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의 동네 절친이신 강 선생 님이 오시는 날은 이야기 꽃을 피우며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몇 시간이 훌쩍 지나도 알아차리지 못하고는 대화 삼매경에 빠지곤 한다.
우리는 선생님이 뜸하시면 왜 안 오시느냐고 서로 앞다투어 연락을 드린다. 백수라도 바쁘시다면서도 다정한 발걸음을 해주시는 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들,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이해하지 못할 이야깃거리를 서로 풀어놓고 대화의 기쁨을 누린다.
동네 논에 노을이 내려 앉아 비춘다.나도 종종 고민거리를 풀어놓는다. 이번에는 손절에 대한 주제였다.
"제가 작년부터 올해까지 세 명에게 손절을 당했어요. 제 생애에 이런 일은 처음이에요. 어떻게 이런 일이 있는지... 왜 그럴까요? 제가 문제가 좀 있는 걸까요? 마음이 무거워요."
"선생님, 세 명이 손절하고 혹시 더 좋아진 거 아니에요?"
예리한 반문을 하시는 선생님이 다시 말씀을 이어가셨다.
"세 명이 손절했으면, 그 기간 동안 새로운 좋은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게 되었을 거 아니에요. 그럼 된 거죠. 너무 욕심부릴 필요 없어요. 저를 보니까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는 면이 있더라고요. 저도 깜짝 놀랐어요."
"맞아요. 선생님. 저도 손절당하면서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닐까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그리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고,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은 욕심이 있더라고요."
그렇다. 어차피 나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된다는 건 터무니없는 욕심일테다. 그저 자신에게 조금 더 정직하고 겸손해질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것조차도 어려울 때가 있다.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다면 그것도 내려놓아야겠다. 자신에게 실망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있는 그대로 존재 그 자체로 소중한 나니까.
누군가는 나를 가까이하고 싶어 하지 않을 수도 있고, 누군가가 똑같은 모습인 나를 좋아할 수도 있는 게 아니겠는가?
지난 주일 예배 때 옆자리에 앉아 찬양을 하던 딸아이가 눈물을 흘렸다. 눈물이 난다며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훔치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도 따라 눈시울이 붉어졌다. 눈에 이슬이 맺혔다.
'나를 지으신 주님 내 안에 계셔
처음부터 내 삶은 그의 손에 있었죠
내 이름 아시죠 내 모든 생각도
내 흐르는 눈물 주가 닦아 주셨죠'
감사합니다. 주님..
꽃들도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