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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궐 Oct 24. 2023

제대로 공부해서 인생을 바꿔보자!!

5_목표가 생기다.


"진짜 우리 엄마 아빠는 너무 한 거 아니야?"

"야, 좀 천천히 마셔."

"하나뿐인 자식이 열심히 하겠다고 하는데 왜 믿질 못해?"

"....."

"크으, 그렇게 내가 현역 때 개판으로 했나?"

"내가 안 봤으니까 모르지. 그거야 네가 잘 알고 있지 않아?"

"그래. 9월 모의고사 이후 풀어지긴 했어. 그런데 지금 기숙학원 가면 쌩돈 나가는 거 아니까 진짜 독하게 독학 재수학원에서 마음먹고 잘할 수 있다고!!"

"알지. 알고 말고."

"내가 미친다!! 미...... 꺼억!!!"

"쨔샤, 트림 나올 줄 알았다. 그렇게 맥주를 마시는데 버틸 수가 있냐?"


아빠와 말싸움을 한 뒤, 나는 집 주변 술집에서 종현이를 붙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종현이는 무성의한 기색으로 내 말을 들어주며 주변 테이블을 바빴다.


"적당히 마셔. 니가 개판 쳐 놓으면 내가 치워야 한단 말야!"

"알았다. 알았어. 그리고 안주로 감자튀김 하나만 줘."

"참, 나. 친구가 일하는 가게에 와서 진상 부리는 건 어느 나라 예의냐?"

"그래서 먹을 거 팔아주고 있잖아. 그리고 알바 끝났을 때 다 됐고."


투덜거리는 종현이의 말에 슬쩍 주방을 보니 이야기를 들은 사장님이 감자튀김을 조리하기 시작했다.


"에휴, 내가 졌다. 사장님. 저도 맥주 한잔 주문할게요."

"어. 너는 알아서 가져가도 된다. 서비스로 마른안주도 줄 테니까 이 것도 가져가."


시계를 보니 종현이의 아르바이트 종료 시간인 새벽 1시가 되었고, 곧 사장님의 말대로 안주들과 맥주 한 잔을 들고 내 앞에 앉았다.


"그래서 결론은 기숙학원에 못 가겠다고 부모님과 싸운 거네."

"짜식아! 나한테 중요한 일이라고!!"

"기숙학원이라... 지금은 가기 싫더라도 그게 최선인 것 같은데?"

"뭐?!"

"부모님이 틀린 말을 한 게 아니잖아. 이왕 하는 거 금전적인 지원이 가능하다면 기숙으로 가는 게 좋지."

"....."

"나도 재수를 기숙학원 쪽으로 알아보고 있고."

"뭐어?!"


부모님 편을 들은 종현이의 말에 살짝 놀랬다가 다음 말에 더욱 크게 놀랬다.

이런 내 반응을 예상했는 듯 종현이는 말을 이었다.


"우리 부모님 알잖아? 나도 올해 수능 성적에 만족 못 하기도 하고."

"아...."


그 말에 종현이가 어떤 녀석인지 기억났다.

부모님이 B대의 캠퍼스 커플인데 의학과 출신으로 현재 메이저 병원에서 전문의로 일하고 계신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종현이의 부모님은 종현이가 메디컬 계열의 학과로 진학하기를 원했고, 중학교 때부터 수능 준비를 시작했다.


게다가 고등학교를 외고나 과학고를 갈 수 있는 실력이 있었지만, 일부로 수능 공부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집 근처 일반고로 진학했다.


이 놈이 재수 없는 이유 중 하나는 공부를 안 하는 것 같은데 공부 머리가 있는지 성적이 곧잘 나왔다.

그 증거로 최상위 대학교인 A대의 이과 계열로 진학할 수 있는 수능 성적이 나왔지만, 인서울의 의학과에 진학할 수 없기에 부모님이 다시 한번 더 공부해 보라고 했을 거라 짐작했다.


"너는 게임 중독이라, 그것만 끊이면 메디컬에 금방 붙질 않겠냐?"

"그게 내 유일한 낙인데 어떻게 끊냐? 게다가 지금 길드장도 맡고 있고, 레이드도 뛰어야 하는 만큼 해야 할 일이 투성이라고!"

"에휴, 미친놈아. 정신 차려!"


나는 한심한 눈빛으로 종현이를 보며 맥주잔을 들었다.

진심으로 이 녀석은 현역 때 게임만 끊었어도 이미 서울 소재의 대학교 의학과를 붙었을 놈이었다.

적당한 게임은 스트레스를 풀기 좋으나, 너무 과해서 망한 케이스다.


