소리 나는 대로 쓴다. 언니는 맞춤법은커녕 그 외의 공부도 전혀 하지 못했다.
전화는 끊겼지만, 생각은 끊기지 않았다. 그 된장이 뭐라고 엄마는 처마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메주처럼 위태롭게 말한다. 변하지 않을 배경처럼 있던 메주. 어느 날 부엌 안 쪽에 이불더미가 있으면 으레 메주를 쑤나 보다 했다. 엄마는 메주 위에 안 쓰는 이불을 덮어놓고 며칠간을 푹 발효시킨다. 부엌 겸 거실을 온통 뒤엎은 쿰쿰한 냄새가 아직도 콧가에 남아있다.
오랜만에 생각나서 냉장고에서 된장을 꺼냈다. 다른 간식거리나 영양가 있는 이유식은 못 해줬더라도, 어머니가 유일하게 자랑하는 장 담그는 실력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수일간 각고의 노력 끝에 담긴 이 조그마한 한 통에 많은 사연이 스쳐 지나갔다. 그중 가장 큰 사건이 있었다. 모내기할 철이면 외가 사람들이 모였다. 친가는 오래도록 오지 않았다. 이유야 알 수 없지만 알고 싶지도 않았다. 쨍쨍 내리쬐는 햇볕 밑에서 모내기를 겨우 끝내고 모두가 돌아간 저녁 무렵, 엄마가 노발대발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장독대의 된장이 움푹 들어가서였다. 언니는 둘째 이모가 장독대를 기웃거렸다고 전했다. 엄마는 이유 불문하고 둘째 이모에게 장을 가져갔냐며 추궁했다. 둘째 이모는 가져가지 않았다고 했고, 상당히 기분 나빠했다. 의가 상한 것이다. 당연히 그럴 만했다. 알고 보니 언니가 또 남에게 주기 위해 가져 간 거였으니까. 여러모로 궁지에 몰린 엄마는 사과하려 안양에 계신 둘째 이모네로 찾아갔다. 둘째 이모는 엄마를 만나려고 하지 않았다. 그 화는 고스란히 언니에게 갔지만 언니는 특유의 반응으로 발뺌했다. 어머니의 속 안에 화를 삭이는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네 언니가 말이다. 이번엔 멸치, 고추, 뽕잎, 냉동고에 있는 걸 다 훔쳤다야. 이게 뭔 개지랄이여.
쌀뜨물을 끓였다. 체에 받쳐 사연이 호되게 꼬인 된장을 풀었다. 집된장 특유의 고소하고 쿰쿰한 냄새가 퍼졌다. 이불속 숨 쉬는 메주의 냄새가 났다. 애호박, 감자, 양파, 등의 각종 채소를 넣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사다 놓으면 어차피 반은 버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채소는 금방 상하기 때문에 1인 가구에서 사다 놓기에 더욱 꺼리는 종목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잘 익은 배추김치를 넣는다. 김치에 묻어있는 양념을 씻어내고 끓고 있는 된장 물에 넣는다. 그리고 돼지고기를 넣는다. 한창 된장찌개에 돼지고기를 넣는 것에 있어서 친구와 설전을 벌인 적이 있었다. 우리 집은 돼지고기를 넣는 파였다. 돼지고기를 넣는 거라고 생각도 못 하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에 새삼 놀라웠던 적이 있었다. 그래, 된장찌개라는 포괄적인 개념 아래에 방식은 가지각색이었지. 내가 지금 끓이고 있는 이 알 수 없는 찌개처럼. 어떤 재료든 다 어울리는 것처럼.
간은 이미 된장과 김치에 다 배어있기 때문에 따로 조미료를 넣지 않아도 감칠맛이 돌았다. 역시 일등 공신은 쌀뜨물이다. 쌀뜨물을 얻기 위해 밥을 지은 수준이었다. 이가 안 좋아서 진밥을 좋아하는 엄마처럼 나도 어느 순간 진밥이 입에 넣기 더 편해졌다. 밥을 넣은 입에 뜨끈하고 구수한 국물이 들어가면 오늘도 삭혀있던 긴장이 싹 풀어진다.
나한테는 이렇게 막 주면서 언니는 왜 안 되는 거야.
