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클래미 & 클로드
*AI 시대에서 우리가 진정히 필요한 역량과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 미국 아이비리그 박사와 미디어 에디터와의 대화*
나는 본 투 비 마케터 같다. 그냥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것은 무언가를 처음부터 만들어내는 것 보다 이미 있는 것을 잘 포장하고 유통하는 것 같다. 좋은 제품이 있으면 그걸 어떻게 더 많은 사람에게 닿게 할지를 고민하고, 좋은 이야기가 있으면 그걸 어떤 채널에 어떤 톤으로 풀어야 할지를 설계한다. 그게 내 본업이다.
근데 요즘 내가 제일 병목으로 느끼는게 그런 원석을 찾는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모두 인간으로서 한계가 있다보니, 무제한의 원석이 없다. 만약 우리가 새로운 타겟층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데 그걸 우리가 원석으로서 없다면? 참 난감하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원석을 직접 캐러가거나, 그 분야의 사람을 데려오는 거다.
원석이라고 말하면 좀 어려운거 같은데, 쉽게 말하면 나를 유니크하게 만들고 또 호감을 만드는 서사나 레퍼런스 같은거 같다. AI 시대에 모두가 비슷한 역량을 보여준다면.. 나를 돋보여줄 스토리나 콘텐츠가 아마 가장 큰 무기이자 차별화가 될 거 같다.
AI는 곡괭이 같은거라고 생각한다. 근데 내가 다이아몬드 광산을 찾지 못한다면, 그걸 잘 쓸수가 없다. 우선 나는 광산을 잘 찾고, AI로 잘 발굴하고 - 뭐 그런거 아닐까?
근데 만약 이미 내가 갖고 있는 광산을 다 캐버렸다면? 새로운 광산을 캐러가야겠다. 마치 0 x1000은 여전히 0인거 처럼, 더 좋은 원석이 필요하다. 요즘 시대에 1000을 5000으로 만들려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 0이 10이되는게 더 큰 레버리지가 될 수 있을거 같기도 하다.
최근 읽은 미국 블로그 글에 이런 표현이 있었다. AI 시대는 "crowded 7/10 world"라고. 10점 만점에 7점짜리가 넘쳐나는 세상이라는 뜻이다. 블로그 글, 마케팅 카피, 디자인 시안, 코드 스니펫. 어디를 봐도 "괜찮은" 수준의 결과물이 쏟아지고 있다. 문제는 괜찮은 것과 좋은 것 사이의 간극이 이전보다 훨씬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7/10을 만드는 것 자체가 일이었다. 기획서를 쓰고 디자인을 입히는 데만 해도 시간과 비용이 들었다. 그런데 이제 그 과정이 극적으로 압축되면서, 7/10은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것이 되었다. 경쟁의 축은 자연스럽게 이동한다. 8, 9, 10점짜리를 만들어내는 능력. 혹은 더 정확히 말하면, 7점짜리를 걸러내고 진짜를 골라내는 능력 쪽으로.
그 블로그에서는 이걸 "taste"라고 불렀다. 한국어로는 감이라고 할까? 불확실한 상황에서 구분해내는 능력. 그리고 흥미로운 지적이 하나 있었는데, AI 시대에 희소한 능력은 만들어내는 것(generation)이 아니라 거부하는 것(refusal)이라는 것이다. 뭘 할지보다 뭘 안 할지를 아는 사람이 이긴다. 아무튼 이건 휴먼의 감각이나 느낌, 판단력 같은 부분 같다. 문제는 아직도 뭐가 좋은 taste인지, 그리고 그건 어떻게 키우는건지 오리무중이긴 하다.. 약간 후행지표 같아서.