종현이는 나와 맥주잔을 부딪치고 한 모금 마시자마자 다시 입을 열었다.


"너는 무언가 하나에 빠져 있는 거 없잖아. 그럼 1년 동안 빡세게 공부에 미쳐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그래도 숨을 쉴 공간과 시간이 필요한데, 기숙학원은 아예 그런 게 없잖아."

"잘 생각해 봐. 내가 볼 땐 통학이나 독재로 갔다간 1년을 흐지부지 보내지 않을까? 그리고 이미 증거는 현역 때 나왔잖아."

"음..."


분명 부모님에게 들었던 말이지만, 종현이에게 다시 들으니 느낌이 다르다.

확실히 독재나 통학 학원 투어를 갔을 때 생각 난 건 수업이 끝나면 어디서 쉬거나 놀까라는 것이었다.


기숙은 답답하고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들겠지만 독재와 통학을 가면 초반은 열심히 할지 몰라도 6월 이후에 흐지부지 공부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재수 안 하고 지금 성적으로 그냥 대학교에 가면 나중에 졸업장을 받겠지만 좋은 곳에 취업이 안 될 것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 성향을 볼 때 기숙학원만이 답이었다.

그리고 종현이가 기숙학원을 가는 것에 쇄기를 박는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같은 기숙학원에 가서 공부하는 거 어때? 서로 의지도 되고 좋을 것 같지 않냐?"

"괜찮은 생각인데?"

"진수야, 우리 제대로 공부해서 인생을 바꿔보자!!"

"그래. 둘 다 A대에 합격해서 학교 다녀보자!!"


분위기가 급속도로 바뀌면서 나와 종현이는 맥주잔을 부딪치며 의기투합했고, 다음 날 나는 부모님에게 기숙학원에 다니겠다고 말했다.




기숙학원에 가기로 결정한 나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낄 정도로 마음껏 놀러 다니기 시작했다.

어차피 기숙학원에 들어가면 그때부터 미친 듯이 공부한다는 마인드다.


그래서 아쉬움이 남지 않게 놀아야 공부할 수 있는 생각에 낮밤이 바뀌면서 놀고 또 논다.


"여보, 진수는?"

"밖에서 놀다가 들어온대요."

"오늘도?"


내가 없는 사이 엄마와 아빠는 가게에서 퇴근 후 집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가게에는 얼굴 한 번 비추지 않고, 두 사람이 가게에서 일하는 사이 집에 들어와서 잠을 자니 벌써 일주일 동안 아들 얼굴을 보지 못했다.


아빠의 얼굴에서 투덜거리는 기색이 보이자 엄마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이제 기숙학원에 가서 공부할 거니까 좀 내버려 둬요. 여기서 더 잔소리하면 더 악효과예요."

"어휴, 재수를 시키는 게 답일까? 그냥 성적에 맞춰서 대학교에 보낼까?"


아빠는 아직도 고민이 많다.

아이 미래를 생각하면 재수를 시켜 상위권 대학교에 진학시키는 게 맞는데, 아이 성향을 생각하면 기숙학원에서도 이렇게 공부 안 하고 친구들과 놀기 바쁠 것 같아 걱정이다.


이미 3년 동안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학원 적응은 빠르게 하겠지만, 얼마나 공부해서 성적을 올릴 수 있을지가 걱정이다.


"한 번 믿어봐요. 처음부터 안 간다던 기숙학원을 간다고 했고, 본인도 깨달은 게 있을 테니까. 설마 현역 때 그렇게 망쳤는데, 재수할 때도 망칠까요?"

"그래야지. 안 그러면 이 녀석을 호적에서 파야지."


아빠의 입장은 단호했다.

진수의 미래를 위해 재수를 결정했지만 중간에 흐트러진 모습이 보이거나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재수를 포기시킬 각오도 내심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돈이 생각보다 많이 들어가는데 괜찮나요?"

"그동안 모아둔 돈과 다다음 달에 적금 끝나니까 그걸로 충당하면 괜찮겠지. 그리고 가게 매출이 계속 오르고 있으니까 걱정 마."

"네. 잘 될 거예요."


내가 재수하기로 확정하자 두 사람은 기숙학원비를 비롯해서 대략 얼마나 비용이 들어갈지 계산해 보았다.

한 달 기숙학원비 300만 원에 학원에서 나눠주는 콘텐츠와 모의고사 비용 그리고 개인적으로 문제지를 사는 것과 용돈을 계산하니 약 400만 원이 나왔다.


평균 직장인의 급여 이상이 매달 나가는 것이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결정을 내린 이상 물릴 수 없어 이대로 진행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놀기만 하던 내게 기숙학원에 들어가는 날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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