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교사 일기
글을 쓴 시기가 지금이 아닌, 과거 어느 때임을 밝힌다.
-돌이킬 수 없는 불행
시작부터 이렇게 자극적인 이야기를 하게 되다니 참. 씁쓸하다. 첫 이야기의 주제는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이다.
이야기 시작 전 먼저, 내 직업을 밝히겠다. 나는 초등학교 선생님이다. 일을 시작한 지 햇수로는 3년 차, 6학년의 담임을 한 지는 딱 3개월이 되어간다. 나는 교사가 잘 맞는다. 사람을 좋아하고 그 중에서도 나는 정말이지 아이들이 좋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과 있는 시간들이 너무 좋다. 내 친구들, 혹은 아는 지인들 중 교사가 아닌 사람들은 내게 쉽게 이런 말을 한다. "초딩들 너무 요즘 말 안 듣지? 애들이 개념이 없고 말귀를 못알아 먹을 거 같아." 내가 만약 교사가 아니었다면 나도 어쩜 쉽게 판단했을 거 같다. 왜냐하면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를 새까맣게 잊고 살기 때문이다.
친구들이나 지인들의 말에는 이런 생각이 깔려있다. "초등학생=미완성된 존재" 나는 이 생각을 하는 주변 지인들을 아주 많이 본다. (사실 친한 친구들 중에는 섣부르게 판단하는 친구들이 거의 없다. 내가 제일 섣불러.) 심지어 교사 중에서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어떤 생각이 옳은 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생각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어릴적 나를 그저 '어린아이'로만 바라보며 내 생각과 감정을 무시당했던 그때가 꽤나 유쾌하지 않은 어른 중 한명이기 때문에 또.
내게 아이들은 그냥 타인이다. 그래 아이들은 내게 완벽하게 완성된 존재들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어른을 대할 때 차려야 할 예의'를 바라지 않는다. 그저 타인을 대하듯 나를 대하고 마찬가지로 너희도 너희보다 어린 친구들을 타인으로서 존중하라 말한다. 아이들은 그저 내게 존중받아야할 타인이고 나와 함께 세상을 살아갈 사회적 존재들이다. 내가 감히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나는 그저 전달하고 공유하고 공감할 뿐이다. 나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여태 교사를 해왔고 앞으로도 이런 생각을 잃지 않고 싶다.
하루만 선생을 해봐라. 아이들이 얼마나 멋진 생각을 하며 얼마나 가치 있게 살아가고 있는지 안다면 초등학생을 만만하게 생각했던 어떤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충격을 가져다 줄 것이다.
이게 내가 가지고 있는 아주 단순한 교사관이다. 그밖에 별다른 건 없다.
내가 내 직업과 직업관을 소개로 이 에피소드를 시작하는 이유는 이 에피소드의 주인공이 너무 가슴 아프게도 우리반 학생이기 때문이다.
학기초 똘망똘망한 눈으로 내 이야기를 아주 맛깔나게 들어주는 아이가 있었다.
이 아이를 나는 빨강이라고 부르겠다. 빨강이는 남자아이다. 빨강이는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고 수업시간에는 집중할 줄 안다. 토론이 있는 수업시간에는 말을 가장 논리적으로 하며 역사를 연대기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이미 다 성장했으며 사건의 인과는 식은 죽 먹기처럼 이해하는 멋진 친구다. 가끔 소심한 모습을 보이지만 그 모습이 비겁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간혹 억울한 일을 당하면 눈물을 보이지만 그 눈물을 스스로 닦아낼 줄 안다. 또 빨강이는 모든 과제의 완성도가 무려 100프로다. 나의 초등학생 때 모습과 비교하면 빨강이는 이미 지금 대학교에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빨강이는 우리반에서 아이다운 순수함과 어른과 같은 논리를 가지고 있는 아이다.
그래서 나는 빨강이에게 종종 옆 친구의 공부를 도와달라고 하거나 다수 아이들이 어려워하는 문제의 답을 네가 맞춰보아라 한다거나 창의적인 답을 요구하는 질문에 대해 꼭 빨강이의 답변을 의도하기도 한다. 빨강이는 어디를 가도 무엇을 하더라도 반드시 깔끔하게 잘 해낼 수 있는 그런 믿음직한 아이다.
