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리도 사랑일까?>를 통해 읽는 몇가지 사랑의 본질
‘Take this waltz’
타이틀을 가장한 달콤한 제안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음악이 흘러나온다. 동시에 식기의 달그락거리는 소음 따위가 들려온다. 초점을 완전히 흐린 화면 안에, 한 여자가 움직이고 있다. 여자는 휘젓고, 땀을 닦으며, 추측해 보건대 요리를 하고 있다.
상당히 타이트한 쇼트, 핸드 헬드의 기법. 영화는 대략 17초간의 긴 시간 동안 가까운 위치에서 여자의 형태와 얼핏한 움직임만을 담아낸다. 영화는 진즉 시작했지만, 우리는 이 인물에 대해, (그녀의 성향과 사소한 버릇 같은것들은 차치하고서라도) 그의 얼굴조차 알지 못하는 상태로 그저 그의 움직임만을 관망한다. 이토록 긴 시간의 ‘포커스 아웃’을 통해 비로소 그는, 바삐 무언가를 하고 있는 그 인물은 대상의 확장을 이루게 된다. 의도적으로 제외된 주인공, 이 일종의 수수께끼는 우리로 하여금 어느 누가 요리를 하고 있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인상을 받게 한다. 대상은 확장되어 관객- 그를 보는 우리로까지의 확장을 이룬다.
헤어핀을 꽂은 금발의 단발머리와 은목걸이, 붉은색 스트라이프 티셔츠, 짧은 청치마 위에 두른 꽃 자수의 푸른빛 앞치마, 온통 파란색으로 물들인 열 개의 발톱 - 다채롭고 비비드한 색감의 주인공, 마고 (미셸 윌리엄스)가 등장한다.
공간 전체를 메우는 주황빛 역광의 햇살, 붉은 색채의 집안, 요리의 행위, 프레임 바깥에 깔리는 부드러운 선율의 음악 등은 우리에게 모종의 편안함과 안정감을 선사한다. 그러나 역광은 이따금 그 밝은 빛으로, 마고의 얼굴을 완전히 가려버리기까지 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 공간 내에서의 햇빛은 그렇게 평화이자 안락함이며, 마고의 존재 상실을 의미하기도 한다.
공간의 붉은빛 노란 색감에 둘러싸인 마고. 그럼에도 마고는 오븐의 작은 창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적외선만을 응시한다. 그를 감싸는 더 큰 빛을 보지 못하고, 혹은 만족하지 못하고 또 다른 ‘빛’을 열망하는 그녀의 태도를 짐작할 수 있다.
마고의 옆으로, 한 짝의 종아리가 지나쳐 간다. 아마 남자의 것일 그 종아리와 색채없는 그의 횟빛 반바지, 그리고 너른 등짝. 모든 것이 분절된 채로 보여지는 남자의 모습은 마치 마고의 등장을 연상케 한다. 창문 앞에 선 남자는 햇빛의 역광으로 완전히 그 모습을 감추어 버리는데, 이전과 같은 유사한 방식의 인물 소개는 역시 그 인물에 대한 모호함을 기반으로 궁금증을 유발시키고 대상을 확장한다.
마고는 그에게로부터 시선을 거두어 다시 오븐의 작은 창을 들여다본다. 거시로부터 미시의 것으로. 마고는 분명 다른 무언가를 갈망하고 있다. 우리는 그렇게 마고라는 한 여성의 권태를 파악하며 이야기를 쫓게 된다.
<Take this Waltz>의 미쟝센 스타일은 내러티브를 통해 전달되는 몇 가지의 ‘사랑의 본질’을 통해 설명이 가능하다.
사랑은 우리가 만들어낸 이상이자 환상인 것. 그러므로 허상이고 거짓인 것.
홍보자료 작성을 위해 루이스버그의 어느 유적지로 답사를 간 마고. 마고는 그곳에서 성직자의 주례와 함께 혼인을 올리는 중세의 젊은 부부를 보게 된다. 이들의 혼인은 관광객 유치를 위해 꾸며진 일종의 ‘역할극’으로서, 즉 실제를 ‘연기’하는 것. 그 자체에서 오는 허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미래’를 약속하는 이들은 실은 ‘과거’의 사람이며, 그들의 ‘미래’에 대한 약속은 현재에 있어서는 결국 ‘과거’의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시간의 모순을 통해 ‘사랑’과 ‘혼인’에 대한 허무함을 표현한다.
