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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궐 Nov 02. 2023

무슨 모의고사가 이렇게 어렵냐?

14_나 빼고 다른 사람들은 성적이 좋다. 


사각사각. 사각사각사각.


자습실에서는 책을 넘기는 소리와 펜으로 글씨 쓰는 소리만이 들린다.

담임 선생님들이 조는 학생이 있는지, 딴짓하는 학생이 있는지 자습실을 돌며 확인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학생들은 눈앞에 책에 집중한 채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나는 스톱워치로 시간을 체크하며 수학 문제지를 풀고 있다.

문제의 난이도에 따라 푸는 시간은 다르겠지만, 수능에서 한 문제를 붙들고 오랜 시간을 쓸 수 없다.


그래서 지금 한 문제당 5분의 시간을 정해놓고 쉽게 풀 수 있는 문제들은 빠르게 풀고, 시간 안에 못 푸는 문제들은 나중에 따로 체크해서 개념 또는 스킬 또는 숙련 중 어떤 것이 부족한 지 확인이 필요했다.


시간을 정해서 푸니 1시간 안에 1회분 모의고사 분량의 문제들을 한 번씩 풀어냈다.

이후에는 답안지의 해설과 문제를 대조하여 어떤 내용이 부족한 지 체크했다.


"개념이 부족했던 문제들은 따로 인강을 보고, 스킬이 필요한 문제들을 정리해 보자."


충분히 시간과 정성을 들여 문제를 푸니 저녁 자습 시간의 3시간이 지나갔고, 계속 앉아있다 보니 허리와 손목이 뻐근하고 눈도 침침해졌다.


"시간이 얼마 없어. 조금만 더 힘내자."


텀블러에 담긴 얼음물을 들이키며 정신 차렸다.

그도 그럴 것이 이틀 후엔 P 모의고사를 응시해야 한다.


시중에는 여러 모의고사를 보는데, P 모의고사를 학생들이 많이 보고 변별력도 충분히 있어 이 학원을 비롯하여 많은 학원들이 P 모의고사를 많이 채택한다.

그리고 수능을 준비하는 현역 고등학교들도 개인적으로 P 모의고사를 구입해서 풀어보는 편이다.


그리고 학원에서는 교육청 모의고사를 보지 않는다.

처음에는 학교 다닐 때처럼 보는 줄 알았으나, 여긴 학교가 아닌 학원이므로 교육청 모의고사를 지급하지 않는다. 필요하면 학원에 있는 무인복사기를 통해 프린트하면 된다.


생각해 보니 학원 자체적으로 만들어 발행하는 모의고사도 있기 때문에 교육청 모의고사를 보는 건 시간 상 불가능했다.


"제대로 된 모의고사를 처음 보는 만큼 잘 보고 싶다."


아마도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학생들이 똑같이 하는 생각일 것이다.

학원에서 보는 첫 모의고사이기에 긴장되면서 불안하지만, 학원에 들어와서 열심히 공부했기에 잘 나올 것이라는 믿음을 믿고 갈 뿐이다.


이를 위해 각 시험 전에 볼 문제지도 미리 준비해 두고, 내가 내일 앉을 강의실 자리도 깔끔하게 치워두었다.

당연히 모의고사를 볼 때는 책상 대형도 바뀌기 때문에 기존 내 자리가 아니라 다른 학생이 앉아있던 책상을 쓴다.


-퇴실 시간입니다. 학생들은 공부를 마무리하고 기숙사로 퇴실하시길 바랍니다.


그때, 저녁 자습 종료를 알리는 종과 방송이 나왔다.

평소와 같았으면 계속 자습을 하고 있어야 하나, 모의고사 전날과 당일에는 조금이라도 잠을 더 컨디션을 끌어올리기 위해 1시간 일찍 기숙사로 퇴실한다.


"모든 준비는 끝났고, 남은 건 컨디션을 완벽하게 만드는 것뿐야!"


최대한 노력한 만큼 그 결과를 받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떨리는 긴장과 불안을 꾹 누르며 자습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 날, 모의고사를 보는 시간은 미치도록 빨리 지나갔다.

평소 100분, 80분, 70분 동안 자리에 앉아서 공부하려면 굉장히 힘들어 미칠 것만 같은데, 어떻게든 눈앞의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생각에 국어, 수학, 영어, 한국사, 탐구 2과목이 배정된 시간 동안 계속 집중했다.


일부러 쉬는 시간에는 친구들과 답을 맞혀보지 않았다.

괜히 답을 알면 그 생각만 나서 다음 과목을 잘 못 볼 것 같은 생각이었다.


실제로 현역 때도 시험을 보고 나서 바로 다음 과목을 공부했다.

해설 및 답안지는 모의고사가 끝나자마자 담임 선생님에 의해 나누어졌다.


"야야, 이게 정답이었어?"

"아! 이게 뭐야?! 말도 안 돼!"

"으아. 살았다. 이것마저 틀렸으면 50점 미만이었을 거야."

