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토론을 하다보면 가끔 두껍고 내용도 심오한 책이 선정되곤 한다. 특히 수학이나 과학, 물리학 분야가 이런 경향이 있는 것같다. 수능 비문학에서 지문으로 쓰일법한 그런 글이 수두룩 빽빽 실려있는 책 말이다. 이번에 진행한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가 그랬다.
이 책은 '구성주의적 감정이론'을 소개한다. 핵심적인 아이디어는 너무 마음에 들고 탐구할 여지가 많다는 것에 십분 동의하지만 책이 어려워서 진도가 잘 안 나간다. 이 책의 1장은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감정이라는 것은 과학적으로 증빙되지 않는다'를 아주 신명나게 설명하는데, 이건 마치 전공교수님이 자기분야 이야기 하니까 신나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연구내용을 읊어내는 느낌으로다가 내용이 채워져 있다. 독자 입장에서는 학점 때문에 꼼짝않고 자리에 않아 있어야 하는 학생의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그런 파트이다. (밀리의 서재로 읽는다면 읽기보다는 듣기로 텍스트를 받아들이는 게 나을 것같은 파트다.......)
그래도 2장부터는 내용이 훨씬 나아지고, 필자의 주장이 비교적 간결하게 전달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나에게 와닿았던 한 단어가 '다양성'이다. 나는 어렴풋이 이 세상이 다양하다는 감각을 지니고 살아가지만, 내 마음 깊숙히 그러하다는 수긍을 하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살아왔는가 되돌아보면 꼭 그렇지는 못했다. 이런 독서토론을 할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다양성의 편에 서서 한 마디를 외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에 '다양성'을 입혀서 보자고 하니까 좀 달리 느껴지는 것들이 하나 둘 씩 있다.
다양성 하니까 말인데, 형님께서 물려주신 유아도서 중에 <아기 물고기 하양이>라는 시리즈가 있다. 시리즈 중에는 하양이가 엄마를 찾아다니는데, 마주하는 동물의 색깔을 보고 이게 엄마다 아니다를 판단하는 모습이 반복적으로 나온다. 여기서 나온 색상 중에 의아했던 게 파랑색이다. 내가 파랑색이라고 인지하고 있던 색감과 달리 이 책에서는 거진 보라색에 가깝게 색칠된 색깔이 파랑으로 나온다. 읽어줄 때마다 희한해 했는데, 어쩌면 유럽사람들이 생각하는 파랑은 동양사람들이 생각하는 파랑의 관념과 다른 것이였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보니 이 역시도 이 세계에 이미 존재하는 다양성의 일면이었다. 어쩌면 나는 지금껏 하려던 것만 하고 받아들이고 싶은 것만 받아들여서 충분히 이 세계의 다양성에 접해있지 못했던 것인가?
우리가 다양성을 자연히 받아들이지 못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다양성 자체를 경험하지 못할 수도 있고, 다양성을 마주하였을 때 이를 회피하고 여러 가지 이유를 갖다붙여 수용을 거부할 수도 있다. 전자는 도전을 하지 않는 자일 확률이 높고, 후자는 귀를 막은 채 아집에 빠져있는 자일 가능성이 높다. 누군가의 너그러움으로 그러한 자들 역시 사회구성원으로 앉혀는 주고 있지만, 환대를 기대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 정도는 알아야 할 것같다.
도전을 안하든 귀를 막고 있든 그마저도 본인 인생에 대한 본인의 선택 중 하나일 것이다. 세상의 다양함을 수용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얻게 되는 기회손실을 기꺼히 수용하고 살아간다면 그나마 낫다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그 누군가는 귀막은 자에 대한 비판을 할 수 있는 것이고, 그런 본인의 모습을 합리화시킨다든가 상대방이 감정적이라는 방어를 하여 '어쨌든 내가 옳아'를 시전한다면... 적어도 그런 자에게 소통과 이해를 언급할 자격이 충분하지는 못하다는 것을 스스로 알았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세상에 다양성이 이미 존재하는 이 가운데, 다양성 존중이라는 명분 하에 아량을 베풀지 말아야 할 것들은 어떤 요건이 있는가도 의문이다. 아무리 다양성을 존중한다고 해도 '남자는 다 나빠, 여자만 우대해야 해' 식의 페미니즘이나, '헌법은 모르겠고 윤대통령 님은 내가 지켜'하면서 혼란을 가중케 하는 무리들까지 다양성 존중의 이름으로 포용하는 것이 적합한가? 적합성은 어떤 기준을 따르는 게 적합한가? 무엇부터 배제함이 적당한가?
개인적으로는 악한 것을 배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무엇이 악한가에 대하여 명확한 답을 내리기는 참 어려운데, 그런 생각은 들더라 :
"설득력이 부족한 채 다수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은 악(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