미국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지인에게 물었다. AI가 학계를 얼마나 바꾸고 있느냐고. 돌아온 대답이 의외였다. 박사 과정 수준에서는 커리큘럼이 거의 안 바뀌었다고 한다. 물론 1년차 리서치 어시스턴트들이 하던 데이터 정리 작업은 자동화됐지만, 깊은 연구의 핵심은 여전히 사람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구체적인 예를 하나 들어줬다. S&P 500 상장 기준 변화를 분석하는 연구가 있었는데, GPT에게 관련 논문 요약을 시키면 기존에 출판된 연구 결과를 아주 깔끔하게 정리해준다고 한다. 그런데 원본 데이터를 던져주고 "여기서 새로운 패턴을 찾아봐"라고 하면 전혀 못 한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당연한데, LLM은 기본적으로 언어모델이기 때문에 보통 효율적인 토큰 사용을 위해서, 가장 쉽고 빠르게 인용할 수 있는 소스를 찾아서 답을 내어준다. 근데 아직 아무도 해석하지 않은 원본 데이터에서 인사이트를 뽑아내는 건 사실 LLM이 잘하는 분야도 아닐 뿐더러, 원래 하려고 만들어진 의도도 아니다.
그러니까 LLM은 이미 존재하는 지식을 재조합하는 데는 탁월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지식을 만들어내는 건 이슈가 있다. 원석이 어딘가 캐져 있다면 이를 가공하고 포장은 잘해주지만, 아직 뭐가 원석인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여전히 사람이 해야 한다.
그 지인이 한 가지 표현을 썼다. 같은 데이터를 봐도 "반짝반짝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숫자 뒤에 숨어 있는 이야기를 직감적으로 포착하는 사람들. 논문 수백 편을 읽어도 발견하지 못하는 연결고리를 데이터 한 줄에서 잡아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게 앞서 말한 "taste"와 정확히 맞닿는다. Taste의 본질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해내는 능력이다. 금융 데이터에서 새로운 트렌드를 읽어내는 것도, 수천 개의 콘텐츠 중에서 독자가 진짜 원하는 이야기를 골라내는 것도, 결국은 같은 능력의 다른 발현이다.
그리고 이 감각은 AI가 대체하기 가장 어려운 영역이기도 하다. AI는 패턴을 인식하지만, 패턴을 깨는 건 못 한다. 기존 데이터에서 통계적으로 가장 그럴듯한 답을 내놓는 건 잘하지만, 모두가 놓치고 있는 질문을 새로 던지는 건 사람의 역량 같은데.. 이게 정말 인간다움이라는 걸까?
그런 이야기를 곱씹고 있던 중에, 미디어에서 일하는 또 다른 지인과 통화를 했다. 시작은 전혀 다른 각도였지만 결론은 같았다. 요즘 AI로 인해 모두가 상향평준화되면서 오히려 테크 회사들이 기술이 아닌 것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AI 모델의 성능 차이가 좁혀지고, API 가격이 내려가고, 오픈소스가 빠르게 따라잡는 상황에서, 순수 기술만으로 차별화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자연스럽게 테크 회사들이 눈을 돌리는 곳이 콘텐츠와 스토리다. OpenAI가 미디어 회사를 인수한다는 소식이 나오고, Anthropic이 앰배서더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샘 알트먼, 일론 머스크 같은 사람들은 원래 어그로를 잘 끄는 글로벌 스토리텔러다.
기술은 복제 가능하다. 코드는 오픈소스로 풀리고, 모델 아키텍처는 논문으로 공개된다. 하지만 사람들과의 관계, 커뮤니티에 쌓인 신뢰, 특정 브랜드가 가진 서사는 안타깝지만 복제가 쉽지 않다. 역설적이게도 지금처럼 가장 강력해진 기술의 시대에서 해자(moat)는 비기술적인 것에서 나오는 것 같다.
서사가 기술보다 중요해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떠오른 게 있다. 이전 블로그에서도 썼는데, 래퍼 팔로알토가 본인 유튜브에서 AI 음악에 대해 평론한게 있다. 요즘 AI 음악도 하나의 장르가 된거 처럼 음악 자체의 퀄리티만 놓고 AI 음악이 인간의 음악 보다 좋을 때도 많다.
하지만 우리는 음악을 들을때 음악 퀄리티 자체만 듣는게 아니라, 이 곡이 탄생하게 된 배경과 아티스트의 서사와 일상까지 모두 같이 소비한다. 그러니까 곡 자체로 승부하는게 아니라는 것이고, 그 겉을 감싸주는 콘텐츠가 어찌보면 곡 자체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현업의 입장에서 풀어줬다.
