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회사의 문화와 성장을 언어로서 정리하며
3년 넘게 일하면서 가장 힘든 것이 ‘사람들에게 회사 소개하기’라고 말하면 웃을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한 번 처음 뵙는 분께 아래와 같이 회사 소개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뒤에 자연스럽게 사회적 거리두기가 되었다.
“저희 회사는 사용자의 유입과 행동을 파악하여 마케팅 성과를 측정, 분석하는 서비스를 만들고 있어요. GS SHOP, 네이버 NOW, 국민은행 등 여러 회사에서 사용하고 있어요. 글로벌 누적 1억 대의 디바이스에서 하루 10억 건 이상의 이벤트 데이터를 처리, 분석하고 있어요. 고객이 많아지면 처리할 데이터도 늘어나고요…”
예전에는 흔하지 않은 분야니까 소개도 길고 어려워지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래 다니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이야기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정리를 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개발자로 일하면서 나는 ‘직관적인 것’의 중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직관적이지 않으면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매력적이지 않으면 무엇이든 고여버리고 만다. 고여버리면 즐거울지는 몰라도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 수는 없다.
코드도 제품도 직관적인 것이 좋다면 회사도 그렇지 않을까. 직관적으로 회사를 소개하고 보여줄 수 있다면, 더 많은 분들과 함께 의미있는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흩어진 이야기를 모으고 정리해서 ‘이런 회사에 다녀요’ 라고 보여줄 수 있는 글을 써보기로 했다.
글을 쓰기로 한 것은 좋은데, 사흘(3일)이 지나도록 여전히 첫 문장조차 적지 못했다.
나는 맘에 들면서 본질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하나의 문장을 만들어야, 나머지 내용과 전개를 빠르게 쓸 수 있는 글쓰기 성향을 가지고 있다. (예전에 작가 비슷한 거에 도전하며 알았다)
앞서 말했듯, 우리는 토스나 배민, 당근마켓처럼 모두가 아는 서비스를 만드는 것도, ‘나 이런거 만들어’ 하고 스마트폰 꺼내서 보여줄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드는 것도 아니다.
왜 우리는 B2C 회사가 아닌걸까요… 하며 다른 분들께 푸념(…)을 늘어놓았다. 감사하게도 이야기를 들어주셨고, 그 과정에서 한 가지 포인트를 집을 수 있었다.
쇼핑몰이든 게임이든 무엇이든… A를 만드는 회사에서는 A만 만든다. 이 회사는 A도 사용하는 제품을 만든다. 유니콘도 대기업도 모두 ‘성장’을 바란다. 사용자와 매출이 늘어나길 바란다. 그래서 마케팅을 한다. 광고도 하고, 푸시 메세지도 쏘고, 이벤트도 하고. 큰 회사는 광고비만 하루에 가볍게 몇 천만원을 쓴다.
이 회사는 결국 ‘다른 제품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한다. 어떤 광고에서 사용자가 들어와서 무엇을 했는지. 마케팅을 정량화, 수치화한다. 이를 참고하면 같은 돈으로 마케팅을 해도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게 된다.
여러 A들이 성장하면 회사의 나도 성장하게 된다. 실시간으로 폭우처럼 쏟아지는 데이터를, 내가 가진 능력(엔지니어링, 디자인 등)과 도메인 지식(Domain Knowledge)으로 마주하며 풀어나가야 하니까. 불리한 점이 되려 매력 포인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유니콘부터 대기업까지 쓰는 제품. 같이 만들어볼래요?”
누구나 들으면 아는 서비스를 만드는 것도 좋지만, 누구나 들으면 아는 서비스도 사용하는 서비스를 만드는 것은 더욱 재밌지 않을까요?
마음에 드는 첫 문장이 나왔다. 이제 쭉 달려보기로 했다.
매일 퇴근 전 30분 동안 글을 썼다. 글을 쓰는 만큼 다른 회사들의 사례도 많이 찾아보았다. 보통 문화, 제품, 복지, 영입 공고에 관한 내용이 꼭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쭉 찾아보다 두 가지 정도 고민이 생겼다.
하나는, 소개 페이지에 가득찬 삐까뻔쩍한 사무실, 하하호호 웃는(?) 사람들의 사진, 매우 긍정적인 코멘트들을 보면서, 이게 어디까지 진짜일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인사팀이 손을 쓴 것일까? 팀원의 의견이 들어간 것이 맞을까?
