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졸라(Emile Zola)는 무엇을 추구하였는가?

소설『테레즈 라캥』과 영화 <에밀 졸라의 생애>를 중심으로

by 조혜인

에밀 졸라(Emile Zola)는 무엇을 추구하였는가? – 소설 『테레즈 라캥』(Therese Raquin)과 영화 <에밀 졸라의 생애>(The Life of Emile Zola, 1937)를 중심으로


본고는 프랑스 자연주의 연극으로 가장 먼저 접할 수 있는 에밀 졸라의 『테레즈 라캥』을 읽고, 영화 <에밀 졸라의 생애>를 본 뒤 작성한 페이퍼다. 에밀 졸라가 자연주의 사조를 창출하며 문학과 연극에서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그리고 <테레즈 라캥>의 간략한 내용 요약 및 분석과 더불어 관련된 미술품으로 사유되는 에드가 드가의 작품 한 점을 살펴본다. 이어 영화 <에밀 졸라의 생애>를 통해 졸라의 생애를 깊이있게 조명해보며, 작가로서 어떤 위대한 사상을 가지고 있는지를 고찰한다.


목 차

1. 서론

(1) 에밀 졸라(Emile Zola)와 자연주의(Naturalism)

2. 본론

(1) 소설 <테레즈 라캥>(Therese Raquin)

(2) 에드가 드가(Edgar Degas) <실내>(The Interior) 혹은 <강간>(The Rape)

(3) 영화 <에밀 졸라의 생애>(The Life of Emila Zola, 1937)

3. 결론




1. 서론

(1) 에밀 졸라(Emile Zola)와 자연주의(Naturalism)


자연주의(Naturalism)는 19세기와 20세기 사이를 이어주는 문학사조이다. 그리고 에밀 졸라(Emile Zola)는 자연주의 대표 작가로서 그의 작품에 나타난 특징은 경험, 상상력, 자료조사, 고증, 취재에다 필요하면 실험까지도 도입[1]한 점이다. 이러한 자연주의를 포괄론적 관점—자연주의가 리얼리즘에 포함된다는 관점—에서 보아, 자연주의가 과학적 방법을 문학에 적용시킴으로서 리얼리즘을 더욱 체계적으로 만든다는 점을 제시한다. 그러므로, 자연주의는 리얼리즘과 독립된 사조가 아닌 리얼리즘의 범주 안에 들어있어 그 맥락과 분리해서 볼 수 없다. 이는 졸라의 소논문「현실 감각」에 나타난 내용에서도 뒷받침 되고 있다. 이 논문에서 졸라는 현대소설가의 가장 본질적 자질은 “상상력”이 아니라 “현실감각”이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현실감각이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느끼는 것'이다. '현실의 충실한 비서'이고자 하는 졸라는 작품 속에서 고양된 현실감각을 담아내려고 했다. 그리고 그의 전 생애에 걸쳐서 이러한 현실 감각은 '진실탐구’라는 그가 가진 작가 의식을 통해 텍스트 속에서 발현되었다. 본고에서는 졸라가 어떻게 ‘진실탐구’를 표현하였는지 그의 소설「테레즈 라캥」(Therese Raquin)을 통해 어떤 인간군상이 그가 바라보던 진실이였으며, 위 소설과 맞물리는 서사를 지닌 에드가 드가의 미술작품 <실내>(The Interior) 혹은 <강간>(The Rape)과 함께 살펴 볼 것이다. 드가가「테레즈 라캥」에 등장한 첫날밤의 서사를 어떤 방식으로 해석하고 작품에 녹여내었는지 간단히 그의 생애와 예술관을 들여다보고, 한 작품에 붙여있는 두개의 다른 제목 중 어떤 제목이 더 <테레즈 라캥>의 서사에 적합한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그 후, 윌리엄 디터리(William Dieterie) 감독의 영화 <에밀 졸라의 생애>(The Life of Emile Zola, 1937)를 통해 그의 생에 전반에 걸친 끝없는 진실 탐구를 통해서 어떠한 결과를 이루어 냈는지 들여다 볼 것이다..


2. 본론

(2) 소설 <테레즈 라캥>(Therese Raquin)


<테레즈 라캥(Therese Raquin)>은 1868년에 발표된 소설로, 에밀 졸라가 26세의 나이에 출간함으로서 자연주의 소설관을 확립했다. 본 소설은 테레즈, 로랑 그리고 라캥 부인을 중심으로 인간 내면에 잠재되어있는 본능에 의해 벌어지는 비극을 그리고 있다. '라캥 부인'은 선천적으로 병약한 아들 '카미유'를 키우면서 '테레즈'라는 여자아이를 새로운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테레즈는 이런 허약한 카미유라는 환경과 함께 성장하면서
그녀 본연의 불꽃같은 천성을 스스로 억압하며 살게 되었다.


