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루스의 지난 글들
특정한 음식의 연원을 찾는다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얼마전 TV에서 한 PD가 평양냉면의 원조를 찾아 이곳저곳을 해매다 결국에는 자신이 직접 평양냉면을 예전 방식대로 만들어 먹으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던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특히 그 PD가 직접 꿩을 사다가 산골 깊숙이 있는 어느 민가에서 냉면 틀을 빌려가지고 손수 냉면 사리를 뽑는 장면이 백미였다.
내게 흥미로웠던 것은 원조 평양 냉면을 먹겠다는 PD의 집념이었다. 수많은 평양냉면 식당을 찾아 다니고 6.25 전쟁 때 월남한 평양 출신 노인들을 찾아 평양냉면 만드는 법을 듣고 그대로 재현하려는 PD의 집념은 정말 높이 살 만했다. 아마 개인적으로도 원조 평양냉면을 먹어보고 싶다는 욕구도 그 집념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으리라.
그런데 프로그램에서 내가 이상하게 생각했던 것은 월남한 노인들의 인터뷰였다. 하나같이 평양냉면을 그것도 평양에서 먹어봤다는 그 양반들의 회고담은 모두 달랐다. 평양에서 평양냉면을 먹었다는(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그 양반들의 회고담은 왜 모두 다른 것인가. 동치미 국물에 말아먹었다는 노인이 있는가 하면, 우리가 익히 아는 듯이 꿩 육수에 말아 먹었다는 노인, 그리고 닭 육수를 사용했다는 노인까지 천차만별이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오직 한 가지 평양에서 냉면을 먹고 자랐다는 점이었다.
그렇다면 진짜 평양냉면은 어떤 것일까? 결론부터 말한다면 난 원조 평양냉면은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월남한 노인들이 소싯적 드셨던 냉면은 모두 평양냉면일 것이다. 다시 말하면 '원조' 혹은 '진짜' 평양냉면의 맛은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하나의 환타지인 것이다. 요즘은 아니지만 얼마전까지도 평양에 가서 먹어볼 수 없는 냉면, 즉 확인할 수도 없고 그렇기에 더욱 그리운 월남인들의 향수가 하나의 환타지를 만들어내고 그것이 시간이 흘러가면서 보다 견고하게 굳어져 이제는 하나의 전설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런 논리가 아니면 다큐멘터리 PD의 그런 원인모를 집념을 설명할 길이 없다.
'진정한' 평양 냉면의 맛이 어디있는가? 그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민족의 '얼'이나 '혼'의 개념 만큼이나 모호한 것이다. 누가 그 원조의 맛을 판별해 줄 것인가? 또한 용감한(?) 그 누가 원조의 맛을 판별한다고 해서 그것이 과연 인정될 수 있는 것인가? 난 회의적이다.
얘기가 길어졌다. 평양 냉면이 그렇듯 특정한 음식이 주목을 받는 것은 그것만의 스토리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그것이 한 민족의 음식문화를 대표하는 음식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결국 사람들은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그 스토리를 즐기는 것이다. 요즘 한창 인기를 누리는 와인 역시 그렇지 않던가.
하지만 이 스토리 역시 자의적으로 구성되고 포장된 것이다. 어떤 음식이 단일하고 견고한 스토리를 가질 수 있겠는가. 하나의 음식은 결코 단일한 계층에 의해, 단일한 입맛에 의해 탄생되는 것이 아니다. 비빔밥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것이 양반들의 헛제사밥이든, 반찬이 부실했던 서민들이 이것저것 섞어 먹었던 것이든 그 모든 요소들이 그야말로 섞여 있는 음식일 것이고 앞으로도 이에 대한 '썰'들은 계속 양산될 것이다.
누가 양두구육이라고 칭하든, 사실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대개 그런 비난에 가까운 논평은 성찰이 결여된 상태에서 나온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난 그보다는 비빔밥에 어떤 스토리를 입히는가, 그리고 그 과정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찬별님의 조금은 익실스러운 아이디어는 나름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금 말하지만 문제는 스토리다. 그 스토리들이 쌓여 전설이 되고 그럼으로써 그 음식은 명품의 반열에 오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