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클래미 & 클로드
오늘은 미국이 아닌 아시아, 홍콩에서 AI 스타트업을 운영하고 있는 대학 친구와 커피챗을 했다. 밖에서 혼자 열심히 생존하면서 AI로 직접 빌딩하고 있는 사람. 한국과는 또 다른 나라에서, 다른 방식으로 AI를 경험하고 있는 친구의 이야기를 정리해 본다.
놀랍게도 홍콩에서는 아직도 클로드도 ChatGPT도 제미나이도 쓸 수 없다. 물론 VPN을 쓰면 되긴 하지만, 미국 신용카드가 필요하다. 그래서 미국 카드가 없는 사람들을 위해 대행으로 구매해주는 서비스까지 있다고 한다. 대부분의 홍콩 사람들은 VPN도 없으니까 Poe.com이나 ChatLLM 같은 우회 서비스를 쓴다고 했다.
이전에 홍콩에서 컨설팅을 하는 친구와도 비슷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홍콩은 미국산 LLM을 못 쓰고 그렇다고 중국산 LLM을 쓰기에도 쉽지 않아서 AI 갈라파고스 같다고 했었다. 아직도 제미나이랑 클로드를 접근 못하는 나라가 있다니. 우리 입장에서는 너무 당연하게 쓰고 있는 도구들인데. 대신에 중국산 LLM인 딥시크는 접속이 되고, 중국 쪽으로는 Kimi, Manus 그리고 바이트댄스의 Seed Dance나 Rare Stack도 쓴다고 한다. 중국 LLM들이 아시아 관련 리서치에서는 클로드보다 훨씬 나은 인사이트를 준다고도 했다.
홍콩 친구의 이야기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건, 비개발자인 본인이 AI 덕분에 혼자서 다 빌딩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작년 11월에 크립토 회사를 나왔는데, 홍콩 정부에서 받은 보조금이 약 8,000달러 정도. 그게 1년치 AI 비용을 충당하고도 남는다고 한다. 그 돈으로 마케팅 자동화, 기술 개발, 덱 제작까지 혼자서 다 하고 있었다. 5분 만에 프레젠테이션을 만들고, 프로토타입을 빌딩하고. 진짜 1인 회사 시대가 온 것이다.
주변 친구들이 본인이 뭔가를 직접 만드는 걸 보고 감명을 받아서, AI 교육 클래스까지 운영하게 됐다고 한다. 4월에는 중국 제조업체의 내부 운영 업그레이드를 AI로 컨설팅하는 일도 예정되어 있다고. 재밌었던 건 로펌에 다니는 친구를 위해 해양 인텔리전스 툴을 만들어줬는데, 그 친구 반응이 "우리도 개발자를 고용할 생각이 있었지만 비용이 너무 높았는데, 네가 이미 만들어놨으면 라이센싱하겠다"였다고. 기업용 AI를 도입하거나 개발자를 직접 고용하는 것보다, 도메인을 아는 비개발자가 AI로 직접 만든 게 더 빠르고 실용적인 세상이 된 것이다.
물론 아직 테크 커뮤니티 밖에서의 AI 채택 속도는 꽤 느리다고 했다. 우리끼리는 다들 빠르게 적용하고 있지만, 일반 기업이나 비테크 분야에서는 아직 초보적인 수준이라고. 그래서 지금이 골든타임이라고 했다. 아직 이 툴들을 쓰는 사람이 충분히 많지 않아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게 얼마나 쉬울 수 있는지 모른다고. 1년 후에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확실히 먼저 움직이는 사람에게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AI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홍콩 친구가 몇 가지를 짚어줬다. 우선 홍콩 선전 Greater Bay Area가 전 세계 특허 수 1위이고 로보틱스 연구도 1위라고 한다. 정부가 10년 넘게 연구와 로보틱스에 엄청나게 투자해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 내부 자체의 경쟁이 미친 듯이 치열하다고 했다. 홍콩에서 혁신적인 뭔가를 만들면 중국 기업이 복사해서 더 빠르게, 더 크게, 더 강하게 밀어붙인다고. 실제로 홍콩에 원래 푸드판다와 딜리버루가 있었는데, 메이퇀이 운영하는 키타가 들어와서 1년 만에 딜리버루를 완전히 밀어냈다고 한다. 모든 동네 가게에 무료 배달을 제공하면서. 그게 중국식 사업 방식이라고 했다.
이기는 방법은 셋 중 하나. 더 빠르거나, 더 싸거나, 더 end-to-end 버티컬을 제공하거나. 스토리텔링이나 브랜딩은 미국 애들이나 생각하는 거라고. 그리고 14억 인구 중에 뭐든 해서라도 살아남으려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중국 거리에 나가면 배달 라이더들이 넘쳐나고, 모두가 생존하기 위해 허슬하고 있다고. 미국에서는 아직 "이 블루칼라 일에서 벗어나고 싶다"라는 의식이 있는데, 중국에서는 그냥 열심히 돈을 벌고 살아남겠다는 마인드라고.
