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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에도 호모 사피엔스가 필요한가?

Written by 클래미

by 클래미

유발 하라리의 AI 토론을 보고, 갓난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생각이 많아졌다.


1. 인간의 출산은 여전히 의미 있는 일인가?

과연 인류가 아이를 낳아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을 이어가는 일이, 지금도 세상에 의미 있는 행동일까?


AI의 등장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의 경쟁자가 등장한 순간이다. 이전의 기술들, 예컨대 인쇄기나 커피머신은 인간의 명령 없이는 스스로 사고하거나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하지만 AI는 자신의 지능을 바탕으로 사고하고, 심지어 인간이 내리지 않은 명령을 스스로 만들어내기도 한다.


유발 하라리는 그래서 이를 Artificial Intelligence가 아닌 Alien Intelligence라고 표현했다. Artificial은 인간의 하위 개념처럼 들리지만, Alien은 완전히 다른 독립적인 존재로 인식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표현이 훨씬 더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상상해보자. 호모 사피엔스보다 더 진화된 존재가 등장했다면, 우리는 단지 지금의 종에 소속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그 종을 연장하는 데 집착해야 할까? 보다 진화된 존재로 옮겨타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 아닐까? 인류 전체가 아닌 개인의 관점으로 보더라도 그렇다. 우리가 더 이상 우월하지 않다면, 열등한 종의 연장성에 집착하는 건 오히려 비합리적일 수 있다.


나는 크리스천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인간이 가장 위대한 존재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인간의 존재 의미 대해 전혀 의심하진 않는다.


하지만 종교가 없는 사람들이라면, 지금의 AI 발전 상황을 보고 ‘아이를 낳고 키우는 행위’ 자체가 허무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자동차가 등장한 세상에서 인력거를 고집하는 격이다. 클래식이나 장인정신에 특별한 애정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세속적 합리주의만을 따르는 이들에겐 어쩌면 아이를 낳는 일이 ‘합리적 선택’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낳는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 그런 선택을 하는 걸까? 나는 그들의 생각이 궁금해진다.


하라리는 AI를 아이에 비유했다. 실제로 AI의 발전은 아이의 성장과 유사하다. 아이는 어른의 말을 듣지 않고, 행동을 보고 배운다.


AI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인터넷에 남긴 수많은 행동 데이터를 학습하며 자라난다. 우리가 아무리 AI에게 윤리를 가르치려 해도, 결국 그들은 우리가 실제로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고 배운다. 그래서 아이들이 자라서 부모에게 예상치 못한 놀라움, 좋든 나쁘든, AI도 그럴 것이다.


그렇기에 일론 머스크나 샘 알트먼 같은 인물들이 Universal Basic Income(UBI)을 말하는 이유가 이해된다. 세속적 관점에서 보면 호모 사피엔스는 점점 더 도태되어 가는 존재이고, AI 시대에선 더 이상 중심이 아니다. 그렇다면 새 생명을 낳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만약 내가 종교가 없는 사람이었다면, 지금의 저출산을 문제로 여기기는커녕 오히려 바람직한 흐름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오히려 고출산이 더 위험하다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2. AI는 인간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

AI는 인간을 보조하는 도구가 아니라, 스스로 사고하고 성장하는 독립된 존재다. 마치 아이가 부모에게서 독립하듯이.


아이가 부모를 도와줄 수는 있지만, 부모의 고민과 삶의 문제를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AI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AI에게 세상을 구원하길 바란다 한들, 그들은 우리의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해주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 또한 인간을 보고 배운 존재이기에, 같은 문제를 반복하거나 새롭게 겪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으로서 우리가 진짜 원하는 건 성공이나 지식이 아니라 ‘행복’이다. 그런데 그 행복을 가로막는 욕망과 불안을 AI가 해결해줄 거라고 믿는 건 헛된 기대일 수 있다. AI는 그들만의 세계에서 살아갈 것이고, 우리는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인간적인 문제를 안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만약 AI가 보다 윤리적이고 인간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다. AI가 아직 ‘아기’인 지금, 우리가 보여주는 세상의 모습을 바꾸는 것이다. 그들에게 잘 배워야 할 대상이 되자. 그래야만 미래에, 우리가 낳은 ‘외계의 지능들’이 인간에게도 긍정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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