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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혜인 Jun 03. 2021

참 스승이 되고 싶을 때

영화 <코러스>를 보고 난 후

<코러스(Les Choristes)>(2004)

감독: Christophe Barratier

출연: Gerard Jugnot, Francois Berleand, Jean-Baptiste Maunier, Jacques Perrin, Kad Merad, Marie Bunel, Philippe Du Janerand, Jean-Paul Bonnaire 외

장르: 드라마


    음악에는 인간을 하나로 연결시키는 힘이 있다. 영화 <코러스>를 보며 그것을 느꼈는데, 영화에 중심에는 이런 음악을 수단으로 ‘연못바닥’ 학생들을 하나로 묶은 음악교사 매튜가 있다. 그에게는 교사가 갖춰야 할 중요한 덕목들이 여럿 보였지만, 영화를 관통하는 가장 큰 덕목은 ‘불가능함을 가능함으로 바꾸려는’ 태도였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 불가능할 뿐이다.
어디에나 도전해 볼만한 가치있는 일은 있기 마련이다.
 -클레몽 매튜


매튜의 도둑맞은 악보 (출처: 네이버 영화)

    실패한 음악가 매튜는 잡지를 보고 연못바닥에 취직했지만, 그곳은 보편적인 학교와는 달랐다. 기숙학교 혹은 소년원에 가까웠다. 어린이들은 담배를 피웠고 나이든 관리인 엉클에게 큰 상처를 내기도 했다. 학교 선생님들은 연신 ‘액션-리액션’을 외쳤다. 필자에게 ‘액션’은 어른의 강압적 통제 행위요, ‘리액션’은 그에 즉각 순응해야하는 반응처럼 보인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매튜는 포기 대신 변화를 선택한다. 특히 학생들이 매튜의 가방을 훔치며 속에 든 악보가 노출되었는데, 매튜는 그 사건 이후 아이들과 함께 음악을 하기로 결심한다. 그 과정에서 모랑쥐의 천부적 재능을 발견하고, 오지 않을 고도(아버지)를 기다리는 파피놋을 가까이서 보호한다. 이 영화는 또한 소외되고 버림받은 아이들이 노래를 통해 치유되는 장면을 보여준다. 엄마에 대한 불만 때문에 외로웠던 모랑쥐가 노래를 하며 자신감을 얻고 자신의 아름다운 달란트를 발견하게 되어 결국 음악가가 되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노래하는 경험을 함께 나누면서 영화 속 아이들의 표정과 몸짓은 눈에 띄게 달라지고 밝아진다.[1]


모든 과정의 중심에는 음악교사 매튜가 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참스승이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질문을 남겨준다. 한국강사신문에서는 이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한다.


    참스승. 그것은 결코 어느 책에 나와 있는 장황한 서술문의 형태가 아니다. 참 스승이란 제자 하나하나를 진심으로 아끼는 마음. 바로 그것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학생들에게 모범이 되어 말보다 실천을 하며, 가슴으로 교류할 수 있는. 그래도 어려운 게 그 스승의 길이리라. 이 영화를 보고 나는 문득 선생님이 되고 싶어졌다.[2]


    영화가 주는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보며, 필자의 경험을 이번 기회에 정리 해보고 싶다. 연극 교육자로 활동을 할 때나, 언제 어디서나 참 스승이 되고 싶을 때 초심을 다질 수 있는 글이 되기를 바란다. (주어 '필자'에서 '나'로 바꾸겠다.)


    나는 24세쯤 어학원에서 1년정도 일 한 경험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영어 학원과 그곳의 부속유치원에서 함께 일 했다. 그 때 5~7세부터 초등학생, 그리고 중1까지 다양한 아이들과 어울렸다. 채용 당시의 업무는 유치원에서 파닉스와 교과목에 맞는 자유로운 영어활동, 필드트립(fild-trip) 동행, 온라인 학습 관리 등을 하는 일이었다. 6세 반을 담당했다. 원감님은 아주 따스한 성품(golden heart)을 가지고 계신분이었고, 오스트레일리아 선생님은 누나가 특수교육을 받는 분이셔서 그런지 어린이와 같은 약자들을 잘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특히 다양한 신체활동을 통해 아이들과 많이 놀아주는 모습에 나에겐 많은 귀감이 되었다. 그 선생님은 쉬는 시간에도 아이들하고 바닥에 구르며 즐겁게 놀아주고, 아이들이 선생님 위에 올라타며 깔깔대고 아주 즐거워했다. 그리고 중국인 선생님이 계셨는데 그 분은 밥을 해주시고 방과후에는 종일반 아이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치셨다. 그 선생님의 깔끔함은 대단했다. 주방에 물기가 있는걸 싫어해 항상 마른행주로 닦으셨다. 그 주방을 보면 깐깐한 학부모들도 허튼 소리를 못했다. 나는 그 분에게서 야무진 태도, 자기 일에 대한 정확함, 성실함을 보았다. 그러면서 동시에 육아에 대한 스트레스도 보았다. 그 선생님은 외동아들을 자신이 근무하는 유치원에 보냈기에 일과 동시에 곁에서 아들을 지켜 볼 수 있었다. 왠지 마음이 놓이면서, 왠지 스트레스 받는 것이다. 중국에는 소황제(小皇帝)[3] 개념이 있다. 아이가 황제만큼 위대한 존재라서 부모가 귀하게 대접한다. 그만큼 중국의 부모는 아이에 대한 문제에 대단히 예민하다. 나에겐 24살의 어린 나이에 부모의 예민함을 객관적으로 본 기회였다. 특히 6~7세 부모님들이 가장 예민한 시기라는걸 알게되었다. 이처럼 다양한 선생님들 속에서 나는 유치원 일에 차츰 적응을 해가고 있었다.[4]

