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입시 유치원반에 대한 사설
2024-06-16 초고.
0.
얼마 전, 친한 후배 가족이 놀러 왔었다. 학생 때야 매일같이 술 먹고 실없는 농담이나 주고받던 사이였지만, 이제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각자의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가장들이라 자연스럽게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주가 되었다. 아이의 사교육에 대해서 한창 대화를 하던 중, 나는 사교육에 반대하는 내 입장을 표명했고 후배는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에휴.. 형~ 그래도 부모 입장에서 애들 앞가림은 하고 살게 해 줘야죠."
일순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별다른 대꾸를 하지 못했다. 마침 나와 아내도 고민하고 있던 지점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 '앞가림'이라는 것이 대체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앞가림. 사전적 의미는 '제 앞에 닥친 일을 제 힘으로 해냄'이라는 뜻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스스로 생계를 책임질 수 있는, 소위 '먹고살 수 있는'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이 땅에서의 '앞가림'이란 단순히 먹고살 수 있음의 여부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잘'먹고 '잘'살기 위한 것이고 특히, 남들보다 '더'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것이다.
아이들의 불행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1.
매년 학년이 바뀌고 나면 아이가 학교에서 받아오는 유인물 중에 '기초 정보 조사'라는 것이 있다. 아이의 가족관계나 성격, 취미, 교우 관계 등을 조사하는 것인데 매년 우리 부부를 당황하게 하는 항목이 있다. 바로 아이의 장래희망란 옆에 있는 '부모가 바라는 장래희망'란이다.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사람' 혹은 '행복한 사람'은 직업이 아니고, 그렇다고 '없음'이라고 쓰자니 아이에게 관심 없는 부모처럼 보일까 걱정이 되었다. 결국 고민 끝에 아이들에게 알아서 쓰라고 맡겼지만 내심 다른 아이들의 조사서에 어떤 직업들이 적힐지 예상이 되어 씁쓸했던 기억이 있다.
학부모들이 바라는 아이의 장래 희망은 대부분 비슷할 것이다. 간혹 아이가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가 되거나, 외국의 명문대를 나와 외국계 기업에 취직하기를 바라는 부모도 있지만 뭐니 뭐니 해도 부모님이 원하는 희망 직업은 '사'짜가 들어가는 전문직이고 그중에서도 단연 1순위는 '의사'이다. 희망 직업란에 대놓고 '의사'라고 적으면서 티를 내지 않더라도 아이가 의대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갖은 노력을 아끼지 않는 부모들이 대부분이다. 설령 의대에 못 가더라도 'SKY'를 나와 국내의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이 부모가 용납 가능한 일종의 마지노선이고 자신의 아이가 그저 그런 대학을 나와 중소기업에 들어가거나 비정규직의 삶을 사는 것은 꿈에도 상상 못 할 일로 여긴다.
과연 의대에 못 들어가면, 대기업에 못 들어가면 망한 인생이고 자기 '앞가림'도 못하면서 살게 될까? 의대 정원은 전체 수험생 대비 1% 미만이고 대기업에 근무하는 노동자 또한 전체 노동자의 10% 내외이다. 전문직을 가져야만, 대기업에 취직해야만 그나마 '앞가림'을 할 수 있다면 우리나라 국민의 90%는 자기 '앞가림'도 못하고 있다는 말인가.
2.
요즘 학원가에서 초등 의대반을 넘어 유치원 의대반까지 생긴 것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먼저 든다. 아무리 출산율이 줄고, 의대 정원이 늘었다지만 의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상위 1% 미만의 성적이 필요하다. 아이에게 대한민국 1%가 되어야 행복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은 "너는 99%의 확률로 불행해질 거야."라는 확정 예언을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물론 아이에게 "대한민국 1%가 되어야 행복할 수 있다"라고 대놓고 말하는 부모는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입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부모의 삶을 희생하면서 아이들을 사교육으로 내모는 것 자체가 1%의 삶을 갈망해야 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아이들에게 성형수술을 시키고 성장 호르몬 주사를 맞히면서 "외모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내면이야."라고 말하면 아이가 퍽이나 수긍하겠다.
부모의 입장에서 아이들만은 행복하길 바라는 것이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사실 그들이 불행했던 이유는 1% 안에 들지 못해서가 아니라, 99%의 평범한 삶에서 행복을 누리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
1%의 삶을 살면 누구나 행복할 수 있다. 하지만 99%의 평범한 삶을 살면서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은 나름의 가치관이 필요하다. 우리가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1%의 화려한 삶에 대한 갈망이 아니라 99%의 평범한 삶에서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스스로의 기준으로 행복을 찾는 단단한 가치관이라고 생각한다.
3.
아내는 어쩌다 아이의 반 친구 엄마들을 만나고 오면 심한 피로감을 호소한다. 엄마들끼리 모여서 하는 이야기가 결국 학원 이야기 아니면 남편 흉이 전부라는 것이다. (학원은 몰라도 남편 흉은 그래도 조금은 봤을 법도 한데 아내는 한마디도 할 말이 없었다고 한다.)
아내가 평소에 주로 만나는 외국인 친구들이나 글쓰기 모임 사람들과는 대조적으로 그 엄마들의 이야기에는 '자신'이 빠져있다. 대한민국 엄마들의 삶은 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사교육비가 가계 지출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입시 정보나 학원 정보 때문에 엄마들 모임을 쫓아다니고, 아이들 학원 라이딩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엄마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먼저 든다. 혹시 엄마 자신의 인생이 없기 때문에 '아이를 잘 키운 엄마'의 타이틀에 목을 매는 것은 아닐까.
