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경찰학교 체포술 교관 인력풀에 지원했다. 다행히 합격했는데, 합격자 명단에 든 것을 보며 몇몇이 전화를 걸어와 농담 반, 걱정 반으로 나에게 물었다.
"너 그거 해서 또 뭐 하려고 그러냐?"
생각해 보니 비슷한 질문을 몇 번 받았던 기억이 있다. 돌연 유학 휴직을 내고 어학연수를 떠났을 때도, 해외 파견 업무에 지원해 아라비아 사막으로 떠났을 때도 그랬다. 나조차 스스로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져본다. 나는 도대체 뭐를 어쩌고 싶어 자꾸 일을 벌이는 걸까??
캐나다 유학 시절 영어 공부를 위해 반복해서 들었던 영상 중 돌아가신 잡스 형님이 스탠포드 대학교 졸업식에서 했던 유명한 연설이 있다.
You can't connet the dot looking foward. You can only connet them looking backwards.
우리는 이 사건들이 미래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다. 다만 미래에 과거를 되돌아본다면 이 점들은 반드시 연결될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또래에 비해 유난히 덩치가 컸는데, 그에 비해 소심한 성격 때문에 혹여나 괴롭힘을 당하지는 않을까라는 아버지의 지나친? 우려로 처음 운동을 시작했다. 중학생 때는 유도를 했는데 실력이 변변치 않았고, 어쩌다 씨름 선수로 전향하게 되어 대학교 2학년까지 선수 생활을 하다 여전히 하찮은 실력과 때 마침 찾아온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포기했다. 무릎 수술을 받고 입원한 병원 옥상에서 매일 저녁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고민했다. 동트기 전 어두운 새벽부터 하얀 입김을 토해내며 감내했던 지옥 같은 훈련과 구타와 모멸감을 참아가며 먹고, 자고, 운동하기를 무한히 반복했던 지난 8년의 세월이 과연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앞으로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그 당시의 나는 헤아릴 수 없는 먼 미래가 그저 두려워서 온 몸을 떨며 매일 울었다.
이후 나는 경찰이 되었는데, 그래도 학교 다닐 때 운동선수를 했다는 점과 큰 덩치 덕분에 꽤 많은 혜택을 받았다. 많은 선배님들이 좋은 길로 이끌어 주셨고, 특히 청 대표로 매년 경찰관 무도 대회에 출전하여 많은 지원을 받아 운 좋게 우승까지 이뤄냈다. 진급 시험도 마치 운동선수가 올림픽 게임을 준비하듯 투혼을 불사 질러 도전했는데, 아마 같은 해에 무도 대회 우승과 진급 시험 수석 합격을 동시에 이뤄 낸 경찰은 흔치 않았을 것이다.
그즈음 나는 기고만장했고 건방이 하늘을 찔렀다. 양복을 입고 멋진 건물로 출근하는 '폼 나는' 경찰이 되고 싶었기에 내 동기 중 상당히 빠르게, 20대 중에서는 유일하게 지방 경찰청에서 근무하는 경찰이 되었다.
물론 현실과 이상은 괴리가 매우 심했다. 나는 한글 맞춤법도, 컴퓨터 프로그램도 잘 못 다루는 얼치기 초짜였지만 지시를 내려야 할 경찰서 형사들은 닳고 닳은 베테랑들이었다. 총경인 과장님 보고를 들어갈 때면 입술이 바짝 타고 머리가 돌아가지 않아 말끝을 흐리며 우물쭈물했다. 유흥가에 위치한 싸구려 원룸에서 매일 혼자 눈을 감고 눈을 떴는데, 아침이 찾아오면 새벽 훈련을 기다리는 운동선수 시절처럼 침대에서 일어나는 일이 괴로웠다. 서로를 위안하며 술잔을 기울일 동료가 없었다. 20대 중에서는 유일하게 지방 경찰청에서 근무하는 경찰이었다.
나는 그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도망치듯 어학연수 명목으로 외국으로 떠났다. 처음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너무나 놀라웠다. 아침이 밝아올 때마다 가슴이 벅차올랐고 하루가 끝나는 것이 너무나 아쉬워 지는 태양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각각이 개별적이고 충만했던 소중한 날들이었다. 한국으로 복귀해서 이제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고 있던 중 경찰 해외 파견 공고를 봤다. 외국물도 먹어봤겠다, 혹시나 하고 지원했는데 붙었다. 원래 2년만 하고 돌아오려고 했는데 기간 중 눈이 멀어 투자한 가상화폐가 폭락하여 돈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1년을 연장했다. 게다가 코로나가 터지면서 비행기가 뜨지 않아 반년 더 머물러야 했기에, 서른 살에 여권을 만들어 처음 해외를 나갔다가 서른다섯 노총각 아저씨가 되어서야 겨우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과연 이 모든 성공과 실패, 사건과 경험(점)들이 내 인생에서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해변가에 널려있는 조개껍질은 흩어져 있을때는 가치가 없지만 주어 모아 하나로 묶으면 근사한 목걸이가 된다. 나는 또 한 번 선택의 순간에 서서 이 점들을 하나의 선으로 이어 보려 한다. 수만 번 넘어지고 꺾고 조르며 몸으로 익혔던 운동선수의 경험과 현장 경찰로서 느꼈던 애환과 문제의식, 외국 경찰 수천 명을 가르치며 얻었던 노하우와 철학을 끌어와 경찰 교관으로서, 선배로서, 열정적으로 후배들을 가르치고 잘못된 교육을 개선하여 경찰을 경찰답게 만드는 일이 내가 이어붙이고 싶은 선이다.
운동을 그만두고 일반 회사에 들어갔더라면, 진급을 하고 계속 편한 부서만 찾아다녔더라면, 어학연수, 해외 파견을 다녀와서 그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갔더라면, 그 점들은 조개 목걸이가 되지 못하고 파도에 부딪혀 끝내 깨져버릴 조개 껍데기처럼 한 번의 경험과 사건으로 소멸되버리고 다시는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 점들이 발생할 당시에는 나는 그것이 미래의 나에게 어떻게 닿을지 모른다. "그거해서 뭐하려고 하는건데?"라고 물어봤자 내가 대답할 수 없는 이유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신한다. 지금의 내가 그렇듯 미래의 나는 반드시 이 점들을 이어 붙이리라는 사실이다.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반드시 경험 많고 높은 확률로 현명하다. 그러므로 내 삶의 의미 따위의 골치 아픈 질문은 미래에게 맡겨두고 여건이 되는 한 가슴 설레는 일을 찾는 것을 멈추지 말자.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7aA17H-3Vi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