"탐구 공부 좀 할걸. 망했다."

"생각보다 문제들이 많이 어려웠어. 특히 수학이 대박이야."


곳곳에서 시험 결과에 대한 반응이 나왔다.

나는 답안지를 보고 문제지에 적어 놓은 답들을 체크하는데 점점 안색이 어두워진다.


"진수야. 시험 잘 봤냐?"

"이번에 태영이 형과 재원이는 나쁘지 않게 나왔다고 하던데."

"무슨 모의고사가 이렇게 어렵냐?"


그리고 주변의 친구들이 다가왔는데, 멘탈이 나가기 직전이었다.

한 달 동안 뭘 공부했는지 모르겠다. 아니 분명 작년까지 했던 공부인지 아예 모르겠다.


"그냥 괜찮게 본 것 같아. 점수 나쁘지 않아."


이 와중에 내 점수를 친구들에게 보이기 싫어 얼른 채점한 문제지를 접었다.

솔직히 다른 친구들 점수는 모르겠지만, 이번 모의고사 성적은 지금까지 받은 성적 중 최악이다.

특히, 수학이 완전 망했다!!


모의고사 문제들을 머릿속으로 다시 되뇌어 보니 국어는 지문에서 읽다가 분석이 안 돼서, 수학은 개념들을 몰라서, 영어는 듣기도 틀리고 단어를 몰라 독해가 아예 안 됐다. 

한국사는 현역 때 기억을 떠올려 풀었고, 사탐은 공부 안 해서 거의 찍었다.


"이야, 공부 잘하는구나."

"하긴. 평소에 우리가 물어보면 잘 알고 있었으니까."


주변 친구들은 내 반응에 좋은 점수가 나왔다고 생각했는지 치켜세운다.

그 말에 그냥 나는 미소를 띠지만 속은 타들어간다.


"오늘 저녁에 치킨 뷔페래!!"

"진짜? 와, 끝내주네!!"

"얼른 식당 가자!!"

"모의고사는 잊고 맛있게 먹자!"


그때, 건우의 말에 주변 학생들의 반응이 저녁 식사 메뉴로 쏠렸고, 저녁 식사 시작을 알리는 종이 치자 우르르 주변 학생들이 식당으로 향했다.


다행히도 밥 먹자는 친구들의 말에, 고민은 밥 먹고 해도 늦지 않으니 친구들과 함께 식당으로 가서 다양한 치킨들을 먹기로 결정했다.




"올해 출제 경향은 작년과 동일하지만, 쉽게 풀 수 있는 개념 문제들이 많았습니다."

"비문학에서 성적을 올리고 싶다면 감을 잃지 않게 꾸준히 풉니다."

"아마 대부분 영어를 감으로 푸는 경우가 많을 거야. 특히, 외고 학생들은 학원에 와서 영어 공부는 하나도 안 했을 거고! 근데 안 하면 무조건 3등급 밑으로 확정이야!"


저녁 식사를 마친 후 평소에는 자습실에서 자습을 하지만, 모의고사를 본 날에는 강의실에서 국어, 수학, 영어 학과 선생님의 총평이 있어 강의실에서 영상을 본다.


영상은 대형 강의실에서 촬영을 해서 실시간으로 각 강의실의 학생들이 볼 수 있게 해 주고 있다.

그리고 그곳 강의실에선 각 반에서 2, 3명의 학생이 직접 총평 영상을 본다.


디테일한 문제풀이는 각 수업에 들어오는 선생님들이 진행하고, 총평 시간에는 모의고사 관련 자료들을 보며 이번 달에 본 모의고사의 난이도와 문제 방향을 확인하니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알겠다.


"혹시나 싶어 말하는데 모의고사 시험지는 수업 시간에 문제풀이를 하니 버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매 달 모의고사마다 학습 상담을 진행하니 원하는 학생은 신청지의 날짜와 시간을 확인하고 본인 이름을 적습니다.

총평 분석지도 나눠줄 테니 모의고사를 보면서 부족했던 점, 채워 나가고 싶은 점들을 적어서 내일 담임 시간에 일괄 제출하고, 상담할 때 되돌려주겠습니다."


총평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 시작하자, 강의실에 같이 있던 담임 선생님은 간략한 공지 사항과 모의고사 상담 신청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나갔다.

그 말에 몇몇 학생들이 강의실 뒤쪽에 붙여진 상담 신청지로 향했는데, 나도 그 무리에 속해 있었다.


"어? 이 시간이 비었다고?"


학생들은 본인 시간표를 떠올리며 상담 신청지에 시간을 적는데, 상담 첫날의 첫자리가 비어있다.

아직 다른 학생들이 적지 않은 것 같아 얼른 그 자리에 내 이름을 적었고, 뒤이어 적으려던 학생들이 보고 아쉬운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진짜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발걸음은 자습실로 향하는데, 머릿속은 좋지 않은 성적으로 복잡하다.

오늘 공부가 제대로 될는지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해 보기 위해 마음을 다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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