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클래미 & 클로드
*클로드 블루(Claude Blue)는 제가 만들어낸 표현이나, 실리콘밸리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AI 우울증 현상을 뜻합니다.
메타 시니어 AI 엔지니어, 그리고 실리콘밸리 창업가와의 대화
2025년, AI가 코딩 업계를 강타했다. 당시에는 "코딩을 AI에 전적으로 맡겨야 한다"는 파와 "최소한 사람이 모두 리뷰하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는 파가 팽팽하게 맞섰다. 하지만 2026년 3월인 지금, 그 논쟁은 사실상 의미를 잃었다. AI가 생산하는 코드의 양이 사람이 리뷰할 수 있는 수준을 이미 넘어섰기 때문이다. 과도기를 정면으로 맞은 셈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흐름이 2026년에는 사무직에게도 올 것이라 예상했다. 이미 코딩 업계에서 선례가 있으니, 문서 작업과 데이터 분석을 주로 하는 비개발 직군에도 비슷한 충격이 오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내 주변에 미국과 한국에서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는 15명 정도에게 물어본 결과, AI로 인한 병목이나 폐해를 체감하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두 사람이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했다.
우리 회사 안에서도 이 주제로 갑론을박이 있었다. AI가 사무직의 업무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시대가 곧 올 것이라는 점은 모두 동의하지만, 시기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다. 나는 아직 시기상조라고 봤다. (부끄럽지만) 아직 내가 직접 AI로 인해 업무에서 병목을 느낀 적이 없었고, 주변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반면 동료 한 명은 이미 AI로 인해 사무직의 업무 상황이 크게 바뀌었고, 문서 작업이나 중요한 의사결정에서 AI가 만든 결과물의 맥락을 놓치는 폐해가 시작되고 있다고 했다. 그것은 사람의 책임이 아니라 이 시대의 과도기적 문제라고.
그런데 오늘, 메타에서 시니어 AI 엔지니어로 일하는 대학교 선배와 화상통화를 하면서 확신이 강하게 들었다. 트렌드의 끝단에 있는 실리콘밸리에서는 이 상황이 이미 현실이었고, 구체적인 유즈케이스를 직접 들으니 너무나 실감이 났다. 몇 주에서 최소 몇 달 안에, 사무직도 AI-native가 강제되는 현상이 올 것이다. 아무도 문서 작업을 일일이 하거나 웹사이트를 하나하나 들어가며 노트를 정리하지 않게 될 것이다. 터미널에서 클로드 코드든 코워크든, 각각의 에이전트를 부리면서 일하는 것이 보편화될 것이다. 그리고 그에 따른 과도기적 폐해를 코딩 업계처럼 사무직도 똑같이 겪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메타의 AI 엔지니어로서 가장 최전선에 있는 이 선배조차 AI의 발전으로 인해 극심한 현타를 느끼고 있다는 점이었다. 스스로 창업가 기질을 키우며 사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고 했다. 스타트업에 관심은 있었지만, 본인이 직접 창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상상도 못 했던 사람이다. 지금은 사이드 프로젝트도 순수한 재미보다는, 언젠가 사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 도래할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이라고 했다.
이 선배에 대해서는 이전에 한 번 글을 쓴 적이 있다. 선배의 배경과 커리어에 대해 궁금한 분은 참고하시면 좋겠다 (https://brunch.co.kr/@hiclemi/92).
같은 날, 실리콘밸리에서 스타트업을 운영 중인 동갑내기 친구와도 커피챗을 했는데, 놀랍게도 거의 같은 톤의 이야기를 들었다. 빅테크 시니어 엔지니어와 스타트업 창업자라는 전혀 다른 위치에 있는 두 사람이, AI 시대의 실존적 위기감과 그럼에도 멈출 수 없다는 절박함을 똑같이 느끼고 있었다.
오늘 대화에서 나눈 내용을 주제별로 정리해 본다.
