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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궐 Oct 28. 2023

너한테서 냄새나니까 제발 쫌 씻자!

12_이 자식 죽이고 학원 나간다.


"또 거길 들어가야 하나?"


하루 일과가 끝나고 퇴실 시간이 되면 자습실에서 공부하는 모든 학생들은 일제히 일어나 기숙사로 향한다.

누군가에게는 힘든 하루를 끝마치고 편히 쉬고 잘 수 있는 공간이기에 기쁠 수 있지만, 아직까지 나는 기숙사가 제일 적응되지 않는다.


"에휴, 밖에서는 이런 걱정을 안 해도 될 텐데."


고등학교도 기숙사에서 지냈고, 학교보다 기숙학원이 기설도 좋고 한 방에 있는 인원 수도 4명에서 3명으로 줄었다. 그렇기에 기숙학원의 기숙사는 무난하게 지낼 줄 알았는데, 잠깐 집에서 혼자 방을 쓴 것이 큰 리스크로 돌아왔다.


"혼자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


가장 내게 절실한 것이 혼자 있는 있는 공간이었다.

집에서는 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으면 혼자만의 공간이 되어, 부모님도 노크를 하거나 말을 하고 들어오는 편이었다.

그런데 여기에선 혼자서 있을 수 있는 장소가 없었다. 기숙사도 3인 1실이고 강의실과 자습실에도 항상 학생들이 있다. 유일하게 혼자만의 공간이 있다면 화장실뿐인데, 그곳에선 누울 수도 없고 편히 쉬는 것이 불가능했다.

게다가 학원 곳곳엔 CCTV가 설치되어 있어 사각지대를 찾기도 어려웠다.


"그렇게 뭘 중얼거리고 있어?" 

"어? 진성아."

"얼른 가서 씻고 점호 준비하자."


룸메이트인 진성이를 복도에서 만나 함께 기숙사로 향한다.

퇴실 시간을 알리는 종이 치면 20여분 정도 기숙사로 들어갈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는데 몇몇 애들은 운동을 위해 학원 주변을 뛰거나, 줄넘기를 하는 등 운동을 하거나 밖에서 이야기를 하고 들어가곤 했다. 

나와 진성이는 둘 다 운동을 열심히 하는 편이 아니었고, 그냥 침대에 누워 쉬고 싶다는 생각에 바로 기숙사로 들어갔다.


"그럼 빨리 머리 감고 나올게."

"어. 알았어."


방에 들어가자마자 진성이가 샤워실에 들어가서 머리를 감으며 세수했다.

그리고 진성이가 밖으로 나오자마자 수건을 들고 바로 샤워실로 직행했다.


기숙학원은 더울 때는 시원한 에어컨이, 추울 때는 온풍기가 끊임없이 가동되기 때문에 특별히 운동하지 않는 이상 땀을 흘릴 일이 없다.


더욱이 나는 아침에 좀 더 자기 위해 아침엔 가볍게 씻고, 저녁에 샤워하는 편이었다.

기숙사에 들어가면 바로 오른쪽에 문이 하나 있다. 그곳에는 샤워 부스와 양변기가 들어가 있고, 문 쪽에 세면대와 드라이기가 설치되어 있다.


덕분에 한 사람이 가볍게 씻으면서, 다른 한 사람은 안에서 샤워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방 안은 단출했다. 세 명이 쓰기 때문에 침대 3개가 나란히 있고, 옷장 3개가 붙어 있다.


그럼 동시에 세 사람이 씻으려고 할 때에는 어떻게 할까?

복도에 공용 샤워실과 화장실이 있어 이용 가능한데, 나가기 귀찮아서 급한 일이 아니면 서로 배려해 주자고 이야기를 했다.


샤워를 마친 나는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림과 양치질하며 중얼거렸다.


"이 녀석은 또 늦게 들어오는 건가?"


점점 점호 시간은 가까워지는데, 또 다른 룸메이트인 민진이는 아직 들어오지 않는다.

차민진은 운동을 좋아하고, 사관학교 시험을 본다고 해서 체력 관리를 하기 위해 퇴실 시간이 되면 바로 운동장에 나가서 달리기를 하고 온다.


-학생들에게 안내합니다. 5분 후 점호를 실시하니 모든 학생들은 정리를 마무리하고 복도로 나와주세요.


진성이가 샤워실에서 나오자 기숙사 건물에서 점호를 알리는 방송이 나왔다.

잠시 후, 기숙사의 문이 열리며 땀을 흠뻑 흘리는 민진이가 들어와서 말했다.


"얘들아. 다 씻었지? 그럼 내가 들어가서 얼른 씻을 게."


민진이는 능청스럽게 샤워실로 들어가서 씻는데, 3분 만에 금방 나왔다.

이 시간 동안 샤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겨 어떻게 씻고 나온 건지 물었다.


"머리 감고, 세수하고, 몸에는 깨끗이 물을 뿌렸지."

"그러면 냄새나잖아. 제대로 바디워시로 씻는 게 좋지 않을까?"

"괜찮아. 나는 냄새 안 나."


그 말에 나와 진성이는 어이가 없었다. 

그런데 이걸 가지고 싸우기에는 바로 점호 시간이라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생각하고 넘어가려 했다.


"이 방은 왜 이렇게 더럽냐? 분명 너희들이 들어오기 전에 청소가 되어 있었을 텐데?"

"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수건과 옷들이 보이지 않니?"


단순히 점호는 인원 체크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기숙사의 청소 상태와 아픈 학생들이 있는지 확인한다. 


학생들이 아침에 기숙사를 나가기 전에 빨래는 빨래망에 담아 밖에 내어놓으면 퇴실 시간에 맞춰 깨끗이 빨래되어 돌아온다. 그리고 방 청소도 강의동에 가 있는 동안 학원 미화 팀에서 모든 것을 해준다.