노란색 드레스를 입고 혼인 중인 중세의 여성(실은 배우인)과 그를 구경하는 노란색 자켓의 마고. 이들의 투(two)쇼트는 상당히 의도적으로 배치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좌측 전경의 마고 대신 우측 후경의 여성에 초점을 맞춤으로써,우리의 시선을 그 역할극에 집중시키는 듯하지만, 이내 패닝을 하며 마고를 우측의 전경으로 이동시켜 버린다. 카메라의 무빙으로 인해 마고의 노즈룸은 중세 부부의 혼인식이 아닌 우측의 허공으로 향하게 된다. 곧이어 좌측의 후경으로 간통범을 호송하는 시끌벅적한 정경이 등장하고, 이쯤에서 우리는 다시금 사랑의 허상을 마주하게 된다. 마고가 바라보던 부부의 서약은 온 데 간 데 사라져 없고, 다른 이를 사랑하게 된 죄로 벌을 받는 죄인의 모습만이 남아있는 것이다. 영화는 한때의 사랑과 미래의 약속을 이토록 허탈하고 무의미한 것으로 그려내며 앞으로의 영화 내러티브 전개를 암시한다.
마고는 유적지에서 운명처럼 만난 옆집 남자, 대니얼 (루크 커비)에게서 사랑을 느낀다. 대니얼의 출근 시간에 맞추어 일찍 일어난 마고는 정원 잔디의 스프링클러를 틀어놓고는 그가 나오기를 기다린다. 인력거꾼인 대니얼이 그의 차고에서 인력거를 꺼내는 동안 카메라는 롱 쇼트의 넓은 사이즈로 그의 전반적인 액션을 잡는 동시에 스프링클러의 물줄기를 한 프레임 안에 같이 담아낸다. 이 하나의 쇼트를 통해 우리는 마치 동이 트는 새벽, 대니얼이 비를 맞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그러나 실제 마고와 대니얼 사이의 거리, 카메라의 위치 등을 고려해보았을 때, 이것은 마고의 시점 쇼트일 수가 없다. 즉, 현실의 시점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이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쇼트는 사랑의 환상에 빠진 마고 내면의 시점으로 바라볼 수 있다. 실제 비는 내리지 않지만 그녀 스스로가 장치해둔 스프링클러의 물줄기를 통해 비 내리는 공간으로 그 대상 (대니얼)을 얼마든지 투영시킬 수 있는 것. 사랑은 이처럼 사랑에 빠진 이들의 환영인 셈인 것이라고 영화는 말하고 있다.
사랑은 우리 일상에서의 수많은 크고 작은 변화들을 만들어내는 것
마고와 루 (세스 로건)의 침실에는 탁상의 알람 시계가 하나 있다. 이 알람시계를 담은 두 번의 인서트 쇼트만으로 영화는 대니얼에 의해 변화된 마고의 일상을 완벽히 표현해낸다.
오전 여덟 시 알람이 울린다. 루는 알람 소리에 몸을 뒤척이며 마고를 깨운다. 마고는 한참 동안 잠에 취해 눈을 뜨지 못한다. 마고는 원래가 잠이 많은 사람이고, 루는 언제나 그런 마고를 깨우는 잠귀가 밝은 사람인 것이다.
오전 다섯 시 알람이 울린다.화들짝 잠에서 깬 마고는 아직 잠들어있는 루를 확인한다. 동 트지 않은 새벽이다. 이어서 다음 쇼트, 마고는 출근 준비 중인 대니얼을 의식하며 집을 나선다. 마고의 느긋했던 아침은 대니얼과의 은밀한 만남을 위해 부지런히 변화되어 있다.