선배는 메타에서 시니어 AI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회사에서는 클로드 코드를, 집에서는 오픈AI의 코덱스를 쓴다. 이유는 단순하다. 회사에서는 클로드 코드와 제미나이만 선택할 수 있는데, 코딩은 클로드가 압도적으로 좋으니 클로드를 쓴다. 집에서 개인 프로젝트를 할 때는 이미지 생성이 필요한데 클로드 코드에서는 지원이 안 되고, 무엇보다 코덱스 프로는 200불을 내면 토큰을 사실상 무한히 쓸 수 있다. 클로드 코드 맥스도 200불이지만, 일정 이상 쓰면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실제로 회사에서 클로드 코드로 한 달에 2,000불어치 토큰을 쓴다고 했다. 그걸 개인 비용으로 감당할 수는 없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선배의 작업 환경이었다. 옵시디언이라는 개인 노트 앱에 자동으로 지식 그래프가 쌓이는 VS Code 확장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어 쓰고 있었다. AI와 대화할 때마다 모든 대화 내역이 옵시디언 문서로 자동 생성되고, 기존 문서들과 링크를 형성하면서 그래프가 성장한다. 원래 옵시디언은 사용자가 수작업으로 메모를 쓰고 연결하는 도구였는데, AI 시대가 되면서 AI와의 대화 자체가 메모의 원천이 되니 진입 장벽이 크게 낮아진 셈이다. 메타 직원이 7만 명인데, 사내 옵시디언 사용자 모임에 가입한 사람만 1만 명이 넘는다고 했다.
더 놀라웠던 것은 메타 내부에서 모든 생산성 도구가 에이전트로 접근 가능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구글 드라이브, 구글 독스, 스프레드시트, 이메일, 지라, 컨플루언스, 위키, 화이트보드 등 전부 다 연결되어 있다. 선배는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에이전트랑만 일하고, 내가 원하는 결과물의 형태로 각 툴들에 쌓이는 것이다." 스프레드시트에 직접 들어갈 필요도 없고, 지라에 들어갈 필요도 없다. 터미널 안에서만 활동하면, 데이터베이스가 알아서 적재된다.
이 환경이 얼마나 성숙한지를 보여주는 예가 있었다. 올해 1월, 입사 후 첫 연말 평가를 할 때 사내 AI 평가 도구에 "내가 입사하고 나서 했던 일 다 정리해 줘"라고 요청하니, 입사 이후 작성한 모든 보고서와 문서를 자동으로 요약해서 방대한 목록을 만들어줬다고 한다. 본인은 거기에 자기 소감만 추가하면 셀프 평가가 끝난다.
메타에서의 AI 활용은 편리함만을 가져다준 것이 아니었다. 선배의 업무 방식을 들으면 그 양면이 명확히 보인다.
새로운 업무를 받으면, 에이전트를 두 개 동시에 켠다. 하나는 업무의 목적을 던져놓고 "야, 먼저 시작해"라고 보내는 실행 에이전트다. 아직 본인도 그 업무가 정확히 뭔지 모르는 상태에서, 일단 목표만 주고 달리게 한다. 다른 하나는 그 업무가 무엇인지를 본인에게 설명해주는 학습 에이전트다. 실행 에이전트가 하루 이틀 돌면 코드가 만 줄 가까이 만들어진다. 그 사이 선배는 학습 에이전트를 통해 업무를 파악하고, 만들어진 코드를 또 다른 에이전트와 함께 분석한다. 문제를 찾아도 대부분 마이너 리비전이고, 그 수정 사항을 반영해서 업데이트하는 것도 에이전트가 해준다.
하지만 문제는 이 속도를 감당하지 못하는 데서 발생한다. 선배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지금 메타 인프라 다 박살났어." 코드를 읽지도 않고 그냥 올려버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진 것이다. AI가 만든 코드를 충분히 리뷰하지 않고 커밋하면서 인프라 안정성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고 있다. 이것이 바로 바이브 코딩 시대의 과도기적 폐해다.