즉, 기숙사는 깔끔하게 청소되어 있어 학생들이 어지럽히지 않으면 깨끗한 게 정상이다.

관리 선생님의 말에 방을 살펴보니 바닥에 젖은 옷과 수건들이 있었다.


"기록을 보니 방 정리 건으로 경고를 여러 번 했네. 이 방 학생들은 벌점 부여하니 평소 정리 좀 잘하자."


그리고 우리 방의 청소 현황표를 본 관리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벌점을 주고 이동했다.


"야, 차민진."

"응?"

"너 자꾸 이렇게 할래?"

"맞아. 너 때문에 벌점 받은 건 둘째 치고, 너한테서 냄새나니까 제발 쫌 씻자!"

"너희가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

"뭐? 어이가 없네. 지금까지 치운다고 말하고 치운 적이 제대로 있기나 하냐?"


결국 나와 진성이는 민진이에게 쌓였던 불만이 터졌다.

처음부터 민진이가 이런 행동을 한 것은 아니었다. 


3, 4일간은 정리정돈도 잘했고, 깔끔하게 잘 씻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자신들의 눈치를 살핀 것이었다.


지금의 차민진은 제대로 씻지도 않고, 샤워하고 난 뒤 수건과 땀에 젖은 옷을 바닥에 두기 일쑤였다.

게다가 이를 바로 치우는 것도 아니었고, 나와 진성이가 이야기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러니 빨래 통에 빨래를 안 넣고, 방에 방치되어 다음 날에는 냄새가 났다.


"너는 모르겠지만 코골이까지 있어서 제대로 잠을 자는 게 힘들어."

"나야 말로 어이가 없네. 내가 코를 곤다고?"

"진짜 몰랐냐?"

"그리고 물칠만 해도 몸에서 냄새나서 같이 자는 우리는 냄새 땜에 고역이라고."


점점 감정이 격해진 우리들은 목소리도 같이 커졌다.

민진이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지만, 잠이 깊게 들면 큰 소리로 코를 골아 여러 번 진성이와 함께 잠에서 깼다.

그동안 여러 번 깨워보고, 우리들이 귀마개도 껴 보았지만 불편해서 못 살겠다.


고등학교 기숙사에서 지낼 때도 룸메이트가 이갈이를 했지만, 그 소리가 작고 마우스 피스를 끼는 등 서로 배려하여 무사히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민진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걸 할 줄 모르는 것 같았다.


이렇게 우리들은 감정이 크게 상한 채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서 다시 민진이와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지만, 아침 기상 종이 치자마자 민진이는 바로 기숙사를 나갔다.

그래서 쉬는 시간과 식사 시간에 만나려고 했지만, 도망치는 것처럼 만날 수 없었고, 자습 시간에 공부를 하려고 해도 가슴이 답답하고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는다.


"선생님. 상담 가능하세요?"

"지금? 음.... 5분 뒤에 학습 상담이 잡혀 있어서 짧게라면 가능해."


결국 담임 선생님에게 도움을 구하기로 했다.

담임실로 가니, 선생님이 상담 준비로 분주하지만 양해를 구하고 기숙사에서 있었던 일들을 설명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룸메이트와 많이 힘들었겠네. 민진이라는 친구의 말을 들어봐야겠지만, 네 말대로라면 그 친구가 코골이 방으로 가면 될 것 같다. 그런데 기숙사는 관리 영역이 다르기 때문에 내가 방을 바꿔주고, 중재하는 건 어렵다."

"아...."


담임 선생님의 말에 나도 모르게 한숨과 얼굴에 아쉽다는 기색이 드러났다.

뒤에 추가 설명이 이루어졌는데 기숙사를 관리를 하는 선생님이 있는데 담임 선생님이 절차를 무시하고 함부로 바꿀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치만 이 내용을 공유해서 기숙사 관리 선생님이 너희들과 상담해서 정확한 사정을 파악하고 조치가 될 거야. 그리고 이렇게 룸메이트와 맞지 않아 방을 바꾸는 경우는 너뿐만이 아니라 다른 애들도 있고, 이를 참다가 나중에 크게 싸우기도 해.

그럴 것이 밖에서 혼자 방을 쓰다가 같이 쓰는 것이 불편할 수밖에 없으니까."

"네. 맞아요."

"어떻게 보면 지금 말을 하는 게 잘했어. 그리고 만약 룸메이트가 방을 바꾸게 되면 또 다른 학생이 그 방에 들어갈 테니 잘 지내보자."

"알겠습니다."


완벽하게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가능성이 보여 고개를 끄덕거리며 수긍했다.

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뒤이어 학습 상담을 받을 학생이 나와 나는 조용히 자습실로 향했다.




그날 저녁에 관리 선생님과 민진이의 상담이 이루어졌고, 다음날 저녁에는 나와 진성이가 상담을 진행했다.


관리 선생님으로부터 민진이가 둘이 합심해서 자신을 내쫓기 위함이라는 이야기에 화가 났지만, 차분하게 민진이가 운동 후 잘 씻지 않아 냄새가 나는 것, 옷을 바닥에 내팽겨두는 것, 코골이 등 있었던 일들을 설명하며 민진이가 방 이동을 하지 않으면 우리들이 각기 다른 방을 쓰더라도 옮기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상담 결과가 나오기까지 시간은 2 ~ 3일이 걸릴 것으라 이야기를 들었는데, 다음 날에 관리 선생님들의 회의에서 마침 코골이 방 자리가 있어 민진이가 방 이동을 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덕분에 기숙학원에 들어와서 마음 편하게 잠을 청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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