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바꼭질 : 보통의 인간에 대하여(완결)

제7장. 숨바꼭질

by 국회의원

우진은 최근 도심 외곽의 신축 아파트로 거처를 옮겼다. 널찍한 평수와 탁 트인 거실, 그리고 아이의 방을 따로 꾸며줄 수 있을 만큼 넉넉한 구조가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이제 막, 온 집안을 헤집고 다니기 시작한 기준 때문이었다. 아이가 커가면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을 독립된 공간이 필요하다는 판단은 부모로서 당연한 결정이었다. 우진의 일상은 칼날처럼 날카롭고도 정교하게 쪼개졌다. 낮 동안 그는 회사에서 빈틈없는 업무 처리로 신뢰받는 유능한 직장인이었으나, 퇴근을 알리는 시계 바늘이 6시를 가리키는 순간 그는 오로지 다정한 아버지라는 역할로 전이되었다. 그는 자신의 일상을 육아와 업무라는 두 톱니바퀴로 빈틈없이 채웠다. 다른 사적인 감정이나 과거의 망령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다.


아이가 자라면서 세상 만물에 대한 호기심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특히 아이는 곤충을 좋아했다. 집착에 가까운 관심이었다. 베란다 구석에 기어가는 개미 한 마리, 창틀에 죽어 있는 파리 등, 조그만 다리가 꿈틀거리고 날개가 파르르 떨리는 작은 생명체들로부터 눈을 떼지 못했다. 우진은 아이의 관심을 응원하며 커다란 사육 통과 함께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 한 쌍을 선물했다.

“기준아, 이 친구들은 아주 소중한 생명이야. 네가 잘 돌봐줘야 해.”

우진의 말에 아이는 무표정하게, 그러나 깊은 눈동자로 사육 통 안의 곤충들을 응시할 뿐이었다.


어느 평화로운 토요일 저녁이었다. 주방에서는 노릇하게 구워지는 고기 냄새가 진동했고, 지글거리는 소리가 집안을 채우고 있었다. 그러나 문득, 우진은 거실이 지나치게 조용하다는 위화감을 느꼈다. 평소라면 곤충들에게 이름을 붙여주며 옹알거리거나, 사육 통 벽을 두드리며 재잘거리는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야 할 시간이었다. 그 정적은 마치 진공 상태처럼 차갑게 우진의 뒷덜미를 훑었다.

우진은 앞치마에 대충 손을 닦으며 아이의 방으로 향했다. 거실 불은 꺼져 있었고, 오직 아이의 방 문틈 사이로만 가느다란 불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우진이 숨을 죽이고 문을 열었을 때, 기준은 바닥에 엎드린 채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간 우진은 그 자리에서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기분을 느꼈다. 아이는 무표정한 얼굴로, 살아있는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의 다리를 가위로 정교하게 절단하고 있었다. '서걱, 서걱.' 작은 금속음이 들릴 때마다 곤충들의 다리가 하나씩 바닥으로 떨어졌다. 날개가 뜯긴 채 뒤집혀 필사적으로 허공을 젓는 생명체들을 내려다보는 아이의 눈은 소름 끼치도록 고요했다. 그곳엔 새로운 것을 발견한 호기심도, 파괴에서 오는 잔인한 즐거움도, 그렇다고 생명을 해친다는 일말의 죄책감도 없어 보였다. 그저 무기질적인 관찰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그날 밤, 우진은 잠을 설쳤다. 아이의 무표정한 얼굴과 공허한 눈빛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미성숙한 아이에게서 올 수 있는 자연스러운 문제인지, 유정이 죽기 전 남겼던 저주 같은 편지의 문장처럼 자신의 유전적 결함의 되물림에 의한 재앙인지, 혼란스러웠다. 답은 쉽게 내려지지 않았다. 결론은 하나였다. 그는 기준을 자신과는 다른 존재, 즉 평범하고 따뜻한 심장을 가진 아이로 만들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매일 밤 퇴근 후 피로를 누르며 아동 심리학 서적을 뒤졌고, 공감 능력 향상에 좋다는 놀이법을 공부했다. 주말이면 억지로라도 아이를 데리고 나가 또래들과 어울리게 하며, 남들처럼 웃고 떠드는 법을 가르치려 애썼다.

