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영화를 기꺼이 지지할 수 없는 이유
올 겨울 '나'만 빼고 모두 다 본듯했던 영화, <라라랜드>를 드디어 보았다. 익히 듣던대로 엄청난 영화다. 시종일관 눈을 사로잡는 강렬한 색채와 그에 따른 화려한 이미지의 향연은 근래 보기 드문 비주얼이었다. 음악 또한 기대를 만족시켜줄만큼 훌륭했다. 겨울에도 날씨가 좀처럼 추워지지않는 따스한 LA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사랑스럽지 않기가 더 힘든 작품이다. 이런 면에는 두 주연배우의 공도 굉장히 크다. 자연스럽게 극에 녹아드는 연기와 더불어 장르적 요소에 방점을 찍어준 춤, 노래, 피아노까지 흠잡을 데가 없었다. 그리고 두 배우의 여러 재능들과 더불어져 펼쳐지는 마법과 같은 순간들. 절로 어깨가 들썩여지고, 흥이 나다가 결국엔 마음 한 켠이 뭉클해지는. 그런 순간들을 보고도 어찌 이 영화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리고 실제로 지금 <라라랜드>가 받고 있는 수많은 찬사와 흥행성공엔 분명 이 요소가 크게 작용했으리라고 본다.
그러나 사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혹은 다 보고나서도 '이 영화를 지지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이지 못 했다. 그리고 다음 질문. '이 영화의 마법같은 순간들은 온전히 영화적인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역시나 고개를 끄덕이지 못 했다. 아니, 오히려 이 질문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고 하는 것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
<라라랜드>에는 한 장면 한 장면에 감독의 철저한 계산과 노력과 수고가 담겨 있다. 물론 내가 보면서 느낀 모든 흥겨움과 뭉클함 또한 그것에 포함돼있다. 꽉꽉 막힌 도로에서 가슴을 뻥 뚫어주는 뮤지컬 시퀀스인 첫 장면부터 현란한 카메라워크와 엄청난 리허설을 수반했을 고난이도 장면이다. 감독의 전작 <위플래쉬>를 본 사람들이면 모두 알 것이다. 다미엔 차젤레 감독의 그 지독함을. 그리고 그 결과가 꽤나 훌륭했단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감독의 연출 방법은 <위플래쉬>같은 심플하고 박력 있게 밀어붙이는 작품에선 성공적이었으나, 이번 작품 <라라랜드>에서도 그러했는지는 의문이다. 이 영화의 아쉬운 점이, 거의 완벽을 추구하는 디테일에 반해 영화의 플롯과 전개는 너무 뻔한 클리셰로 가득차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감독의 무지나 게으름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의도된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나는 실망을 했다.
시종일관 할리우드 고전 영화, 특히 뮤지컬 영화에 대한 애정을 내비치고 있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라라랜드>는 오히려 영화 자체를 쇼 퍼포먼스를 공연하는 스테이지 정도쯤으로 생각하는듯하다. 그리고 나는 감독의 이런 인식이 꽤나 서글펐다. 그 퍼포먼스들을 위한 이 영화의 일차원적이고 단순한 플롯은 차라리 의도하지 않았다고 믿는 것이 더 힘들다. 눈을 홀리는 원색의 향연과 아름다운 이미지들을 모두 걷어낸 이 영화는 어떤 모습일까. 물론 그 장면들조차 <라라랜드>라는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라는 것은 분명한 지점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미지만이 전부여서는 안 되지 않는가. 특히 많은 사람을 감동시킨 엔딩의 시퀀스에서의 그 감흥은, 그 감정은 과연 이 영화 자체에서 길어올려진 것일까? 두 사람의 'if'에 과연 관객이 공감할 자리가 있긴 하나?
캐릭터는 더하다. '미아'와 '세바스찬'은 사실상 감독이 이야기를 진행시키고자 세워놓은 춤추고 노래하는 인형들로 보일 지경이다. 관객에게 제공되는 정보는 그들이 'LA에서 꿈을 좇는 젊은이들'이라는 것 정도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종 이모의 이야기만을 얘기하는 미아나, 불편한 관계인 친구의 한 마디에 자신의 신념을 철회하는 세바스찬의 모습은 그들이 꿈의 절박함을 갖고 있는 이들이라는 영화의 주장에 설득력을 떨어뜨린다. 나는 이렇게 평면적이고 납작한 인물들이 이토록 많은 공감을 받고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아마 그것은 '꿈'이라는 공통 분모에 각 개인이 떠올리고 느끼는 많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찌됐든 기다려왔던 감독의 신작을 만나고 이야기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이번 기회에 다시 깨닫는다. 그리고 근래 이 영화만큼 많은 사람들과 의견이 갈린 적이 없었어서 더 그렇다. 많이 읽고, 보고, 느끼겠다. 그리고 다미엔 차젤레 감독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