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간의 바뀐 인기
2026년 4월 1일 수요일
아침부터 지하철에서 발이 편하다는 광고에
새로산 신발을 신고 출근했다.
발이 편할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외로 새끼발가락이 아팠다.
왜일까? 처음 산 신발들은 맞기까지 매번 발가락이 아프다.
하물며 계속 아픈 신발도 있다.
새끼발가락은 아팠지만 발바닥은 아프지 않음에 감사했다.
그리고 오늘 출근길에 이런저런 생각도 들고
내가 나가야할 방향을 생각했다.
답은 딱 하나였다.
묵묵히 걸어가보기.
걷다보면 어느날 돌에 걸려넘어질 수 도 있을거다.
하지만, 그런날도 저런날도 온전히 내가 걸은 길이였음을
그것을 잊지 않고 화내지 않기로 했다.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이것저것 아이디어를 생각하다가
우연히 예전에 20살부터 22살까지
카페베네와 세븐일레븐에서 같이 일을 했던
친오빠와 아는 오빠에게 연락했다.
오랜만에 연락을 했음에도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제주도에서 서울로 올라오셨는데
아직도 세븐에서 일하시고 계시고
나와 같은 종로에서 일하고 계셨다.
하루 종일 이야기를 나누다가
밤 11시 20분 내 아이디어스 상점에 파는
메모지와 캐릭터 이야기를 해주셨다.
누군가 딱 한번 알아봐주면 참 좋을텐데
이 말에 나는 자랑스럽게 김재중오빠가 착용한걸 보여줬다.
나름 나의 자부심이였으니까 말이다.
아는 오빠분이 영웅재중?
아쉽다면서 세이마이네임이나 엔하이픈, 엔씨티였다면
엄청 났을거라고 말을 하면서 아쉽다고 하셨다.
마음이 안좋았다.
안좋다.
나한테는 여전히 나의 오빠인데
내가 살던 10대에는
내 오빠가 세상에서 제일 잘난 가수였는데
시조새 취급하는거 같았다.
예전에도 비슷한 말을 들은적이 있다.
4글자 이름만 말하면 다들 비웃었다.
아직도 그 나이에 그 사람을 좋아하냐고
김재중이라는 이름 3글자에도
여전히 변함없는 수식어와 라이브를 들어보지 못한 편견.
그게 난 늘 속상했다.
내가 들었을때 오빠의 목소리는 늘 한결같지는 않았지만
10대에는 꿈을 안고 살아가는 소년의 목소리였고
20대에는 열정을 안고 살아가는 청년의 목소리였고
30대에는 살아온 흔적이 느껴지는 멋진 어른의 목소리였다.
사람은 달라진다.
환경이 그렇게 만들기도 하고
세상이 그렇게 만들어가기도 한다.
하지만 변함없는건 하나이다.
그 사람의 마음은 달라지지 않는다.
항상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려온 열정.
그리고 그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아우라가 있다.
카톡을 하는 내내 갑자기 잠이 오지 않아서
마음의 소리를 쓰게 되었다.
언제쯤 사람들은 오빠를 편견없이 바라봐줄까?
왜 아직도 주눅들어살아야할까?
그건 말이다.
내가 데뷔때부터 팬으로써 느끼는 감정인데
팬들의 행동의 문제와 너무 모든걸 갖춘사람에게
느끼는 질투심과 시기가 아닐까?
나는 모든걸 다 갖춘사람은 아니지만
친구들과 주변지인들이 내가 조금만 좋아져도
오빠와 같은 평가를 받았다.
얼굴이 잘나서
얼굴이 예뻐서
난 얼굴이 예쁘지 않다.
오빠가 말한것처럼 난 그냥 개성있게 생겼다.
나름 못생기지도 예쁘지도 않고 평범하지만 개성은 있다.
오빠가 왜 이렇게 자신을 말하는지 이제 조금 알것같다.
그동안 자신을 평가해온건 음악이 아니라 얼굴이여서
자신도 모르게 그게 몸에 남아있는거다.
팬들도 오빠의 얼굴을 본다.
가수인데 단 한번도 음악을 평가하지 않는다.
심지어, 나시를 입어달라고 하고
이것저것 자기들이 원하는대로
소유하고 평가하고 잣대한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겠지만
적어도 난 오빠의 목소리가 좋다.
10대때 오빠는 미소년같은 목소리에
그게 마치 소녀와 소년이 마주앉아 이야기 하는느낌이라
너무 귀에 맴맴돌아 좋았다.
20대때 오빠는 질풍노도의 시기처럼
사춘기도 아닌데 사춘기 아이같은 노래만 줄줄이 했다.
락병에 걸려서 자아도취한 것도 난 그 모습보다
오빠가 적은 가사와 노래가 좋았다.
그 시기에 자신의 감정이 들어있었기에
들을때마다 그 가사에 집중을 하게 된거 같다.
30대때 오빠는 이제 노련한 가수가 된듯했다.