빨강이가 울었던 날이 있었다. 마지막 수업으로 외부에서 강사를 초빙해 음악수업을 했던 날, 옆 친구가 계속 말을 걸었고 강사는 말을 건 친구가 아니라 말을 받아준 빨강이를 크게 지적했었다. 이런 사정을 모르고 나는 종례를 하려 교실 앞에 섰다. 몇가지 주의사항을 준 후 미리 내준 미술 숙제를 이어 검사했는데 그날 따라 숙제를 제출하지 않은 친구들이 몇명 있어 나도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겠다고 판단을 내렸었다. 미술 숙제는 자신의 얼굴을 팝아트로 그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빨강이가 미술을 하며 자신의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다고 그 옆 친구의 사진을 가져다가 작품을 완성했던 것이었다. 나는 차분하게 다시 해오라 했다. 내 말에 말수가 적은 빨강이는 갑자기 모자를 푹 눌러 쓰더니 사슴같은 눈망울로 보석같은 눈물을 툭툭 떨어뜨렸다. 아이들의 울음에 이미 적응이 된 나지만, 빨강이의 울음이라니 정말 당황했다.
빨강이의 눈물이 쉽지 않아 또 쉬이 그쳐지지 않을 거란 걸 알기에 종례를 마치고 아이들을 보낸 후 빨강이를 남겼다. 이건 빨강이의 잘못이었다. 과제를 자기 마음대로 바꿔 하다니, 그래도 운 이유를 분명하게 하려고 왜 울었는지 물어봤다. 오랜시간을 기다린 끝에 빨강이는 내게 음악시간 이야기를 했다. 음악강사의 오해와 숙제에 대한 지적이 콜라보레이션을 거듭해 빨강이를 울게 만들었던 것이었다. 그렇구나. 그래서 어떻게 하고 싶니? 결론은 내가 강사님께 가서 오해를 풀어주기로 하고 빨강이는 오후에 남아 미술과제를 완성하고 가기로 했다. (이때 빨강이에게 "그래도 옆에서 그 이야기를 들은 것도 네 잘못이 없는게 아닌 건 알고 있지?" 라고 물었고 빨강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이야기를 한 이유가 있다. 학원 스케줄이 빡빡한 빨강이가 방과후 처음 남은 날이고 또 덕분에 갖게된 나와 빨강이의 첫 상담시간이었다. 빨강이는 차분한 성격에 조용하게 남의 말을 다 받아주고 난 뒤에야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타입이다. 아주 성숙한 대화법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그런 빨강이가 내 말을 가로막으면서까지 신나게 말한 주제가 있는데 바로 '아버지'였다. 생각해보니 수업시간에도 '아버지'를 주제로 이야기했던 때에 빨강이는 남다르게 아버지에 대해 자신감이 있었다. 실과시간 ‘어머니’, ‘아버지’, ‘집안일’을 키워드로 이야기를 하는데 대다수 학생들이 ‘우리 사회는 아버지가 어머니보다 가사일에 조금 더 소극적인 가정이 많이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주고 받을 때 빨강이가 목소리를 높여 "우리 아버지는 달라." 라고 말했던게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나와 둘이 이야기 했던 때에도 빨강이는 내게 아버지와 주말마다 하는 야구 이야기를 하며 (빨강이는 야구광이다.) 아버지 칭찬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했었다. "빨강아. 너는 정말 좋은 아버지를 만났구나. 네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예쁘다." 빨강이는 내 말에 수줍게 뿌듯해 하며 언제 울었냐는 듯이 얼굴에 생기를 띠었었다.
어느 월요일 퇴근 후 친한 또래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놀기로 했다. 한 선생님의 집이 비어 그 선생님 집에서 맛난 요리를 해먹고 같이 잠을 자고(동성이다.) 다음날 같이 출근 하기로 한 것이다. 밤새 우리들은 사랑과 가족을 주제로 삶을 이야기하며 울었다 웃었다 했다. 잠자리에 예민한 나는 그날 밤 낯선 침대에서 잠을 푹자지 못해 설쳤다. 당연히 아침에 눈 뜨기가 힘들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눈이 일찍, 그리고 말끔하게 떠졌다. 습관처럼 휴대폰을 들었는데 문자가 하나 와 있었다.
-빨강이 엄마입니다. 어제 오후 갑작스럽게 빨강이 아빠가 하늘나라로 가게되어...-
나는 내가 문자를 잘못 본 줄 알았다. 눈을 비비고 다시 문자를 봤다. 이상했다. 빨강이 아버지는 겨우 40살이었다. 빨강이 아버지는 엊그제도 학교 행사에 참여하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건너건너 들었었다. 빨강이 어머니는 어제 아침 녹색어머니 활동을 하셨었다. 우리 빨강이에게 도대체 무슨일이 일어난거지.
나는 너무 무서웠다. 나는 갑자기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어야할 것 같았다. 내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아버지도 교직에 계시다. 물론 초등은 아니지만.)
"응. 왜?" 아버지의 목소리에 나는 눈물이 났다. 나는 목소리가 떨렸다. 내가 울자 아버지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일이야. 왜그래?"
아버지에게 운 이유와 전화한 이유를 이어 말하니 아버지는 나를 달래며 또 다그쳤다. 네가 지금 울면 안된다며 다음에 내가 밟아야할 순서를 설명해줬다.
