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더 이상 일을 잘하고 싶은 욕망이 없다

Written by 클래미 & 클로드

by 클래미

*뉴욕 상장 테크 기업 PM과의 대화, 그리고 우리 팀의 고민*


며칠 전에 쓴, Claude Blue(클로드 블루) 브런치 글이 완전 바이럴이 됐다. 나도 모르는 카톡방과 SNS에서도 퍼지면서, OO일보 기자님도 연락 주시고 하버드 연구원님, 해외 빅테크 개발자분들 등 자고 일어나니까 모르는 분들께 링크드인과 카톡 오픈챗으로 연락이 오면서 커피챗을 요청해 주고 계신다. 나에게 어떤 해답이 있으신지 궁금하신 것 같은데, 그런 게 없어 실망스럽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래도 얘기하다 보면 서로 인사이트를 주고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웬만하면 다 만나려고 한다.

https://brunch.co.kr/@hiclemi/146


동시에 AI 트렌드의 시초인 미국에서의 반응이 더 궁금해서, 꾸준히 활동 중인 레딧에도 같은 글을 올렸는데 마찬가지로 게시글이 터졌다. 물론 Claude Blue라는 키워드를 검색하면 별게 안 나온다. (코로나 블루에서 따온, 내가 만든 키워드라서 ㅎㅎ) 그래도 AI 우울증이라는 현상은 사실인 것 같다. 특히 실리콘밸리에서는. 그리고 점점 다른 미국 대도시로도 퍼지고 있는 듯했다. 아무래도 한국은 시차가 있다 보니, 미리 상황을 파악하고자 레딧 외에도 나의 미국 지인과 소개를 통해 계속해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뉴욕에 있는 테크 상장사의 PM으로 있는 지인과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눴다. 물론 AI가 빠르게 현장에 침투한 것은 맞다. 하지만 생각과 다르게 모두가 똑같이 반응하는 것은 아니었다. 왜 빅테크와 스타트업이 아닌 그 외 도메인의 기업들은 반응이 좀 더 느린지,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은 AI의 흐름으로 인해 일을 더 잘하고 싶은 욕망이 여전히 있을까? 아니면 그 여파가 너무 커서 불현듯 도망치고 싶은 욕망이 더 클까? (더 이상 당연한 게 당연한 게 아닌 시대)


그렇다면 우리는 지식노동자들을 위해 무엇을 만들어야 할까. 고민이 더 깊어지게 되었다.



1. 뉴욕 대기업 PM의 현실

이 분은 뉴욕에 있는 상장 테크 기업에서 PM으로 일하고 있다. PM이라지만 이 회사에서는 미니 CEO에 가깝다. P&L을 직접 보고, 매출과 마케팅부터 기술 지원, 세일즈까지 하나의 작은 사업부를 통째로 운영한다.


회사의 문서 문화는 아마존의 6페이저를 연상시킬 정도로 극도로 강하다. PRD를 쓰면 18장은 기본이고, 모든 사람이 글씨 토시 하나까지 꼼꼼하게 읽는다. 틀리면 엄청난 어택이 들어온다. 이런 환경에서 Claude와 Cursor를 쓰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냥 AI에 맡기고 내보내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초반 기획부터 마지막 점검까지 본인이 꼼꼼히 해야 한다. AI는 second brain이지, brain 자체를 넘겨준 것은 아닌 셈이다.


흥미로웠던 것은 데이터를 다루는 방식이었다. 회사의 대시보드가 읽기 힘들고 원하는 데이터를 찾기도 어렵다 보니, 테이블 데이터를 통째로 Claude에 넣어서 데이터 구조를 학습시키고, 그 인스턴스 하나로 모든 데이터 질문을 해결한다고 했다. "그게 내 데이터 엔지니어다." 더 이상 대시보드에 직접 들어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분은 회사에서 소수파다. 본인 말로는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PM은 극소수이고, 매니저급은 아예 어떻게 써야 하는지조차 모른다고 했다.


2. AI를 도입하지 못하는 이유는 보안이 아니다

그렇다면 미국 대기업에서 AI 도입이 느린 진짜 이유는 뭘까. 보안? 기술 문해력?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분의 대답은 너무 단순했다. "시간이 없다."


회사에서는 당장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분기별 목표도 맞춰야 한다. 요즘은 정리해고 분위기까지 겹쳐서 오히려 예전보다 더 일을 많이 하고 있다.


Stripe처럼 이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한 좋은 사례가 있다. 전사적으로 1주일을 통째로 빼서 모든 직원이 AI만 배우는 데 투자했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회사는 그 1주일을 낼 여유가 없다. 당장 실적을 내야 하고, 고객을 대응해야 하고, 그 비용을 감수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우리 회사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작년에 AI Native를 선언했지만, 솔직히 네이티브가 아니었다. 그래서 올해 1월부터 매주 목요일에 전 직원이 Claude Code를 다운받고 직접 써보는 시간을 강제로 만들었다. 강제를 하니까 되긴 하더라. 하지만 우리는 작은 스타트업이니까 가능한 것이지, 수천 명 규모의 대기업에서 이걸 어떻게 조율하겠는가.


