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클래미
한국 대기업 본사에서 근무하다가, 미국 대학원에 진학하여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한국 대기업 미국 지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대학교 선배가 있다. 최근에는 회사에서 1년 동안 본사로 발령을 받아 한국에 귀국했다. 오랜만에 만난 선배에게 그동안의 다양한 경험담을 들었고, 그중 몇 가지 인사이트 풀한 내용을 공유해 본다.
1. 미국의 근무 환경이 더 유연한 이유
한국 직장인의 근무 패턴은 대체로 비슷하다. 아침 9시에 출근하여, 오후 12시에 점심을 먹고, 저녁 6시에 퇴근하는 사이클이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각자 다른 시간대에 출근, 점심, 퇴근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 이유는 미국이 좀 더 자율성을 보장해 주는 문화도 있지만, 애초에 다양한 인종, 문화, 종교 때문에 일관된 규칙을 정할 수 없는 현실도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무슬림 율법에 따르면 일주일에 한 번은 점심을 3시간 먹어야 한다. 그렇다면 서로 점심시간을 맞추는 게 불가능하다.
때문에 미국에서는 각자의 상황에 맞춰 어느 정도 자율성을 보장해 주고, 직원들은 이 자율성 안에서 스스로 스케줄링을 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선배는 오전에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오전 10시쯤 출근한다. 오후 3시쯤 아이를 픽업하여 집으로 귀가한 후, 저녁 8시에 아이를 재우고 재택근무로 다시 업무에 돌입한다고 한다. 이로써 좀 더 가족 중심적인 삶의 패턴을 개발할 수 있는 장점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은 보편적인 삶의 패턴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삶의 불편한 부분들을 보완해 주는 서비스들이 발전할 수 있었다. 대표적인 예로 유치원 버스와 키즈 카페를 들 수 있다. 부모님의 출퇴근 시간대가 대부분 정해져 있으므로 이에 맞춰 버스를 운영할 수 있고, 주말에는 아파트 곳곳에 키즈 카페를 운영하여 부모님들의 휴식 시간을 제공해 준다. 이러한 시스템은 건조해 보일 수 있지만, 미국인 입장에서는 매우 안전하고 효율적이라고 보일 수도 있다.
국내에선 이러한 다양한 보조 시스템이 발전했기 때문에, 한국 회사 입장에서는 부모가 일에 더 집중하고 자녀를 100% 돌보는 일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로 인해 한국의 근무 환경이 조금 더 일 중심적으로 발전하지 않았을까 싶다. 결국 무엇이 더 좋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각자만의 문화와 사회 구조에서 자연스럽게 생긴 환경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아무리 미국에 있더라도 한국 대기업이면 한국과 비슷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고 한다. 이유는 옆 동네 구글, 애플과의 채용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최소 그들과 비슷한 수준의 근무 환경을 제공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2. 미국 빅테크 회사의 업무 강도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 규모, 철학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그중에서도 메타와 테슬라는 매우 독특한 업무 방식을 갖고 있다고 한다.
메타의 경우 정해진 팀이 없고, 프로젝트 매니저(PM)가 업무를 따와서 디자이너, 개발자 등을 소집하여 일을 진행시킨다고 한다. 따라서 적극적으로 업무를 따오는 능력과 성과를 어필하는 능력이 매우 중요하며, 내향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에게는 힘든 환경일 수 있다고 한다. 특히 한국인처럼 스스로를 낮추는 경향이 있는 사람에게는 중간 이상으로 올라가기 어려울 수 있고, 반면에 과대포장을 적절히 잘하는 인도나 중국인들은 오히려 나중에 치고 나가는 케이스가 종종 있다고 한다.
테슬라의 경우 고된 업무 강도 때문에 자녀가 있는 부모라면 기피해야 할 회사 1순위라고 한다. 그럼에도 테슬라에 지원하는 이유는 다른 회사와 유리하게 연봉 협상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이처럼 비슷한 업계에서도 서로가 다른 방식의 업무 스타일을 갖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3. 커리어를 발전시키는 방식
마지막으로 이 주제가 가장 인상 깊었다. 선배는 학부에서 물리학을 전공했고, 당시 태양 에너지 분야가 가장 각광을 받던 분야였기에 관련 분야로 첫 커리어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산업은 뜨고 지기 마련이고, 태양 에너지 분야가 국내에서 지기 시작하면서, 미국 대학원으로 진학하여 AI를 전공했다고 한다. 현재는 AI 분야에서 연구를 하고 있으며, 네이처 등 다양한 학술지에 연구 내용을 발표했다.
선배는 전략적으로 지금 가장 뜨고 있는 산업으로 커리어를 발전시켜 왔다고 한다. 물론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은 분야라 배우는 과정이 필요했지만, 결과적으로 트렌드가 도래하면서 빛을 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에 잠시 머무는 동안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고 한다. 선배가 AI에 대해 한국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 "원래 이런 거 하시던 분 아니잖아요"라는 말을 들은 것이다. 즉, 한국에서는 학부 때 공부한 전공이 본인의 출신을 뜻하는 사고방식이 아직도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20년 전에 AI를 전문적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 당시만 해도 AI는 정말 초급의 수준이었다. 만약 20년 전 학사 전공을 가지고 그 사람의 '현재' 역량을 판단하는 기준이 있다면, 나의 커리어는 그때 잠깐 반짝이고 트렌드가 꺾여버리는 순간 ‘지는 해’일 수 밖에 없다.
선배는 한국을 떠났을 10년 전과 비교해서 한국의 근무 환경이 그래도 많이 발전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 초일류 대기업에서 "원래 이런 거 하시던 분 아니잖아요"라는 말을 듣는 순간, 본인의 커리어를 끊임없이 갈고닦기 위해 미국에서 일을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직급과 나이가 별개이며, 60대가 넘는 나이일지라도 새로운 분야를 배우기 위해 팀원으로 다시 시작하는 사람들도 꽤 많고, 아무도 이것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치열한 경쟁의식 때문인지 국내 산업 발전을 위해 이런 의식 개선이 필요하지 않은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