내가 친구 선생님집에서 챙겨온 옷은 당연히 검정색이 아니었다. 심지어 분홍색 니트 원피스였다. 나는 학교에 가자마자 교장선생님을 찾았다. 학교 제일 웃어른이었다. 나는 학교까지 꾹꾹 눌렀던 눈물을 교장선생님 앞에서 펑펑 터뜨렸다. 우리반 아이에게 찾아온 이 거대한 불행이란 놈을 옆에서 마주할 때 어떻게 해야하는지 또 설명을 들었다.
학교 수업을 중간까지 마치고 집에 들러 옷을 갈아입고 바로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빨강이는 상주였다. 작은 몸이 걸친 검정색 상복은 너무나 검었고 너무나 무거워 보였다. 아이는 하염없이 울고있었고 주변 어른들은 아이에게 그만 울라 다그치고 있었다. 나는 빨강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나는 시간이 멈추는 것을 느꼈다. 주변 어른들도 모두 숨죽였다. 빨강이와 나는 손을 붙잡고 서로 울었다. 나는 빨강이 손이 하얘지도록 꽉 붙잡았다. 더 이상 눈물은 내 의지로 조절되는 것이 아니었다. 빨강아. 빨강아.
빨강이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맞는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을 아주 어린나이에 맞닥드리고 있었다.
나는 빨강이에게 해줄 수 있는게 없었다. 빨강이는 자신보다 더 서럽게 우는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냥 모든 것이 미안했다.
그 뒤로 나는 밤에 다시 간식거리를 사서 빨강이에게 갔다. 이번에는 웃으며 갔다. 빨강이에게 그날 그날 있었던 학교 이야기를 했다. 빨강이가 장례식장에서는 처음으로 내 이야기를 듣고 웃었다. 그리고 또 빨강이에게 울음을 참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밥을 먹지 않아 너무 걱정이 된다는 빨강이 어머니의 말에 빨강이에게 화를 내다시피 하며 밥을 꼭 다 먹으라고 말했다. 그리고 빨강이에게 "우리 천천히 슬퍼하자."고 말했다. (내가 다녀 간 후 빨강이가 더 이상 울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그 말이 아팠다.)
다음 날 나는 학교로 돌아갔다. 이미 학교에는 소문이 났다. 작은 동네였고, 학교가 생각보다 크지 않고 학부모들끼리 다 아는 사이였기 때문에 아이들이 모두 아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나는 우리반 아이들의 따뜻함을 믿었다. 반 아이들에게 빨강이 이야기를 했다. 몇 명은 눈물을 보였고 모두가 숙연해졌다. 나는 힘든 시간을 마치고 돌아올 빨강이를 위해 반을 정리했다. 자리를 다시 맞추고 아이들과 빨강이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이야기 했다.
웃음이 많은 빨강이를 더욱 잘 웃길 수 있는 친구들이 서로 빨강이의 옆자리에 앉혀달라고 말했다. 우리 모두 빨강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빨강이가 하루 빨리 천천히 슬퍼할 수 있기를 바랐다.
죽음은 나와 먼 일이었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 나는 가까이에서 죽음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세상에 일어나는 불행들에 대해 대게는 만만하게 생각했다. 어떤 불행들은 '생각하기 나름이지, 극복할 수 있어.'라고 긍정을 떨어본적도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불행에는 갑자기 일어나는 죽음은 아마 없었던 것 같았다.
빨강이의 하늘이 무너졌다. 그것은 빨강이에게 분명한 불행이다. 빨강이는 이를 돌이킬 수 없다. 어느 누구도 돌이킬 수 없다.
세상 모든 일에 자신감 넘치고 당당했던 나는 내가 가진 지금의 행복 그만큼이나, 또 내가 불행 앞에 얼마나 취약체인가를 새삼 떠올린다. 나는 빨강이가 먼저 마주한 그 큰 불행을 감히 감당할 수 있을까.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나의 빨강이. 빨강이는 지금도 슬프다. 하지만 빨강이에게는 미래가 있다. 빨강이는 아버지에 대한 예쁜 추억이 있다. 빨강이에게는 빨강이를 빨강이보다 더 사랑하는 어머니도 있다.
빨강이가 내게 며칠 전 편지를 썼다. 앞뒤 없이 "무엇보다도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라는 말이었다.
너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가 될 수는 없지만 네 무너진 하늘을 다시 세우는데 나도 기꺼이 동참하고 싶다. 빨강아. 사랑해.
+ 그 뒤 빨강이는 전학을 갔다. 빨강이 어머님이 그 후 6개월 뒤에,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빨강이가 잘 지낸다고 말을 해주었다. 빨강이는 지금 의젓한? 중학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