사랑은 결코 불가항력적인 것
마고는 수영장에서 아쿠아 로빅을 배우던 중, 그녀를 바라보던 관중석의 대니얼을 발견하게 된다. 그를 향한 반가움과 스스로의 우스운 자태에 웃음을 멈추지 못하던 마고는 곧 요의尿意를 느낀다. 그녀의 친구는 풀장의 물은 약이 타져있기에 소변을 봐서는 안된다고 경고하지만, 마고는 참지 못하고 이내 일을 저질러 버린다.이때 카메라는 물 밑에서 그녀의 하체를 촬영함으로써 투명하고 푸르던 풀장의 물이 그녀의 배출과 동시에 진한 청색으로 물들어가는 변화를 노골적으로 담아낸다.
마고는 대니얼을 발견한 이후에, ‘배출’의 행위를 한다. 의지와 달리 본능적일 수밖에 없는 것. 즉, 사랑은 배출과 같이 참을 수 없는 것, 참아지지 않는 것. 그러므로 사랑은 사랑하는 이들 앞에서 불가항력적인 절대 권력에 앉게 되는 것이라고 영화는 정의한다.
사랑은 다른 색채의 두 사람을 하나로 결합시키는 것
남편, 루와의 권태로운 데이트 이후, 마고는 대니얼을 찾아 해변에 도착한다. 마고는 붉은색 벤치에 앉아있고 바다를 등진 대니얼의 뒤로는 옥색의 드넓은 바다가 펼쳐져 있다. 두 인물 각자의 색채는 확연히 상반되어 있다. 그러나 이어지는 바로 다음 쇼트- 마고와 대니얼이 파란색 바탕에 군데군데 빨간색 페인트가 덧칠해진 테이블에 마주 앉아 식사를 하고 있다. 카메라는 부감, 롱 쇼트로 마치 마고와 대니얼의 결합을 상징하는 듯한 그 파랗고 빨간 테이블을 우리로 하여금 명확히 인지시킴으로써 색채의 결합, 즉 그들 사랑의 결합을 여실히 드러낸다.
사랑은 다른 색채의 두 사람을 두 개로 분리시키는 것
대니얼과의 사랑, 즉 그들 사이의 결합을 확인한 마고는 루와의 분리를 이루게 된다. 창문 하나를 사이에 둔 마고와 루. 마고는 음악을 듣고 있지만, 테라스의 루는 그 음악을 듣지 못한다. 카메라는 전경의 루 대신 후경의 마고에 초점을 맞춘다. 마고는 자신이 듣고 있는, 오직 자신에게만 들리는 음악의 가사를 읊어대기 시작한다. 이제 카메라는 루의 단독 쇼트를 바스트 사이즈로 타이트하게 잡는다. 루는 들리지도 않는 음악의 박자에 맞춰 천천히 몸을 흔들어댄다. 루는 창의 존재를 잊은 듯, 마고와 함께하려 하지만, 그들 사이엔 분명히 창 하나가 존재하고 있다. 마고는 루와 달리 창의 존재를 정확히 인지한다. 그녀는 그들의 분리를 직감이라도 하듯, 애써 눈물을 참는다.
사랑은 인지하지 못하고 지나쳤던. 그러나 언제나 그 자리에 있던 것
대니얼은 마고와의 이별을 결정한다. 온갖 짐들을 실어 넣은 대니얼의 파란색 지프차가 허무히 서있는 마고의 곁을 떠난다. 침실로 돌아온 마고는 남색 티셔츠를 입은 루를 지나, 파란색 베개에 누워 대니얼을 상상한다. 마고는 결국 대니얼과의 사랑을 선택하고 루에게 이별을 고한다. 마고와 루는 한참 동안 침대에 말없이 앉아있기만 한다. 그들의 침묵 쇼트는 아이 레벨의 정면 풀 쇼트로만 진행되는데, 우리는 이 쇼트를 통해 묘한 아이러니를 느끼게 된다. 사실 마고와 루의 침실은 온통 파란색뿐이다.
파란색 지프차 - 파란색의 것이 떠나가 슬퍼하던 마고는 결국 그들의 침실과 루 – 온통 파란색뿐이었던 것들을 떠나보낸다. 루는 언제나 파란색의 형태로 마고의 옆에 존재하고 있었다.