하지만 우진의 노력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아파트 놀이터에서 터진 사건이 결정적이었다. 우진의 아이가 미끄럼틀을 타기 위해 줄을 서 있을 때, 덩치가 큰 아이 하나가 기준을 거칠게 밀치고 새치기를 했다.

“비켜, 꼬맹아! 나 먼저 탈 거야!”

보통의 아이라면 울음을 터뜨리거나 부모를 찾았겠지만, 기준은 그저 한 걸음 물러나 무표정하게 상대를 지켜보았다.

잠시 후, 새치기한 아이가 신나게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는 순간이었다. 미끄럼틀 밑에 매복하듯 서 있던 기준은 들고 있던 진득한 포도 음료수를 내려오는 아이의 얼굴에 정면으로 던졌다. ‘퍽’하는 기분 나쁜 타격음과 함께 보라색 액체가 아이의 얼굴과 흰 티셔츠를 엉망으로 뒤엎었다. 갑작스러운 습격과 시야를 가리는 액체에 공포를 느낀 아이는 숨이 넘어갈 듯 자지러지게 울음을 터뜨리며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기준은 그 소란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아이는 마치 방해물을 치운 청소부처럼 평온한 얼굴로, 이제는 비어 버린 미끄럼틀을 독점하며 계단을 올랐다. 그리고 정점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아주 작고 무미건조한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승리의 기쁨이라기보다, 방해 요소를 제거하고 목적을 달성한 자의 기계적인 만족감에 가까워 보였다.

“아, 괜찮아요. 아이들끼리 놀다 보면 그럴 수 있죠. 기준아, 아줌마 갈게. 다음에 봐.”
피해 아이의 엄마는 아이들 사이의 흔한 장난이나 대수롭지 않은 소동으로 여기며 가볍게 인사를 건네고 자리를 떴다. 보통 부모의 관점에서 본다면 또래 간의 미숙한 갈등 해결 방식으로 치부될 수도 있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멀리서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우진의 심장은 걷잡을 수 없이 요동쳤다. 아이가 다른 아이와 잠시 시비가 붙는 사소한 순간조차 우진에게는 거대한 불안으로 다가왔다. 우진은 그 모든 것을 자신의 내면에 숨겨진 어둠의 발현으로 의심했다.

유정이 남긴 편지에 적힌 '끔찍한 본능', '보통과 다른 사람'이라는 단어들이 ‘괴물’이라는 이름으로 우진의 정신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이제 아이의 눈빛, 손가락 끝의 작은 움직임 하나조차 그 불길한 단어들과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기준이가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는 평범한 모습 뒤에서도 우진은 아이가 숨기고 있을 '끔찍한 진실'을 홀로 상상하며 몸서리쳤다. 아이의 천진난만한 웃음소리는 더 이상의 기쁨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불안을 조롱하는 악마의 비웃음처럼 들렸고, 아이가 티 없이 맑은 표정을 지을수록 우진의 의심은 더욱 깊은 늪으로 빠져들었다.

우진은 이제 아이를 그저 사랑스러운 아들로만 바라볼 수 없게 되었다. 그의 눈에 비친 기준이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었으며, 자신이 평생을 혐오해온 그 '결함'이 고스란히 대물림된 저주받은 결과물이었다.


우진은 그날로 아이의 방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사육 통과 그 안의 모든 곤충을 모두 치웠다. 그는 아이가 특정 행동에 몰입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였다. 집 안 풍경도 바뀌었다. 주방의 가위, 칼, 심지어 끝이 뾰족한 필기구에 이르기까지 아이의 손이 닿을 만한 모든 날카로운 물건은 손이 닿지 않는 높은 곳으로 옮겨졌다. 우진은 집 안을 아이에게 안전한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다.

