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연결고리
묘권부터 시작해서 세상으로 이어지다.
집사 경력 5년 차가 고양이에 대해 무엇을 쓸 수 있겠는가 의문일 테다. 하지만 모든 세상의 부모들이 '자식 농사 잘 짓는 법'을 쓸 수 없듯이, 그저 내 이야기를 해보려 새벽에 메모장을 켰다.
흔히 '고양이는 철학적이다.'라고 말한다. 고양이를 알지 못했을 땐 그저 추상적으로만 느껴졌다. 그런 예감은 현재까지 하루에도 몇 번이고 뒤바뀌고 있다. 한 인간의 인생 그래프에서 5년 정도의 삶에 많은 변화를 일으킨 철학적 성찰은 모두 고양이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구는 지나친 의미부여, 자기 연민이라 하겠지만 이곳에서 꿋꿋하게 기록해보려 한다.
인간의 본질, 자아, 사상보다 많은 화두에 오르는 것은 사랑일 것이다. 그토록 무언가를 절실하게 사랑해 본 적이 있는가. 내게 사랑은 계곡에는 물이 흐르고, 사과는 아래로 떨어지고, 입을 다물면 침묵이 되는 세상의 이치인 양 생각했다. 해왔다고 자부할 수 없고 했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앞으로도 할 자신이 없는 것이 사랑이라고. 사랑은 장황의 극치라고.
하지만 고양2를 만나며 달려온 5년의 시간은 사랑을 넘어 인생의 판도를 놀랍도록 바꿔 놓았다. 고양이를 만나기 전의 시간을 돌이켜보면 맨송맨송하다. 또한,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한 마디로 '사유'라는 것이 없었던 거다. 멀리서 보면 짜인 생김새대로 앉아만 있던 형국이었다. 나 자신에게도 이렇게 편협했으니, 다른 사물이나 동물, 심지어 사람한테도 너그럽지 못했다.
고양2와 함께 지낸 지 어느덧 5년. 어느 날 대학교 친구 결혼식장에서 만난 친구들이 입을 모아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했다. 훨씬 부드럽고 유해졌다고. 마치 다른 사람 같다고 말이다. 분명 인생의 전환점에는 매개체가 있다. 내게 그 매개체는 고양이이다. 고양이를 감히 정형화했던 지난날을 떠올리자면,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 먼저 올라간다'부터 시작해서 (쓰임새가 보통 혐오적일 때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얌체, 암고양이, 영물, 앙칼진, 등등의 지극히 협소하고 편협한 시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예전의 나는 고양이가 '야옹' 소리만 낼 줄 알았다. 고양이가 '야-옹' 소리를 낸다는 것은 굉장히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내는 소리였다는 것을 몰랐다. 묘마다 다르지만, 평상시에 내는 소리는 '야옹'이 아니란 것이다.
하이는 서울 자취방에 오자마자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점차 공간이 익숙해지면 옷장 위까지 올라갔다. 고양이는 바닥에서부터 천장이 닿는 높은 곳까지 올라간다. 어디에 발을 돋을지도 알고 어느 장소가 편안한 지도 안다. 고양이의 눈을 맞추려면 나는 몸을 수그려 바닥에 대거나, 의자나 책상을 딛고 올라가야만 볼 수 있었다. 하이의 첫 공간은 8평도 채 되지 않았던 조그마한 원룸이었다. 손을 뻗으면 천장이 닿고 누우면 싱크대가 발에 닿는 그 좁은 원룸에서 하이로 인해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선의 높이가 뒤죽박죽 되면서 몸이 뒤로 쭉 밀려나게 된 것이다. 어디서나 하이의 골골거리는 울림소리가 퍼졌다. 그러자 여러 소리가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불편해서 외면했던, 무심해서 무시했던 그 소리가 말이다.
묘권 부터 시작했다. 예전에는 스쳐 지나갔던 길고양이들의 생태와 펫 샵 등의 가히 야만적인 분양 형태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무엇으로부터 이 야만적인 시스템이 생겼을까. 인간의 욕심, 소유욕, 인정 욕구 등등. 어째서 그것들은 약한 생명에게 쏟아질까. 생각의 꼬리는 하나씩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소외계층과 여성 인권, 사회 전반에 나타나는 혐오와 범죄들을 내 일도 아닌 양 무시할 수 없었다.
이토록 안 보였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아니, 이토록 안 보고 살았던 이유가 무엇일까? 내가 멍청해서였을까? 망막을 채우고 있던 세뇌는 언제부터였을까. 모르는 게 답이다, 라는 말로 인해 얼마나 모르고 살았던 것일까. 그러자 용기 내고 싶었다. 쓰고 싶었고 말하고 싶었다. 앞서 목소리를 내는 자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다신 그 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왜 전엔 알지 못했을까. 자책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알아가고 깨우쳐 가는 시간이 더욱더 많기 때문이다. 고양이든, 시든, 사람이든.
나는 여태 목소리를 크게 내본 적이 없다. 길을 가다가도 마치 바퀴에 기름칠을 안 한 것 마냥 시선을 끄는 소리가 계속 내 몸에서 나는 거 같아서였다.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지나가면 불편한 시선들이 따라붙는다고 생각했다. 내가 마치 그들의 평온함을 시끄럽게 만드는 것 같았고, 그들에게 나는 불편한 소음쯤일 거 같았다. 그렇게 층층이 겹을 치고 살다 보니 어느새 말하는 법을 잊어버리게 되었다. 혼자 있는 것이 편했고 밖에 나가는 것을 두려워했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면 심장이 기하학적으로 빨리 뛰고 식은땀이 나면서 혈관들이 꽉 묶여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알고 보니 이것이 공황장애의 한 증상이더라.