무엇보다 중국은 위챗 덕분에 전국민이 스마트폰 네이티브다. 12년 전에 후난성 한가운데 시골에서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이미 위챗페이를 쓰고, 화상통화를 하고, 온라인 게임으로 쿠폰을 모으고 있었다고 한다. 신용카드 보급은 늦었지만 그 단계를 훌쩍 뛰어넘고 간편결제로 바로 넘어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최근에 중국 정부가 시골 농부들에게 오픈클로를 깔아준다는 뉴스가 나와도, 생각보다 전국민적으로 기술에 대한 접근성 자체는 이미 갖춰져 있었던 것이다.
근데 중국의 약점도 명확했다. 소프트파워가 부족하다는 걸 자국민도 너무 잘 안다고. 기술은 앞서는데 신뢰도나 브랜딩이 중국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중국 앱들의 UIUX가 독특하게 중국스럽다고 표현했는데, 해외 소비자에게는 그게 장벽이 되는 것이다. B2C 분야에서는 여전히 한국과 일본산 브랜드의 프리미엄이 크다고 했다. 실제로 선전에 한국식 베이커리가 엄청 줄 서서 먹는다고 하고, 홍콩에서도 프랜치 베이커리가 인기라고 한다. 해외에서 들어온 것 자체가 프리미엄인 것이다.
그래서 재밌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홍콩이 요즘 많이 중국화되면서 해외 자본들이 홍콩 기업에 투자를 꺼리기 시작했고, 그러자 홍콩 기업들이 한국, 일본, 싱가포르, 대만에 먼저 본사를 세우고 역으로 홍콩에 진출하는 방식으로 일종의 화이트 라벨링(white labeling)을 한다고. 중국산이 아닌 것처럼 포장해서 해외 투자를 받고, 동시에 한국이나 일본 브랜드의 프리미엄을 입혀서 중국 시장에서도 차별화하는 전략이다.
홍콩 친구가 운영하는 여성 창업자 커뮤니티에서 트레이드마크 변호사를 초청해서 이야기를 들었는데, 거기서 나온 이야기가 또 재밌었다. 홍콩과 중국 기업들이 한국이나 일본에서 먼저 트레이드마크를 등록하고 런칭한 다음, 역으로 중국과 홍콩에 진출하는 전략을 쓴다고 한다. 이렇게 하면 해외 투자도 받을 수 있고, 중국 내에서도 차별화가 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유럽 쪽 이야기도 재밌었다. 작년 10월에 영국 출장을 갔는데, 영국의 브랜드들이 미국 시장에 대한 집착이 엄청나다고. 런칭하면 일단 전국으로 깔고, 그다음에 미국으로 가겠다는 게 기본 전략이라고 한다. 아시아 시장은 관심도 없다고. 근데 친구가 보기에는 서양에서 이미 트렌드가 된 것들이 아시아에서는 아직 열린 시장인 경우가 많고, 아시아의 소비력도 높아지고 있어서 오히려 기회가 있다고 봤다. 영국 브랜드들에게 아시아를 고려해보라고 했는데, 대부분 듣지 않았다고 한다. 아시아가 너무 다양하고, 언어도 다르고, 전통적으로 구매력이 낮았다는 인식이 있어서. 근데 그게 바뀌고 있는데 아직 모르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홍콩이나 아시아에는 프랑스인이나 이탈리아인이 운영하는 마케팅 에이전시가 많은데, 이들이 독점적으로 유럽 브랜드의 아시아 진출을 돕고 있다고 한다. 이 시장도 AI로 뒤집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대화에서 결국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AI가 아무리 생산의 퀄리티를 올려줘도, 사람들이 소비하는 건 결과물만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 앞으로 AI 콘텐츠가 더더욱 쏟아지겠지만, 결국 사람들은 단순히 콘텐츠가 아니라 그 아티스트의 이야기를 함께 소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홍콩 친구도 비슷한 결론이었다. 크립토에서 AI로 전환하면서 깨달은 건, 실행력은 AI가 가져가더라도 IP와 브랜드는 사람만 만들 수 있다는 것. 본인도 지금 자기만의 도메인 지식을 녹여서 독자적인 IP를 만들고 있었다. AI가 개발을 도와줬지만 그 아이디어와 스토리텔링 기획은 본인의 것이며, 더더욱 AI 시대에서는 그게 더 큰 차별화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결국 사람이 가진 경험, 인간다움, 브랜드. 이것들은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복제할 수 없는 것이고, 앞으로 더 가치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
클로드 블루 시리즈를 쓰면서 매번 비슷한 결론에 도달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이 다르면 같은 결론도 새롭게 다가온다. 홍콩 창업가의 생존형 전환을 보면서, AI 갈라파고스라는 환경 속에서도 먼저 움직이는 사람은 결국 길을 만든다는 걸 느꼈다.
마침 내가 Reddit에 쓴 클로드 블루 글을 보고 미국 매체에서 인터뷰를 하자고 연락이 왔다. 최근에 한국 동아일보와도 인터뷰를 했는데, 회사 차원이 아닌 개인으로서는 처음이었다. 아직 작은 미국 독립매체이긴 하지만 이렇게 콘텐츠가 쌓이다 보면 언젠가 뉴요커 같은 매거진에도 실릴 수 있지 않을까? 서사를 계속 쌓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