놀이터에서의 외출은 이제 즐거움이 아닌 조심스러운 움직임이 되었다. 우진은 아이들 사이에서 작은 마찰의 기미만 보여도 재빨리 개입하여 상황을 마무리 지었다. 그는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갈등을 겪고 해결하는 기회를 주는 대신, 그러한 상황 자체를 피하고자 했다. 결국 그는 다른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늦은 밤이나 새벽 시간에만 아이의 손을 잡고 밖을 나섰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길 때도 우진의 불안은 컸다. 그는 담임 선생님에게 몇 번이고 부탁하며 간절하게 요청했다.

“선생님, 기준이가 아이들과 작은 갈등 상황이라도 생기면 즉각 개입해 주십시오. 아이들끼리 해결하게 두지 마시고, 선생님들께서 바로 분리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우진은 이 격리와 통제가 아이를 세상의 비난으로부터 보호하고, 동시에 아이의 행동을 조절하는 유일한 방법이라 믿었다. 그는 아이의 충동을 억누르고 통제하면, 언젠가는 그 행동도 잦아들 것이라 자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왔다.

“기준이 아버님 되시죠? 기준이 관련해서 면담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 혹시 언제 시간 되실까요?”

어린이집에서 걸려 온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차분했으나, 그 내용은 우진의 심장에 날카로운 비수를 꽂기에 충분했다. 며칠 뒤, 우진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어린이집 상담실 소파에 앉았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벽 너머로 활기차게 들려왔지만, 우진이 앉은 공간만큼은 차가운 냉기가 감돌았다.

“기준이 아버님, 바쁘신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준이 관련해서 꼭 면담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

담임 선생님은 깍지 낀 손을 만지작거리며 어렵게 말을 떼었다. 그녀의 눈빛은 무거운 진실을 앞두고 흔들리고 있었고, 그 속에는 우진을 향한 차마 말로 다 할 수 없는 깊은 안타까움이 서려 있었다.

“기준이가 너무 고립되어 있습니다.”

선생님의 첫 문장은 비수처럼 우진의 가슴에 박혔다. 그는 본능적으로 방어적인 태세를 취했지만, 선생님의 이어지는 말들은 그 방어벽을 무너뜨렸다.

“처음에는 아버님께서 요청하셨던 대로, 아주 작은 갈등 상황만 보여도 저희 선생님들이 즉각 개입했어요. 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다투려 하거나, 놀이 그룹에서 약간의 의견 충돌이 생기려 할 때마다 '안 돼', '같이 놀아야지'라고 말하며 중재했습니다.”

선생님은 잠시 숨을 골랐다. 그녀의 표정에는 그 당시의 결정에 대한 후회와 함께, 예상치 못한 결과에 대한 당혹스러움이 묻어났다.

“그런데 그 결과가 예상치 못한, 아주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어서 저희도 좀 당혹스럽습니다. 이제는 선생님들이 개입하지 않아도, 오히려 아이들 스스로가 기준이를 '함께 놀면 안 되는 아이', '놀이에서 제외되어야 할 존재'로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의 순수한 직관이 '기준이와 놀면 불편해진다', '선생님한테 혼난다'는 학습을 끝마친 겁니다. 처음에는 순수한 마음으로 기준이에게 같이 놀자고 다가갔지만 사사건건 어른들이 끼어들고, 자연스러운 놀이의 흐름이 끊기니, 아이들도 본능적으로 그 상황을 피하게 된 것 같습니다. 놀이터에서 공을 차다가도 기준이가 다가오면 멈칫하고, 소꿉놀이를 하다가도 선생님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어요. 결국 지금 기준이는 점심시간을 제외하면 온종일 혼자입니다. 밥 먹는 시간은 정해져 있으니 그나마 함께하지만, 그 외의 자유 놀이 시간이나 바깥놀이 시간에는 늘 혼자 구석에 앉아 그림을 그리거나 모래를 만지고 있어요.”

선생님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 떨림은 단순히 사실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선, 한 아이를 지켜보는 교육자로서의 깊은 좌절감이었다.