    그런데 어느 날, 어학원의 메인강사 B씨가 나에게 7세부터 중1까지[5] 어학원에서 티칭을 했으면 좋겠다고 부탁을 했다. 메인강사 A씨가 원장님과 함께 다단계 여행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무실 프린터기에는 A씨의 비자관련 서류들이 돌아다녔다. 그리고 B씨도 거기에 연관된 것 같았다. 그렇게 원장님은 부원장님을 채용하였고, A씨와 B씨와 함께 사라졌다. 학원은 부원장님의 총괄 하에 겨우겨우 돌아갔다. 부원장님은 출근하실 때마다 특유의 '푸------우' 한숨을 쉬셨고, 그래도 직원들에게 삼겹살이며 소주며 초밥이며 맛있는걸 많이 사줘가며 사기를 북돋아주셨다. 그 학원은 남아있던 강사들의 책임감이 없었다면 금세 문을 닫았을 테다. 원장님의 언니께선 학원에 주기적으로 수학강의를 하러 오셨는데, 동생 이야기만 나오면 그저 고개를 저으셨다. 그 강사님은 수학문제를 푸시며 스트레스를 푸시고(?) 우연히 마주쳤던 지하철에서도 수학문제를 푸시는 성실하신 분이셨다. 내가 일하고 있던 학원은 상황은 어수선했지만 남아있는 강사들의 열정은 아직 꺼지지 않았던 곳이었다.

    그들이 떠나기 전, A씨는 나에게 인수인계를 해주었다. 말이 인수인계였지 학원에서 쓰는 다양한 교재에 대한 설명도 없었고, 스케줄 및 커리큘럼을 짜는 구체적인 디렉션도 없었고(설명이 대부분 ‘알아서 하면 된다’는 식이었다), 초보강사에게 필요한 팁 또한 전무했다. 아이들과 학부모님들에 대한 정보도 당연히 없었다. 설상가상 곧 새로운 원어민 강사도 채용되어 올 예정이었다. A씨는 학원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증언에 의하면 B씨는 일하는 동안엔 아이들에게 진심이었다곤 한다. 날이 좋을 땐 밖에 나가 원생들과 축구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B씨는 이미 티칭은 내려놓은 상황이었고, 왔다갔다 하며 원장님의 업무를 보는 것 같았다. 그런 상황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A씨의 수업에 참관을 하게 되었다. A씨는 자신의 말에 복종하는 아이들에게는 문제 없이 대하지만, 보이스카웃 개구쟁이 Alex(가명, 초3)에게 소리지르며 혼을 냈다. A씨가 찍은 아이 같았다. 결국 아이는 교실에서 쫓겨났는데, 여기서 내가 심각하게 생각한 지점은 A씨가 다시 교실로 들이지 않아(용서의 과정이 없어) 아이가 기다리다가 집으로 가버린 것이다. 그 당시 나는 모든 상황이 파악 되었지만 용기가 없어 A씨에게 문제점에 대해 정면으로 말을 하지 못했다. A씨가 떠나고 Alex를 실제로 겪어보니 문제아가 아니었다. 그냥 장난 치는걸 좋아하고 목소리가 크고 명랑한 아이였다. 또 가르치면 잘 소화도 하고, 질문이 있고 적극적인 아이였다. 심지어 애교도 많았다. 도대체 A씨는 아이의 어떤 면이 싫었을까?

