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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궐 Jan 04. 2024

저게 내 수학 등급이면 좋겠다.

32_헛된 희망을 꿈꾸기보단 차근차근 공부해야 한다.


“학원에서 병무청 신체검사를 받으러 갈 예정입니다. 날짜는 병무청과 조율 중이라 미정이고, 오전 수업 빠지고 가니까 신청할 학생은 내일까지 강의실 뒤의 보드판에 이름 기입해 두세요. 

신분증은 필수로 챙겨가야 하고, 의료진단서 가지고 갈 학생 있으면 미리 부모님에게 연락해서 택배로 받습니다.

그리고 확실하진 않지만 제가 건너 듣기론 일주일 내로 갈 예정입니다.”


6월 평가원 모의고사를 준비하던 중에 담임 시간에 갑작스러운 일정이 튀어나왔다.

그러고 보니 주소 이전을 이야기할 때, 담임 선생님이 언급했던 적이 있었다.


기숙학원에 들어온 학생들의 대부분은 병무청의 신검을 받지 않은 상태라, 학원에서 학생들을 배려해서 단체로 간다고 했었다.


보드판에는 병무청 신검 신청 명단이라고 담임 선생님이 양식을 만들어서 게시되어 있었고, 그곳에 이름을 적으면 되었다.


“어떻게 할 거야?”

“가야지. 주소 이전 신청할 때 병무청 홈페이지 들어가 봤는데, 우리 외출할 때 날짜는 다 찼더라.”

“아, 망했네.”

“게다가 11월은 자리 없고, 12월에는 몇몇 자리 밖에 없더라. 다 수능 끝나고 보려는 거지.”


반 애들끼리 학원에서 가는 병무청 신검을 갈지 말지 고민하는 이야기들이 들려왔다.

그렇지 않아도 나도 주소 이전할 때 확인해 보니 학원 정기외출에 맞춰 갈 수 있는 신검 일정이 하나도 없었다.


물론 병무청이 각 지역마다 있지만, 내가 사는 지역은 없어 결국 학원 인솔을 통해 병무청 신검을 받을 팔자였다. 그리고 12월에 자리가 있었지만 수능 끝나고 그 기간에 놀아야 한다는 생각에 신청하기가 애매모호했다.


‘생각날 때, 신청하고 가자.’


나중으로 미루었다간 까먹을 것 같아 오늘 이야기를 들었으니 펜을 들고 명단에 이름을 적으려는데, 비슷한 생각을 한 몇몇 애들의 이름이 먼저 적혀 있었다.

이렇게 이름을 적고 3일 정도가 지나 까먹었을 때쯤 다시 담임 시간에 관련 내용이 공지되었다.


“병무청 신검받으러 가는 날이 3일 후인 수요일로 확정되었습니다. 그날 수업은 정상 진행되며, 병무청 가는 학생들은 수업 빠집니다.”

“혹시 학원에서 보강해 주나요?”

“아니요. 학원 사정이 아니라 여러분의 사정으로 빠지는 것이기 때문에 보강은 없습니다. 단, 프린트물이나 수업 관련해서 제공받는 것이 있다면 수업하는 학과 선생님에게 이야기하면 배부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병무청 가는 학생들은 출발일에 평소와 동일하게 일어나지만, 7시에 출발하니 이전까지 모든 준비를 마쳐야 합니다.”

“네에?!”


7시에 출발이라는 말은 일어나자마자 씻은 뒤 바로 밥 먹고 모여야 한다는 말이어서, 곳곳에서 탄성이 튀어나왔다.


“병무청에서 9시에 학원 학생들을 받는다고 해서 어쩔 수 없습니다. 그리고 출근 시간하고 겹치기 때문에 늦게 도착하는 것보단 일찍 도착하면 차에서 기다렸다가 들어갈 예정입니다.”

“학원 복귀는 언제쯤 하나요?”

“점심시간쯤에는 도착할 겁니다. 그리고 핸드폰 나눠주는 건 없습니다!”

“네에?!”


또다시 2차 탄성이 쏟아졌는데, 목소리에 원망과 분노가 실려있었다.


“학원에서 대절한 버스 타고 병무청 주차장에서 내려줍니다. 그럼 건물 안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바로 버스 타고 학원에 돌아오는데 핸드폰이 왜 필요하죠? 이건 학원에서 결정한 사항이라 번복은 없습니다.”


핸드폰을 달랠 수 있는 명분이 없어, 반박할 수 있는 학생은 하나도 없었다. 


“정리합니다. 병무청 신검받는 학생은 그날 6시에 기상해서 6시 50분까지 로비 앞에 있는 버스에 탑승합니다. 늦게 나오면 방송으로 병무청 간다고 동네방네 소문내니까 일찍 움직일게요. 명단과 버스 탑승 번호는 보드판에 게시하겠습니다.”


이렇게 병무청을 가기 전에 필요한 준비물과 시간 및 장소가 공지되었다.

명단을 보니 내 이름도 들어가 있어 담임 선생님 말대로 3일 후 일찍 일어나서 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병무청 신검 날 아침.

7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일어나자마자 바로 씻고 식당으로 갔는데, 병무청 가는 학생들을 위해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준비해 두어 빨리 식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병무청에 가는 인원은 약 60명으로 학원에서 버스 2대를 대절했고 먼저 버스를 탄 덕분에 편하게 혼자 앉았다.


“인원 체크로 반과 이름을 부르면 대답합니다. 그리고 신분증을 다 챙겼는지 확인합니다.”