사랑은 설렘에 마침표를 찍어가는 과정인 것
마고는 대니얼과의 사랑의 결실을 맺는다. 이들은 빈 원형의 공간에서 왈츠를 시작하 듯, 서로의 손을 맞잡는다. Leonard Cohen의 <Take this waltz>가 흘러나오고 카메라는 그들의 공간을 원형의 형태, 일정한 속도로 하여 계속해서 돌기 시작한다. 마고와 루는 사랑을 나눈다. 완전한 공실이었던 원형의 공간은 그들의 살림살이로 하나 둘 채워져가고, 창문 밖의 계절도, 풍경도 변화해간다. 여전히 Cohen의 음악은 지속되고 카메라 역시 돌고 있다. 철저히 편집에 의해 개입되어 있는 이 몽타쥬 시퀀스는 말 그대로 빙글빙글 돌아가는 방식을 통해 돌고도는 ‘왈츠’를 표현해낸다. 카메라의 연속적인 무빙, 마고와 대니얼의 사랑의 행위는 음악이 끝나감과 동시에 서서히 그 속도를 늦춰간다. 음악이 완전히 끝이 나고, 영원할 것만 같던 ‘왈츠’의 설렘은 그렇게 결국 끝을 맺는다.
이어지는 다음 쇼트 – 마고는 루와 그러했 듯, 대니얼을 앞에 두고 익숙한 듯 소변을 본다. 한때 불가항력적인 사랑의 표출과도 같았던 그것은 그렇게 마고와 대니얼에게 있어서도, 대수롭지 않은 일상의 것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위 일곱가지의 사랑의 본질과 그것을 표현해내는 영화의 미쟝센적 요소들을 통해 나아가 ‘결혼’과 ‘관계’ 등 ‘인생’의 전반에 관한 깊은 고찰 또한 할 수 있게된다.
루는 닭 전문 요리 작가이다. 오직 닭만을 재료로 다양한 요리법을 만들어 책을 쓰는 것이 그의 직업이다. 그렇기에 그는 요리의 행위를 결코 게을리하지 않고, 언제나 진지한 태도로 임하려 노력한다. 어쩌면 그것은 결혼의 본질에 대처하는 루의 태도와도 닮아있다. 닭만을 요리하는 것이 그의 과업이라면, 루는 그 과업에 충실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루는 닭만 있어도 괜찮았다.
마고는 닭 요리가 물린다. 양념을 달리한다고 해도, 그것은 결국 닭 요리일 뿐이다. 제대로 치우지 않으면 그 잔반의 냄새는 지독하기도 하다. 마고는 ‘평생의 닭 요리’가 버겁다. 어쩌면 그녀는 닭에 권태를 느꼈으며 닭과의 이별을 택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새것도 헌게 된다오"
아쿠아 로빅 수업이 끝난 후, 마고와 두 친구는 아까의 소동에 대해 깔깔거리며 샤워를 한다. 건강하고 젊은 몸의 이들 건너편으로는 늙고 처진 몸의 노인 셋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카메라는 이 모든 여성들의 나체를 풀 쇼트로 가감 없이 드러냄으로써, 의도적으로 그들의 신체를 완전히 비교 ∙ 대립시킨다.
“가끔 새로운 것에 혹해. 새 것들은 반짝이니까”
일상의 반복 속 새로운 것을 갈망하곤 한다는 친구, 카렌. 이에 나체의 노인이 입을 연다.
“새것도 헌게 된다오”
다 벗어 늙은 피부를 한 노인의 한 마디는 강력했다. 인생의 본질을 내뱉은 노인들은 그제야 웃고 떠들기 시작하고, 인생의 본질을 알아버린 젊은이들은 그제야 말을 잃는다.
영화는 홀로 ‘스크램블러’를 타는 마고의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어두운 공간, 다채로운 색감의 싸이키 조명 아래 빠른 속도로 회전하는 놀이기구 위의 마고는 눈을 감고, 그저 그것의 거친 움직임에 몸을 맡긴다. 노래가 흘러나온다. The Buggles의 <Video killed the radio star>.
프레임 바깥의 것이 아닌, 센터 아일랜드 (놀이공원)로부터의 음악인 것이다. 마고는 우리와 함께 이 음악을 듣고 있다. 마고는 아마 떠올릴 것이다.
사랑의 본질을. 새것은 언젠가 헌 것이 된다는 사실을. 비디오로부터 죽임당한 라디오 스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