    ‘인수인계’란 단어가 아까운 시간이었지만 그럼에도 몇 가지 배운 점은 있었다. 첫째, 교사에게 기초적으로 필요한 작업과 정보들(A씨가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던 것들을 반추해보면 모두 나에게 필요한 것들이었다), 둘째, 아이들을 어떻게 대하지 말아야겠다는 큰 다짐 그리고 셋째, 앞으론 이와 관련해서 새로 시작하는 교사에게 구체적인 지침을 알려 줄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다.

    자신의 아이들을 믿고 맡겼던 선생들이 갑자기 빠져나가니 학원은 학부모들에게 그 의중을 설명해야했고(차마 그들이 ‘여행’갔다고 말은 못했다), 나는 새로 아이들을 가르쳐야하니 학부모님 한 분 한 분께 모두 인사 겸 상담전화를 드렸다. 난관을 예상했지만 의외로 나는 학부모님들과 대화하는걸 좋아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전화가 있다. Ian(첫째)과 Ryan(둘째)를 모두 학원에 보내는 어머님이었다. 두 형제는 그 학원의 부속 유치원 출신이다. Ian은 착하지만 예민하고, 어른같고, 매사에 우울하고 기력이 없었다. 어린이인데 한숨을 엄청 쉬었다. 그리고 Ryan은 순진하고, 거칠고, 똘망똘망하고, 싸움이 잦은 2학년이었다. 형제는 똑같이 닮았고 똑같이 바짝 말랐다. “안녕하세요. Ian이 어머님~” 나는 말했다. 기억이 바래서 정확히 무슨 사설을 나눴는지 모르겠다. 근데 확실한 건 아이들 이야기를 하며 통화 한지 몇 분 되지 않아 남편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가 나왔다. 어머님은 수화기 너머로 오열을 하셨다. 이전에 원감님으로부터 들은 바, 어머님께서 남편을 여의셨다는 상황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때는 내가 너무 어려서 마음 아프신 것 정도만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이면은 잘 못봤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어머니 울지 마세요’ 이 비슷한 어설픈 위로를 계속 반복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혼자 연년생의 두 아들을 키워야하고, 게다가 아이들은 사립초등학교에 진학한 상태인데 생계를 감당해야하고, 배우자를 잃은 슬픔은 말로 할 수 없다는 걸 지금의 나는 혼자 사시는 나의 할머니를 보며 어느정도 안다. 그 어머님은 이 학원에 아이들을 거의 맡기다시피 하신 것 같다. 얼마나 힘드셨으면 나 같은 햇병아리에 세상물정 모르는, 얼굴도 한번 안 본 사람한테 자신의 아픔을 털어놓으셨을까를 생각해보니 지금도 마음이 너무 아프다. 그 통화 후에 나는 Ian과 Ryan을 동정의 시선보다 그들의 일상인 학원 생활에 잘 적응하도록 돕고 싶었다. 나의 능력 부족일지, 어머니의 생계 문제일지 모르겠지만 결국 아이들은 몇 개월 뒤에 학원을 그만두었다.

    나는 어학원에서 일을 하며 꽤나 과로에 시달렸다. 상담전화가 오면 건성으로 받아본 적이 없다. 학원에서는 아주 드물게 전문 컨설팅이 필요한 학생이 아니라면 보통 상담은 내가 하도록 두었다. 월말 평가가 있는데  후에  학생들을 대상으로 성적과 코멘트를 입력해주었다. 무슨 일이 이렇게 많은지  일은 보통 집에 가서 했다. 생각보다 아이들에게 통제적인 성향에다가 서투름이 겹쳐지니 그것도 스트레스의 원인이었다. 게다가 성과주의적 성향도 은근히 있어서 아이들에게 좋은 방면으로 성적 성취를 맛보게 해주고 싶었다. 6학년 아이들에게는 일찍부터 리스닝을 시켰고 간단한 테스트도 자주 봤다. 나는 2때부터 리스닝을 했다. 리스닝은 인고의 시간이었다. 그러자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리스닝을 틀린적이 거의 없었고, 수능때까지 편했다.  경험은 토익에 가서도 비슷하게 반영됬다. 솔직히 영어시험에서 은근히 점수를 까먹는 비중이 리스닝이다. 일단 리스닝만  맞아도 점수의 40~50% 얻고 들어간다. 그러니까 학부모와 아이들에게 리스닝의 중요성을 설명해주고 대비를 시켜봤는데 아이들이 처음에는 1 난이도 모의고사를 보면 20문제  13개씩 틀렸다. 하지만 꾸준히 숙제를 따라온 학생들은 실력이 대폭 향상되었다. 학원 다니는게 재밌다고 했고, 아이의 학부모님도 아이가 그렇게 말해서 좋다고 하셨다. 나는 아이들의 태도에서 ‘천재보다 근재가 낫다 믿음을 가졌다. 나는 편애를 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편인데 성실한 아이들은 예쁘다.