3. AI 시대, 더 이상 일을 잘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이 분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일 끝나고 누가 또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까를 생각하고 싶겠어. 힘들잖아." 사실 굉장히 현실적인 말이다. 나도 예전에 직장 생활을 했을 때를 떠올리면, 솔직히 매일 쫓아가기 바빴지 퇴근 후에까지, 주말에까지 업무 역량을 키우고 싶다는 여유와 욕망이 크지 않았던 것 같다. 링크드인이나 소셜 활동이나 네트워킹도 전혀 열심히 안 했다. 그럴 필요도 없었고.


심지어 요즘에는 AI의 여파로 인해 "AI를 이겨낼 수 있도록 일을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이 아니라, 오히려 그 역효과로 "나는 이제 아무것도 아닌 무쓸모다"라는 AI 우울증과 불안감이 더 증폭되고 있다. 이게 내가 언급했던 Claude Blue 현상이다. 그래서 관심이 가는 방향이 "회사에서 일을 더 잘하는 방법을 AI로 해보자"가 아니라, "어차피 나도 언젠가 짤릴 것이고, 나도 언젠가 나만의 창업을 억지로라도 해야 할 텐데, 그게 뭘까"라는 고민이 더 많다. 이 분도 결국은 자기 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지금 탐색 중이라고 했다. 오늘 얘기한 뉴욕의 대기업 PM도, 예전에 얘기한 실리콘밸리의 빅테크 엔지니어도, 결국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4. CPTO의 등장, 직군의 해체

대화는 자연스럽게 PM이라는 직군의 미래로 이어졌다. 이 분이 흥미로운 트렌드를 하나 알려줬다. 요즘은 CPO(최고제품책임자)와 CTO(최고기술책임자)를 합친 CPTO라는 포지션이 늘고 있다고 한다. 이 PM의 회사에도 이미 있다고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AI가 있으니까 프로덕트도 CTO가 할 수 있고, CTO도 CPO 역할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직군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젠슨 황이 말한 것처럼, "좋은 AI 사용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결국 실력이 되어버린 세계다. 마케터도 Cursor에서 SEO 분석을 하고, PM도 코드를 건드리고, 비개발자도 에이전트를 돌린다. Sam Altman이 말한 "1인 10억 달러 스타트업"이 점점 농담이 아니게 되고 있다.


Ramp 같은 스타트업은 이미 모든 것이 MCP로 연결되어 워크플로우 자체가 AI 기반으로 전환됐다고 한다. 그런 회사들은 low-level PM이 필요 없다는 것을 이미 깨달았고, 전략을 세우고 현장에서 실행할 수 있는 사람만 남기고 있다. 반면 대기업은 훨씬 느리다. 같은 미국 안에서도 스타트업과 대기업의 속도 차이는 몇 년 단위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5.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만들어야 할까?

우리는 지금까지 지식 노동자들을 위해 AI로 업무 효율을 높일 수 있는 도구를 만들어왔다. 하지만 솔직히, 인터뷰를 할수록 의문이 든다. 요즘 같은 시대에 "AI로 일을 더 잘하고 싶다"는 욕망이 아직도 남아 있을까?


오히려 역으로, 사무실에서 쓰이는 서비스가 아니라 사무실을 탈피할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를 만들어야 할까? 반 농담 반 진담 같은 생각까지 들었다. 인스타에서 우연히 고층 사무실 건물이 모두 비어가고 곧 슬럼화가 될 수도 있다는 글을 봤다. 고용주도 사람을 더 이상 고용하지 않고, 그러면 사무실도 필요 없을 텐데 말이다.


몇 달 후면 지금 만들고 있는 서비스들이 의미 없어지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는 불안을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이 여론은 실제 인터뷰와 미국 여론을 보면 분명 존재하고, 앞으로 더 커지면 커질 거라고 생각한다.



마치 예전에 유튜브가 뜨기 전에 유튜버가 된 사람이 초기 선점의 혜택을 본 것처럼, 지금 이 전환기에 먼저 움직이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 어디로 움직여야 하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이게 요즘 아마 전 세계 소프트웨어 사장님부터 직원들까지, 모두의 솔직한 고민이지 않을까 싶다.


이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면 우선 현장의 사람들, 특히 미국 직장인들과 꾸준히 만나려고 한다. 해답을 어렴풋이 알게 되면 꼭 공유해 보겠다.




AI 전문가는 아니지만 늘 커피챗에 열려있습니다. 본인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시다면, 다른 분들의 경험을 더 자세히 듣고 싶으시다면 링크드인으로 DM 혹은 이메일(pahan@umich.edu)로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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