그녀는 성인이 되어 카미유와의 결혼—이 마저도 테레즈 주변의 환경에 의해 자연스레 구축된 인생의 한 절차—을 통해 원하는 육체적 갈망을 해소 시킬 수 없었다. 그 때, 라캥 부인이 운영하던 상점에 방문하던' 로랑'이라는 남자를 만나게 되었고, 테레즈는 그를 정부삼아 은밀하면서도 동시에 대담한 만남을 시작하게 되었다. 테레즈는 그동안 채울 수 없었던 억눌렸던 본능을 발산시켰고, 마치 로랑의 욕망 또한 그녀가 발산하는 욕망 위에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윽고 이러한 욕망은 위험한 방향으로 현실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다.


서로의 육체를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탐닉한 나머지
로랑과 테레즈는 카미유를 살해한다.


하지만 카미유의 살인은 그들에게 공포와 환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들은 카미유의 부재로 인하여 서로가 서로의 소유가 더욱 쉽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지만, 카미유의 죽음을 통해 서로가 환멸의 대상이 되었다. 그들의 결혼 또한 지난날의 욕정과 정열에 의해서 이루어 진것이 아닌, 자신들의 죄를 은폐하기 위해 진행되었다. 낮에는 상점에서 방문객들을 맞이하며 연극을 하듯 아무 일 없다는 듯 사람들 앞에서 부부관계를 유지하였지만, 밤이 될 때마다 자신의 사이에 누워있는 카미유의 현존을 느끼며 두려움에 떠는 이중생활을 했다. 설상가상, 라캥 부인이 중풍에 걸린다. 하지만 부부의 연극에 흠뻑 속아넘어간 라캥 부인은 이들의 보살핌 속에서 행복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연극은 오래 가지 못했다.


공포와 광기에 사로잡힌 부부는
육체가 굳어있는 라캥 부인 앞에서 발작을 함과 동시에
모든 진실을 의도치않게 발설하게된다.


이로써 라캥 부인은 환멸을 느끼게 되어 복수심에 불타올라 그들의 비극을 보길 원하였지만, 시체와 같은 육체로 인하여 진실을 알릴 수 없었다. 하지만 테레즈와 로랑이 저질러놓은 모든 업보는 그들 스스로에 의해 대가(price)를 치르게 된다. 결국, 그들은 서로를 살해하기로 결심하고 죽기 직전 그 순간까지 두려움과 서로에 대한 알 수 없는 연민에 쌓여 라캥 부인 앞에서 청산가리를 마시며 생을 마감하게 된다.

필자는 테레즈와 로랑을 중심으로 소설에서 어떠한 인간 본능이 드러나는지, 그리고 어떠한 주어진 환경이 있었기에 그들의 본능이 비극으로 치닫게 되었는지 고찰하려 한다. 테레즈는 어린 시절부터 카미유라는 허약한 소년과 한 방을 쓰며 병마의 기운과 함께 살았다. 그러므로 그녀는 주변 인물들로부터 모든 행동을 조심스럽게 하길 강요받고, 카미유를 돌보는 것이 암묵적 강요로 인하여 이것이 마치 숙명처럼 주어진 인물이다. 그녀는 겉으로는 감정이 없고, 자신의 본성을 마음에 감추는 것을 능숙하게 하지만, ‘정원과 흰 강물과 지평선으로 올라가는 초록빛의 광대한 언덕을 대할 때면 그녀는 뛰어다니며 소리치고 싶은 야성적 욕망에 어쩔 줄 몰라하는[2] 본성을 지녔다. 하지만 그러한 성향을 감추기 위해 그녀는 자신의 모든 의지들을 주변 사람들을 위한 수동적 도구로 만들기 위해 온 정신을 집중했다. 하지만, 그녀는 결혼 후 로랑과 첫 불륜관계에서부터 창녀의 기질을 드러냈다. 히스테릭한 여성이 가진 갖가지 본능이 거칠게 발산되어 터져 나옴으로서 로랑을 놀래켰다. 테레즈 안에는 이러한 본성이 잠재되어 있던 것이다. 카미유는 너무나 허약하여 테레즈가 가지고 있는 무한한 깊이의 음욕을 만족 시킬 수 없었기에, 더욱이 억압되어 있었던 그녀의 본능은 부끄러움 없이 로랑 앞에서 발산되었다. 그렇다면 로랑은 어떠한 인간 본능을 가지고 있는가? 로랑은 게으른 천성을 가지고 있다. 문자 그대로 말하자면, 아무 노력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고 싶어하는 이기적인 본능을 가지고있다. 실상 그는 게으름뱅이에다 동물적인 욕망의 소유자였고, 편하고 오래가는 향락만을 추구했다. 크고 건장한 그의 체구가 바라는 것은 오직 무위도식(無爲徒食)하고 한가롭게 뒹굴며 즐거움에 탐닉하는 것이다. 그는 할 수만 있으면 잘 먹고 잘 자면서 그의 욕망을 마음껏 만족시키려 했다. 조금이라도 피곤한 일은 하려고 하지 않았다.[3]