얼굴은 여전히 동안 페이스인데 예쁜 얼굴에 파워풀한 목소리가 예전의 그 목소리는 어디가고 이제 진짜 락스타가 되어있었다.
40대가 된 오빠를 다시 무대에서 만난날.
라이브는 10년만에 듣는거였다.
단 한번도 점프콘서트에서 노래를 듣고 울어본적이 없다.
공연을 두번갔는데 두번 다 엉엉 울었다.
왜 일까? 마음이 울렁거렸다.
오빠는 팬들이 자기를 준수오빠처럼
아티스트 대우를 안한다고했다.
근데 난 늘 한결같았다.
노래를 부르는 멋진 나의 오빠였다.
이제는 오빠도 마음을 조금 내려놓고
자신의 멋진 모습을 바라보고 때로는 나 잘났다고
인정도 하면서 본인의 모습을 마주했으면 좋겠다.
사실 그 폰케이스는 내가 잘되고 싶어서
선물한것도 없지 않아 있다.
자랑하고 싶었다.
나도 누군가 이렇게 내꺼를 껴준다고 인정받고 싶었다.
오빠가 열심히 들어주고 소원도 들어줘서 너무 좋았다.
그 순간은 내가 멋진 디자이너가 된거 같았다.
남들은 오빠가 껴줬으면 잘되야 하는거 아니야?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2026년 거리에는 BTS의 노래가 울려퍼지고
세상은 바뀌여있었다.
BTS가 광화문에 공연을 할때 종로에서 퇴근하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했다.
예전에는 우리 오빠도 정말 유명했는데
시청에서 미로틱 쇼케이스 할때 거기에 가서
새벽같이 줄서서 거의 앞줄에서 보고
덕친들이랑 놀았던 기억이 있는데
이런 저런 생각에 남산에 올라서 마음이 먹먹했다.
오늘도 마찬가지 였다.
난 엔하이픈, 엔씨티가 누군지 모른다.
이름을 말해줘서 유명한가 보다 생각한다.
노래도 모른다.
난 여전히 오빠가 나의 영원한 오빠이고
영원한 넘버원이다.
그게 전부다.
그게 내 세상이다.
남이 욕을 해도 18살 그때도 나는 같았다.
빅뱅을 좋아하라며 손가락질 하던 친구들에게도
난 그저 묵묵히 내 오빠가 좋았고 또 좋았다.
흑역사? 창피?
시간이 흐르고 창피할 수 있겠지?
근데 이젠 숨기지도 숨지도 않는다.
이게 나의 사랑 방식이다.
어느날 또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도
난 또 사랑에 빠질것이다.
PS. 오빠가 이 글을 읽는다면 반드시 기억해주었으면 해.
기죽지마. 오빠가 빅뱅이 아니여도 대중의 인기를 얻는 지디가 아니여도 늘 한결같이 나한테는 넘버원이야.
세상이 변했지만 기억과 추억, 역사는 변하지 않아.
조선왕조가 역사에 남아 있는 듯이
오빠도 어느날 역사책에 아이돌의 역사를 시작한
2세대 아이돌로 멋지게 장식될 날이 올거야.
지금 가는 길이 그때와 다르고 남들이 오빠의 이름을 몰라도
걱정마, 나는 또 기억하고 또 기억하고 있으니까
그때 잠실주경기장 담을 넘었던
소녀가 멋진 작가가 되지 못해도
내가 기억하고 또 추억하고 있으니까,
그 길은 사라지지않을거야.
잠시 걸어온 길이 달랐어도
난 또 그 시간이 온다고 해도
오빠를 선택했을거야.
남들이 오빠를 좋아한다고 왕따를 시켰어도
욕을 먹어도 난 또 그런 선택을 했을거야.
내 마음의 1분의 1도 모르겠지만
일본 콘서트가서 마음이 안좋았어.
아줌마, 할머니들이 너무 많은거야.
그게 나한테는 쇼크였지만 그래도 좋았어.
한번은 볼 수 있었어서 내가 가고 싶었던 일본콘서트.
돔투어하는 오빠 공연, 부도칸공연
내가 10대라서 가지 못했던 공연들.
큰 무대의 공연은 보지 못했지만
소규모는 볼 수 있었어서 그게 좋았어.
아는 오빠가 그러더라?
아직 오빠가 일본에서 영향력이 있다고 말이야.
그것도 마음이 안좋았어.
아직이 아니라 계속 있는데
왜 아직이라고 말하지?
마음이 너무 안좋아서 잠이 안올거 같다.
눈물이 하염없이 나오는 밤인데
누가 내 마음을 알아줄까?
오빠가 이 글을 읽게 된다면
마음아파하지않기를 바라며
그리고 힘내서 더 좋은 음악 만들기를
나 같은 작가의 작은 굿즈도 착용해줘서 고맙다고
용기내어서 진심으로 말해.
'너무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그리고 많이 사랑합니다’
어느날, 우연히 마주치는 날이 오기를
그런 순간들이 와서 마주보고
이야기해줄 수 있는 날이 오길
오늘도 고생했어.
굿나잇.
- 작고 작은 상점의 작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