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하다 공을 줍다

by 힙스터보살


세상을 바라보는 여러 관점이 존재한다. '돌고 돌아 답은 이거야'라고 얘기하는 자들이 있고, '답이라는 건 애당초 정해져 있지 않다'고 말하는 자들이 있다. 둘 다 상황에 따라 맞는 말이고, 둘 다 반례를 들 수 있기에 옳다고 말하기도 적절하지 않다. 이런 패턴은 다른 경우에서도 드러난다. 예를 들자면 청결이 그렇다. 청결을 중요시여기는 것이 위생의 증진 파악의 용이함을 가져오는 데 반해 정리에 드는 에너지와 외의 기회손실 우연히 뭔가를 접할 기회 등을 망가뜨린다. 깨끗이 치워둔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깨끗이 치워둔다는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니다.


옵션이 다양하다는 게 꼭 나쁜 건 아닌데, 모든 순간에 옵션이 다양하다는 것은 인생을 피로하게 만들기 좋다. 우리의 뇌는 한 번에 하나 씩 처리하는 원칙을 가지고 있고, 그 뇌를 가동하는데 드는 에너지도 결코 적은 편이 아니다. 때문에 루틴에 기반한 삶, 확정적인 삶이 가져다주는 안정감은 결코 무시하지 못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사상이라든과 이념도 동일하게 적용받는다.


하지만 우주는 그렇지가 못한다. 우주는 모순적인 것들이 요동치는 공간이다. 우주가 가지고 있는 모순성을 인간의 단순한 두뇌로 이해하자니 과열이 되는 건 충분히 이해가 된다. 나 역시 그러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주적인 관점에서 우주의 일부로서 살아가는 우리는, 상황이 항상 빚어내는 모순을 감지하기 위해서라도 회의적인 태도로 살아갈 필요가 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버틀런드 러셀의 <생각을 잃어버린 사회>를 읽고 참으로 안타까웠던 것은 번역이 참 별로라는 점이었다. 그 좋은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 어쩜 표현은 이렇게 해놨을까 싶다. 역자를 바꾸어 다시 한 번 개정판이 나온다면 기꺼이 소장하고 싶은 책 중에 하나가 저 책이다.


나는 저 책에서 많은 흥미로운 구절을 발견했지만, 읽은지 시간이 좀 흐른 뒤에도 내 머릿속에 남는 하나의 단어가 '회의주의'이다. 학문을 탐미하다 발견한 어떤 깨달음 내지는 통찰은, 그 순간의 쾌감과 더불어 어떤 믿음을 만들어내기 쉽다. 인간은 믿음으로 하여 실체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지닌 존재인지라 믿음은 손쉽게 자기확신으로 번져나갈 수 있다. 하지만 믿음이란 이 세상이 가진 여러 단면 중 작은 하나를 발견한 것에 지나지 않기에, 본인이 가진 그 하나의 통찰로 이 세계를 꿰뚫는 것이 오만한 일임을 알 필요도 있다.


그래서인지도 모르겠다. 통찰을 추구했던 이들에게서 어떤 미묘한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


- 유클리드 학파 / 점이란 부분이 없는 것이다. 선이란 길이가 없는 것이다.

- 싯다르타 / Anityā vata saṃskārā (형성된 것은 참으로 영원하지 않다)

- 헤라클레이토스 / panta rhei (만물유전, 모든 것은 변한다)

- 데카르트 / 의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의심하라


명제가 하나같이 부정성을 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이 눈에 띈다. 부정의 부정은 긍정이다. '영원한 것이 없다'는 것을 부정하면 영원한 것이 있다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된다. 하지만 영원한 것은 없기 때문에 '영원한 것이 있다'는 말도 역시 부정당한다. 첫 문장부터 부정당하고, 첫 문장과 여집합에 해당하는 관계의 문장도 부정당하면 결국 전체는 공집합(Null Set, 소속된 원소가 없는 집합)이지 않은가. 결국 공(空)함으로 돌아오게 된다. 어쩌면 공하다는 것은 꽤나 무결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아... 붓다 그는....!!)



이쯤되면 궁금해진다. 붓다께서는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셨을까. 공함을 깨치지 못하고 윤회를 반복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보셨을까? 우주의 공함을 기어이 알아내는 인간의 능력을 보았을까. 둘 다 일 수도 있겠고. 어찌되었던 붓다께서는 이러한 인간에게 '자비를 베풀라' 하셨다.


나는 그가 '자비를 베풀라' 말씀하심이, 인간의 그 모순됨마저 품어내라 한 것같다. 우주가 모순적이듯 그 일부인 인간도 모순적인 면이 있다. 우리가 인간을 품어낸다면, 다시 말 해 우주를 품어내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관계라는 것은, 세상사라는 것은 쉽지가 않다. 인간 주제에 우주를 품는다는 것이 얼마나 가소로운 일인가. 하지만 기꺼히 품어내고 족적을 남기는 것이 인간이다. 이것이 인간이 위대해지는 순간이고 또한 삶이 가치로워지는 순간이 아닐까.




* 연재는 매주 수요일에 합니다. 요즘 삶이 고되서 답방 가지 못함을 자비롭게 용서 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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