“이 나이대는 친구들과 부대끼고, 때로는 작은 오해로 싸우기도 하고, 또 금세 화해하면서 스스로 사회적 근육을 키우는 시기입니다. 관계 맺는 법, 갈등 해결 능력, 양보와 타협의 기술을 배우는 중요한 시기죠. 그런데 기준이는 그렇지 못하고 있어요. 어린이집이 어떻게 보면 아이들의 첫 사회화 활동의 장인데, 기준이는 그 부분에 있어 또래보다 너무 많이 뒤처져 있습니다.””

우진은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아이를 지키기 위해, 상처받지 않게 하기 위해 세웠던 그 높고 견고한 성벽이, 정작 아이를 외부 세계와 단절시키는 감옥이 되었다는 사실이 그를 짓눌렀다. 유정이 남긴 저주 같은 편지 문구들이 환청처럼 귓가를 맴돌았다.

[당신이 기준이 옆에 있으면 그 아이는 당신과 똑같은 삶을 살게 될 거야.]

그 문장은 독니가 되어 우진의 심장에 박혔다. 유정이 남긴 문장들은 단순히 글자가 아니라 우진의 영혼을 갉아먹는 기생충처럼 집요하게 번식했다. 하지만 그는 절망의 나락 끝에서도 아이를 포기할 수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포기하는 순간 정말로 유정의 저주 섞인 예언대로 될 것 같아, 벼랑 끝을 붙잡은 심정으로 미친 듯이 발버둥 쳤다. 만약 여기서 멈춘다면 기준이는 정말로 자신과 똑같은 ‘괴물’이 될 것이라는 공포가 그를 추동했다.

그는 아이를 모든 상황에 노출시키기로 결심했다. 자신이 옆에서 지켜보되 개입의 순간을 세밀하게 조절하며 '평범한 아이'처럼 갈등을 넘기는 법을 훈련시키기로 했다. 기준이 친구와 장난감을 두고 대치할 때, 우진은 주먹을 꽉 쥔 채 이성을 가동했다.

‘지금은 개입하지 마. 기준이가 스스로 말하게 둬. 양보하며 다음 기회를 잡는 법을 가르쳐야 해.’

기준은 영특했다. 우진의 코칭을 스펀지처럼 흡수했고, 놀랍게도 어린이집 생활은 겉보기에 눈에 띄게 개선되었다. 아이는 이제 적당히 양보할 줄 알았고, 적당히 미소 짓는 법을 배웠다.

그러나 문제는 기준이 아니라 우진 자신이었다. 놀이터에서 기준이 또래 아이에게 밀쳐져 엉덩방아를 찧던 날이었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기준이 울음을 참으며 일어서려 할 때, 우진의 내면 깊은 곳, 가장 어둡고 습한 구덩이에 잠들어 있던 짐승 같은 본능이 번뜩 눈을 떴다. 상대는 고작 다섯 살짜리 어린아이였다. 코를 훌쩍이며 아무 생각 없이 장난을 치던 무지하고 연약한 존재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아이가 기준에게 위협이 된다고 인지되는 순간 우진의 눈빛은 살의에 가까운 냉기로 가득 찼다. 그는 본능적으로 상대 아이에게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였다.

부모라면 느꼈을 당연한 보호본능마저 우진은 자기혐오로 치환하며 고통받았다. 그는 자동차 핸들을 으스러지도록 움켜쥐듯 필사적으로 이성의 고삐를 당기며, 자신의 본능을 쇠창살 안에 가두려 애썼다.

하지만 상황이 반복될수록 우진의 마음속 괴물은 점점 더 강해졌다. 아주 작은 갈등만 생겨도 쇠창살을 부수고 나오려는 괴물의 포효가 귓전에서 울려 퍼졌다.


[당신은 보통의 사람들과 달라]

[부디 기준이가 당신과 같은 삶을 살지 않길 바래]

유정의 편지에 적힌 문장들이 날카로운 파편이 되어 우진의 가슴 속을 헤집었다. 편지 속, 유정의 경고는 시간이 갈수록 저주처럼 선명해졌다.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볼 때마다 우진은 그 안에서 도사린 괴물을 목격했다. 우진은 깨달았다. 아이에게 평범한 삶을 선물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 그것은 교정도 훈련도 아니었다.

