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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남미 Oct 06. 2019

인연


보이지 않는 인연의 끈이 있다. 부모와 자 식의 관계는 평생 끊을 수 없는 피로 섞인 끈이 있다. 부부는 결혼할 때 함께 평생 함께 같이 끈으로 연결되어 갈 것 같아도 돌아서면 남이다. 알 수 없는 인연의 끈이 연결되어 있어서 전생이 생겨나고 오만가지 추측이 나오지만 그저 인연이 오고 가는 것이고 어떤 것도 ~해야 한다는 당위의 끈은 없다. 모두 각자 이 세상에서 체험하고 싶은 인연을 만나서 서로 배우고 돕고 살면서 자신을 알아가는 것뿐이다.




오늘 아침에 춘천 마라톤 연습과 철인 3종 통영 연습을 해야 해서 남산으로 올라갔다. 새벽 3시와 4시에는 아무도 달리지 않아서 혼자서 뛰니 장거리 훈련이 너무 힘들었다. 18킬로 되었을 때쯤에 어른들 4~5명이 달리길래 너무 반가워서 철인 클럽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고, 친구들끼리 달리는 50대 60대의 어른들이었다. 혼자 달리기가 힘들어 이분들 틈에 끼어서 이야기도 하면서 달리니 좀 살 것 같았다. 철인 이야기와 마라톤 이야기를 하면서 웃으면서 달리고 있던 중에 지팡이를 들고뛰시는 할아버지가 도와달라고 하셨다. 화장실까지 데려다 달라고. 단번에 시각장애인이신 것 같아서 화장실이 멀어서 내가 모셔다 드려야겠단 생각을 바로 했다. 아무도 선뜻 먼저 하겠다고 안 하는 선의를 나는 둘째를 키우면서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기에 당연히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자를 벗으시면서 70세 정도 되어 보이는 어르신이 끈을 이야기하셨다. 이 끈으로 같이 가자고. '그렇게 많이 보았던 시각 장애인용 끈이구나' 순간 이런 기회가 주어진 것이 삶의 큰 교훈으로 다가올 것을 알기에 화장실까지 2킬로를 달려가면서 생각했다.




일반적으로 잘 보이고 멀쩡한 사람들도 힘들어서 잘 뛰질 않는데 어떻게 이렇게 새벽에 나와서 뛰시는지 여쭈어봤다. 눈의 시신경이 안 좋아지면서 갑자기 시간이 지나니 눈이 안 보이신다고 했다. 원래는 통통하신 편인데 마라톤을 뛰고 나서 건강해지고 눈이 좋아지고 모든 면에서 더 나아지고 있어서 마라톤 대회를 항상 나가셨다고 한다. 3시간 49분이면 아주 잘 달리시는 건데 어떻게 그렇게 잘 달리시냐고 했더니 매일 남산까지 걸어와 13킬로를 뛰신다고 한다. 보이지 않는 연결 고리가 있었단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좋은 날씨에 안 나올 수 없다면서 오늘 항상 같이 끈을 매고 달려주는 분이 안 나와서 화장실이 급하셨는데 다행이다. 누군가에게 등불이 된다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멀쩡한 사람은 그분에 비하면 다리면서 힘들다는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건강하셨다.




잠시 후 봉사하시는 분이 오셨는데 얼마나 밝던지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인사하고 눈이 안 보이는 어르신을 잘 안내해주셨다. 내 눈이 건강하여 누군가가 빛이 되어줄 수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나는 끈을 매고서 그분의 눈높이에서 볼 수가 없으니 잘 못 인도하여 꼬랑으로 빠질 뻔도 하고 그때 정신이 깨었다. 내가 잘 보인다고 그분은 나를 따라오는데 아무렇게나 리드를 할 수 없는 거라고.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을 하라고. 여기서 내가 잘 못하는 배려를 또 배웠다. 내 중심이 아닌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면서 끈을 이어가라고. 보이지 않는 내면의 끈이 있어 이 분은 아침에 나에게 교훈을 주러 오셨다. 세상은 선한 사람들이 더 많아 끈이 아름답게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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