(2) 에드가 드가(Edgar Degas) <실내>(The Interior) 혹은 <강간>(The Rape)


본고에 사용된 참고문헌 『테레즈 라캥』 5쪽에 수록된 '에드가 드가'(1834. 7. 19 – 1917. 9. 27)의 <실내> 혹은 <강간>―같은 작품인데 상이한 이름으로 불리기도 함―은 주인공 테레즈와 로랑의 결혼 첫날밤을 그린 작품으로 알려져있다.


에드가드가_실내.jpg <사진 1> 에드가 드가(Edgar Degas), <실내(The Interior)> 혹은 <강간(The Rape)>, 1868~1869년 경


기실 드가는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로서 졸라와 동시대를 살았던 인물이란 점은 주목할만하다. (에밀 졸라: 1840. 4. 2 - 1902. 9. 29) 그리고 드가의 작품의 특징 중 두드러지는 점은 여성무용수들의 역동적인 몸짓의 순간을 정확히 포착하여 화려한 색채로 캔버스에 담은 점이다. 그리고 그는 비단 여성 무용수들의 육체미에 주목한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녀들의 삶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당대에 여성 무용수들은 예술가로서 대접을 받기 보다는 부유 남성층의 성노리개와 같은 위치에 있었다. 그녀들은 치열하게 노력을 하더라도 실력에 의해 인정받을 수 없었다. 성공을 하더라도 그 성공은 그녀들 개인의 것이 아닌, 언제나 그 배후의 어두운 그늘이 있었다.


에드가드가_무대 위에서의 발레 실습.jpg <사진 2> 에드가 드가(Edgar Degas), <무대 위에서의 발레 실습>, 1874


이러한 어두운 그늘은 <무대 위에서의 발레 실습>에서 발견 될 수 있다. 드가는 여성 무용수들의 현실을 화폭에 재현하는 방식으로서 무대에서 멀찍이 떨어져있는 한 남성이 그녀들의 연습장면을 지켜보며 마치 한명, 한명 평가하듯 은밀한 분위기를 풍기는 모습을 담아냈다. 드가가 이러한 불순한 태도를 가진 남성들을 작품에 재현하고자 했음은 평생을 독신으로 산 그의 가치관이 반영되었음을 생각 해 볼 수 있다. 비록 드가는 여성혐오주의적 화가라는 기사[4] 또한 존재하지만, 그는 비연애와 비혼을 함으로서 남녀관계에서 작용 될 수 있는 가부장적 구조로부터 한 발 물러나 당대 여성의 현실을 좀 더 객관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었음을 본고에서는 재고한다. 즉, 그는 여성을 그저 남성의 욕망 충족의 도구로서 바라보기를 거부했다. 이러한 드가의 시각을 졸라의『테레즈 라캥』과 연관지어 <실내> 혹은 <강간>을 바라보자.『테레즈 라캥』에서 테레즈와 로랑의 첫날밤은 아래와 같이 묘사된다.