너 그거 모르는구나? 집안사람이 된장을 퍼 나르면 집안이 망한다더라. 원래 집에 있는 장과 그릇은 남한테 함부로 주는 게 아니야.
아, 그래. 나는 집안사람이 아니었나 모양이다. 그렇다고 남은 아닌가 보다. 이렇게 엄마는 내게 사연 많은 된장을 또 푸는구나. 특유의 쿰쿰한 냄새가 올라온다. 얼른 이 상황을 끝내고 싶어 하는 쿰쿰한 마음이 올라온다. 집안사람도, 남도 아닌 내가 애써서 그 마음을 환기해야 했다. 항상 그런 역할이었다. 햇볕도 먼지도 이물질도 막아주는 역할.
다음엔 나도 같이해.
네 일이나 해.
이것도 내 일이지 뭐.
말어. 잘 먹어주기만 하면 돼.
된장은 어떻게 만들어?
말인즉슨, 7월에 콩을 심는다. 서리 올 때쯤 캐는 콩이 서리태콩이고, 메주콩은 이파리가 10월쯤 다 쏟아진다고 한다. 그걸 베서 콩 타작을 한다. 은쟁반 탁상에 콩을 놓고 벌레 먹은 것만 골라낸다. 저녁때가 되면 TV 시청과 동시에 하던 일이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옆에서 도왔던 기억이 났다. 모래성을 쌓아서 파헤치는 놀이처럼 각자 가지 몫의 콩을 가져갔다. 그런 다음 푹 삶아서 길쭉한 네모 모양을 만들어서 바깥 처마에 걸어 둔다. 한 달 반에서 두 달여 동안 굳어진 메주를 한창 추운 2월에 싹싹 씻어서 태양에 하루 말린다. 장독대에 소금을 풀어서 메주를 넣고 고추, 숱, 대추, 등을 넣어 한 달 발효시킨다. 그러면 간장이 만들어진다. 메줏덩어리를 건져서 소금, 장 전용 보리쌀, 간 고추씨, 메주에서 새어 나온 간장을 넣고 조물조물 으깨서 된장을 만든다. 어머니는 그 작업을 '된장 거른다'라고 한다. 버무려진 된장을 다시 항아리에 담고 백일 동안 태양을 쐬도록 한다.
장의 맛은 여기서 결정된다. 이 작업이 여간 번거롭다고 한다. 기존 항아리 뚜껑은 해가 나면 열어줘야 하고, 비가 오면 일하다가도 집으로 와서 뚜껑을 덮어줘야 하고, 백일 동안을 매일 반복해야 하는 작업이었다. 어느 날 그 항아리 뚜껑이 강아지 밥통이 되어있는 것을 보았다. 항아리 뚜껑을 더는 쓰지 않게 된 이유는 유리 뚜껑이 생겨나고서부터다. 항아리 뚜껑이 손이 엄청나게 가는 반면, 유리 뚜껑은 덮어만 놔도 됐다. 비 와도 걱정이 없고, 바람 불어도 걱정이 없고, 햇빛 쐬기 딱 좋은 뚜껑이다. 이 좋은 역할을 하는 뚜껑을 엄마는 무척 아껴라 했다. 이제 때가 되면 소금을 솔솔 얹어서 놓으면 딱 먹기 좋은 거다. 여름에 씨를 뿌리고 혹독한 겨울의 시간을 거치면 봄부터 먹을 수 있다. 메주에서 우러나오는 간장은 솥단지에 넣고 팔팔 끓이면 두고두고 먹는다. 어릴 땐 생김에 그 간장을 찍어 먹었다. 뭐든 묵을수록 맛있다.
메주를 샀더니 이상해.
그래도 엄마 손을 거치면 달라질 거야.
이미 틀렸어. 만들어 놓으면 뭐 하니. 또 네 언니라는 년이 다 퍼다 나를 텐데.
언니에게 유리 뚜껑은 그것뿐이잖아. 엄마한텐 유리 뚜껑이 있어? 덮어만 놔도 햇볕을 쬐어줄 수 있는 유리 뚜껑이 있어? 혹시 그게 나야? 그러면 죽지 마, 죽고 싶다고만 하지 마. 나는 유리 뚜껑이 없단 말이야.
오늘도 되뇌면서 엄마의 익을 대로 익은 마음에 유리 뚜껑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