선배는 이 현상이 비개발 직군에도 그대로 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100명이 일하는 비소프트웨어 회사가 있다면, 세 명이 에이전트를 활용해 똑같은 일을 하는 회사를 만들어서 가격을 후려치고 기존 회사가 죽는 상황이 먼저 올 것이다. 그다음에는 그 세 명 안에서도, 에이전트가 하는 일들을 감당하지 못해 발생하는 크라이시스가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러다 감당을 못 하는 회사들은 또 죽고, 세 명으로 에이전트를 오케스트레이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회사만 살아남을 것이다.
선배에 의하면, 실리콘밸리에서는 이미 "바이브 코딩"이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고 한다. 대신 "에이전트 오케스트레이션"이라는 표현이 훨씬 많이 쓰인다. 바이브 코딩은 "게임 하나 만들어 줘"처럼 대략적인 요청을 던지는 수준이다. 하지만 지금은 훨씬 구조화된 접근을 한다. 게임이라면 장르, 캐릭터의 성장 범위, 적들의 레벨 증가 방식 등을 엄청나게 자세한 스펙 문서로 만든다. 그리고 반복되는 요청들의 공통점을 묶어서 스킬이나 툴 같은 공통 스펙을 만들고, 그것들을 에이전트에게 어떻게 잘 먹이느냐가 결과물의 완성도를 좌우한다.
"AI로 원하는 결과를 누가 더 잘 만드냐"가 실력이 되어버린 것이다. 선배의 설명을 더 풀어보면 이렇다. 앞으로 사람이 하는 일의 핵심은 시작과 끝이다.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를 감각으로 아는 것, 그리고 나온 결과물이 마음에 드는지 판단하는 것. 이 두 가지는 사람만 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결과물이 성에 안 찰 때 어느 부분이 어떻게 성에 안 차는지를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성공한다. 기업 단위에서는 이것이 훨씬 복잡해진다. 큰 작업을 잘게 쪼갠 다음, 어떤 부분은 AI가 검증해도 괜찮은지, 어떤 부분은 반드시 사람이 봐야 하는지, 어떤 부분은 AI가 알아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되는지를 정확히 설계해야 한다. 에이전트에게도 토큰 비용이 들기 때문에, 사람과 에이전트의 리소스를 최적화하는 것 자체가 핵심 역량이 된다.
메타에서 AI를 쓰는 것은 엔지니어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프로그램 매니저, HR, 영업 등 사실상 전 직군이 AI를 달리고 있다고 했다.
선배의 아이 생일에 만난 인도인 아빠는 애플에서 영업 데이터를 관리하는 팀에 있는데, 자기 팀 전체를 에이전트 기반 업무 방식으로 전환했다고 한다. 데이터를 관리해서 인사이트를 만들어 경영 판단에 도움이 되는 데이터 사이언스를 하는 곳인데, 그것을 전부 에이전트화한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에게 여력이 생기고, 그 여력으로 업무 범위를 확장했다.
메타 사내 페이스북에는 HR이나 피플 팀 소속의 비엔지니어들이 "나는 엔지니어가 아닌데 이런 프로그램 만들어 봤다, 괜찮은 것 같으니 한번 써 봐라"라고 올리는 게시글이 종종 올라온다고 한다. HR 팀은 각 엔지니어들이 접속해서 사용하는 모든 소프트웨어 툴체인의 데이터를 가져오는 에이전트를 만들어서, 직원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파악하고 자기만의 평가 점수 체계를 만들고 있었다.
영업직처럼 대면 미팅이 많은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엑셀 시트에 키 메시지를 추가해서 던지면 슬라이드가 자동으로 만들어진다. 선배 본인도 요즘은 슬라이드를 한 땀 한 땀 만들지 않는다고 했다. 원하는 문단과 그래프를 던져주고 "만들어"라고 하면 일단 만들어지고, 거기서 "이 부분 테이블 좀 더 크게"처럼 몇 번 돌리면 마음에 드는 결과물이 나온다.
