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 종이 접기

by 힙스터보살



디딤돌 동아리 대표를 수행한지도 거진 8개월이 되어간다. 굉장히 오래 한 거 같은데 아직 일 년도 안됐다는 것에 놀랐다. 처음 대표직 제안을 받았을 때에는 '뭐 까짓거 해 보죠'라고 호방하게 수락을 했다. 이 동아리는 단순한 취미모임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영리활동도 한다. 그러다보니 개인의 성장과 조직의 성장이 선순환을 이루는 구조를 갖춰야 롱런한다. 재능이 뛰어난 선생님들이 계시고, 내 나름의 비전도 있었다. 경영학도 시절에 접했던 이상적인 조직을 구현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가슴에 불을 지폈다. 좋아, 가 보즈아~!!!


그렇게 열정을 들이부어 활동을 했다. 운도 꽤 따라주어서 가시적인 성과도 나왔다. 덕분에 능력있는 리더라는 소리도 좀 들었다. 하지만 좋은 것도 삼세번이고, 올라가는 것이 있으면 떨어지는 것도 있는 법. 나는 어느 순간 어떻게든 만족스러운 결과를 만들기 위해 일을 움켜쥐고 있었다. 나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행동하게 만들려 했다. 그러면서도 리더의 권위도 잃고싶지 않아 사람들에게 쓴소리를 하는 데 주저함이 생겼다. 그제서야 알았다. 나는 그렇게도 욕심이 많고, 치우치고, 욕먹는 건 두려워하는 범부였음을.



그렇게 대표직이 부담으로 다가오던 때에, 속담 하나가 눈에 띄었다. 그 속담은 바로 '욕 먹으면 장수한다.' 대개 사람들은 남들에게 욕을 좀 먹더라도 제 잇속 챙기는 사람을 꼬집는데 이 속담을 인용한다. 하지만 나는 이 속담이 조금 다른 결로 다가온다. 우리네 세상은 연속적이고 변한다. 때문에 정답이라는 것은 쉬이 말할 수 없다. 그러니 어떤 특정한 시각으로만 상황을 해석하면 - 그런 관점 덕분에 세상이 선명하게 보이는 효과가 있고 그덕에 확실성을 보장하는 효과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 잘못된 선택을 할 가능성이 같이 높아진다. 그래서 부처님도 그렇고 여러 성인들이 '치우치지 아니함(a.k.a. 중도)'를 말씀하셨다.


문제는 중도를 추구하면 높은 확률로 욕을 먹기 딱 좋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호함은 심적 지지대를 희석시킨다. 그래서 뭘 의지하고 살아야 할지가 어렵게 만든다. 모호함에 숨어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하는 자들도 있어서 중도의 의미라 퇴색되기도 한다. 때문에 그러한 모호함을 견디지 못하는 무리들은 쉽게 중도주의자들을 욕한다. 중도라는 방식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좋은 길이나, 중도적인 행보는 남들에게 욕 먹기 가장 좋다. 참으로 쉽지 않은 길이다. 그러니 욕 먹으면 장수하지 싶다.


법륜스님을 보면 그렇다. 요즘 스님 쇼츠나 영상에 댓글을 보다보면 스님이 정치승이라고 비난하는 글이 올라오곤 한다. 가만 보면, 그들이 스님의 말씀을 '정치적'이라고 해석한 기전(?)이 보인다. 스님의 법문을 듣다보면 중도에 입각한 말씀을 하시곤 하는데,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북한은 같은 민족으로서 인도적인 차원에서 지원을 해줘야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데이기도 합니다.' 좌파(?)입장에서 보면 민족통합을 방해하는 거고, 우파(?)입장에서 보면 공산당에 협조하는 꼴로 보이리라.


슈카도 비슷한 방식으로 욕을 잘 먹는다. 내 나름 그의 채널을 지켜보던 자로서 그가 정말 열심히 '중도'를 지키려 하는 것을 잘 안다. (그의 방송을 애정있게 봐 온 사람들이라면 이 점을 매우 잘 알 것이다.) 하지만 그는 참 여러 사건으로 양쪽 진영으로부터 뚜드려 맞은 일이 잦다. 가장 어처구니가 없던 사건이 소금빵 사건이다. 한 덩어리에 3천원 많게는 5천원까지도 파는 소금빵을 990원에 팔았다가 양쪽으로 전례없는 맹폭을 받았다. 한 쪽에서는 '대형 유튜버가 동네빵집을 죽인다~' 다른 한 쪽에서는 '사업에서 필요로 한 여러 요소를 배제한 보여주기 식 선동이다~' 아 정말 어쩌라고. 세상에 대한 기대를 접든지 해야하나.... 아 그렇다고 포기하기도 뭣하고....



이 시점에서 다시금 곱씹어보니 대표직을 부담스럽게 느낀 이유가 선명해진다. 사업의 환경에는 여러 변수가 있고 이 변수들이 항상 최적해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이것을 선택하면 저것이 문제이고, 각 변수들 간에 상호작용도 일어나고, 시간이 지날 수록 변수간의 중요도가 변동한다. 와중에 모든 이점을 다 잡고 가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으니 '중도'에 해당하는 지점을 선택하고 행동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내 욕심이 이 모든 것을 가로막았다. 동아리의 발전을 빌미로 내가 챙길 수 있는 성취는 뭐 하나 놓지 않으려 했다. 때에 따라서는 '뭐 하나 놓치지 않으려 함'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그걸 못했다. 사람이 욕심에 사로 잡히면 멍청해지게 마련. 리더 앞에 '멍청한'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순간 내가 나를 인정하는 권위부터 타인이 나를 인정하는 권위까지 한꺼번에 무너져 내린다. 그렇게 되면 리더의 비전을 위해 함께 뛰어주는 팀원들조차 잃어버린다. 결국 아무것도 못하고 조직은 와해된다. 머리로 알아채기 전에 이미 내 무의식이 이를 알아채고 있었다.


욕심을 내려놓고 용기내어 중도점을 택하고 나아갔더라면, 법륜스님이 그랬듯 슈카가 그랬듯 어떻게든 욕을 먹었을 것이다. 사람의 생각은 다양하고 와중에 극단적인 생각에 취하기 십상이니까. 하지만 '중도'라는 용감한 선택이 나를 살리는 길이다. 비록 욕을 먹을지언정 말이다. 그래서 아들러도 '미움받을 수 있는 용기'를 말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법륜스님이나 슈카, 아들러에게 비빌만한 위인이 아니다. 열정적인 가슴은 남겨두되 차가운 머리로 욕심을 접는 것 정도는 해야할 것 아닌가. 앞으로는 내 마음의 욕심을 종이접기 하는 시간을 꾸준히 가져봐야겠다. 또 모르지, 접다보면 종이학이 나올지도.




* 연재는 매주 수요일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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