‘로랑은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 그는 잠시 그 문에 기대어 불안하고 거북한 모습으로 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 그녀가 혐오감과 공포에 싸여 너무도 이상하게 로랑을 응시하자 로랑 역시 같은 감정에 사로잡힌 듯 얼떨떨하고 거북해서 뒤로 물러섰다. (중략) 카미유를 살해한 후 새로운 정욕에 몸이 타올랐을 때는 신혼의 첫날밤을 기다리면서, 신변의 안전이 보장된 다음의 미칠 듯한 환락을 기대하면서 견뎌왔다. 그러다가 마침내 첫날밤이 온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별안간 거북해져서 불안하게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 그들은 환락의 시간을, 주저와 분노의 순간을, 살인의 끔찍한 순간을 떠올렸다. (중략) 그는 일어서서 침대 쪽으로 가더니 팔을 벌리고 테레즈를 향해서 우악스럽게 다가왔다. “키스해줘” 하고 그는 목을 내밀면서 말했다. (...) “이거, 이거 말이야……” 하고 그는 중얼거렸다. (...) “카미유가 물어뜯은 거야. 알겠어? 보트 안에서 말이야. 아무렇지도 않아. 다 나았어…… 키스해줘, 내게 키스해달라니까.” 불쌍한 로랑은 불타는 듯한 자기 목을 내밀었다. 그는 테레즈가 흉터에 키스해주기를 원했다. 그녀의 키스로 살을 에는 듯한 심한 통증이 나아지리라고 기대했던 것이다. 벽난로의 대리석 위에 거의 누워 있다시피 하던 테레즈는 심한 혐오의 몸짓을 하며 애원하는 목소리로 외쳤다. “싫어요! 거긴 싫어요…… 피가 있어요.” (///) 자신의 우악한 짓이 부끄러웠던 로랑은 천천히 창문 쪽으로 걸어갔다. 오직 괴로움과 무섭게 쑤시는 아픔 때문에 그는 테레즈에게 키스를 요구했던 것이다. 그러나 테레즈의 입술이 타는듯한 상처 위에서 차갑게 느껴지자 고통은 더욱 심했다. (...) 두 사람 모두 애정이 죽었으며, 카미유를 살해함으로써 욕망도 죽었다는 두려운 현실에 직면하고있었다.’[5]


‘로랑은 별안간 환영을 본 듯 했다. 창문에서 침대로 돌아서려 할 때, 벽난로와 거울 달린 옷장 사이에 죽은 자의 얼굴이 나타나서 시체공시장에서 보았던 것처럼 푸르죽죽한 모습으로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 “저건 그의 초상화예요.” 테레즈는 마치 초상화 속의 얼굴이 알아듣기나 하는 듯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 살인자는 그 그림을 단번에 알아보지 못했었다. 공포에 질린 나머지 엇갈리고 거친 선과 얼룩진 색깔의 추한 그림을 제 손으로 그렸음을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 벽난로 앞에 있자니 무엇을 긁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 테레즈는 말이 없었다. 둘 다 카미유를 생각하고 있었다. (...) 가까이 가본 로랑은 그것이 라캥 부인이 기르는 고양이임을 알았다. (...) ‘카미유가 이 고양이 속으로 들어온 거야’ 하고 그는 생각했다. ‘이 짐승을 죽여야만 하겠어…… 꼭 사람 같아.’ (...) 단 한 가지 욕망이 그들을 사로잡고 있었다. 그것은 숨막힐 듯한 이 방에서 나가고자 하는 욕망이었다. (...) 그 침묵에는 조용한 공기 속에서 분명히 들려오는 쓰디쓴 절망의 탄식과 말없는 비난이 섞여 있었다. (...) 이것이 테레즈와 로랑의 결혼 첫날밤이었다.’[6]


테레즈와 로랑의 첫날밤에서 위와 같은 사건이 벌어지며, 결국 테레즈는 로랑의 강요에 이기지 못해 상처에 키스하게 된다. 카미유가 죽기 전 마지막 발악으로 인해 뜯겨져나간 자신의 살점 위에 어떻게 해서든지 테레즈의 입맞춤으로 인해 그의 흔적을 지워내고자 하는 로랑의 어리석은 욕망이 첫날밤에 발현된 것이다. 드가의 한 작품이 <실내> 혹은 <강간>이란 두가지 제목을 가진 점을 살펴보았을 때, 소설의 내용을 그의 녹여내 본다면 <실내>라는 제목에 조금 더 무게가 실릴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왜냐하면, 소설의 내용을 모른 채 드가의 작품에 붙여진 <강간>이란 이름만 살펴본 뒤 그림을 보았을 때, 그저 잘 모르는 남녀 한쌍이 강간 전/후에 벌어진 어떠한 사건에 대해서 그렸다고 추측하기 쉬울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 대신에 <실내>라는 작품의 이름이 주는 뉘앙스는 이들이 함께하는 방 안에서 또 다른 존재(카미유)를 느낌으로 인한 긴장과 고통이 드러날 수 있으므로 소설의 맥락과 함께하기에 더욱 적합하다. 카미유의 육체는 분명히 현실 세계에서 존재하지 않지만, 테레즈와 로랑은 그를 살해 한 이후에 그들이 존재하는 곳마다 그가(카미유) 존재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의(카미유) 존재를 느낌으로 인해 그들의 삶은 비극이 된 것이다. <실내> 속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여성과 문을 등지고 방 안의 시린 공기를 느끼는 남성을 보자. 그녀는 무엇 때문에 두려워 몸을 웅크리고, 그는 무엇 때문에 편안한 침대와 여인의 품을 놔두고 사지가 굳은 듯 제자리에 서 있을까? 그들 사이엔 마치 어떤 보이지 않는 존재가 있는듯 하다.