음악만 그런 게 아니다. 요즘 AI로 소프트웨어 제품을 만드는 건 쉬워졌는데, 그만큼 경쟁이 더 치열해졌다보니 그걸 알리는게 훨씬 더 어려워졌다.
MVP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 몇 달에서 며칠로 줄었지만, 병목은 여전히 마케팅과 유통에 머물고 있다. 그리고 마케팅과 유통의 핵심은 콘텐츠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신뢰를 쌓는 이야기.
아직도 나는 AI가 이것도 도와주길 바라지만.. 첨에 말한 비유처럼 AI가 곡괭이는 되도 원석이 되어주지 못하더라.. 원석 찾는 것에 어쩌면 인간이 적극적으로 집중해야할거 같고. AI 시대에서 인간이 해야할거랑 AI가 해야할 것은 명확하게 구분하는 실력이 매우 중요한거 같다.
다시 아이비리그 지인 이야기로 돌아가면, 이 친구가 금융경제학을 전공하고 있어서 월스트리트 시각도 공유해줬다. 작년부터 투자자들이 아포칼립스에서 따온 "SaaS-pocalypse"라는 말을 쓰고 있다. 그러니까 AI가 기존 SaaS 비즈니스를 통째로 뒤흔들고 있다는거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모든 SaaS가 다 위험한 건 아니라는 분석이다. 네트워크 효과가 있는 회사 (예를 들어서 우버나 인스타카트), 즉 사용자끼리 연결되어 있어서 한 명이 떠나면 나머지에게도 영향이 가는 구조를 가진 회사는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본다. 반면 순수하게 소프트웨어 기능만 파는 회사, 예를 들어서 중고등학교 숙제 플랫폼 Chegg는 GPT가 나온 2년 전에 투자사들이 그냥 돈을 다 빼서 바로 망했다고 했다. 15년 전 내가 고등학교에서 잘 쓰던 메가 플랫폼이 한순간에 없어진게 충격이었다. 고립된 도구형 제품은 AI에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미디어 지인에게 했더니, 바로 공감하면서 꺼낸 키워드가 "커뮤니티"였다. AI 회사들이 기술 개발 못지않게 사람들과의 접점을 만드는 데 상당한 자원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기술은 빠르게 따라잡히지만, 커뮤니티는 시간이 걸린다. 수천 명의 사용자가 특정 플랫폼에 애정을 갖고, 서로 도우며, 자발적으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생태계는 하루아침에 복제할 수 없다. 테크 회사들이 미디어를 인수하고 앰배서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이유다.
이것도 원석의 연장이다. 커뮤니티 안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기는 사용자들이 직접 만들어낸 사례와 특정 맥락에서만 통하는 커넥션과 팬심. 이건 AI가 일방적으로 주입할 수 없다. 돌고 도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만들어지는 생태계이기 때문이다.
두 통화를 마치고 나서 정리해보면, 결국 AI 시대에 필요한 역할은 두 가지로 나뉜다. 원석을 캐는 사람과 원석을 다듬는 사람이다.
원석을 캐는 사람은 남들이 갖지 못하는 본인만의 유니크한 스토리나 서사를 갖고 있는 사람이다. 10년간 특정 분야를 연구해서 아무도 모르는 인사이트를 가진 연구자. 독특한 인생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를 가진 아티스트. 현장에서 직접 뛰면서 데이터를 손으로 만들어 본 실무자. 이들이 가진 것은 AI가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도 찾을 수 없는 것들이다.
원석을 다듬는 사람은 그 원석을 세상에 닿게 하는 사람이다. 마케터, 에디터, 프로듀서, 커뮤니티 매니저. 나도 여기에 속한다. Taste를 바탕으로 원석을 골라 내고, 거기에 자기만의 관점과 해석을 얹어서 새로운 맥락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한 핵심이다.
나는 끊임없이 원석을 가진 사람을 찾아내야한다. 근데 시간이 지날 수록 원석이 고갈되고 있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한계가 있으니, 그럼 나도 언젠가 원석을 캐는 입장으로 발전해야할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