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유정 Jun 24. 2023

6.강아지는 털빨?

헤어스타일은 메이컵의 80%

두 마리의 반려견 중에서 암컷인 뭉실이는 솔직히 뭉치보다 코도 조금 길고 인물이 엄청 예쁜 강아지는 아니었다. (내 강아지니까 내 눈엔 예쁘지만, 난 아주 객관적인 사람이니까.) 털이 짧아지면 짧아질수록 이 녀석이 수컷인지 암컷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뭉실이에게 어렸을 때부터 굳이 암컷이라는 걸 표시하려고 머리가 조금 길면 핀을 꽂아주거나 묶어 주었는데 두어 살 될 때까지는 사진처럼 머리를 바닥에 헤집고 흩뜨려서 엉망진창이 되곤 했다.


개통령 강형욱 님의 최근 영상 중에서 몰티즈의 눈곱을 뗄 수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했는데 생각해 보면 귀 닦는 거랑 눈곱 떼는 거 모두 싫어한 건 분명했다. 하지만 우리 반려견 친구들은 그래도 잘 참는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리만큼은 너무 싫었는지 예쁘게 묶어주면 바로 뛰어가서 다 풀어헤치고 귀신 산발을 해서 돌아와 나를 절망의 늪에 빠뜨렸다.


앞머리를 묶으면 사람이든 개든 다 귀여움이 적어도 5는 증가하는 것 같은데, 외출도 엄청 자주 하지 않았는데 왜 나는 굳이 뭉실이의 앞머리를 그냥 두지 않았을까?


이렇게 실랑이를 벌인 지 거의 1년이 다돼 가면서 서서히 뭉실이 쪽이 먼저 체념을 했다.

'에효.. 이 언니 포기 안 할 모양이네. 그래. 좀 싫지만 내가 양보하지 뭐.' 요런 느낌이었을까?


어느 날부턴가 얌전히 머리를 묶는 뭉실이, 거기다가 머리를 풀어헤치지도 않고 밤이 될 때 까지도 잘 유지시키고 있다. 오~이게 웬 떡이야!


그날부터 나는 뭉실이에게 어울리는 귀여운 머리핀을 찾아다니면서(지금처럼 예쁜 게 많지 않던 시절) 나의 열정은 해외까지 뻗어 어느 날 정말 맘에 드는 귀여운 머리핀을 찾아냈다.

간달프 같은 느낌으로! 긴 머리 포기 못해!


그때부터 뭉실이의 머리는 늘 핑크 리본핀을 달고 다녔다. 나중에는 레드도 있었지만, 암튼 뭉실이의 머리는 항상 리본 하나가 묶여있었던 것이다. 그 뒤로는 리본 없는 뭉실이의 머리를 상상조차 할 수 없었는데, 어느 날 머리를 너무 묶어서 머리밑이 아프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슬슬 생겼다.


아홉 살 생일!


그 미안함이 왜 처음에는 떠오르지 않았는지 몰라도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솟아나니 또 행동으로 옮기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나는 앞머리를 댕강 자르고 뭉실이의 헤어에 자유를 주었다.


"그래, 니도 리본에서 해방돼라. 개가 그냥 편안하게 살아야지 리본이 웬 말이고 맞제?"라고 하면서 머리를 잘랐는데, 나는 자르고 5분 만에 바로 후회했다. 짧은 머리의 뭉실이는 뭉실이가 아닌 것 같았다. 선머슴이 따로 없는 것 같고 뭉실이의 이미지와는 너무 맞지 않았다.


뭉실이의 리본핀 헤어가 시작된 시기


오랜 트레이닝(?) 끝에 이런 머리도 가능해짐.
도쿄디즈니랜드에서 뭉실이 주려고 산 사람핀, 그리고 한정판 크리스마스 니트! 나도 육견템 사느라 허리 휘었지만 행복했다.
8세~9세 그 사이 어딘가!


여섯 살! 가장 리즈시절. 언제나 리본과 함께. 이때 목에 두른 목도리는 내가 직접 짜준 거였다.
말년의 뭉실. 더 이상 리본핀을 달 수 없는 상황이라 서운해서 잠깐 꽂고 사진만 찍어보았다.
열세 살쯤? 귀여움 여전히 폭발
머리를 땋아도 참을 수 있는 몰티즈 나와보라고 해!


그 머리를 다시 기르는 동안 다짐했다. 늙어서 머리를 묶을 수 없는 건강상태일 때를 제외하고는 절대 짧은 머리는 안 되겠다고. 그래서 뭉실이는 거의 15년여 시간 동안 앞머리가 긴 강아지로 살았다. 미용을 해도 눈 위에 있는 앞머리만큼은 절대 자를 수  없었던 것이다.


그게 뭉실이라는 아이의 정체성이 된 것이지. 나중에 죽기 3년 전부터는 다리도 안 좋고 미용에 대한 스트레스가 클 것 같아서 내가 집에서 조금씩 가위로 잘라주면서 외모에 대한 집착(?)은 내려놓았지만, 그전까지 뭉실이의 트레이드 마크가 바로 이 리본을 묶은 앞머리였으니. 오랜 시간 동안 머리 묶여 사느라 고생이 많았다 싶다.


죽기 직전까지 뭉실이는 여전히 미용은 싫어했지만 머리를 만지는 건 허락해 주었다. 지금 보니 저런 거 다 나 좋자고 한 것 같아서 또 미안함이 앞선다.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사이라 늘 일방적이었으니까.


17년 6개월 동안 언니의 허접한 솜씨에 선택의 여지없이 헤어를 오롯이 맡겨준 성뭉실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작가의 이전글 5. 밥그릇은 따로따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