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

by 힙스터보살


인간은 저마다 고유하다. 고유하다는 것이 꼭 존중받아야 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많은 인간들이 본인만의 고유한 영역을 인정받으면, 보기 드물만큼 찬 충족감을 느끼곤 한다. (나도 그랬다.) 나는 여전히 고유성은 존중받아 마땅한 것인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이러한 존중으로 인하여 널리 인간이 이롭다 느낀다면, 인간의 고유성은 존중하기에 충분히 좋다고 잠정적으로 결론지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고유한 것에만 집중하다보면 인간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또한 영향받는 존재라는 것을 다소 간과하게 된다. 개성을 존중 해 주다가 사회의 미풍양속을 해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하는 것처럼. 다행히 우리는 옛 성인들의 중용(中庸)을 학습하였기에 적정선을 저울질하다 판단을 내린다. (장고 끝에 악수를 두기도 하지만 ㅎㅎ)


문제는 인간의 고유성과 연결성은 이 세상에 동시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는 마치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의 가능성을 믿고 지지해줘야 하는 한편으로 아이가 이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는 각종 훈육을 해야 하는 것과 같다. 공존하는데 모순되고 때때로 부딪힌다. 결코 순탄치가 않다. 양육이 힘든 데에는, 삶을 살아내는 게 힘든 데에는 모순이 존재한다는 전제조건이 깔려있다고 봐도 좋을 것같다.


image.png 나를 띄워주기도 하고 나를 삼키기도 하는 바다... 인생을 바다에 비유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인생을 헤쳐나가보자고 요즘에 시작한 공부가 있다. 공부를 하다보니 좀 지쳐서 쉬는 겸 쇼츠를 보았다. 내가 자기계발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아봐준 유튜브는 오늘도 '성공하려면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류의 영상을 추천 해 준다. 예전에는 이런 류의 영상을 약간 병적으로, 듣자마자 내 머릿속에 장착하듯이 흡수했던 것같다. 그런데 나도 이제 나이가 든 건지 태도가 좀 바꼈다. 화자(話子)가 단언적으로 던지는 메시지를 듣다보면 자연스럽게 내 스스로가 갸웃거리고 있었다.


그의 메시지에 갸웃했다는 게, 그의 말이 틀려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가 확신에 차서 '성공하려면 자신의 고유성을 인정하고 자신이 바라는 것이 무어인지를 따라가야 합니다'라고 말할 때, 그 말은 응당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그 말만이 맞지는 않지 않은가...하는 반문이 들었다. 자신을 굽히고 상대방에 맞추어야 성공에 더 가까워지는 때도 있게 마련이니까.


하나의 원칙만을, 한쪽의 주장만을 강하게 밀어부치는 건 그래서 약간 물러나서 보게 된다. 물론 어떤 상황에서는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더 적당하다고 생각이 들기는 한다. (오캄의 면도날같은...?) 하지만 손쉽게 극단적이고 확언에 찬 주장을 하는 이들을 보면, 그들의 깊은 사고를 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명확함과 단순함은 꽤나 좋은 가치이지만, 그것이 꼭 옳음을 보장하지는 않는 것같다.


우리의 현실은 정답이 없는 상황에서 정답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그 답이 '성공적'이라는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몇 가지 요건이 필요해 보이기도 한다. 내 스스로 보기에 성공적이기 위하여 스스로 어떤 모종의 효능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하고. 또한 사회적으로 가치를 인정받는 과정도 필요 해 보인다. 이 두 가지가 어느 정도 겹치는 상태를 성공이라 친다면, 성공은 결국 개인의 내면과 외부 세계의 이질성을 다투는 문제로 바라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성공을 향한 전략은 다양할 수 있다. 누군가는 노력을, 누군가는 인맥을, 누군가는 정보를 전략의 근간으로 삼는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어떤 것을 핵심전략으로 삼든 그게 '성공적이다'라는 평가를 받으려면 이질적인 요소들을 통합하는 어떤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사는 사람은 싸게 하고 싶고 팔고 싶은 사람은 비싸게 받고 싶은 사이에서 '시장(market)'이 만들어진다. 정보를 공개하지 않자니 비즈니스를 할 수 없고 다 공개하자니 경쟁자가 카피를 하기에 '전략(strategy)'을 창안한다.


심지어 지구의 바다조차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지점이 있다. 놀랍게도 해양에서 두 난류가 만나는 지점은 황금어장이 된다. 이것이 가능한 건 한류와 난류를 떠나 그 둘을 담고 이는 '바다'라는 더 큰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이 비유는 인간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겠다. 우리의 삶은 어긋나보이는 것을 배척하는 데에서 가치가 생기는 게 아니라, 이질적인 것들을 아우르는 구조를 창안하는 과정에서 가치를 만드는 것이겠구나. 때문에 그 자치를 형성 해나가는 과정이 쉽지 않고 또한 그렇기에 의미있구나.


image.png 바다에 표류하는 것인지 파도에 흐름을 내맡긴 것인지 물살을 가르는 것인지~


나는 종교가 있는 사람이지만 마땅히 신을 믿지는 않는다. 신이라는 게 존재하는지도 모르겠고, 존재한다 한들 믿을만다는 확신도 안 선다. 하지만 적어도 신이 '존재한다'고 가정한다면, 내가 상상하는 신은 우주와 모습을 닮았을 것같다. 한류와 난류를, 개인과 사회를, 자율과 규제를, 창조와 소멸을을 아우르는 이 세계를 가리켜 이름짓다가 '신'이라는 단어를 끌어다 쓴 게 아닐까. 이 세계가 보여주는 놀라운 가치창조의 순간을 목격하다 보면 우주의 경이로움이 신의 찬탄으로 이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것같다.


이 지점에서 '인간은 작은 우주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이 말에는 인간이 제 값어치를 다하기 위해서는 내면의 갈등을 사회의 이질성을 각종 가치의 모순을 아우르고 살아야 한다는 점을 내포하는 것같다. 모순을 아우른다니, 딱 봐도 쉽지 않아 보인다. 현생을 살아가는 나로서는 그저 문제를 극복할 방법을 찾고, 상상하고, 설계하고 구현할 뿐이다. 그렇게 온몸 비틀기를 해도 모순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얻어맞는 게 다반사다. 이런 내 상태를 표류라고 해야 할지 항해라고 해야 할지.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는 심정으로 흐름에 몸을 맡긴다. 우주를 유영하는 기분이 이런 걸까 싶다.




※ 연재는 매주 수요일에 합니다. 또 공부하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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