"지금 메타에서 AI 안 하는 사람 없는 것 같다"는 것이 선배의 결론이었다.
선배는 물리학과 엔지니어링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국내 대기업과 메타를 거치면서 오랜 시간 자신만의 전문성을 갈고 닦아 온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느끼는 현타는 무게감이 달랐다.
"글을 쓸 때 구조라든가, 비주얼라이제이션 하는 나만의 방법론 같은 게 있었다. 그게 나의 엣지였다. 그런데 AI한테 정리해 달라고 하면 너무 잘 써. 명문이 탁 나와." 몇 년, 몇 십 년간 축적한 노하우가 엣지였는데, 그것이 순식간에 대체되는 경험이었다.
이 현타가 온 시점도 구체적이었다. 2월 초까지만 해도 흥분 상태였다고 한다. 새로운 AI 기능이 나올 때마다 "와, 대박이다, 신난다" 하면서 쓰고 있었다. 그런데 클로드 코드 오퍼스 4.6이 나오고 코덱스 5.4가 나온 이후,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그 0.1의 차이가 내가 위기감을 느끼는 그 경계였던 것 같다." 1월 중순에 나온 모델을 2월부터 본격적으로 써보니, "뭐야? 나 얼마 안 남았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선배는 자신의 심리 상태를 솔직하게 묘사했다. 부정, 좌절, 분노를 거쳐 며칠 전부터 슬슬 받아들이는 마음으로 바뀌고 있다고. 이 주기가 놀라울 정도로 짧다는 것 자체가, 기술 트렌드의 속도가 그만큼 빠르다는 뜻이다. "옛날에는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잘 써봐야 평가를 할 수 있었다. 지금은 유튜브 두 시간 보고 한번 해봤더니, 와 나를 대체하겠네. 망했네. 이게 하루 만에 일어난다."
본인이 가장 자부하는 것이 학습 능력이라고 했다. 누구한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하지만 에이전트가 쏟아내는 것에는 지고 있다고 했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AI 산업의 구조적 변화로 이어졌다. 선배의 관점은 명확했다. 베이스 모델 싸움은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고, 이미 결판이 났다는 것이다.
진지하게 사람을 대체할 수준의 생산성을 내는 베이스 모델을 가진 회사는 네다섯 개뿐이다. 클로드(앤트로픽), GPT(오픈AI), 제미나이(구글), 그록(xAI), 그리고 메타가 끼면 다섯 개. 딥시크나 키미 같은 중국 모델로 재미삼아 장난감처럼 쓰는 경우는 있어도, 진짜 업무 생산성을 사람 대체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이 네다섯 회사뿐이라는 것이다.
이 구도에서 중요한 것은, 이 다섯 회사만이 에이전트 오케스트레이션을 위한 엔지니어링을 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다는 점이다. 자체 모델이 있으니 에이전트 간 소통 구조나 각 분야별 가치를 만들어내는 레이어를 마진 걱정 없이 만들 수 있다. 반면 퍼플렉시티처럼 베이스 모델 없이 래퍼(wrapper)만 하는 회사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구글이 AI를 좀 더 검색에 반영하면 바로 위협받는 구조다.
메타의 전략은 다른 빅테크와 조금 달랐다. 메타의 AI는 고객들이 쓰게 하기 위해 만드는 것이다. 인스타그램 유저들이 고화질 영상을 넘기면서 쓸 수 있도록, 강하면서도 싸야 한다. 클로드나 GPT처럼 B2B 생산성 도구와는 성격이 다른 것이다. 그래서 메타 내부에서는 외부 AI 도구를 가져와 쓰는 데 전혀 거리낌이 없다. "우리가 만든 AI는 고객들이 쓸 걸 만드는 거지, 우리가 쓸 거 만드는 게 아니니까."