다른 하나는, ‘로켓’이나 ‘가파른 성장’ 등의 말이 반복적으로 나와서 그런지 약간 지쳤다. 사실 성장만큼 큰 매력 포인트는 없다. 우리도 분기 별 매출이나 성장률을 보여준다면 J커브 + 매출 뒤에 0이 몇 개 붙는지로 놀래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비중을 조금 적게 가져가면서도 신뢰감과 친밀함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 싶었다.
고민을 하다가 몇 가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보기로 했다.
예전에 별 생각 없이 누군가를 골려주려고 찍었던 사진, 무언가가 있을 때마다 기억하려고 남겨둔 사진, 슬랙에 올라온 기막힌 타이밍의 드립 등을 모아서 넣기 시작했다. 점심시간에 같이 밥을 먹으며 각자 좋아하는 가게나 사내 모임 이야기를 물어보기도 했다.
공고를 작성할 때에는, 기존에 올라온 영입 공고를 각 파트의 분들께 여쭤보면서, 이 업무는 어떤 목적을 위해 있고, 여기에서만 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은 무엇인지, 팀 별 분위기나 재밌는 순간들은 없었는지를 묻고 답하며 내용을 채워나갔다.
모든 사람이 회사에서 일만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같이 놀기도 하고, 좋은 일은 같이 축하하고, 의견이 다를 때는 서로 논쟁하니까. 그렇다면, 이 회사의 사람들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떻게 지내는지… 퀄리티가 조금 떨어져보일 수 있어도, 조금은 사소해보일 수 있어도, 그런 내용들을 잔뜩 모아 벽돌의 틈새를 메우듯 넣어보았다.
글만 쓰면 지칠 때가 있다. 마침 글에 들어갈 배너나 아이콘 같은 것도 필요해서, 글이 안 써질 때는 Figma로 열심히 그리고 색칠했다. 오랜만에 디자인하니까 너무 재밌어서 주객전도 될 뻔했다.
얼추 글이 완성이 되었을 때, 사내 슬랙에 글을 올려서 지금까지의 결과물을 공유했다. 잘못 작성하거나 부족한 부분이 있는지, 무엇이 추가되면 좋을지 등을 팀원 분들에게 물어보았고, 들어오는 내용은 바로 논의한 뒤 배치를 바꾸고, 구성을 갈아엎기도 하고, 비유를 바꿔보기도 했다.
특히 이 자리를 빌어서, Hyojun Kim님께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수십 개의 피드백을 주셨는데, 그 부분을 개선하고 정리하니까 눈에 더 잘 들어오게 되었다.
피드백을 반영한 뒤에는 Mar-tech(마케팅 + 기술) 회사답게, 간단하게 성과 측정을 위한 작업을 했다. 회사에서 만드는 제품인 Abitly와 Airbridge를 사용해 클릭과 노출 수를 측정하고 실시간으로 Google Sheet에 성과가 업데이트 될 수 있도록 작업을 했다. (Super 같은 걸 써도 되는데, 우선 실험적으로 해보는 거라 잘 되면 도입하기로 했다)
그렇게 아래의 Notion 문서를 만들고 배포할 수 있게 되었다.
절 대 읽 어 봐
☝️☝️☝️ 다 시 읽 어 봐 ☝️☝️☝️
글을 만든 뒤에는 생활코딩, 9XD 등의 페이스북 커뮤니티, GDG Korea 등의 슬랙 그룹 등에 글을 뿌렸다. 하루 동안 클릭 500번은 일어날거라는 꿈을 가졌지만, 모든 게 그렇게 잘 풀렸으면 퍼포먼스 마케팅이나 그로스해킹이 나오질 않았을 거다.
예상의 70% 정도는 되었지만, 세부 페이지로 들어가는 비율이나 제3자의 공유 및 반응은 적어서 아쉽다고 생각했다. 이 부분이 좀 아쉬운데, 뿌렸을 때 어느 정도의 효과가 나오는지, 불특정 다수 대신에 조금 더 타겟을 구체화해야하지 않았을까?
2주 정도 지나자 컨텐츠의 효율이 많이 떨어져서 조금 수정을 해보기로 했다.
공유되는 링크의 미리보기 이미지와 문구를 조금 더 눈에 띄게 변경하고, 글을 공유할 때는 세부 페이지의 링크도 함께 공유를 했다.
많은 사람이 속해있지만 새로 올라오는 글은 상대적으로 적은 슬랙 그룹을 찾아 글도 올리고, 백엔드 개발자분께서 개발자 채용에 도움이 될 만한 GitHub 저장소를 알려주셔서 Pull Request를 보내 내용을 반영했다.
