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_시간이 미친듯이 빨리 간다.
"세한아. 식사 시간에 매점 갈래?"
"응. 밥 먹고 아이스크림 사 먹자."
"학원 수학 진도를 따라가기 너무 힘든데 어떻게 해야 하냐?"
"실전 개념 인강을 봐봐. 내가 김성렬 쌤 거 보는데, 수업 전에 보면 이해되고 좋더라."
"진짜? 근데 엄청 수업이 많아서 패스 끊어서 보는 게 좋겠네."
"야야! 이야기 들었냐?! 다이스의 아현이가 연애한대!!"
"어. 상대가 남자 아이돌이라는데?"
쉬는 시간이 되자 곳곳에서 학생들은 서로 친한 애들끼리 뭉치며 대화가 쏟아졌다.
처음 시작은 한 달 반 먼저 들어온 우선반 학생들이었다.
정규반으로 반이 다시 편성되면서, 같은 반으로 배정되기도 하고, 다른 반으로 배정되었지만 쉬는 시간과 식사 시간에 같이 어울려 다녔다.
정규반부터 들어온 학생들도 우선반에 들어온 학생들을 보고 친구를 만들며 이야기를 나눠, 같이 다니는 무리가 몇 개 형성되었다.
"강의실과 복도에서 떠들지 않습니다."
쉬는 시간과 식사 시간에는 각 층마다 학원 선생님들이 배정되어 정숙 지도를 하고 다녔다.
강의실을 둘러보면 쉬는 시간에도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었고, 이 학생들을 위해서 밖에서 이야기를 하는 게 맞았다.
그런데 그냥 말이 튀어나온다. 왜냐면 이게 편하기 때문이다.
학원 입장도 이해가 되지만, 강의실에서 한마디 말쯤이야 해도 괜찮은데 왜 이걸 막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이제 옆의 학생들, 이제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지내니 답답한 기숙학원 생활이 조금 풀리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진수야. 얼른 기숙사 들렸다가 나가자."
"그래. 가자."
기숙학원에선 일주일에 딱 1번, 체육 시간이 있다.
이 시간에는 자습실에 가서 공부를 하든,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하든, 운동장에서 축구나 농구를 해도 상관이 없다.
만약 운동을 할 것이라면 쉬는 시간에 학원 선생님이 기숙사 문을 열어주면 방에 들어가서 트레이닝 복으로 갈아입고 나오면 된다.
학원 단체복도 트레이닝 복이지만 운동을 하고 나면 땀으로 옷이 젖기 때문에 냄새가 나서 불편하지만 갈아입는 것이 맞다.
"야, 여기로 패스해!!"
"건우 막아야 해. 쟤가 미친 듯이 빨라!"
"태영이 형한테 공 간다!"
"우아아아아아!!!"
"서진이가 구멍이야. 오른쪽으로 뚫어!!"
체육 시간이 되면 나를 포함한 20명의 남학생들이 소리를 지르며 공 하나에 목숨을 걸고 운동장을 뛰어다닌다.
나는 첫 체육 시간에는 축구를 하지 않고 헬스장에서 러닝머신을 뛰었다. 그런데 같은 반 친구인 김윤성이 자신에게 다가와 같이 축구를 하자고 제안했고 한 번 해보자는 생각에 두 번째 체육 시간부터는 축구를 하기 시작했다.
원래 기숙학원에 들어오기 전에는 해외 축구를 관람하는 것만 좋아했었고, 고등학교 다닐 때에도 축구를 열정적으로 하지 않았다.
그냥 반 친구들이 하자니까 그냥 하는 정도였는데, 이상하게 여기에서는 미친 듯이 하게 된다!!
생각해 보니 기숙학원에서 스트레스를 풀만한 것이 마땅히 없다.
그런데 축구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소리를 지르게 되고, 땀을 흘리면서 스트레스가 풀린다.
게다가 잠깐이나마 공부에 대한 압박도 벗어난다.
"체육 시간 종료입니다. 기숙사 들어가서 씻고 다음 수업 시간 전까지 강의실로 이동합니다."
체육 시간 관리는 담임 선생님이 하고 있는데, 다시 기숙사로 들어가서 씻는 시간을 고려해서 실질적으로 30여분 정도다.
솔직히 조금이라도 더 놀고 싶지만 우리 반은 중요한 수학 수업이 배정되어 있어 운동을 더 할 수 없다.
"그래도 오늘 재밌었다."
"태영이 형이 미친 듯이 날라던데?"
"다 너희들이 패스를 잘 해준 덕분이지. 특히, 진수가 고생했어."