선배는 이전에 국내 대기업 본사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같은 AI 엔지니어 업무인데도 삶이 완전히 다르다고 했다. 핵심적인 차이는 "내가 뭘 하려고 할 때 허락을 받는 깊이"였다. 대기업에서는 무언가를 하려면 상사의 허락을 받고, 그 상사는 또 윗사람의 허락을 받고, 허락을 받으면 계약서를 쓰고, 계약서가 통과되면 준비를 하고, 준비 과정을 또 보고하는 절차를 거친다. 메타에서는 그냥 만들어버린다. 만들어서 올린 다음, 관련된 사람들의 이름을 태그하고 "나 이렇게 했는데 괜찮지?"라고 물으면, 한 명만 승인해도 바로 반영된다.
이 차이는 한국 문화와 미국 문화의 차이이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제조업 대기업의 문화와 소프트웨어 스타트업 문화의 차이이기도 하다. 한국 대기업 문화 플러스 보안 문화 대 메타의 소프트웨어 문화 플러스 스타트업 문화 플러스 미국 문화. 이 조합이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의 삶을 완전히 다르게 만든다.
선배는 AI를 쓰지 않는 조직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말했다. "지금 안 쓰고 있으면 안 쓰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걔네들은 계속 안 쓸 것이다." 보안 때문이라는 표면적 이유 뒤에는 이해관계의 구조가 있다. 사내 AI 도구를 만들어 납품하는 계열사가 있고, 그 관계가 이미 형성되어 있는데, 외부의 클로드 코드를 쓰자고 하면 그 이해관계가 무너진다. 높은 분들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선배의 비유가 인상적이었다. NC소프트의 리니지를 예로 들었다. AI 인력을 대규모로 뽑아서 투자했지만, 결국 고가 아이템을 파는 비즈니스 모델 자체는 바뀌지 않았다. AI 기능은 아무도 안 쓰는 곳에 끼워넣어졌을 뿐이다. 성공 공식이 자기를 여기까지 끌고 왔기 때문에, 새로운 것이 나온다고 방식을 바꾸지 않는 것이다.
"결국 너네 같은 회사들이 이런 대기업을 잡아먹는 날이 오는 것이다."
선배가 메타로 이직한 것에 대해서도 소회를 밝혔다. "내가 메타 이직을 정말 좋은 타이밍에 잘했다. 이 시대가 이렇게 바뀌고 있는데 내가 거기(대기업)에 있으면 여전히 AI 못 쓰고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대기업에 있을 때는 사내 챗봇 옆에 코드를 복사-붙여넣기 하면서 일했다고 했다. 코드 에이전트로 직접 작성하는 것과는 생산성이 다섯 배는 차이가 난다고. "대기업에서 3개월에 한 일을 지금 일주일에 할 수 있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자녀 교육으로 이어졌다. 선배에게는 아직 어린 아이가 있다. 선배는 앞으로 5년 안에 엄청난 변화가 정리될 것이라 봤다. 그때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 이미 세상이 재편된 이후이기 때문에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예시들이 눈에 보일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좋은 때에 태어났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 전제 조건이 있었다. "다음 세대는 무조건 앙트러프러너십이다. 경영자 마인드를 갖추지 못한 아이들은 자리를 못 찾을 것이다." 그래서 최대한 아이의 기를 죽이지 않으려 한다고 했다. 혼을 내면 기가 죽고, 기가 죽으면 수능형 아이가 되기 쉽고, 수능형 아이로 자라면 다음 세대에는 정말 답이 없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감을 갖고 스스로 창업가적 기질을 키울 수 있게 하는 것이 유일한 교육 방침이라고 했다.