그랬더니 조금씩 성과가 개선되기 시작했다. 상황을 계속 지켜보고 있지만, 평일에 시간 당 3~4명이 꾸준하게 링크를 타고 들어오는 흐름은 만들어진 것 같다.
이 글의 부제를 잠시 이야기해보면 ‘한 회사의 문화와 성장을 언어로서 정리하며’이다. 회사 소개를 조금 더 잘 해보고 싶어서 글쓰기를 시작했지만, 이전의 좋았던 순간들, 함께 일 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모으면서, 공통적인 모습이나 생각들을 찾을 수 있었다.
같이, 그리고 많이 논쟁한다. 각자가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의견을 자유롭게 말하고, 논의된 내용을 하나로 모으고, 결정된 사안에는 힘을 실어준다.
스스로에 대한 성장 욕구가 매우 강하다. 이것저것 다 하면서 구르는 것보다는 분야에 관한 전문성을 가지려고 하고, 비효율이나 실수를 줄일 방법을 사람에서 찾지 않는다.
항상 도메인 지식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명확한 문제 상황을 업계에 통용되는 지식과 개념과 내가 가진 기술을 더해 풀어내는 경험을 얻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학교, 비영리기관, 회사… 여러 조직을 거치며 나는 ‘문화’가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어지며, 어떻게 견고해질 수 있는지 궁금해했다. 지금도 그렇고.
여전히 잘 모르겠고, 이게 문화인가 싶겠지만, 최소한 위의 내용은 ‘문화의 시작점’ 정도는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맨 처음 부분에서 나는 ‘직관적인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직관적인 코드여야 문제를 찾기 편한 것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개발은 정의(definition)를 내리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품은 계속 바뀔 것이고,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들도 들어올 것이다. 언젠가는 지금의 구조를 모두 바꿔야 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 순간이 오면 이전에 어떤 고민과 결정이 있었는지를 알고 다음을 생각하게 하기 위해 직관성을 추구한다.
문화 역시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문화를 만드는 것은 과거의 우리가 어땠는지를 정리하고 받아들인 상태에서, 현재의 상태를 토대로 미래의 우리가 어땠으면 하는지 모으는 ‘버킷리스트’를 만드는 것에 가깝지 않을까.
동일하게, ‘인위적으로 정의한 문화’는 오래 가지 못한다. 힙한 슬로건, 이렇게 일한다는 문서는 보기에는 좋아보일지 몰라도, 그 안의 사람들이 모르거나, 정해놓고 지켜지지 않을 것이라면… 그저 종이 낭비. 데이터 낭비. 시간 낭비다.
이는 ‘에이비일팔공’이라는 이 회사 역시 동일하게 적용된다. 과거의 성장과 순간을 정리하며 현재의 ‘문화’를 찾았다면, 이제는 어떤 미래를 맞길 원하는지, 더 많이 이야기하고, 주어지는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나아갔으면 좋겠다. 파도가 치면 돌아가고. 바람이 불면 돛을 펴서 밀려가기도 하면서.
나는 이 조그마한 회사에서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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¹ 나는 ‘회사’라는 조직에 대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오래 있으면서 회사의 장단점을 많이 알았고, 그걸 토대로 판단했을 때 ‘좋은 회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계속 다니고 있고, 또 많이 알리고 있다.
² 어디를 가더라도 이와 같은 일을 할 것이다. 소개를 하고 좋은 동료를 모으는 일은, 절대 남이 대신 해주지 않는다. 절박한 만큼, 행복한 만큼, 모두가 알아주는 곳에 있더라도. 잊혀지지 않고 계속 알려지기 위해 글을 쓸 것 같다. 한 10년은 그러지 않을까?
³ 이번에 글을 쓰면서 ‘채용’이라는 단어를 쓰질 않았다. 사람을 골라서 쓰지 않고(채용), 환영하여 받아들이기 위해서(채용) 그렇게 썼다. 소소한 디테일 ㅎㅎ
⁴ 마지막으로… 누구나 들으면 아는 서비스를 만드는 것도 좋지만, 누구나 들으면 아는 서비스도 사용하는 서비스를 만드는 것은 더욱 재밌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당신에게는 이 회사가 딱일지도…?
p.s
이 글은 Medium에 올렸던 글의 백업용으로 작성된 문서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한국에서 미디움과 브런치, 둘 중 어느 것이 전파가 잘 될지도 궁금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