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새집을 짓고 이사를 준비하며 내 생애의 첫 새로운 가전을 들였다. 식기세척기와 건조기다.
북카페 오픈을 하면 의례 설거지감이 많을 거고, 설거지 지옥에서 헤맬 거라는 예상은 식기세척기의 도움을 받아보리라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건조기는 습기가 많은 장마철과 겨울철을 위한 대비였다.
하지만 나는 이 신문물을 돌아보지 않은 채 그대로 덩그러니 방치만 했다. 육체의 피로감을 고스란히 짊어지고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있었다. 미련하다고 해야 할 게다.
인도에서 여러 도움을 많이 받았던 뿌자가 얼마나 그립고 절실했는지 모른다.
'뿌자가 있으면 좋을 텐데.. 한국에 데려오고 싶다.'
혼자 한숨을 쉬었다. 바랄 수 없는 희망을 품으면서 말이다.
지난 장마가 계속되던 날, 드디어 건조기에 빨래를 돌렸다. 한 번 해보고 나니 뽀송하고 보들보들한 옷가지들이 한결 기분을 상쾌하게 해 주었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건조기에 재미를 붙이다가 급기야 이제는 세탁기에서 빨래들이 건조기로 직행을 한다. 빨래를 널고 걷고 하던 일감이 하나 확 줄어든 느낌이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듯했다. 생각보다 건조기를 통과한 옷가지들의 상태가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강아지들이 남긴 털을 털어주는 건조기의 기능은 200퍼센트 만족감을 줬다. 그동안 매번 빨래를 갤 때마다 옷과 양말에 붙어있는 털들을 제거하느라 보통 애를 먹은 게 아니었다. 이제 빨래 속 털들로부터의 해방이다.
다만 주방 싱크대 아래에 설치되어 있는 노랑이 식기 세척기의 운명은 딱히 할 일없는 일꾼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비싼 인력을 방치해 두는 느낌이 더해져 노랑이가 눈에 걸리적거렸다. 나는 왜 식기 세척기를 사용하지 않고 있을까?
그동안 나는 남편에게 불편한 마음으로 긴장도 하면서 설거지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물론 대부분은 그냥 후다닥 내 손으로 치워버리는 게 알뜰한 선택이라 여겼다. 좀처럼 식기 세척기 사용에 대한 특별한 기대와 계획 없이 쭉 지내왔다. 1년이 넘도록 긴 세월 속에 묶어두었다. 속으로 전기세에 대한 부담도 사실 컸기 때문이다. 그렇게 묻힌 나의 가사도우미들은 세상의 빛을 보지도 못하고 묵힐 뻔했다.
무력감과 피로가 쌓여가던 순간, 실마리를 하나 발견했다. 나 자신을 돌보고 존중하고 싶은 마음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나를 힘든 가운데 방치하며 내팽개쳐두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러면서 난생처음으로 꼭꼭 굳게 닫혀있던 식기 세척기의 문을 열고 설거지감을 정리하여 넣기 시작했다. 전원 버튼을 누르고 노란 식기 세척기가 닦고 씻고 깨끗하게 소독까지 해주는 과정을 살피며 감사했다. 얼마나 좋은 지 모르겠다.
우리의 노랑이 식기 세척기
가사도우미, 이모님이라고 하던데. 덕분에 내 짐을 내려놓고 홀가분하고 산뜻한 기분을 누리고 있다.
진작에 가사도우미와 일을 분담했다면 내 스트레스와 피로감이 훨씬 약화되었을 텐데, 이제야 그것을 누린다.
건조기와 식기 세척기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스트레스와 심리적으로 팽팽한 기싸움도 해소가 되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