반대로, 앞으로 5년은 세상이 크게 달라지면서 혼란이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함께 내놓았다. AI에 영향을 받는 직군의 대체 확률 점수가 높은 사람들은 무조건, 뭐든지 해야 한다고. "올해는 진짜 중요한 한 해다. 너무너무 중요한 한 해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실리콘밸리에서 창업 중인 동갑내기 친구와도 커피챗을 했다. 스탠포드 MBA 출신으로 2024년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창업해, 지금까지 40개 이상의 제품을 만들고 폐기하기를 반복하며 달리고 있는 사람이다. 잠시 한국에 출장 나온 김에 만났는데, 메타 선배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지금 실리콘밸리는 사실 매우 우울하다. 심지어 그 우울증 때문에 떠나고 싶다고도 느낀다." 실리콘밸리에서는 "클로드 우울증"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라고 했다. AI로 인해 인간의 일자리와 역할이 언젠가 모두 없어질 것을 너무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메타가 최근 개발자 1만 6천 명을 해고하고 모든 신입 채용을 멈춘 것도, 추상적인 뉴스가 아니라 바로 옆에서 일어나는 현실이다.
이 친구의 회사 비전은 "모든 사람에게 개발 파워를 얹혀준다"였다. 개발자와 비개발자의 간극을 좁히고, 비개발자에게도 AI를 통해 개발 능력을 주자는 것이었다. 2024년에는 그것이 맞는 방향이었다. 그래서 본인을 제외한 모든 직원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채용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한곳에 너무 몰빵한 것 같고, 회사에 다른 역량이 부족한 것이 걱정이라고 했다. 이런 고민을 직원들끼리도 꽤 투명하게 나눈다고 한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말은 이것이었다. "고객에게는 오늘을 팔고, 투자자에게는 10년을 팔아야 한다. 근데 10년 후에 우리 모두 침대에 누워있을 것을 너무나도 잘 안다." 주변 사람들 모두가 그렇게 느끼고 있어서, 실리콘밸리 전체에 묘한 우울감이 깔려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이 친구가 실리콘밸리를 떠나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 처음 MBA 유학을 갈 때는 한국의 통일성이 답답해서 다양성을 원해 미국에 갔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니, 실리콘밸리는 인종은 다양해도 결국 다 스타트업과 AI 사람뿐이라 오히려 획일적이라고 느낀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에 있으면 큰 꿈을 꾸기 어려운 반면, 실리콘밸리에는 미친 사람들과 큰 꿈이 있다. 거기서 오는 영감 때문에 쭉 미국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재미있었던 것은, 이런 우울감 속에서 오히려 AI 소프트웨어와는 전혀 다른 방향의 상상력이 나온다는 점이었다. 이 친구는 만약 본인이 투자를 한다면 K-푸드에 하고 싶다고 했다. 미국에서는 지금 넷플릭스에 항상 한국어 콘텐츠가 걸려 있고, 미국 사람들이 K-컬처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미디어에 나오는 K-푸드에도 관심이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미국에서 한식은 "young하지 않은" 이미지가 문제라고 했다. 강남이나 성수동의 감성을 그대로 미국에 이식하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고, 치폴레나 맥도날드처럼 오래된 프랜차이즈밖에 없는 미국 시장에서 새로운 플레이어에 대한 수요가 크다고 봤다. AI 소프트웨어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이 오히려 테크와 가장 먼 산업에서 30년짜리 기회를 본다는 것이, 지금 실리콘밸리의 묘한 분위기를 상징하는 것 같았다.
