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주 속에 숨겨진 미래

- 조시현, 『아이들 타임』의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이 갖는 기능과 의미

by 초코크림


조시현의 시집 『아이들 타임』은 현대 기술문명과 자연파괴, 그리고 인간의 존재적 변형을 다루고 있습니다. 즉, 미래의 디스토피아적 세계를 배경으로 인간이 기술 발전과 환경 파괴 속에서 어떤 운명을 맞이할지를 강력한 상상력으로 그려내고 있으며, 특히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근본적 비판을 담고 있다는 측면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아이들 타임』 읽기는 단순히 미래의 파괴적 예견을 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현재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에 대한 묵직한 성찰의 작업이라고 규정할 수도 있겠습니다. 시가 지닌 형식적 실험과 서사적 확장은 이 시집의 핵심 요소로, 독자에게 강렬한 인식을 제공하면서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이 지배적이면서도 그만큼 현재 우리 세계에 대한 사유를 문학적 차원에서 가능하도록 이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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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타임』이 그려내는 '미래'는 단순한 시간적 연장이 아니라, 예언적 상상력의 발현일 것입니다. 여기서 '미래'는 자크 데리다의 '해체적 시간성'과도 관련지을 수 있겠지요. 데리다는 시간의 비선형성을 주장하면서 과거와 미래가 현재에 동시에 존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아이들 타임』이 보여주는 미래 역시 현재의 연속선상에서 발생한 결과로서 그 미래는 현재를 압박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예를 들어 「2888년의 저녁 식사」에서 2888년이라는 먼 미래는 단순히 미래가 아니라 현재가 만들어낸 파괴의 결과로 읽을 수 있으며, 이는 우리의 현재를 되돌아보게 하는 안내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아이들 타임』에서 드러나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은 인류가 자연을 파괴하고 기술을 남용한 결과로 그려진 미래의 모습입니다. 이는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인류세(Anthropocene) 담론을 떠올리게 합니다. 인간의 활동이 지구의 지질학적 변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인류세 담론의 측면에서 볼 때, 이 시집이 그려내는 세계가 인류세의 끝에서 인간이 무엇을 맞이할지를 극적으로 예언합니다. 「2888년의 저녁 식사」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바나나를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고 단지 바나나 맛이 적힌 스티커를 통해 그 맛을 상상할 뿐인 ‘시스터’의 모습은 자연과 완전히 단절된 인류의 삶이 어떨 것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면서, 미래의 인간들이 자연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상태로 전락할 수 있음을 상상하게 만드는 기제가 됩니다. 시스터의 모습에 대한 묘사는 자연의 회복 불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을 내재하고 있으며, 나아가 인간이 자연을 어떻게 소비하면서도 철저히 소외시켰는지를 되돌아보게 한다고나 할까요.


기술과 인간의 경계가 완전히 무너진 세계에 대한 묘사 역시 살펴봐야할 부분일 것입니다. 『아이들 타임』이 상상하는 세계에서 기술은 더 이상 인간의 도구가 아니라 인간을 변형하고 통제하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미셸 푸코의 '생명정치(Biopolitics)' 개념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기술이 생명 자체를 통제하는 주체로 각인되는 것은 권력이 생명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방식에 주목한 푸코의 관점과 연결시켜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은 더 이상 자연을 통제하는 주체가 아니며 기술에 의해 생명이 변형된 '플라-휴먼(pla-human)'으로 살아갈 뿐입니다. 「28880314」의 각주 2에서 설명되는 인간은 플라스틱이 혈액을 대체한 신체적 변형을 겪습니다. 여기서 플라스틱은 단순한 물질의 수준을 넘어 인간 생명의 핵심을 침범한 요소로서 인간의 신체와 생명을 관리하는 강력한 권력의 지위를 갖고 있습니다. 이는 기술적 통제가 인간의 생명을 어떻게 변형시킬 수 있는지를 경고하는 강력한 은유로 읽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시간의 역류라는 시적 장치는 이 시집의 중요한 서사적 특징 중 하나로서 자크 라캉이 제시한 '시간의 뒤틀림' 개념과도 연계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라캉은 시간의 비선형성을 강조하며, 인간의 무의식이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되돌아보는 과정에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아이들 타임』에서 미래의 인물들이 현재를 회상하는 방식은 미래가 과거의 결과물로서 존재함을 보여주는 동시에 독자에게 시간의 복잡성을 환기합니다. 즉, 미래가 현재로부터 분리된 독립적인 시간이 아니라, 현재가 만들어낸 결과로서의 시간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간관은 독자에게 현재가 가지는 책임을 강조하면서 아울러 우리가 지금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에 대한 무거운 질문을 던집니다.


『아이들 타임』에서는 각주가 매우 독창적인 서사적 확장 장치로 기능한다는 점에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각주는 단순히 보충적인 설명이 아니라, 시의 서사를 확장하고 독자의 해석을 더욱 풍부하게 만드는 요소로 활용됩니다. 예를 들어, 「28880314」의 각주 2는 플라스틱이 인간의 혈액을 대체하는 '플라-휴먼'의 등장을 설명하며, 이는 인간의 신체가 더 이상 생물학적 존재가 아니라 기술적 산물로 변형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다양한 각주들은 시 속 세계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독자로 하여금 시적 상상력을 자극할 수있도록 유도합니다. 즉, 각주들은 독자에게 시를 읽는 새로운 차원을 제공함으로써 시의 서사들이 단순히 본문에서 끝나지 않고 각각의 이야기 덧붙임을 통해 끊임없이 확장될 수 있음을 구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죠.


『아이들 타임』에서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것은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강한 비판일 것입니다. 근대 이후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고 통제하는데 온 힘을 기울였지만, 인간 자신의 변형과 파괴라는 결과로 귀결되는 아이러니한 상황들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현대 철학에서 논의되는 '포스트휴먼' 담론과도 연결시킬 수 있지 않을까요?. 포스트휴먼 담론은 인간의 경계가 기술, 기계, 그리고 자연과 융합되면서 전통적인 인간 개념이 해체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아이들 타임』에서 묘사되는 인간은 이미 자연과 단절된 상태에서 기술의 산물로 전락한 존재로서 그 자체로 인간중심적 사고의 종말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려는 시도가 결국 인간 자신을 파괴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사실은 『아이들 타임』이 전하려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 중 하나일 것입니다.




『아이들 타임』은 인간이 자연과 기술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날카롭게 묻는다는 점에서 최근의 다른 작품들과는 차별됩니다. 또한 시간의 역류 기법과 각주를 통한 서사적 확장은 독자에게 미래의 파괴적 결과가 단순한 상상이 아님을 경고하며,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요구하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따라서 『아이들 타임』은 단순한 미래 예측이 아닌, 현재의 인간 사회에 대한 깊은 성찰과 더불어 우리 자신에게 깊이 있는 책임감을 느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을 겁니다. 또한 이러한 시적 작업은 기술과 자연, 인간의 관계를 다시금 고민하게 하는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냥 간과되어서는 안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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