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인구가 급속도로 늘어가는 있다. 어느 날엔가 나도 노인이 되어 생을 마감하고 천국에 이르는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때가 다가오리라.
최근 노부모님을 모시고 힘겨운 나날을 보내는 세 사람을 가까이에서 보았다. 나는 젊지 않은 나이에 개인의 삶을 희생하면서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그 모습이 더없이 귀하게 여겨지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언젠가 내게도 닥칠 나의 미래가 되지 않을 거라고 배제시킬 수 있을까? 그 주인공이 나는 아닐 거라고 누가 장담하고, 누가 보장받을 수 있겠는가?
그러고 생각해 보니 우리의 미래가 꽤 어둡게 느껴져서 우울해지려 한다. 과연 우리는 더 밝은 미래를 보장받지 못하게 되는 걸까?
그래도 나는 희망 한 스푼 소복이 담아 다가올 미래를 맞이하고 싶다. 어두운 것은 싫기에. 어둠을 덮을 만큼만 한 희망 정도는 놓치고 싶지 않다. 아무리 현실이 그렇다 할지라도.
오랜만에 기*이를 만났다. 한남동 단독주택에서 나름 부족함 없이 살아가는 모습이 편하게 보이기도 했지만, 그녀에게는 90이 넘으신 홀시아버지를 모셔야 하는 일이 주어졌다. 꽤 재산을 모아두신 시아버지는 매일 쌓아둔 현금을 세는 낙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나름 식사며 간식까지 챙겨드리면서 며느리로서의 책임 그 이상으로 자유를 반납하고 살아가는데 문제는 시누이와 시동생이다.
그들은 며느리가 시아버지를 잘 모시고 있는 것을 못마땅해한다. 맛있는 거, 몸에 좋은 거 드리지 말고 시아버지께 잘해드리지 말라고 언짢게 여기며 시시때때로 간섭과 잔소리로 괴롭힌다고 한다. 어서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길 바라는 그들의 본심에서 나오는 이해불가한 언행들이다. 과연 자녀라고 할 수 있을까? 그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면 그들이 물려받게 될 유산에만 마음과 시선이 가 있다.
이럴 땐 오히려 재산 없는 부모가 더 마음 편하고 행복한 노년을 보내게 될 거 같다. 현실에서 실제로 그렇다는 얘기도 종종 듣는다.
가까운 교회 집사님은 교사생활을 하다가 남편과 함께 은퇴하고 전원생활을 누리려 새로운 터전을 준비해서 은퇴 후의 평화로운 삶을 계획하고 막 그런 날들을 살아가고 있을 무렵. 홀로 지내시던 시어머니가 치매에 걸리고 말았다. 결국 1년 전에 요양원에 가시기를 완강히 거부하시는 시어머니를 전원주택으로 모셨다.
선생님의 생활은 한순간에 바뀌고 말았다.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가 아들 내외를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곁에서 지켜보았다. 시누이와 시동생이 있지만 전혀 찾아오지 않고 있고 모른 척하고 돌아보지 않는다.
순간 삶이 너무 고달프고 우울해져 버렸다. 더군다나 결혼을 완고하게 반대하셨고, 시집살이도 만만치 않았으며, 35년을 각각의 삶을 떨어져 살다가 한 지붕 아래서 지내게 되었으니 그 고충을 어떠할지 상상이라도 쉽지 않다. 심지어 친정 식구들 모임과 명절, 생일에도 시어머니를 모시고 다녀야 한다. 목욕과 옷 입는 방법부터 다시 아기처럼 가르치면서 돌보는 일은 날이 갈수록 관계를 더 어렵게 만들어가고 있다.
과연 얼마 동안 감당할 수 있을지 하루하루가 힘겹게 지나간다. 여전히 시어머니는 요양원을 거부하며 아들 내외의 은퇴 후의 삶을 최대한 활용하고 계신다.
과연 행복한 노후일까?
내 친구 현*이는 어떠한가? 대형교회의 유능한 사역자로 자신의 역량을 멋지게 뿜어내고 있었다. 하늘을 찌르는 실력으로 많은 이들에게 인정과 존경심을 끌어 모으던 그녀에게
고향에 홀로 계신 엄마가 새벽에 쓰러지시고, 고관절을 다쳐 수술을 하게 되면서 모든 일을 손에서 놓아야만 했다. 누구의 강요도 아니고 부탁도 아니었다. 엄마를 돌보겠다는 그녀의 완고한 의지가 모든 것을 내려놓게 만들었다. 그렇게 엄마 곁을 지키며 간호와 돌봄을 시작한 그녀는 5년을 훌쩍 넘기고 10년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고관절 수술 후에 다시 넘어져 다치시고 인공 고관절에 염증이 차고, 시술에 시술을 반복했다. 홀로 거동이 불가능한 엄마를 24시간을 지키고 돌봐야 한다. 밤에 수차례에 걸쳐 소변을 보기 위해 잠을 깨우는 엄마 때문에 깊은 수면조차 보장되지 않는 삶을 자원하여 살아가고 있다. 마음 놓고 외출 한번 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친구의 모습은 존경심을 더해 경외감마저 들게 한다.
위로 오빠들과 언니가 있지만 막내가 자처해서 엄마를 챙겨드리면서 본인의 삶을 희생하면서 세월을 죽이는 건 아닌지 곁에서 바라보는 내 마음도 편치 않다. 그렇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넌지시 공중에 분해되어 없어질 말을 던져본다. 소용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결혼도 하지 않은 본인의 삶을 엄마를 위해 기꺼이 포기한 것처럼 보이는데, 오히려 엄마가 살아가게 하는 이유, 살아남아야 하는 진정한 이유가 된다고 하는 그녀.
"엄마는 좋으시겠다. 막내딸이 늘 같이 있어주니까. 그렇지? 너 같은 딸이 어디 있겠어."
건네는 내 말에 대답하는 그녀의 말에 엄마에 대한 애정이 묻어난다.
"내가 더 좋지. 엄마랑 같이 있으니까. 이제 내가 대장이야. 엄마는 내가 하라고 하는 대로만 하잖아. 안 그러면 나한테 혼나거든."
어느새 엄마와 딸의 위치가 바뀌어 버렸다. 엄마는 혼자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어지셨으니 딸 없는 삶은 상상할 수도, 남아있는 생을 이어가기도 불가능해졌다. 이제 딸이 엄마의 두 손 두 발이 되어드리고 있는 셈이다.
누군가 말했다. 우리는 '마처세대'라고.
즉 마지막으로 부모를 부양하고, 처음으로 자녀의 부양을 받지 않게 되는 세대라는 뜻이다.
지금 우리는 부모님을 챙기며 살펴드리고 있지만, 우리 자녀들에게는 우리가 하던 그것을 기대하지 않아야 된다는 것을 기억하고 마음에 준비를 해야 하는 세대가 되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내가 살게 될 미래는 어떤 모양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두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알 수 없는 기대감도 스며든다.
나는 나의 노후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일단 건강부터 챙기자.
건강한 노후를 소망하면서
집 앞 여름 저녁 노을