더 소름 돋았던 이야기도 있었다. AI로 인해 많은 사람의 일자리가 줄어들 텐데, 역사적으로 국가가 빠르게 일자리를 만들어야 할 때 가장 큰 사건은 전쟁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실리콘밸리 일각에서는 군수 기업에 롱을 잡고 AI 스타트업에 숏을 치는 것이 맞는 것 같다는 이야기가 반쯤 농담, 반쯤 진담으로 돌고 있다고 했다. 낭만적으로 보면 AI로 일자리가 사라진 사람들이 VR 같은 엔터테인먼트로 몰리겠지만, 비극적으로 보면 국가가 전쟁을 시작하고 사람들이 죽는다. 그런데 실제로 생각보다 너무 일찍 여러 전쟁이 시작돼버려서, 이 이야기가 단순한 농담으로만 들리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메타의 시니어 AI 엔지니어와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창업자. 빅테크와 스타트업이라는 전혀 다른 위치에 있지만, 두 사람이 느끼는 감정의 결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었다. AI가 가져올 미래에 대한 실존적 위기감, 그럼에도 멈출 수 없다는 절박함, 그리고 앙트러프러너십만이 유일한 답이라는 확신. 이것이 2026년 봄, 실리콘밸리의 공기였다.
요즘 AI 시대다 보니 모두가 글로벌 사업을 하고 싶어 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질문이 있다. 꼭 현지에 가야 하느냐는 것이다. 나도 이 질문을 두 사람에게 똑같이 던져봤다.
선배의 대답은 명쾌했다. "비즈니스 쪽은 여전히 관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선배는 바로 전날에도 한 VC로부터 자문 요청을 받아 줌 미팅을 했다고 한다. 본인은 나름 편하게 얘기해줬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나와 대화하면서 깊이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관계를 형성하는 건 되게 중요한 것 같다. 근데 관계를 줌으로 형성할 수 있을까? 밥은 먹어야 되지 않나?" 얼굴을 보고 밥을 먹어야 서로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AI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리콘밸리 창업자 친구도 같은 맥락이었다. 이 친구는 스스로 영업을 못 하는 I 성향이라고 했는데, 그럼에도 초기 고객을 확보한 방법은 결국 스탠포드 동문 네트워크였다. 스탠포드 사람들이 스타트업에 늘 관심이 많다 보니 오히려 본인도 배우고 싶어서 참여해주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이 친구가 한국에 잠시 온 이유도, 실리콘밸리의 AI 우울증 속에서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고 가족끼리 좋은 시간을 보내려는 것이었다. 아무리 소프트웨어가 글로벌하고 원격 근무가 가능해도, 사람을 만나야만 채워지는 것이 있다.
나 자신도 생각해보면, 메타에 있는 선배에게 편하게 연락해서 이런 깊이의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눈에 보이지 않는 자산이다. 다른 사람들은 미국에 있는 빅테크 직장인을 만나 인터뷰하는 것 자체를 돈 주고 해야 하는 상황이니까. 이런 관계 자산은 비즈니스가 되든 아니든, 엄청난 임팩트를 만들어낸다.
오늘 하루 동안 실리콘밸리의 빅테크 엔지니어와 스타트업 창업자, 두 사람과 대화하고 나니 한 가지가 분명해졌다. 글 서두에서 나는 주변 15명에게 물어봐도 AI로 인한 업무 병목을 체감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썼다. 그때는 아직 시기상조인가 싶었다. 하지만 오늘의 대화를 통해 생각이 바뀌었다. 우리가 병목을 못 느끼고 있다면, 그건 아마 우리가 AI로 일을 잘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아직 AI를 충분히 못 쓰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미 실리콘밸리의 워커들은 모두 클로드 블루를 느끼고 있는데, 우리가 뭐라고.
오히려 실리콘밸리 워커들처럼 AI 에이전트를 끝까지 밀어붙여서, 삶이 피폐해질 때까지 병목을 느끼러 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 눈 떠 있을 때 에이전트 3개 이상 안 돌아가고 있으면, 우리의 목숨이 닳고 있다고 생각해야 하는 시대. 오늘이라도 하나라도 더 돌려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었다.
AI 전문가는 아니지만 늘 커피챗에 열려있습니다. 본인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시다면, 다른 분들의 경험을 더 자세히 듣고 싶으시다면 링크드인으로 DM 혹은 이메일(pahan@umich.edu)로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