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생각정리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찬희 Mar 19. 2016

세피아톤 폴라로이드

사라지고 나서야 깨닫는 것들에 대하여

며칠 전 집에 가던 길이였다.

집에 사정이 생겨서 어쩌다 보니까 학교에서 한 주를 잔류하고, 전체귀가날이 되서야 집에 가게 되었다. 한 주 동안 얽매여 있어야 했던 학교로부터 떠나 집에 가는 해방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하다.


집까지 가는 시외버스를 탔다. 사람은 적었고, 버스 안은 고요했다. 라디오 소리가 들렸고, 나는 너무 피곤했다. 어쩌다가 잠깐 졸았는데, 내려야 할 정류장을 놓치고 종점까지 가버리고 말았다. 학교에서 집까지 가는 버스는 2년 동안 타 왔지만 졸아서 종점까지 가본 적은 없어서 당황했다. 집까지는 거리가 있고, 버스로는 가기가 힘들어서 결국 택시를 타게 되었다. 택시 안 초록 말은 열심히 달렸고, 나는 그 말을 타고 어둡고 거친 아스팔트 길을 달리며 주변의 풍경들을 계속 바라보았다. 무언가 위화감이 들었다. 분명히 내가 이 동네에 없었던 것은 2주 정도였는데, 많은 것이 바뀐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뼈대만 앙상하던 건물은 어느새 완공되어 사람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좁고 좁았던 버스 정류장은 모습이 바뀌고 더 넓어졌지만 이유 없이 비어 보였다. 한적하던 도로에는 차들이 빽빽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유난히 그날의 신호등은 더 빨갛게 보였고, 더 길게만 느껴졌다. 가끔 군것질을 하던 토스트 가게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고, 삼촌네 미용실로 머리를 깎으러 갈 때마다 주변의 경치를 보려고 올라갔던 육교는 도로 바닥으로 들어가 횡단보도와 신호등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익숙한 것이 사라지고 새로운 것이 그 자리를 채운다.

이유모를 허전함과 아쉬움이 쉽게 떠나질 않았다.


그렇게 모든 것이 사라져버리고 기억 속에서만 남겨질 때, 더 이상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만질 수 없게 되어야, 사람은 그제야 그것이 소중했다는 것을 알게 되나 보다. 이별하고 나서야 더 붙잡고, 더 원하고.

그리고 한편으로는, 우리도 그렇게 누군가로부터, 이 동네로부터, 이 세상으로부터 사라져버리게 된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나 보다. 세상으로부터 사라지고 추억이 되서야. 세피아톤 폴라로이드 사진 한 장으로만 남게 되서야 사람들은 그제야 슬퍼하나 보다. 미련하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사람이다 보니까 그럴 수 밖에 없나보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리다고 놀리지 말아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