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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술뒷간 Apr 26. 2021

나는 고미술쟁이가 되었다

고영란


이쪽 분야를 공부했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괜한 고민에 빠졌다. 과연 내가 고미술을 전공한 인간이 맞는가? ‘이쪽 분야’를 공부했다고 이야기하기엔 나는 선학들의 발끝만큼에도 못 미치는데? 하지만 이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대답은 ‘그렇다’일 것이다. 이 질문을 던진 사람은 아마 구구절절한 나의 고민을 비롯해, 본래는 영문학을 전공, 언론정보학과를 복수 전공한 인간인데다 그쪽이 궁금해하는 '이쪽 분야'를 공부한 것은 대학원 2년 과정을 지도 교수님 밑에서 바짝 배운 것뿐이라는 사실을 듣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 정체성 및 전문성에 대한 나름 심오한 고민은 뒤로한 채 결국 내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대답은 그들이 기대하는 ‘그렇다’이다. 


나는 사실 인문학이 좋다. 뼛속까지 문돌이이다. 이것 하나만큼은 어렸을 때부터 일관되어 온 나의 취향이다. 내가 ‘사실’이라는 단어를 덧붙여 인문학이 좋다고 고백하는 이유는 요즘 세상이 인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시각이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술이 최고라며 추앙받고 우대받는 이 세상에서 인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은 실속 없고 세상의 흐름을 모르는 사람처럼 여겨지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신조어가 참 마음 아팠다. 나는 이러한 세태에 대해서 종종 세상이 거꾸로 가고 있다고 농을 하곤 한다. 조선시대엔 말이야, 기술직이 천직이었는데 말이지!


대학원을 진학하기로 결심한 이후 어떤 분야를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다. 영문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서양미술사 쪽을 선택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소위 동양에서 태어난 동양인이고, 서양미술사를 아무리 공부한다고 하더라도 서양에서 나고 자란 이들에 비해 이해하고 느끼는 것에 한계가 찾아올 것이라고 판단했다. 영문학 번역 수업을 들으면서 종종 그 한계에 대한 생각을 했던 것도 떠올랐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찰나, 나의 결심을 굳히게 했던 작품을 만나게 되었다. 바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고송유수관도인 이인문의 <강산무진도>이다. 8미터에 달하는 횡폭의 비단에 정말 제목 그대로 강과 산이 끝도 없이 이어진 작품이다. 그 작품을 보고 나는 너무나도 깜짝 놀랐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흔들림 없는 꼼꼼한 필치에 맑고 생생한 채색을 비롯해 그 안에는 화가가 발휘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쏟아져 있었다. 허리를 굽혀가며 끝도 없는 산과 물을 묵묵히 그려나갔을 이인문의 모습이 눈앞에 동시에 떠올랐다. 


강산 속 사람들의 시끌벅적한 대화 소리, 계곡에서 폭포가 쏟아지는 소리, 그리고 강과 산 위로 불어오는 바람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화폭 안에 그대로 빨려 들어간 나는 8미터의 작품을 그 자리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3번을 재차 관람했다. 그 뒤 곧바로 고미술에 빠졌다. 그리고 내가 우연히 겪었던 경험을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런 경험을 하면 사람들도 고미술이 고루하다거나 어렵다거나 재미없다고 생각하지 않을 거란 확신이 생겼다.


18세기의 조선시대와 21세기의 대한민국 풍경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라졌다. 18세기 조선 사람들은 종이와 붓을 사용했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나는 노트북을 두드리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아마 그 시대의 사람과 지금의 내가 만난다면 정말이지 단 한 마디의 대화도 이어나갈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18세기 이인문이 펼친 예술세계가 21세기 고영란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을까? 시대와 공간을 한 번에 관통하는 그 예술적 감흥은 과연 무엇일까? 그 당시의 인간이나 지금의 인간이 같은 것을 보고 공감하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렇게 나에게 코리안 트래디셔널 아트는 고미술이 되었고, 나는 고미술'쟁이’의 길을 걷고 있는 중이며, 언젠가는 고미술'장이'가 되어가길 바라고 있다. 되짚어 보면 참 짬뽕 같은 인생을 살아온 것 같다. 이것저것 섞여 있는 나의 관심사가 결국엔 어떻게 이어지게 될런지.. 지금의 나로선 눈앞이 뿌옇고 판단조차 할 수 없다. 그래도 언젠가는 ‘문송하지 않은’ 문돌이가 되어 있을까? 그건 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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