사랑하는 아이를 지키기 위해 내릴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 아이의 생애에서 자신이라는 존재를 영원히 도려내는 것이라는 지독한 역설. 그것이 우진이 마주한 최후의 진실이었다.

깊은 밤, 어둠 속에서 우진은 홀로 결론을 내렸다. 그것은 자포자기가 아닌, 아빠로서 행할 수 있는 가장 처절하고도 숭고한 자기희생적 폭력이었다. 정우진이라는 이름의 존재를 이 세상에서 완전히 지워버리는 것. 그것만이 아이에게 더 나은 미래를 선물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라고 믿었다.


며칠 뒤, 우진의 회사 내에 공지 사항이 올라왔다.


[영업팀 정우진 팀장 본인상]

짧은 문장이 전하는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게시판을 확인한 이들마다 마우스를 쥔 손을 멈췄고, 사무실 곳곳에서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낮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늘 완벽하고 든든했던 팀장의 갑작스러운 비보에 동료들은 슬픔을 금치 못했다.

장례식장 입구에는 그가 살아생전 쌓아온 인망을 증명하듯 수많은 화환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하지만 그 화려한 꽃들도 빈소 내부의 무거운 공기를 걷어내지는 못했다. 동료들의 비통함과 슬픔, 현실을 부정하는 듯한 망연자실한 표정들을 뒤로한 채, 제단 위 영정사진 속 우진은 지나치게 무심하고도 평온하게 웃고 있었다. 우진의 팀원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검은 양복을 갖춰 입고 빈소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저마다 상주를 자처하며 조문객을 맞이하고, 음식을 나르고, 거친 일을 도맡았다.

"팀장님이라면 분명 이렇게 하셨을 거야." 누군가 붉어진 눈시울을 훔치며 속삭였다. 그들의 헌신 덕분에 장례식장은 단 한 순간도 쓸쓸할 틈 없이 북적였지만, 역설적으로 그 북적임은 우진의 부재를 더욱 선명하게 부각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 소란스러운 슬픔의 한복판에서, 보는 이들의 가슴을 가장 날카롭게 베어내는 풍경은 따로 있었다. 바로 우진의 어린 아들, 기준이었다. 아이에게 이 상황은 그저 이해할 수 없는 낯선 연극과 같았다. 검은 옷을 입은 어른들이 연신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손을 잡으며 눈물을 흘리는 이유를 아이는 알지 못했다. 기준이는 할머니의 품에 꼭 안긴 채, 커다란 눈망울을 깜빡이며 조문객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아이의 눈에는 슬픔보다 당혹감이, 그리움보다 낯설음이 더 짙게 배어 있었다.

"아빠는?"

아이가 무심코 내뱉는 짧은 질문에, 곁을 지키던 팀원들은 일순간 숨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야만 했다. 아빠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세상에서 자신의 이름을 지우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것을, 이제 아이는 영영 알 수 없을 터였다. 우진이 그토록 지키고 싶어 했던 아이의 '평범한 미래'는 이제 아빠가 없는 빈자리 위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영정사진 속 우진의 미소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기묘하게 느껴졌다. 괴물을 품은 자신을 도려냄으로써 아이에게 평온을 선물했다는 확신일까, 아니면 이 모든 죄책감으로부터 마침내 자유로워졌다는 안도감일까. 동료들의 곡소리와 아이의 천진난만한 침묵이 뒤섞인 장례식장의 밤은 그렇게 잔인할 정도로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우진은 그렇게 세상으로부터 영원히 숨었다.


주인을 잃은 우진의 집은 이제 박물관처럼 고요했다. 창틈으로 스며드는 가느다란 햇살만이 먼지 섞인 공기 속을 유영할 뿐, 집 안 어디에도 더 이상 치열하게 삶을 지탱하던 온기는 남아 있지 않았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아이의 웃음소리와 우진의 낮은 목소리가 머물던 공간은, 이제 부동산 매물이라는 차가운 딱지가 붙은 채 타인의 침입을 기다리는 껍데기가 되어 있었다.