이런 환경에서 독립적으로 자라지 못하는 것은 비단 아이뿐만이 아니다. 자신의 인생이 없이 아이에게 목매는 부모 또한 아이가 성장하고 결혼을 하여도 아이에게서 독립하지 못하고 자신의 삶보다 아이의 삶에 초점을 맞춘 채 살아가게 된다. 이는 아이에게도 부모에게도 비극이며 나아가 나중에 아이가 꾸리게 될 가족에게도 대물림되는 비극이 된다.
엄마도 엄마의 꿈이 있었을 것이다. 아이들 학원 보낼 돈, 라이딩할 시간에 엄마의 꿈을 이루기 위한 무언가를 배우면 어떨까. 학부모들을 만나서 비교하고 남 험담 하는 시간에 같은 취미와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인생을 즐기면 어떨까. 이렇게 배우고 성장하며 인생을 즐기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인생의 행복을 바라보는 가치관부터 달라질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혹시나 우리 아이가 못 간 의대를 친구 아이가 가면 배가 아플 것 같아 걱정이 되는가. 인생을 즐기며 사는 부모가 남의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어디 있겠는가. 오히려 희생과 애증으로 점철되어 자녀가 성인이 된 후에도 비틀린 유착 관계를 유지하는 그들이 건강한 독립을 이루어 부모도 자식도 각자의 인생을 즐기며 성숙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더 부러워하지 않을까.
4.
삶에 있어 경제적, 물질적 요소가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상대적인' 경제력과 행복을 일치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말이다. 최소한의 절대적인 경제력은 불편하지 않은 삶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상대적인 경제력은 행복의 필요조건도 충분조건도 아니다.
납득이 안된다면 타인이 없는 삶을 상상해 보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만약 당신 가족만 무인도에 떨어져서 사회와 격리된 상태로 살아야 된다고 상상해 보자. 지금의 삶의 모습과 비교해서 어떤 것들이 바뀔 것 같은가. 무언가 바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내 삶에서 꼭 필요한 것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남들의 시선도 없고 비교할 사람도 없는 곳에서 명품백과 외제차가 무슨 소용일까. 입시 경쟁이 없는 곳에서 사교육과 선행 학습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 곳에서 살아간다면 누구나 인생을 의미 있게 채우기 위해 다양한 것을 배우고 경험하는 일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가족이 서로 더 많은 시간을 공유하고 인생의 의미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게 될 것이다.
만약 그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사회로 나간다고 생각해 보자. 그 아이들이 과연 명품백과 외제차가 없다고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여길까?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제공해야 할 가정환경은 경쟁에서 이겨야만 인정받을 수 있는 그런 척박한 환경이 아니라 오히려 남과 비교하지 않고 스스로의 내면을 돌아볼 수 있는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부모가 먼저 본을 보여야 함이 타당하다.
5.
사실 이 글을 쓰면서 많은 고민이 있었다. 전문직에 종사하면서 경제적으로 큰 불편함 없이 살고 있는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기만으로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힘든 시기를 버티고 그토록 바라던 경제적 안정을 얻고 나서야 남들보다 특별하고 남들보다 잘 살아야 행복한 것이 아님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오히려 평범한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면서 공동체에 소속되어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끊임없이 배우고 나를 성장시키면서 내면을 가꾸는 것에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이 있음을 깨달았다.
아무쪼록 아이들이 물질적 결핍 속에서 자라면서 세상에 모든 것이 노력 없이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님을 배웠으면 한다. 남들과 비교하기보다는 자신에 대해 탐구하고 사유하는 시간이 많았으면 한다. 무엇보다 다양한 책을 읽고 다양한 경험과 생각을 하고 이 모든 걸 가족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그런 시간이 많았으면 한다. 요즘 같은 환경에서 이런 구닥다리 철학을 고수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아이들이 크면서 사회가 넓어지고 세상을 알아갈수록 부딪히는 일도 종종 생길 것이다. 하지만 부부가 같은 목표 지점을 바라본다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큰 힘이 된다.
6.
독일의 한 연필 공장이 있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주 근무시간은 36시간. 당연히 직원들은 전문직이나 대기업 종사자들만큼의 월급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가 시간에 부업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곳의 사람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개와 산책하거나 책을 읽거나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거나 자기 계발을 하면서 보낸다. 남들보다 더 잘 사는 척을 하기 위해 기를 쓰고 소비할 필요가 없으니 사실 많은 돈이 필요하지도 않다. 우리의 시선으로 보면 지극히 소박하고 조용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지만 사실 누구보다 자기 삶에 만족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어떠한 직업을 가지고 어떠한 삶을 살더라도 남들의 시선이나 겉으로 보이는 가치에 연연하지 않고 스스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우선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성인이 되었으면 한다. 물질적인 가치와 소비를 중시하는 삶에서 벗어나 읽고, 쓰고, 생각하고, 배움을 놓지 않으며 하루하루 더 발전하는 그런 행복이 있는 삶을 살았으면 한다.
행복은 너무도 고가이고 희소해서 소수의 상류층만 독점할 수 있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극히 소박하고 평범한 일상에서 더 많이 얻을 수 있는, 지천에 널려있지만 열심히 달릴 때는 잘 인지하지 못하는 풍경 같은 것이다. 소모적인 경쟁에 시간과 노력을 쏟으며 행복과는 점점 멀어지는 삶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비교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성장으로 충만한 그런 삶을 택할 것인가. 우리 아이가 1%의 확률로 행복해지는 삶을 살지, 99%의 확률로 행복해지는 삶을 살지는 당신의 선택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