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동안 많이 아팠다.
뭉실이의 부재가 주는 충격과 슬픔이 생각보다 너무 컸다.
슬픈 마음이 내 일상 전체에 젖어들어서 밥 먹다가도 눈물이 나고, 뭉실이의 '뭉'자만 꺼내도 목이 메고 코끝이 찡해지는 경험을 했다. 점점 일도 하기 싫고 밥맛도 없다가 먹기만 하면 배가 아프고 아침에 잘 일어나던 내가 침대에서 뭉갤 만큼 뭉개다가 겨우 몸을 일으켜 영혼 없이 일터로 나가기를 거의 한 달.
점점 모든 게 서럽고, 슬프고 힘들었다.
결국 병원을 찾았고 이제 정신을 좀 차렸는데, 마음이 허약해지니 몸도 약해져서(그 약한 거 아니고.. 그러니까... 몸상태) 결국 코로나도 안 걸렸던 내가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다 변명인 것이다.
아이들의 추억을 기록하겠다 다짐해 놓고 글을 쓸 상태가 아니었다는 변명.
아직 몸이 정상은 아니지만, 그래도 오늘은 짧게나마 뭉실이의 이야기를 남겨야지.
위에 사진에도 그렇지만 강아지들은 반려인의 물건을 참 좋아한다. 빨래를 개면 빨래 위에 앉고, 벗어놓은 양말은 기가 막히게 찾아서 물고 논다.
한창 열심히 성당을 다닐 때 성서필사를 했던 적이 있었다. 4대 복음서 필서를 했는데 그럴 때면 꼭 저 멀리서 다다다다 달려와서 내 노트 위에 엉덩이들 들이밀고 앉는다.
나도 굳이 책상에서 안 적고 왜 저 필사를 방바닥에 엎드려했는지 모르겠다고 하지 않겠다.
처음에는 그저 엎드려하고 싶어서 했는데, 실이가 내가 엎드려 뭔가를 적으려고 할 때마다 어디선가 진짜 마치 내가 엎드리기만을 기다린 것처럼 달려와 내 앞에서 엉덩이 후진을 하면서 뒤집어지는 것이다.
나는 몇 줄 쓰지도 못하고 결국 실이에게 항복하고 만다. 여간 귀여운 짓을 하는 게 아니라서 도저히 이길 힘이 없다. 성서 필사가 무슨 소용이냐, 내 눈앞에 이렇게 예쁜 강아지가 나랑 놀자고 이렇게 애를 쓰는데.
시간이 지나면서부터는 오히려 내가 엎드려서 노트를 펼칠 때 실이가 올까 오지 않을까를 생각하다가 어느 날 쿨쿨 자고 있는 실이를 보면서 굳이 노트를 넘기는 소리를 세게 낸 적도 있었다. 실이의 탄탄하고 부드러운 살과 털의 느낌은 여전히 생생하다.
어느 날은 웬일로 이 녀석이 내 노트에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 좀 서운하려던 참이었다. 그래도 필사는 해야겠기에 일단은 다 쓰고 성서를 덮고 실이를 불렀다. 내 코 앞에서 자기를 만지라고 드러눕는 실이의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나도 필사를 다한 기념으로 나름의 의식을 치러야겠기에 굳이 자는 애를 깨워서 불렀다.
실이는 그날 엄청 피곤했는지 다다다다 달려오지도 않고 잠에 취한 얼굴로 몇 발짝 걷다가 꼬리를 살랑, 몇 발짝 걷다가 꼬리를 살짝 흔들며 겨우 엎드린 내 앞에 와서 드러누웠다. 그런데, 그 누운 위치가 정말이지 너무 기가 막히게 딱, 성서 위였던 것이지.
자기가 누울 자리를 어떻게 저렇게 정확한 각도에 맞춰 눕는 건지, 성서를 베고 있는 실이가 너무너무 편안해 보였다.
언니가 부르니 오긴 와야겠고 잠은 오고..
이 불쌍한 어린양은 오자마자 하느님의 말씀이 가득한 성서를 고이 베고 바로 꿈나라로 가버렸다.
한참을 들여다보고 쓰다듬어주었는데, 기분이 좋은지 피곤한지 그렇게 실이는 기분 좋게 꿈나라로 갔다.
그 뒤에도 한 동안 성서필사를 했는데, 그때마다 꼭 실이와 이렇게 필사의식을 치렀던 우리의 추억을 오늘 작은 기록으로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