예정된 시간이 되자 인솔 선생님이 와서 인원 체크를 하는데 예상외로 모든 학생이 버스에 탑승한 상태였다.

덕분에 버스는 빠르게 병무청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이 시간에 학원이 아닌 밖에 나가니까 이상하네.’


평소라면 이 시간에 밥을 먹고 자습실에서 공부하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창 밖 너머로 수 없이 움직이는 차들과 고층 건물들이 보이자 신기한 기분이다.


외진 때도 차를 타고 밖을 나간 적이 있지만, 그땐 논밭과 작은 건물들만 가득했다.

그런데 우리가 가는 병무청은 수원 시내 쪽에 있어 번화가가 보인다.


이렇게 차는 50여분을 달려 수원 시내에 들어섰는데, 출근 시간과 겹쳐 길이 조금 밀리긴 했지만 8시 15분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시간이 여유 있어 학생들은 잠을 자거나 잠깐 차 안에서 가져온 책을 보곤 했다.


“지금 순서대로 내려서 병무청으로 들어갑니다. 신검받을 때 신분증은 무조건 필요하고, 가져온 진단서 있으면 챙겨갈게요. 그리고 검사 끝나면 다른 데 가지 말고 바로 버스 탑승하는데, 혹시라도 이탈 학생이 있다면 학원 규칙을 FM대로 적용할 겁니다.”


시간이 8시 50분이 되자 인솔 선생님이 병무청에 연락하고는 학생들에게 공지했다.

그리고 순서대로 버스에서 내리니 바로 옆 건물에 편의점이 보이자 바로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딱 저기 가서 간식 사 먹으면 딱이겠는데.”


그나마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고, 술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이 두 가지를 좋아하는 학생들이라면 폐쇄적인 기숙학원 생활을 하며 정말 기회일 수 있었다.

걸리지만 않고 담배와 술을 사 올 수 있다면 최고인데, 인솔 선생님의 엄포와 확인이 있을 것 같아 몇몇 애들이 고민하는 기색이 보였다.


“순서대로 접수하고 들어갈게요.”


병무청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안내에 따라서 움직이니 진짜 별 다를 게 없었다. 

순서에 맞춰 자리에 앉아있다가 몸무게 측정을 비롯하여 기본 검사를 하고, 의사들과 이야기하고, 설문지 작성하니 약 40여분의 시간이 지나 마무리 됐다.


부모님이 건강하게 키워준 덕분에 그동안 몸이 크게 아팠던 적도 없고, 사고가 난 적도 없었다. 그리고 시력도 안경을 안 쓸 정도로 좋아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빠르게 지나간 것 같다.


‘현역으로 나올 것 같은데, 과연 몇 급이 뜰까?’


모든 검사를 끝마치고 급수 판정을 기다리는 동안 심장 떨림이 멈추지 않고 계속 쿵쾅쿵쾅 거렸다.

앞에서 판정받는 사람들을 보니 대부분 2급이 뜨고 있었다.


“다음 번호 나옵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어 나가서 급수를 확인하는 순간이 되었고, 모니터에서 신체검사 급수가 뜨기를 기다렸다.


“1급입니다. 현역입영대상입니다.”

“아....”


예상했던 급수가 나오자 그냥 나도 모르게 탄성이 튀어나왔다.


‘저게 내 수학 등급이면 좋겠다.’


가장 등급을 올리기 어려운 과목이 수학인데 여기서 1등급을 맞아주면 정말 소원이 없을 것 같았다.

이렇게 순식간에 신체검사를 마치고 나가서 버스 타기 전, 나중에 여러 가지 혜택이 있다는 나라사랑카드를 만들었다


그런데 밖에 나가니 2명의 학생이 인솔 선생님 앞에 고개를 푹 숙이며 서 있었다.


“얘들아, 너희가 제정신이냐?”

“....”

“뻔히 너희들 동선이 보이고, 인원 파악이 되는데 그냥 무식하게 가는 것도 웃기다.”

“.....”

“아까 말한 대로 원칙대로 한다. 일단 편의점에서 산 물건은 압수하고, 학원 가면 경위서 작성하고, 중대규칙 위반으로 근신 설 거다.”


지나가면서 인솔 선생님이 하는 말을 듣자 어떤 상황인지 바로 파악되었다.

자신의 앞에 먼저 신검을 끝내고 나간 학생들이 있었는데, 이들 중 2명이 편의점으로 달려가 담배 및 과자와 음료수를 샀다.


인솔 선생님은 병무청 입구와 버스 그리고 편의점이 고개를 돌리면 바로 볼 수 있게 지대가 높은 곳에서 서 있어서 두 명의 학생이 병무청에서 나오자마자 편의점으로 가는 것을 바로 확인한 것이었다.


두 학생은 아쉬움과 실망감이 가득 채 조용히 버스에 탑승했고, 나 또한 버스에 탑승 후 눈을 감았다.


‘학원 도착할 때까지 잠이나 자자.’


어떻게 보면 별 거 아닐 수 있지만, 병무청 신검을 받는 게 정신적으로 쉬운 건 아니었다.

군대를 가야 한다는 막막함과 1급이 떴으니까 2급과 3급 뜬 사람들과 달리 빡센 곳에 배정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자 괜히 짜증이 났다.


하지만 지금은 군대 보다 눈앞의 수능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 중요했기에 이렇게 병무청 신검도 잘 마무리했고, 열심히 공부해서 성적 올릴 수 있다는 긍정적인 희망 회로를 돌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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