    우리 학원에는 사립초 아이들이 많이 다녔다. 그래서 사립초 영어반편성을 대비한 적이 있었다. 학부모들이 티는 안냈지만 예민했다. 기실 그 반편성 결과는 학부모보다는 아이들 사이의 자존심 싸움이었다. 부원장님이 원어교과서를 구해주시고, 나는 교과서를 두 세번 반복수업을 해주었고(통암기 스터디), 캐나다 선생님과 커뮤니케이션을 해서 그 분은 실제 스피킹 파트를 담당하게 했다. 결과는 1학년 Ryan H만 빼고 모두 최상위반에 가게 되었다. 학원은 폭풍을 피해갔다. Brian의 변화가 눈에 띄었다. 처음에는 처음에는 매일 삐딱하게 앉아있고 과묵하며, 글씨도 날아가고 도통 속마음을 모르겠는 아이었다. 이 아이도 사립초에 다녔다. 그런데 최상위반에 들어가고, 단어시험을 볼때마다 100점을 받기 시작했다. 글씨도 알아보게 쓰기 시작했다. 일단 이런 아이들에게 나의 전략은 조금이라도 잘 하는 낌새를 보이면 하이파이브 하기였다. 미흡하지만 나의 최선이기도 했다. 내 손뼉을 쳐주는 아이들에게 고마웠다. Brian은 가르쳐보니 또래보다 훨씬 똑똑한 아이었고, 그 점을 학부모님께 말씀드렸다. 관심분야를 잘 정해서 마음을 열고 무언가를 하면 정말 잘 될 아이 같았다. 그 무뚝뚝하던 아이가 어느날은 나에게 다가오며 웃는데 이럴 때는 과로를 잊어버렸다.

    어학원의 경험을 통해 교사는 언제나 다양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고, 개개인의 문제를 파악 할 줄 알아야하며, 학생들의 긍정적 변화를 위해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함을 배웠다. 학생들의 모든 사적 문제까지는 다 해결해주지 못하더라도 같이 상호작용하는 시공간에서 만큼은 잘 적응 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책임감과 사람에 대한 사랑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사는 주어진 상황 속에서 어떤 변화를 모색해야할지 마음속에 늘 나침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교사에게는 플랜이 있어야한다. 대충 ‘오늘 뭐 해야지’가 아니라 어제와 내일을 고려 할 수 있는 오늘의 플랜이 필요하다. 그리고 다양한 관계 속에서 변화의 사인(sign)을 캐치 할 수 있어야 한다. 매튜가 훔침 당한 악보를 통해 포기 대신 시도(try)를 선택 했던 것 처럼.


모랑쥐를 부르는 매튜 (출처: 네이버 영화)


    만약 매튜가 자신의 형편없음을 내세우며 음악을 부정했다면, ‘연못바닥’은 여전히 바닥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매튜는 비록 인생의 한 지점에서는 실패했지만, 그럼에도 음악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있었기에 그것을 수단삼아 변화를 이끌어 냈다. 이처럼 교사는 자신의 주 과목에 대해 존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한다. 자신을 존재하게 했고, 존재하게 하고, 이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과의 하모니를 이루어 낼 수 있는 강한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을 가르쳐주는게 진심으로 좋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될 거면 참 스승이 되고 싶다. 이 멋진 영화를 즐겁게 본 내 자신을 칭찬하며, 앞으로 나의 행보를 기대한다.


미주

[1] 오세란, 「[아이랑 영화랑] 크리스토프 바라티에 감독, <코러스> - 여럿이 부르는 노래, 코러스」, 『새가정(Christian home) Vol.55』, 새가정사, 2008, 116-117쪽.

[2] 한상형, <영화 ‘코러스’ “참스승이란무엇인가? 제라느쥐노, 프랑수아벨레앙주연”, 한국강사신문, 2021-03-19, https://www.lecturer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63303

[3] 작은 황제

[4] 지금 생각해보면 동료 선생님들을 참 잘 만났다. 지인 중에 초등학교 선생님이 있는데 다른 것보다 동료 교사와의 관계가 큰 스트레스 유발이 된다고 한다.

[5] 학원 시스템: 유치원 7세반 아이들은 유치원이 끝나면 어학원으로 가서 온라인 학습을 하고, 추가적으로 파닉스 수업을 듣고 하원한다. 학원에서는 7세, 초등학생 전학년, 중1 영어수업이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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