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지 마세요, 입양하세요.
부장이를 데려온 건 어느 해 1월 1일이었다. 길을 떠돌아다니는 부장이를 친구가 데리고 왔었다. 하지만 친구는 부장이를 잘 보살피지 못했다. 부장이는 보일러실에서 지내다가 그마저도 돌봐줄 사람이 없어 나에게 왔다. 처음 내가 지내던 원룸으로 왔을 때는 잠만 잤다.
부장이를 데려온 건 정말 다행이었다. 한 생명을 구했다는 사명감도 생겼다. 끝까지 이 아이를 책임져야 할 의무가 생겼다. 하지만 25살의 나에게 한 생명을 책임져야 된다는 게 부담스럽기도 했다. 괜히 동물 등록 내장 칩을 심는 것도 미루게 되었다.
며칠 전, 팔로우하고 있던 동물 보호소 인스타그램 계정에 떠돌이 개 한 마리의 사연이 올라왔다. 앞다리 한쪽이 절단 되어 있던 점순이. 마을 주민들의 보살핌으로 살아가고 있었는데 누군가의 신고로 인해 유기 동물 센터로 가게 되었다는 사연이었다. 하지만 그곳으로 가게 되면 얼마 가지 않아 안락사를 당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나는 점순이 사진을 유심히 보았다. 내가 키우는 부장이보다 조금 커 보이는 몸집에 나이는 비슷하고 귀는 쫑긋했다. 귀부터 눈까지는 까만 점으로 뒤덮여 있어 눈인지 살인지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임시 보호라도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연락처를 물어 지금 점순이를 데리고 있는 사람에게 연락했다.
-사연이 많은 아이예요. 혹시 통화 가능하실까요? -아, 지금은 문자만 가능할 거 같아요. -임보나 입양을 원하시는 게 맞는 건가요? -제가 임보를 안 해봐서요. 이것저것 여쭤보려고 했는데 시간을 뺏는 거라면 제가 더 알아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저희 집 강아지가 사회성이 워낙 없어서 좀 더 알아봐야 할 거 같아요. -네. 관심 가져줘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대화는 이쯤에서 끝났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잠시 멍해졌다. 내가 이렇게까지 임시 보호에 대해서 적극적인 건 처음이었다. 그때 사진과 함께 문자가 다시 왔다. -오늘 점순이 미용시킨 거예요. 미용이라도 시키면 입양자가 생길까 싶어서 했는데 속 털까지 이렇게 까만 줄 몰랐어요. 미용을 시킨 점순이는 그 전보다 더 볼품없이 바뀌어 있었다. 속 털이 까매 인상이 더 어두워 보였다. 나는 그 문자에 답변할 수가 없었다. 잠시 유기견의 신세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조금이라도 예쁘고 어리게 보여야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신세.
남편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데려오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 남편은 부장이가 사회성이 많이 없어서 분명 스트레스 받아 할 거라고 했다. 그리고 두 마리가 되면 누구에게 맡기지도 못하고 지금 형편에서 두 배로 돈이 들어갈 거라는 현실적인 답변을 내놨다. 그런 남편은 내 눈치를 살피는 듯 조심스러운 말투에 시선은 부장이를 향해있었다.
내 새끼 챙기는 게 우선이라는 남편의 말에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내심 사회성 없는 부장이가 원망스러웠다. 결국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멈추지 않는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마지막 미용한 사진만 보지 않았어도’라는 생각을 계속하며 미용한 점순이의 모습을 끊임없이 떠올렸다.
그 후로 하루에 한 번씩 나는 울었다. 결국 돌고 돌아 점순이가 내 품으로 왔으면 하는 바람을 버리지 않은 채 나도 모르게 사진을 계속 보게 되었다. 어쩌면 점순이는 다른 사람의 품으로 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편이라면 기분 좋게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자꾸 안 좋은 쪽으로 생각이 들었다. 이미 늦어버린 건 아닌지.
엄마까지도 한 마리 더 데려오는 걸 말렸다. ‘한 번 마음 아프고 말지.’라는 말을 하며 나를 말렸다. 여러 SNS를 통해서 안타까운 동물의 사연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점순이가 왜 이렇게 마음에 들어오는 까닭을 모르겠다.
점순이는 부장이와 나이가 같음에도 성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쪽 앞발이 절단된 채로 산까지 잘 탄다는 말에 끈질긴 생명력이 느껴졌다. 낯선 이들의 보살핌에도 한 번도 짖거나 물려고 하는 공격성을 띠지 않았다고 했다. 살기 위해 거리에서 안간힘을 썼을 점순이의 노력이 가상했다. 내가 점순이에게 느낀 감정은 그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