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루스의 지난 글들
내가 아닌 타인을, 보다 자세히 말하면 타인의 처지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이 가능할까.영화 <다우트>는 진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인간들 사이의 의심과 인간 주체 내부의 회의를 다룬다. 이것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주된 모티프이기는 하지만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특별하다. 몇 개의 겹으로 이루어진 영화의 의미 층위는 이 영화가 표면적 주제와는 별도로 또 다른 복잡한 문제들을 제시한다.
학교의 유일한 흑인 학생인 도널드 밀러의 어머니, 밀러부인과 수녀원 원장이자 학교 교장인 알로이시스 수녀의 대화는 주체가 타자를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당신의 아들이 신부에게 성적 희롱을 받고 있다는 원장 수녀의 말을 밀러부인은 받아들이려고도, 인정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당면 목표는 아들이 무사히 이 학교를 졸업해서 더 좋은 상급학교로 진학하는 일이다. '진실'(물론 명확한 증거 없이 원장 수녀만이 진실이라고 믿는)에 대한 외면에 원장 수녀는 분노한다. 어떻게 어머니의 입장에서 아들이 그런 대우를 받고 있는데도 분노하지 않는 밀러 부인을 원장 수녀는 이해할 수 없다. 이성과 감성의 대립. 밀러 부인에게는 원장 수녀의 명백한 논리보다 자신의 아들을 무조건 지켜주는 애정이 더 소중하다. 그것이 비논리적이라고 해도 말이다. 원장 수녀의 '합리적 의심에 입각한 진실'은 '아들이 무사히 학교를 졸업하는 것'만이 소중한 밀러 부인에게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밀러 부인에게는 오히려 그 진실일지도 모르는 것이 자신을 불안하게 한다. 그는 온통 백인 학생들만 있는 학교에서 흑인인 자신의 아들을 감싸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성적 성향이 어떻든 그건 문제가 되지 않고 알고 싶지도 않은 것이다.
그러기에 둘에게 서로를 이해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 원장 수녀는 어떻게 진실이 그런 하찮은 목표로 인해 외면당할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밀러 부인은 아들이 보다 좋은 교육을 받고 대학을 진학하여 자신과는 다른 사회적 지위를 얻는 것은 유일한 목표일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강렬한, 때로는 목숨을 걸만큼 소중한 욕망이자 신념인지 원장 수녀 역시 이해할 수 없다.
둘 사이에는 처음부터 건널 수 없는 강이 존재한다. 이 강은 인종 문제 이와 연관된 사회 계급과 경제적 권력 혹은 지위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하는 정치사회적 입장 등의 담론들로 얽혀 있다. 백인인 원장 수녀와 하급 노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흑인 밀러 부인 사이에는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들이 자신이 놓인 사회적 문화적 맥락을, 그리고 타자의 그것을 함께 바라보지 않는다면 둘 사이의 평행선을 좁히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 역시 맥락과 배경은 지워진 채로 어떤 사건들이 날 것 그대로 다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진보와 보수라는 사실은 경계를 명확하게 짓기 어려운 범주로 나누어져 서로가 첨예하게 갈등과 반목을 반복하는 것도 이런 근본적인 문제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 쪽은 원장 수녀로 또 한 쪽은 밀러부인이 되어서 말이다.
그렇다면 서로를 이해하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은 결국 이러한 구조를 파악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자들, 지식인들이 나서야 할 것이다. 하지만 작금의 현실은 이들 역시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또 하나의 원장 수녀와 밀러 부인으로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르며 기다려야 한다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