(3) 영화 <에밀 졸라의 생애>(The Life of Emila Zola, 1937)


윌리엄 디터리(William Dieterie) 감독의 영화 <에밀 졸라의 생애>는 제목에서 드러나다시피 졸라의 생애를 조명한 영화이다. 가난한 시절 절친 ‘폴 세잔(Paul Cezanne)’과 다락방에서 예술에 대하여 논하던 졸라의 젊은 시절부터 시작하여, 졸라가 어떻게 성공을 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작가로서 졸라가 어떤 예술관을 지녔는지 '드레퓌스 대위 사건'을 중심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명확하게 보여준다. 청년시절 졸라는 가난한 작가로서 그의 글이 주목받지 못했지만, 『나나』(Nana)라는 작품을 통해 성공하며 이름을 떨친다. 그리고 중년에 접어들며 풍족하고 배부른 생활을 할 때, 세잔에 의해 이런 삶이 자신이 작가로서 작품에 담아내었던 ‘진실 탐구 의식’과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후 억울하게 군사권력에 의해 유배된 '드레퓌스 대위의 아내'를 만나게 되었고, 드래퓌스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 밝혀내기 위해 <I accuse.>(나는 고발한다.) 라는 신문 사설을 집필하였다. 졸라는 재판에 참여해가면서 끝내 드레퓌스의 무죄를 입증하지만 결국 자신은 이산화탄소 중독에 의해 작업실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영화가 보여주는 플롯은 단순하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메세지는 명확하다.


“재능에도 기름이 끼게 되면 끝장인 거지.” (0:27:24)


위의 대사는 한창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중년의 졸라에게 세잔이 한 말이다. 그는 졸라가 현실에 만족함과 더불어 불투명해져가는 작가관을 지적한다.


에졸생1.jpg <사진 3> 윌리엄 디터리(William Dieterie), <에밀 졸라의 생애(The Life of Emile Zola, 1937)>, 1937, 0:59:22


졸라를 향한 세잔의 지적은 졸라를 단시간에 바꾸어놓지는 않았다. 하지만 드레퓌스 대위 사건이 군사부의 계획대로 묻혀져 갈 쯤, 졸라는 드레퓌스 대위의 아내에 의해 진실을 밝혀달라는 부탁을 받고 자신을 합리화하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껏 쌓아온 부와 명성에 상처를 내지 않을까 생각하며 현실과 타협하려는 면모를 가졌기 때문이다. “저도 살만큼 살았습니다. 싸울만큼 싸웠고요.” 라며 졸라는 스스로를 보호한다. 그러나 옆에 있는 세잔의 자화상은 세잔이 떠나기 직전 그에게 충고를 남긴 것 처럼 다시 한번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고 내면을 성찰하라고 충고하는 것 같은 효과를 창출한다. 결국 졸라는 마음을 돌이킨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앞에 놓여진 안락한 삶을 뒤로하고 드레퓌스 대위 사건 뒤에 숨겨있는 음모를 밝혀내고자 전념하기 시작한다. 마침내 사건의 진실은 밝혀지고 드레퓌스는 무죄를 선고받아 다시 직위에 오른다. 졸라는『정의』(Justice) 등 수많은 걸작들을 탄생시킨다. <사진 4>는 졸라와 그의 아내가 집에서 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사이에 정의의 여신 아테나로 보이는 조각상이 자리하고 있다. 졸라가 지닌 투철한 진실탐구의식은 결국 소수의 개인들이 당대 사회의 권역에 도전함으로서 '정의란 무엇인가'란 커다란 의문을 남겨주었다는 점이다. 즉, 아래의 미장센은 졸라의 작품이 훌륭한 텍스트 이상으로 사회에 정의구현을 이룩했음을 상징한다.