하지만 고양이와 함께 지내며 태도와 인식이 변했다. 점진적으로 망막의 장막을 한 겹씩 벗어 내리다 보니 놀라운 세상이 펼쳐졌다. 불편한 얘기가 던져지면 어쩔 줄 몰라했던 과거와는 다르다. 맞서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고, 상황과 지식을 사고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사랑에 적신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매번 만질 때마다 상상도 하지 못할 부드러움에 놀라는 고양이의 물성처럼 말이다.
이렇게 보면 고양1인 하이는 멍청한 인간 구제해주자 싶어 다가온 우연이 아닐까 싶다. 내겐 우연의 일치가 여럿 있었다. 내일 당장 룸메이트를 구해야겠다고 생각하면 내일이 되어서 방을 빼는 친구가 생긴다든지(대학 내내 룸메이트를 했다) 마트에서 행사 중인 제일 싼 생리대를 사서 사용해보니 질염을 얻어 다시는 안 쓰게 되었는데 얼마 후 생리대 파문이 일었다든지(당시 사귀던 애인을 쥐 잡듯이 잡아서 미안하다), SNS의 귀여운 고양이들을 보며 '안 되겠다, 고양이를 키워야겠다.' (당시 고양이 대백과를 통독하고 있었고, 누가 툭 치면 고양이는 벌레를 잡아먹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라고 마음먹으면 다음 날 어머니에게 전화가 와서 '우리 집에 고양이 있는데?'라는 말을 전해 듣게 된다든지의 일들 말이다. 고양1의 하이를 만나게 된 건 우연의 일치인지, 운이 좋았던 건지, 촉이 살아있던 건지, 아니면 신기가 있는 건지 모르겠으나 일단 모든 일을 제치고 본가로 달려간 날은 아직도 생생하다.
추운 11월. 하이는 말 그대로 웃으며 외계어를 했다. 정말이다. 모터 소리를 달며 통통 뛰어오는데 아기 고양이가 어디 아픈 줄 알고 선뜻 만지지 못했다. 첫 만남부터 생각하면 하이는 기특하기 그지없다. 동생의 차 본넷 안에 들어가 있던 아기 고양이가 천안에서 당진까지 오는 시간 동안 얼마나 무서웠을까 생각하면 오금이 저린다. 처음 이틀간은 낯을 가렸지만 곧잘 인간의 손을 탔다고 한다. 그렇게 1개월 동안 본가에 있다고 한들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을 보며 어떻게 움츠러들지 않을 수 있는지.
어머니는 하이를 보며 코트를 아주 잘 입었다고 표현했다. 하이의 코트는 귀 꼭지부터 젤리 사이의 털까지 모두 황치즈색으로 덮여있었다. 털에는 어지럽게 도깨비 풀이 붙어있었고 윤기가 없었으며 얼굴은 검은 점으로 얼룩덜룩했다. 나중에 병원에 가보니 곰팡이라고 하더라. (약을 일주일 치 먹고 완쾌됐다) 일련의 여러 일을 마주하며 이름을 기특이라 지을 걸 그랬나 싶다. 아니면 종특이던가.(부모들이 자녀에게 천재라며 호들갑 떠는 이유를 알겠다)
고양이 대백과에 나오는 '우리 사랑스럽고 귀여운 고양이가 벌레를 잡아먹어도 놀라지 마세요!'가 강렬하게 박혀있었는데 놀랍게도 하이를 처음 보자마자 돈벌레를 잡아먹는 장면을 보았다. 입술에 돈벌레의 다리가 몇 개 붙어있는 순진무구하고 지극히 귀여운 얼굴을 어떻게 잊을 수 있으랴. 오 네가 그 말로만 듣던 용맹한 고양이로구나. 집에 벌레란 벌레는 네가 다 잡아먹겠구나.
하이를 데려온 후 여러 가지 용기는 낼 수 있었는데, 제일 첫째는 내 목소리를 찾았다는 것과 둘째로는 퀴선생을 잡을 수 있다는 것. 혹여나 하이가 먹을까 잡아도 잡아도 끊임없이 나오는 퀴선생에게 더는 하이를 노출시킬 수 없었다. 그래서 세 번째 용기를 내었다. 이사를 했다. 채광이 잘 드는 24평짜리 아파트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 집 창문의 때만큼도 안 되는 조건이기 때문에 나는 최대한 고양이의 조건만 생각했다. 벌레가 많이 꼬이는 식당이 있는 다가구주택이 아닌, 윗집 옆집 아랫집에서 나오는 소음으로 방해받는 곳이 아닌, 창문 밖을 보는 걸 좋아하니 최대한 크고 깨끗하고 풍경이 있는 창문이 있는 곳으로, 애가 뛰어놀 수 있는 널찍한 방으로. 여태까지 그림자처럼 떨어지지 않는 생활고에 애쓰고 있지만, 10평 남짓에 옥상까지 딸린 월세 50만 원짜리 원룸에서 우린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때론 돈보다 더 필요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반면 하이처럼 우연이나 운으로 데려올 수 없는 아이도 있다. 후에 이끌리는 묘연과 철저한 계획과 학습 하에 데려오게 된 고양2는 케니이다.
하이는 말 그대로 웃으며 외계어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