우진의 유일한 친구였던 창민은 친구의 마지막 흔적을 거두기 위해 커다란 상자 몇 개를 들고 거실 한가운데 섰다. 텅 빈 집안에 울려 퍼지는 자신의 발소리가 마치 죽은 친구의 심장 소리처럼 들려 창민은 몇 번이나 마른침을 삼켰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서재에 정갈하게 꽂혀 있던 책들을 하나둘 상자에 담기 시작했다. 우진이 밤새워 읽던 전공 서적들, 아이에게 읽어주기 위해 모퉁이가 닳도록 넘겨본 동화책들, 그리고 거실 구석에 굴러다니던 낡은 장난감 자동차까지.

물건 하나를 집어 올릴 때마다 우진의 온기가 손끝에 닿는 것 같았다. 아이를 지키기 위해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스스로를 몰아세웠던 친구의 고독한 사투가 떠올라, 창민은 몇 번이나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삼키며 가슴을 쳐야 했다.

"이 바보 같은 놈아, 뭐가 그렇게 급해서..." 창민의 원망 섞인 혼잣말이 벽에 부딪혀 공허하게 돌아왔다. 손때 묻은 리모컨 하나에도 우진의 지문이 남아 있는 것만 같아 그는 차마 상자 뚜껑을 닫지 못하고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거실 정리를 어느 정도 마쳐갈 무렵, 소파 아래 깊숙한 곳에 무언가 하얀 물체가 창민의 시선에 걸렸다. 그는 허리를 숙여 그것을 꺼냈다.

오랫동안 방치된 듯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쓴 우편물 봉투였다. 뜯겨진 봉투의 입구는 날카롭게 해져 있었고, 그 안에는 빳빳한 종이 한 장이 들어 있었다.

발신인 칸에는 선명하고도 차가운 서체로 [한국 유전자 감정평가원]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창민은 영문도 모른 채 그 종이를 펼쳐 들었다. 종이의 상단에는 접수 번호와 날짜가 적혀 있었고, 아래쪽에는 감정 결과가 붉은 인장과 함께 박혀 있었다. 창민의 눈이 기록된 문장들을 훑어 내려가는 순간, 그의 사고는 일시에 정지했다.

[검사 결과: 의뢰하신 피검사자 A와 B의 유전자는 일치하지 않음.]

[결론: 따라서 양자 간의 친자 관계가 성립되지 않음.]

창민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어 눈을 비비고 다시 문장을 읽었다. 친자 관계 불성립. 유전적 불일치. 그것은 우진이 그토록 두려워했던 ‘자신의 괴물 같은 유전자’가 사실 기준이에게는 단 한 방울도 섞이지 않았다는 완벽한 증명이었다.

우진은 평생을 괴로워했다. 자신의 안에 도사린 폭력성과 냉혹함이 아이에게 대물림될까 봐, 사랑하는 아들이 자신과 똑같은 어둠 속을 걷게 될까 봐 두려워하며 스스로를 난도질했다. 그 두려움 때문에 아이를 세상과 격리했고, 끝내 그 두려움을 이기지 못해 아이의 삶에서 자신을 영원히 도려내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하지만 진실은 잔인했다. 기준이는 처음부터 우진의 괴물을 닮을 리가 없는 아이였다. 우진이 그토록 지키려 했던 아이는 애초에 그가 두려워하던 저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였다.

창민은 구겨진 결과지를 손에 쥔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 우진이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알고서도 이 모든 비극을 짊어진 것일까, 아니면 이 종이를 확인하고 나서야 자신이 쌓아 올린 세계가 아무런 근거 없는 공포 위에 세워진 사상누각이었음을 깨닫고 무너져 내린 것일까.

어느 쪽이든 비극이었다. 자신의 존재가 아이에게 독이 된다고 믿어 스스로를 파괴한 그가 남긴 마지막 유산은, 사실은 필요치 않았던 희생에 대한 증명서였다. 창민은 텅 빈 거실에서 주인을 잃은 결과지를 품에 안고, 이미 세상에서 사라진 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통곡했다. 창밖으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여전히 평화롭게 들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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