에졸생2.jpg <사진 4> 윌리엄 디터리(William Dieterie), <에밀 졸라의 생애(The Life of Emile Zola, 1937)>, 1937, 1:47:28


본 영화에서는 에밀 졸라의 생애에서 무엇이 그를 위대한 작가로 만들었는지 관객들로부터 명확히 알 수 있게끔 한다. 그는 결국 작가로서 자신의 주변과 사회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있는가 깊은 관심을 갖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생애 동안 몰입했던 ‘진실 추구’작업은 ‘정의’라는 단어와 결합되어 당대 사회의 부조리를 타도하는데 기여하였다. 그의 생애로부터 예술이 어떻게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지, 예술가가 지녀야 할 건강한 양심은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의 여지를 남겨준다.


3. 결론


졸라는 자연주의 작가로서 그의 자연주의는 리얼리즘의 범주에서 완전히 독립되어 볼 수 있는 것이 아닌 과학적 탐구를 가미하여 리얼리즘을 더욱 견고히 함에 있어서 그 가치가 크다. 그리고 이러한 자연주의 사조는 인간 환경에 의해 결정론적인 운명을 지닌 인간상을 등장시키고, 그 예시로 그의 작품 소설『테레즈 라캥』을 통해서 인간이 가진 타고난 유전적 기질과 욕망이 잘못된 방향으로 발산 되었을 때 어떤 결과가 초래 될 수 있을지 객관적이고 간결한 문체로 말한다. 에밀 졸라는 ‘진실’을 추구하였다.


『테레즈 라캥』과 영화 <에밀 졸라의 생애>(1937)에서 나타난 인물들은
모두 진실을 마주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테레즈와 로랑은 그들 스스로가 욕망에 눈이 멀어 카미유를 살해했다는 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지만 결국 벗어날 수 없었다. 진실을 직면하는 마지막 순간, 그들은 육체의 죽음을 통해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진실을 마주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러한 인간상은 졸라의 실제 생애에서 겪은 사람들의 인간상과 겹친다. 왜냐하면 드레퓌스 대위의 사건 그 배후에 있는 권력들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 드레퓌스에게 누명을 씌워 피하고 싶은 진실을 조작해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테레즈와 로랑이 라캥부인과 '미쇼' 등 주변사람들 앞에서 거짓 연극을 펼쳐낸 것과 다름없어보인다. 둘만의 비밀스러운 만남부터 시작된 그들의 거짓 연극은 ‘첫날밤’이라는 진실을 피할 수 없었고, 드가는 그 진실을 그림으로서 다시 재현하였다. 진실을 재현하는 방식은 본고에서 살펴본 세 작품들처럼 소설, 영화 그리고 그림 등 여러가지 예술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으며, 이것을 그저 통상 리얼리즘이라는 관점으로 묶는 것이 아닌, 그 맥을 이어받아 창조된 자연주의라는 또다른 관점 속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함을 다시한번 주지한다.


참고 문헌

[1] 유기환,『에밀 졸라 – 예술과 과학의 행복한 융합』, 건국대학교 출판부, 1996, 15p

[2] 에밀졸라 작, 박이문 옮김,『테레즈 라캥』, (주)문학동네, 2009, 31p

[3] 위의 책, 54p

[4] 윤신원, <’여성 혐오주의자’ 원조는 에드가 드가?>, 아시아경제, 2017-10-02,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7092912470965365

[5] 에밀졸라 작, 박이문 옮김,『테레즈 라캥』, (주)문학동네, 2009, 207-217p

[6] 위의 책, 218-224p


사진 자료

<사진 1> 에드가 드가(Edgar Degas), <실내(The Interior)> 혹은 <강간(The Rape)>, 1868~1869년 경, 캔버스에 유채, 81x116cm, 필라델피아 미술관

<사진 2> 에드가 드가(Edgar Degas), <무대 위에서의 발레 실습>, 1874, 캔버스에 불투명수채, 66x82cm, 파리 오르세 미술관

<사진 3> 윌리엄 디터리(William Dieterie), <에밀 졸라의 생애(The Life of Emile Zola, 1937)>, 1937, 0:59:22

<사진 4> 윌리엄 디터리(William Dieterie), <에밀 졸라의 생애(The Life of Emile Zola, 1937)>, 1937, 1:47:28


커버 이미지

Will Goldburg, <Thérèse Raquin: The Musical>, The Arbuturian, 2014-08-08, https://www.arbuturian.com/culture/theatre/therese-raquin-musi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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