"아니에요. 형. 형이 진짜 최고였어요!"
기숙사로 이동하면서 우리들은 축구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나누었다.
어느 순간부터 이렇게 이야기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재미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나를 비롯하여 이재원, 박건우, 김윤성, 하서진이라는 친구들이 최태영이라는 형 주변에 모이며 같이 다니고 있었다.
태영이 형은 우리들보다 1살 위의 형으로 다니고 있는 W대를 휴학하고 인서울 대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다시 수능을 보기로 결정했고, 어느 학원을 갈지 고민하다가 기숙학원에 오게 되었다고 한다.
"야, 늦었다. 얼른 가자!!"
"조금이라도 늦으면 안 된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발걸음이 늦어졌고, 벌써 수업 끝나는 종이 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10분이라는 쉬는 시간 동안 빨리 기숙사에 가서 씻고 나오지 않으면 수업 시간에 늦기 때문에 서둘러 뛰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친해지니까 학원 생활이 재미있네."
"그런 것 같아. 게다가 같이 기숙학원에서 열심히 공부하면서 지내잖아."
"맞아. 같이 힘들게 공부하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드는 것 같아."
"참! 아까 다이스 아현이 연애한다던데, 남자 아이돌이 누군지 알아?"
"그거 챌린지의 진저고, 연애 기자한테 둘이 데이트하는 사진도 찍혔대."
"와~! 대박!! 미쳤네."
저녁 식사 시간에 친구들과 즐겁게 웃으며 대화를 나누니 기분이 좋아진다.
반 친구들과 어울리며 다니니 제일 좋은 점은 학원 생활이 외롭지 않다는 거다.
불과 며칠 전만 하더라도 세상의 온갖 불안과 두려움을 끌어안고 혼자 공부하느라 힘들어 죽을 것 같았는데, 같이 다니면서 내가 부족했던 공부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밖의 이야기도 나누니 점점 기숙학원에서 생활하는 것이 즐겁다.
담임 선생님이 학원에서 친구는 한 두 명만 사귀면 좋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더 이상 여기서 늘리지 않고 함께 다닌다면 괜찮을 거라는 생각과 사람들과 대화하는 게 이렇게 재밌는 것인 줄 이제야 깨닫는다.
"대화는 밖에 나가서 합니다."
밖에서 이야기를 하면서 강의동으로 들어다 보니 자연스럽게 계단과 복도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여전히 학원 선생님들이 복도에선 정숙 지도를 하고 있어 살짝 눈치를 보며 조용히 강의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담임 시간을 갖기 위해 담임 선생님이 강의실로 들어왔다.
"최근 학생들이 무리 지어 다닙니다. 저희 반에도 4개의 무리가 보이고요."
담임 선생님은 학생 공지 사항들을 전달한 후 학원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늘 말하지만 학원 생활과 공부는 혼자 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물론, 당연히 힘듭니다.
그런데 무리 지어 다니는 학생치고 제대로 학원 생활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잦은 사건 사고에 휘말려 근신을 서고, 퇴원을 하는 일이 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런 학생들이 제 눈에는 벌써 몇몇 보입니다."
말과 함께 담임 선생님은 반 학생들과 시선을 맞춘다.
"만약 학원 생활이 재미있다면 자신의 인간관계와 공부 시간을 점검하길 바랍니다. 내가 공부해야 할 시간에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있는 것이 아닌지 말입니다.
여러분에게 당부합니다. 제 눈에 무리 지어 다니며 이야기하는 것이 보이거나, 자습 시간에 자습실 아닌 다른 곳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면 저는 벌점을 줄 것입니다.
그러니 무리 지어 다니지 말고 시간 맞춰 자습실에서 공부하는 것을 권유합니다."
이 말을 끝으로 담임 시간이 끝나고, 담임 선생님은 무슨 일이 있는지 바로 강의실을 나갔다.
학생들은 자습실에 가기 위해 준비하는데 나는 옆 자리에 있는 재원이에게 살짝 말을 걸었다.
"설마 근신과 퇴원이... 우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겠지?"
"지금 우리만큼 성실히 학원 생활하는 애들이 어디 있다고!"
"하긴. 시간 잘 지켜서 다니니까."
"괜히 걱정할 필요 없어."
괜히 담임 선생님 말에 찔리는 느낌이 들었지만, 무리를 지어 다닌다 해도 현재까지 자습 시간에 돌아다니지 않고 자습실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다.
그리고 친구들이 착해서 학원에서 사고 치는 건 없을 거라 생각하며 발걸음을 자습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